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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엘 강해 07] 불 가운데에서도 주가 함께 계시니
운영자 2026-03-12 추천 0 댓글 0 조회 8
[성경본문] 다니엘3:19-27 개역개정

19. 느부갓네살이 분이 가득하여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를 향하여 얼굴빛을 바꾸고 명령하여 이르되 그 풀무불을 뜨겁게 하기를 평

20. 군대 중 용사 몇 사람에게 명령하여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를 결박하여 극렬히 타는 풀무불 가운데에 던지라 하니라

21. 그러자 그 사람들을 겉옷과 속옷과 모자와 다른 옷을 입은 채 결박하여 맹렬히 타는 풀무불 가운데에 던졌더라

22. 왕의 명령이 엄하고 풀무불이 심히 뜨거우므로 불꽃이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를 붙든 사람을 태워 죽였고

23. 이 세 사람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는 결박된 채 맹렬히 타는 풀무불 가운데에 떨어졌더라

24. 그 때에 느부갓네살 왕이 놀라 급히 일어나서 모사들에게 물어 이르되 우리가 결박하여 불 가운데에 던진 자는 세 사람이 아니었

25. 왕이 또 말하여 이르되 내가 보니 결박되지 아니한 네 사람이 불 가운데로 다니는데 상하지도 아니하였고 그 넷째의 모양은 신들의 아들과 같도다 하고

26. 느부갓네살이 맹렬히 타는 풀무불 아귀 가까이 가서 불러 이르되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종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야 나와서 이리로 오라 하매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가 불 가운데에서 나온지라

27. 총독과 지사와 행정관과 왕의 모사들이 모여 이 사람들을 본즉 불이 능히 그들의 몸을 해하지 못하였고 머리털도 그을리지 아니하였고 겉옷 빛도 변하지 아니하였고 불 탄 냄새도 없었더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불 가운데에서도 주가 함께 계시니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은 자기의 세력이 점점 강대해지자 이를 드러내고자 두라 평지에 거대한 신상을 세웠습니다. 이 신상은 바벨론 백성들이 섬기는 이라 불리우는 신의 신상으로 왕의 수호신이었습니다. 크고 강한 제국을 이루게 되었으니 느브갓네살은 자신을 지키고 승리하게 한 벨 신에게 감사를 표현하고자 했던 것입니다.

 

동시에 그 거대한 신상을 통해서 느브갓네살은 자신이 얼마나 크고 위대한 왕인지를 드러내고자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가 이와 같은 아이디어를 갖게 된 것은 다니엘이 설명해 준 자신이 꾸었던 꿈 속에 그 거대한 존재를 생각하며 그 머리는 금이요, 바로 바벨론 왕이라는 것에 착안하여 자신을 드러내고자 했던 것입니다.

 

그 크기가 얼마나 큰지 1절에 보니 높이가 육십 규빗이요, 너비는 여섯 규빗이었습니다. 환산하면 높이가 30미터요, 넓이가 3미터입니다. 건물로 비교하면 10층 정도 높이의 거대한 신상이에요. 거기에다가 금신상이라고 했으니 햇빛에 찬란하게 빛나는 그 모습에 사람들은 경이롭고 그 앞에서 겸손해질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 금신상을 건립하고 낙성식을 하게 되었습니다. 각계각층 전국 각지의 모든 관리들과 백성들이 모였어요. 이 신상을 거룩하게 하기 위하여 종교적인 의식을 행했던 것입니다. 나팔과 피리와 수금과 삼현금과 양금과 생황과 및 모든 악기가 소리를 낼때 그 자리에 선 모든 사람은 그 신상 앞에 절을 하며 경배드렸습니다. 각기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포로로 잡혀 온 이방인들도 그 큰 음악 소리를 들을 수 있으니 절하게 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방인들은 바벨론의 벨 신이 어떤 존재인지 몰라요. 그러므로 경외하는 마음도 없고 그러므로 경배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왕은 특명을 내립니다. 6절에 보니 누구든지 엎드려 절하지 아니하는 자는 즉시 맹렬히 타는 풀무불에 던져 넣으리라 하였더라(3:6) 큰 음악 소리가 날 때 그들 모두는 그 우상 앞에 엎드려 절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 금신상 앞에 절하지 않는 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들 중에는 관원으로 봉직하고 있는 다니엘의 세 친구,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였습니다. 자신들과 다른 이방족속인데 왕의 총애를 받고 관원이 된 그들을 보면서 시기심과 질투심에 가득한 바벨론 관원이 왕 앞에 이를 보고합니다.

