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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로새서 강해 05] 십자가에서 이룬 구원과 승리
운영자 2025-11-26 추천 0 댓글 0 조회 29
[성경본문] 골로새서2:11-19 개역개정

11. 또 그 안에서 너희가 손으로 하지 아니한 할례를 받았으니 곧 육의 몸을 벗는 것이요 그리스도의 할례니라

12. 너희가 세례로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되고 또 죽은 자들 가운데서 그를 일으키신 하나님의 역사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 안에서 함께 일으키심을 받았느니라

13. 또 범죄와 육체의 무할례로 죽었던 너희를 하나님이 그와 함께 살리시고 우리의 모든 죄를 사하시고

14. 우리를 거스르고 불리하게 하는 법조문으로 쓴 증서를 지우시고 제하여 버리사 십자가에 못 박으시고

15. 통치자들과 권세들을 무력화하여 드러내어 구경거리로 삼으시고 십자가로 그들을 이기셨느니라

16. 그러므로 먹고 마시는 것과 절기나 초하루나 안식일을 이유로 누구든지 너희를 비판하지 못하게 하라

17. 이것들은 장래 일의 그림자이나 몸은 그리스도의 것이니라

18. 아무도 꾸며낸 겸손과 천사 숭배를 이유로 너희를 정죄하지 못하게 하라 그가 그 본 것에 의지하여 그 육신의 생각을 따라 헛되이 과장하고

19. 머리를 붙들지 아니하는지라 온 몸이 머리로 말미암아 마디와 힘줄로 공급함을 받고 연합하여 하나님이 자라게 하시므로 자라느니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십자가에서 이룬 구원과 승리

 

세례가 무엇인가?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세례는 죄 씻음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세례는 물로 베풉니다. 물은 더러운 것을 씻어내는 기능을 갖고 있어요. 그러므로 물은 씻음의 상징입니다. 물로 세례를 베푼다는 것은 갖고 태어난 원죄, 사는 동안 범한 죄, 그 모든 죄를 씻어낸다는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세례를 통해 죄 씻음을 받은 자는 의롭다 인정함으로 받고 하나님의 자녀로 인치심을 받는 것입니다.

 

구약시대에는 하나님께서 명하셔서 하나님의 자녀들은 할례를 받았습니다. 할례는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을 인치는 행위로 몸에 그 증표를 남기는 예식이었습니다. 세례와 할례의 공통점은 바로 하나님의 자녀로 인치심을 받는 외적 행위요 예식인 것입니다. 그런데 할례는 외적으로 증거가 남는 것이요, 세례는 심령에 증거가 남는 것입니다.

 

성경본문에서 사도바울은 구약시대의 할례와 신약시대의 세례의 그 연관성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습니다. 11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또 그 안에서 너희가 손으로 하지 아니한 할례를 받았으니 곧 육의 몸을 벗는 것이요 그리스도의 할례니라(2:11)

 

먼저 세례를 가리켜 말씀하기를 첫째, 손으로 하지 아니한 할례라고 했으며, 둘째, 육의 몸을 벗는 것이라 했으며, 셋째, 그리스도의 할례라고 했습니다. 손으로 하지 아니하였다 함은 몸에 칼을 대는 수술로 행한 것이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심령에 인치신 것이기 때문이요, 육의 몸을 벗는 것이라 했으니 이는 겉사람이 아니라 사람의 본체인 영혼이 새 생명으로 살아나는 것이기 때문이요, 그리스도의 할례하고 하는 것은 이 세례의 효력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이루신 구원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어 아주 중요한 진리가 소개됩니다. 12절 말씀입니다. 너희가 세례로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되고 또 죽은 자들 가운데서 그를 일으키신 하나님의 역사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 안에서 함께 일으키심을 받았느니라(2:12)

 

그 안에서예수 안에서,” “예수님과 함께!” 라는 뜻인데요. 이 말씀에는 아주 심오한 뜻이 있어요. 세례가 그처럼 중요한 효력을 갖고 있는 이유는 세례를 통해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대속의 죽음에 동참한다는 것입니다. 십자가에서 주와 함께 죽고, 주께서 부활하실 때 우리도 같이 살아난다는 것이에요. 한 문장으로 설명하자면, 나의 죄는 주님과 함께 십자가에서 못박혀 죽었고, 다시 살아나는 나는, 주와 함께 의로 새롭게 살아난다는 것입니다.

 

이 깊은 진리의 내용을 사도바울이 갈라디아서 220절에 이렇게 고백합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2:20)

나는 죽고 예수로 사는 인생임을 사도바울은 고백했어요. 이 믿음은 대단한 믿음입니다. 나의 전인격을 주님께 맡기고, 이제는 내 뜻이 아닌 주님의 뜻대로 살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주께서 그를 사용하지 않으시겠어요?

 

같은 맥락에서 19세기 가장 위대한 전도자로 일컫는 D.L,무디도 같은 믿음으로 살았습니다. 그는 너무나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나 어려운 가정경제를 도와야 하기에 초등학교 5학년 때 학업을 멈춰야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를 사용하시지요.

