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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강해 81] 환난의 때를 극복하고 일어서기 위하여
운영자 2026-01-13 추천 0 댓글 0 조회 41
[성경본문] 시편77:1-9 개역개정

1. 내가 내 음성으로 하나님께 부르짖으리니 내 음성으로 하나님께 부르짖으면 내게 귀를 기울이시리로다

2. 나의 환난 날에 내가 주를 찾았으며 밤에는 내 손을 들고 거두지 아니하였나니 내 영혼이 위로 받기를 거절하였도다

3. 내가 하나님을 기억하고 불안하여 근심하니 내 심령이 상하도다 (셀라)

4. 주께서 내가 눈을 붙이지 못하게 하시니 내가 괴로워 말할 수 없나이다

5. 내가 옛날 곧 지나간 세월을 생각하였사오며

6. 밤에 부른 노래를 내가 기억하여 내 심령으로, 내가 내 마음으로 간구하기를

7. 주께서 영원히 버리실까, 다시는 은혜를 베풀지 아니하실까,

8. 그의 인자하심은 영원히 끝났는가, 그의 약속하심도 영구히 폐하였는가,

9. 하나님이 그가 베푸실 은혜를 잊으셨는가, 노하심으로 그가 베푸실 긍휼을 그치셨는가 하였나이다 (셀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환난의 때를 극복하고 일어서기 위하여

 

오늘 시편 77편에 등장하는 시인은 인생 여정에 환난의 때를 맞이하였습니다. 스스로 극복할 수 없는 상황이니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로서, 생사화복의 주가 되신 하나님을 찾습니다. 그리고 간청합니다. 주여! 나를 도와주소서~!” 저와 여러분도 다를 바가 없겠지요.

 

1절 말씀이 그 모습을 보여줍니다. 내가 내 음성으로 하나님께 부르짖으리니 내 음성으로 하나님께 부르짖으면 내게 귀를 기울이시리로다(77:1) 부르짖으리니 그리고 이어 부르짖으면이라고 했어요. 부르짖는다는 것은 간절함의 표현입니다. 부르짖는 이유는 그의 믿음의 고백대로 주께서 내게 귀를 기울이실 것이라는 소망이 있기 때문이며, 그러기에 응답하실 것이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어려운 환난의 상황이 해결되지 않고 여러 날 동안 지속됩니다. 마음은 불안하고 염려와 걱정으로 지쳐갑니다. 그러므로 밤에도 숙면을 취할 수가 없어요. 잠을 이루지 못하며 불면증에 시달리니 몸도 약해져 갑니다. 그러나 기도하기를 포기할 수 없어요. 2절의 내용이에요. 나의 환난 날에 내가 주를 찾았으며 밤에는 내 손을 들고 거두지 아니하였나니 내 영혼이 위로 받기를 거절하였도다(77:2) 밤에도 손을 들고 기도하며 주의 은총을 간구합니다.

 

그런데 2절의 마지막 문장이, 내 영혼이 위로 받기를 거절하였도다 라고 표현을 했어요. 이 모습은 곁에 있는 사람의 위로가 위로가 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자신처럼 그 어려운 상황에 있지 아니하니, 그 아프고 힘든 마음을 공감하지 못합니다. 그럴 때가 있어요. 욥의 친구들이 그러지 아니했나요? 말할 수 없는 고통과 환난 중에 있는 욥을 찾아온 친구들이 욥을 위로한다고 하지만, 그들은 선생의 모습으로 네가 무슨 죄를 지었으니까 이 환난이 찾아왔지~! 그러니 잘 생각해 봐~! 회개해야 해~!” 이게 위로가 됩니까?

 

설혹 그들의 말이 맞는다고 해도, 그들이 해결자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근본적인 해결은 오직 생사화복의 주가 되신 하나님의 영역인 것이에요. 그렇다고 해서 가족과 친구와 교우의 위로가 필요 없다는 것이 아닙니다. 중요한 자세는 공감하고 체휼하는 것이지요. 성경 로마서 1215절의 말씀대로 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12:15) 감정적 공감과 체휼이 먼저겠지요.