 

그 소식에 왕이 화가 가득하여 그들을 부릅니다. 보니 그들은 그가 총애하는 다니엘의 친구들이에요. 풀무 불에 던져지기 전에 살아날 수 있는 기회를 줍니다. 15절의 내용입니다. 이제라도 너희가 준비하였다가 나팔과 피리와 수금과 삼현금과 양금과 생황과 및 모든 악기 소리를 들을 때 내가 만든 신상 앞에 엎드려 절하면 좋거니와 너희가 만일 절하지 아니하면 즉시 너희를 맹렬히 타는 풀무불 가운데에 던져 넣을 것이니 능히 너희를 내 손에서 건져낼 신이 누구이겠느냐 하니(3:15)

또 다시 절하지 아니하면 너희는 반드시 죽게 될 것이다.” 그런 뜻이죠. 그러면서 뭐라고 말하는가 하면, “능히 너희를 내 손에서 건져낼 신이 누구겠느냐?” 왕이 무엇을 나타내고 싶어하나요? 자신보다 강한 존재는 세상에 없다는 것입니다.

 

저는 그의 호언장담을 보면서 북한의 김일성과 김정일 그리고 현재의 김정은이 생각났습니다. 독재자죠. 공포정치를 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정치체제에 조금이라도 장애물이 된다 싶으면 가족도 친척도 없습니다. 모두가 보란 듯이 무참하게 죽였습니다. “절하지 아니하면, 즉 복종하지 아니하면 가차없이 풀무불에 넣을 것이다!” “거기에서 비껴갈 자가 누구냐?”

북한을 공식적으로 방문하는 자들은 성직자도 예외가 없어요. 우선 김일성 동상 앞에서 고개를 숙이게 하였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다니엘의 세 친구가 왕에게 답합니다. 느브갓네살 왕이여 우리가 이 일에 대하여 왕에게 대답할 필요가 없나이다.” 무슨 뜻이겠어요? 소신을 굽히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타협하지 않겠다는 의지입니다. 17절과 18절 말씀을 함께 보겠습니다. 왕이여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이 계시다면 우리를 맹렬히 타는 풀무불 가운데에서 능히 건져내시겠고 왕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이다 그렇게 하지 아니하실지라도 왕이여 우리가 왕의 신들을 섬기지도 아니하고 왕이 세우신 금 신상에게 절하지도 아니할 줄을 아옵소서(3:17~18)

 

자신의 생명을 구하고자 신상에 절하지 않겠다는 거에요. 이 용기가 어디에서 나온 것이겠습니까? 생명은 여호와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원하시면 그 뜨거운 풀무 불 가운데에서도 생명을 보호해 주실 것이요, 그런데 그렇게 하지 아니하실지라도 무슨 뜻이겠어요? 하나님께서 생명을 거둬가신다고 해도, 그 또한 하나님의 뜻이니, 개의지 아니하겠다는 것입니다. 생명이 창조주이신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생명을 구하고자 우상 앞에 절대로 고개를 숙이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주 안에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처럼 두려움 없이 입을 열어 고백하는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의 모습을 그려보면서 여러분은 어떤 생각을 갖습니까? 내가 만일 그런 처지에 있다면 어떻게 할까? 사도 바울이 고백이 떠오릅니다.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14:8) 내 생명의 창조가 하나님이시니 주신 분도 하나님이시오, 거두실 분도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이 근본적인 진리에 불평은 소용이 없습니다. 감사해야지요. 영혼을 창조하시고, 이 땅에 생명으로 보내시고 살게 하셨다면, 그러므로 성장하여 가정을 이루고, 가족을 갖는 기쁨을 누리게 하시고, 일하는 자로 사회에 이바지 하고, 그러므로 때때로 즐거움과 보람과 행복을 느끼게 해 주셨다면, 거기에다 주께서 주신 영광스러운 하나님의 일까지 감당했다면 감사해야지요. 그리고 만일 어떠한 죽음으로 주의 영광을 나타낼 수 있다면, 이는 천국에서도 기뻐할 일이니 영광으로 여겨야 할 것입니다.