 

그처럼 학식이 부족한 자가 에드워드 킴볼 선생님에게 전도를 받고 예수를 믿게 된 뒤 놀랍게 변합니다. 수많은 영혼을 주님께 인도합니다. 영국으로 건너가 옥스퍼드 대학생들과 캠프릿지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부흥회를 인도 할 때, 첫날 그 똑똑한 학생들은 D.L.무디의 틀린 영어 문법을 세었습니다. 그러나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고 한 주간이 지났을 때 그들의 학적 교만함은 그가 선포하는 강력한 하나님의 말씀에 완전히 고꾸라집니다. 뜨거운 성령의 불길이 그들의 마음에 번지면서 어떤 일이 벌어집니까? 복음이 들어가지 않은 검은 대륙 아프리카로 너도 나도 선교사로 지원하게 됩니다. 놀라운 선교운동이 시작된 것입니다. 성경의 말씀 그대로에요.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 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이는 아무 육체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고전1:27~29)

 

이 진리를 누구보다 체험으로 잘 알고 있는 D.L. 무디는 세상을 향하여 외칩니다. 당신의 삶을 하나님께 바치면, 하나님은 당신이 할 수 있는 것보다 더 위대한 일을 하십니다.” 이 외침은 그의 평생의 좌우명이 되었고, 나중에 무디 성경신학교의 모토가 됩니다.

 

세례의 진정한 의미가 바로 그것이라는 것입니다. 나의 죄는 십자가에 죽고, 주가 함께 의로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부활의 능력이 삶 가운데 생명력의 원천이 되는 것입니다.

 

오늘 사도바울의 강조하는 세례와 십자가의 의미를 세 가지로 요약 정리하겠습니다.

 

첫째, 세례는 십자가의 승리를 나타내는 징표입니다.

세례를 받는 사람은 그의 몸을 십자가에 못 박는 경험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자기 자신의 몸을 죽인다는 것은 원죄로 인해 세상으로부터 쫓아온 이생의 자랑과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자랑을 십자가에 못 박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십자가의 승리는 부활입니다. No Cross No Crown! 이라고 했습니다. 십자가에 못 박힘 없이는 부활이 없습니다. 중생은 이렇게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둘째, 십자가는 죄를 못 박아 없애는 무죄 선언의 표징입니다.

13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또 너희의 범죄와 육체의 무할례로 죽었던 너희를 하나님이 그와 함께 살리시고 우리의 모든 죄를 사하시고(13) 골로새 교인들은 무할례자 였어요.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었습니다. 골로새 사람들이 그리스도를 믿기 전까지는 죄에서 방황하던 사람들이었고 또 육체의 할례도 받지 못한 사람들로 살았으니 죽은 자들과 별로 다름이 없었음을 지적합니다. 그들은 구원의 소망은 들어보지도 못한 죄의 종이었어요. 그러나 이제는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물과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깨끗하게 되어, 죄의 종에서 해방된 것입니다. 로마서 66절의 말씀대로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의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죽어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 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이는 죽은 자가 죄에서 벗어나 의롭다 하심을 얻었음이라(6:6~7)

십자가는 우리의 죄까지도 못 박아 없애는 무죄 선언의 표징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살아 있는 성도라면 끊임없이 십자가를 자랑하고 외쳐야 합니다.

 

셋째, 십자가는 죄의 율법과 세상 악한 영의 권세를 이겼습니다.

당시 골로새 지역 사람들은 여러 계급의 천사들과 여러 종류의 유령과 귀신들을 믿었습니다. 그들은 그것들이 사람들을 해치러 다닌다고 생각했어요. 그런 것들이 사람을 미치게 하고 귀신들린 자로 만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그 악신들을 단번에 정복하시고 그들의 권세를 없이하셨습니다. 잘못된 율법적인 요소나 죄로부터 오는 공포감은 예수께서 십자가의 승리로 완전히 물리치셨습니다.

 

그러므로 이 새벽에도 기도합니다. 행여나 과거의 어떤 과오로 인해 여전히 죄책감에 휩싸여 있다면 회개하십시오. 위로의 영이신 성령께서 함께 위로하시며 그 회개의 기도를 하나님께 올리십니다. 성경은 요한119절에 말씀합니다.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요일1:9) 그 회개하는 마음에 사탄, 마귀는 견디지 못하고 떠납니다. 더 이상 걱정 근심 염려 죄책감으로 사람의 마음을 좌지우지 조종하지 못합니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그린 최후의 만찬이라는 그림에는 이런 얘기가 담겨져 있습니다. 다 빈치는 그림을 구상하면서 가룟 유다를 어떻게 그릴까 생각하다가 자기가 제일 싫어하고 미워하는 사람의 얼굴을 그려서 가룟 유다를 삼았습니다. 그리고서는 예수님의 얼굴을 그리려고 했는데, 아무리 상상을 하고 노력을 해도 영감이 오지 않는 것이었어요. 그래서 그 이유가 무엇인가를 오랫동안 생각하다가 깨달음이 왔습니다. 자기가 미워하여 가룟 유다로 그린 그에게 찾아갔습니다.

 

그리고서 그에게 사과를 했습니다. 내가 실상은 당신의 얼굴을 가룟 유다의 얼굴로 그렸는데, 나머지 그림이 그려지지를 않아서 회개하는 마음으로 왔소!” 그러면서 그에게 자기의 잘못을 용서해 달라고 했습니다. 그러고 나서 마음에는 평화가 임했다고 했습니다. 그 마음을 갸지고 그린 그림이 그 유명한 걸작품 최후의 만찬입니다.

 

우리가 지은 죄를 회개할 때 심령에는 신비하고 놀라운 역사가 나타납니다. 이 능력은 바로 십자가의 보혈의 능력인 것입니다. 그 역사가 회개하는 자의 심령을 살리는 것입니다. 주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주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가 나음을 입는다고 했습니다.

 

주 안에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도 이 새벽에 기도하시므로 십자가의 공로로 죄의 율법과 세상 악한 영의 권세를 이기시고, 승리로운 삶을 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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