 

이 환난 가운데서 시간이 가도 해결이 안 되니 시편 기자는 생각합니다. 내가 하나님께 버림을 받은 것은 아닌가? 과연 나를 구원하실까?” 저는 교우들 중에 그런 모습을 봅니다. 큰 환난을 당하고 놀람과 두려움으로 새벽기도회 시간에 하나님 앞에 나와 기도하다가 여러 날이 지나도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응답이 없으니, 아예 포기하고 좌절하고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져 가는 모습을 봅니다. “오죽하면 저럴까!” 생각도 들지만, 그러나 그러면 안됩니다. 오늘 본문 7, 8절과 9절의 모습에서 그 연약한 모습을 봅니다. 주께서 영원히 버리실까, 다시는 은혜를 베풀지 아니하실까, 그의 인자하심은 영원히 끝났는가, 그의 약속하심도 영구히 폐하였는가, 하나님이 그가 베푸실 은혜를 잊으셨는가, 노하심으로 그가 베푸실 긍휼을 그치셨는가 하였나이다(77:7~9) 이런 부정적인 생각은 할 수도 있겠지만, 바람직한 모습은 아니에요.

 

믿음의 사람은 생각합니다. 나를 누구보다 잘 아시는 나의 창조주 하나님께서 분명 무슨 뜻을 가지고 행하시는거야~! 이 환난의 의미를 알게 될 날이 올 거야~!” 성경의 말씀대로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가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하지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고전10:13) 믿음이 있는 자! 그러므로 소망 중에 기도하는 자는 마침내 환난의 때를 견뎌내고, 정금같은 모습으로 서게 됩니다.

 

오늘 시편 기자는 그처럼 하나님이 나를 잊었다. 버렸다.” 라는 생각이 잘못된 생각임을 압니다. 너무 힘드니까 견뎌내기가 어려우니까 마치 하소연하고 넋두리하는 것임을 스스로 깨닫고 고백을 해요. 이는 나의 잘못이라!” 10절에 그의 고백이에요. 그런 믿음 없는 고백은 잘못된 것임을 깨닫고 그가 다시금 믿음으로 섭니다.

 

그러면 이 시편 기자가 이처럼 힘들어하는 그 환난은 무엇일까요? 찾아보아도 그 내용은 볼 수가 없어요. 생각해 볼 때 그 시대를 사는 사람이나 이 시대를 사는 사람이나, 인생 여정에 닥쳐오는 환난은 시대와 문화를 막론하고 크게 다르지 아니합니다.

 

미국 정신의학자 토마스 홈즈와 리챠드 라헤는 1967Social Readjustment Rating Scale(SRRS)이라는 설문을 통해, 걱정과 불안과 두려움을 유발하는 인생 사건들을 계량화했습니다. 이 자료는 전 세계 심리학, 정신의학 분야에서 폭넓게 활용되고 있습니다. 사람이 살다가 당하는 환난의 종류에 따라 그것을 느끼는 고통의 정도도 다르다는 겁니다.

 

가장 큰 스트레스는 배우자의 사망이라고 했어요. 큰 충격을 받습니다. 둘째는 이혼이라고 했어요. 배우자를 잃는 것과 버금가는 고통을 느낍니다. 셋째는 배우자와의 별거요, 네 번째는 교도소에 수감되는 것이요, 다섯째는 가족 중에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이요, 여섯째는 자신의 부상이나 질병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같은 방법으로 한국인을 연구한 결과, 그 순위는 조금 달랐어요. 개인주의보다는 전통적으로 가족 중심의 문화를 갖고 있는 한국인은 그 극심한 불안과 두려움의 첫째가 자식 사망이라고 했어요. 둘째는 배우자 사망이요, 셋째는 부모사망이요, 넷째는 부부간에 이혼이고, 다섯째는 형제자매 중 사망이라고 했습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 믿음의 사람들은 이러한 상황에서 어떻게 그 환난을 이겨낼 수 있는가? 아니겠습니까? 성경은 말씀합니다. 마음의 즐거움은 양약이라도 심령의 근심은 뼈를 마르게 하느니라(17:22) 그러기에 또한 말씀하기를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4:23) 두려움과 근심, 걱정과 불안에서 마음을 지키지 못하면, 이는 육신적으로 질병으로 이어집니다. 더 불행한 것은, 그 위태한 심령에 사탄이 틈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우리가 마음을 지킬 수 있어야 합니다.