 

문제는 그러한 믿음이 내게 있는가? 정말 그런 상황에 이르렀을 때 우리는 다니엘의 세 친구처럼 그리하지 아니하실지라도 나는 어떠한 죽음일지라도 주의 뜻을 받겠나이다.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나는 주의 것이로다 라는 용기와 믿음을 우리가 어떻게 가질 수 있을까요?

 

유태인 수용소에서 건강한 자는 노동력을 얻기 위해 살려 두었지만 병약한 자는 가스실로 먼저 데려갔습니다. 한 가족이 함께 수용되었는데 문제는 어린 아들이 병약한 거에요. 일을 하면서도 그의 부모는 수용소에 혼자 있는 병약한 아들이 눈에 밟힙니다.

일을 마치면 아빠도 엄마도 제일 먼저 수용소에 달려가서 봅니다. 아들이 여전히 거기에 있는지 아니면 가스실로 끌려갔는지!

 

하루는 아버지가 부과된 일이 너무 많아서 늦게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와 보니 아들이 없는 거에요. 불안함이 엄습했습니다. “~! 끌려갔구나~!” 예견된 일이었지만 형용할 수 없는 슬픔이 심장을 짖눌렀습니다. 그런데 보니 먼저 와 있어야 할 아내가 안 보이는 거에요. 궁금해하며 불안해 하는 이 아빠에게 한 사람이 그 아들이 끌려가던 상황을 말해 주었습니다.

 

아들이 독일병사에게 끌려가려 하지 않으려고 발버둥치며 울었습니다. 그때 그 우는 모습을 보던 엄마가 나섰지요. 아이에게 다가가서 그 우는 아들을 안아주며 말했습니다.

아이야 울지 마라! 엄마가 같이 갈거야~! 그러니까 너무 겁내지 말고 울지 말어~! 엄마가 같이 갈게~!” “그때 아이는 울음을 뚝 그쳤어요. 그리고 엄마의 손을 잡고 둘은 그렇게 가스실로 들어갔습니다.”

 

죽음은 누구에게나 두렵습니다. 임종을 맞이하는 모습은 다양합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찌라도 해를 두려워 하지 아니할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죽음 앞에서 우리가 그 죽음을 담대히 통과할 수 있는 용기와 믿음을 가질 수 있는 것은 사람의 힘과 능력이 아니요, 주의 영이 우리와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죽음을 통과하면 눈부신 찬란한 빛 가운데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내 영혼의 본향!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영원한 처소의 문이 활짝 열리는 것입니다. 거기에는 영생복락이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는 이 믿음을 가지고 풀무불 속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왕이 봅니다. 타 죽지 않아요. 그런데 그 불 가운데 연기 가운데 희미하게 보이는 그 형체가 세명이 아닌 것이에요. 한 명이 더 보입니다. 24절과 25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그 때에 느부갓네살 왕이 놀라 급히 일어나서 모사들에게 물어 이르되 우리가 결박하여 불 가운데에 던진 자는 세 사람이 아니었느냐 하니 그들이 왕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왕이여 옳소이다 하더라 왕이 또 말하여 이르되 내가 보니 결박되지 아니한 네 사람이 불 가운데로 다니는데 상하지도 아니하였고 그 넷째의 모양은 신들의 아들과 같도다 하고(3:24~25)

 

그 네 번째 보이는 자는, 하나님께서 보내신 하나님의 아들이셨습니다. 그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셨습니다. 그들과 동행하는 하나님의 아들은 이렇게 불보다 더 뜨거운 믿음을 가지고 여호와 신앙을 지켜낸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와 함께 동행하시므로 생명을 보존시키셨습니다.

 

그는 오늘도 전쟁터와 같은 세상에서, 어디에서도, 누구에게도 어떤 일에도, 믿음을 지키며 복이 되기를 바라는 여러분과 함께 동행하시는 우리 주님 아니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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