 

오늘 시편 기자는 우리에게 제시합니다. 자신의 비관적인 생각과 믿음없는 모습을 잘못으로 인정한 그는 그 고통의 바닥을 치지만, 그 바닥을 박차고 다시 위로 올라옵니다. 그 모습은

 

첫째, 지난날 하나님께서 나에게 행하셨던 선한 일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다시금 믿음으로 일어서는 것입니다.

11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곧 여호와의 일들을 기억하며 주께서 옛적에 행하신 기이한 일을 기억하리이다(77:11) 기억하리이다 그랬어요. 여러분 자신이 직접 경험한 것이 제일 좋겠지요. 도산의 위기에서 사업을 일으키신 하나님! 또는 완전히 망하였는데 그것이 오히려 잘되어 전화위복을 이루신 하나님! 육신의 질병으로 인해 죽을 줄 알았는데 치유하시고 살려내신 하나님! 또한 역사로 보면, 나라를 구하시고 주권을 회복하시며, 전쟁의 폐허더니 위에서도 한강이 기적을 이루신 하나님의 그 전지전능하신 능력을 기억하며, 믿음으로 서는 것입니다. 나의 영혼을 창조하시고 이 땅에 생명으로 보내신 하나님께서 나를 향하신 뜻이 있지 않겠느냐? 그 선하신 뜻을 분명히 이루실 것이다. 그러므로 나를 다시금 일으켜 세우실 것이다!” 이 믿음은 과거를 기억하고, 현재를 견디며, 밝은 미래에 서 있는 믿음입니다.

 

둘째, 하나님은 불가능이 없으신 전지전능하신 능력의 하나님이심을 믿는 것입니다.

14절과 15절 말씀을 읽습니다. 주는 기이한 일을 행하신 하나님이시라 민족들 중에 주의 능력을 알리시고 주의 팔로 주의 백성 곧 야곱과 요셉의 자손을 속량하셨나이다(77:14~15)속량하셨나이다!” 그 뜻이 구해내셨나이다!” 입니다. 이 모습은 기적을 믿는 믿음이에요. 그리고 그 믿음의 근거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이 믿음이 어떤 자에게 주어집니까? 주의 은총을 사모하며 간구하며 간절히 기도하는 자에게 주어집니다.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 (29:11) 그 다음에 뭐라고 말씀하세요? 너희가 내게 부르짖으며 내게 와서 기도하면 내가 너희들의 기도를 들을 것이요(29:12) 너희가 온 마음으로 나를 구하면 나를 찾을 것이요, 나를 만나리라(29:13) 믿으시면 아멘! 이 새벽에도 이 놀라운 은총의 역사가 있기를 축복합니다.

 

셋째, 여호와 하나님은 오늘도 내 영혼을 지키시며 인도하시는 목자이심을 믿는 것입니다.

마지막 절 20절 말씀이에요. 주의 백성을 양 떼 같이 모세와 아론의 손으로 인도하셨나이다(77:20) 양떼와 같이 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양인 것이에요. 출애굽으로부터 하나님께서는 주의 종 모세와 아론을 통해 광야를 지나 요단강을 건너 약속의 땅까지 인도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을 양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양은 갈 바를 잘 알지 못해요. 그래서 목자가 필요합니다. 다윗은 아비의 양을 칠 적에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서 어린 양을 채어가려는 야수들과 사투를 벌어야 했습니다. 날카로운 곰의 발톱과 사자의 이빨에서 아비의 양을 지켜냈습니다. 그때 그는 알았습니다. 양들은 목자가 있어 보호를 받듯이, 나는 하나님의 어린양이요, 하나님은 나의 목자가 되니시,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믿음입니다. 이러한 믿음이 있을 때 우리는 환난 중에도 다시금 일어날 수 있는 것입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이 새벽에 기도하실 때 이 믿음으로 다시금 일어서시기를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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