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경본문] 역대하24:15-22 개역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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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여호야다가 나이가 많고 늙어서 죽으니 죽을 때에 백삼십 세라
16. 무리가 다윗 성 여러 왕의 묘실 중에 장사하였으니 이는 그가 이스라엘과 하나님과 그의 성전에 대하여 선을 행하였음이더라
17. 여호야다가 죽은 후에 유다 방백들이 와서 왕에게 절하매 왕이 그들의 말을 듣고
18. 그의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의 전을 버리고 아세라 목상과 우상을 섬겼으므로 그 죄로 말미암아 진노가 유다와 예루살렘에 임하니라
19. 그러나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선지자를 보내사 다시 여호와에게로 돌아오게 하려 하시매 선지자들이 그들에게 경고하였으나 듣지 아니하니라
20. 이에 하나님의 영이 제사장 여호야다의 아들 스가랴를 감동시키시매 그가 백성 앞에 높이 서서 그들에게 이르되 하나님이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너희가 어찌하여 여호와의 명령을 거역하여 스스로 형통하지 못하게 하느냐 하셨나니 너희가 여호와를 버렸으므로 여호와께서도 너희를 버리셨느니라 하나
21. 무리가 함께 꾀하고 왕의 명령을 따라 그를 여호와의 전 뜰 안에서 돌로 쳐죽였더라
22. 요아스 왕이 이와 같이 스가랴의 아버지 여호야다가 베푼 은혜를 기억하지 아니하고 그의 아들을 죽이니 그가 죽을 때에 이르되 여호와는 감찰하시고 신원하여 주옵소서 하니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사악한 여왕이었던 아달랴가 죽고 아하시야 왕의 아들 요아스가 왕위에 오를 때, 그의 나이가 연소하니 이제 겨우 일곱 살이었습니다. 이후로 사십 년 동안 남 왕국 유다를 다스립니다. 연소한 나이에 어떻게 나라를 잘 다스리겠습니까? 그의 곁에는 하나님의 신실한 종 여호야다 제사장이 있었어요. 거사를 통해 아달랴 여왕을 폐위시키고 요아스를 왕위에 앉힌 여호야다 입니다.
그러므로 연소한 요아스는 여호야다 제사장의 코칭을 통해서 왕으로서의 사명을 잘 감당할 수 있었습니다. 오늘 본문 2절의 말씀대로예요. 함께 보겠습니다. “제사장 여호야다가 세상에 사는 모든 날에 요아스가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였으며”(대하24:2) 요아스가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했다고 했어요. 그 예로 4절 이하의 내용입니다.
요아스는 아달랴 여왕 때 우상숭배로 망가진 예루살렘 성전을 보수하고 성전 제사가 온전하게 회복되게 하였습니다. 그 모습을 12절과 13절을 통해 볼 수 있습니다. 함께 보겠습니다.
“왕과 여호야다가 그 돈을 여호와의 전 감독자에게 주어 석수와 목수를 고용하여 여호와의 전을 보수하며 또 철공과 놋쇠공을 고용하여 여호와의 전을 수리하게 하였더니 기술자들이 맡아서 수리하는 공사가 점점 진척되므로 하나님의 전을 이전 모양대로 견고하게 하니라”(대하24:12~13) 하나님의 전이 회복되고 다시금 성전 제사와 예배가 온전한 모습으로 회복됩니다. 이 모습은 복된 삶을 살기 위한 삶의 우선순위가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주 안에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인생에 삶의 질서가 무너지고, 거센 환난과 풍파가 일어날 때, 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이 있으니 그것은 바로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가 회복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일에 가장 으뜸인 것이 무엇인가 하면 바로 예배의 회복인 것이에요. 예배가 회복될 때, 하나님과의 관계인 대신관계가 회복되고, 그러면 자연스럽게 대인관계과 회복되고, 나아가서 대물관계가 회복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의 역사를 통해서 배우는 것입니다. 왕이 새롭게 등극하고 전왕의 과오로 나라가 피폐해 있을 때 재건을 위해 행하는 가장 우선적인 일이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회개와 더불어 성전을 새롭게 하고, 제사와 예배를 회복하므로, 백성들의 시선이 다시금 창조주 하나님을 향하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럴 때 여호와께서도 그 얼굴을 주의 백성들에게 비추사 은혜를 베푸시며, 그 얼굴을 주의 백성들을 향하여 드사 평강을 주셨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앞에서 드리는 진정한 예배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예배의 성공자가 다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그처럼 어린 왕을 곁에서 말씀과 기도로 도왔던 제사장 여호야다가 연로하여 세상을 떠납니다. 나라와 민족을 위하여 주의 종의 사명을 신실하고 강직하게 감당한 그에게 주께서는 장수의 복을 주셨으니 여호야다는 이 땅에서 130년을 살고 천국에 입성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여호야다 제사장이 세상을 떠나고, 더는 왕의 스승의 역할을 하지 못하게 되자, 왕이 변하였습니다. 함께 17절 18절 말씀을 함께 보겠습니다.
“여호야다가 죽은 후에 유다 방백들이 와서 왕에게 절하매 왕이 그들의 말을 듣고 그의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의 전을 버리고 아세라 목상과 우상을 섬겼으므로 그 죄로 말미암아 진노가 유다와 예루살렘에 임하니라”(대하24:17~18)
어떻게 이렇게 갑자기 변할 수가 있을까요? 유다 방백들의 말을 들었다고 했어요. 방백은 각 지역의 대표들입니다. 왕을 현혹하는 그들의 말에 귀가 솔깃하여, 요아스는 결국 마음을 빼앗기고 여호와의 전을 버리고 아세라 목상과 우상을 섬겼습니다.
그 모습을 보시는 하나님께서 진노하셨겠지만, 요아스 왕이 돌이킬 기회를 주십니다. 19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그러나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선지자를 보내사 다시 여호와에게로 돌아오게 하려 하시매 선지자들이 그들에게 경고하였으나 듣지 아니하니라”(대하24:19) 하나님께서 보내신 선지자들의 경고를 무시했어요.
그때 하나님께서 여호야다의 아들 스가랴를 요아스에게 보내어 대언하게 하십니다. 20절 후반부의 내용이 이러합니다. “너희가 여호와를 버렸으므로 여호와께서도 너희를 버리셨느니라”(대하24:20) 그 말씀을 듣는 요아스는 마음을 찢고 여호와 앞에 자복하고 회개하며 돌이켜야 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그를 살려 주실 것이었어요. 그런데 어떻게 합니까? 21절 말씀입니다. “무리가 함께 꾀하고 왕의 명령을 따라 그를 여호와의 전 뜰 안에서 돌로 쳐죽였더라”(대하24:21) 이게 말이나 됩니까?
그가 어릴 적 그 사악한 할머니 여왕 아달랴의 피바람에서 그의 생명을 지켜 보호하고, 거사를 일으켜 일곱 살인 그를 왕의 자리에 앉혔으며, 나라가 회복되는 일에 왕을 도왔던 제사장 여호야다의 은혜를 저버리고, 그의 아들 스가랴 제사장을 죽였습니다. 하나님께서 가만히 계실까요?
공의의 하나님께서 그를 벌하십니다. 유다왕국의 북동쪽에 위치한 아람나라 군대가 쳐들어와서는 요아스 왕에게 우상숭배하라고 간언을 했던 예루살렘의 방백들을 다 죽였습니다. 그들은 심판을 받았어요.아람군대는 예루살렘의 보물들을 노략하였습니다. 그런데 기록에 보니 그 적군의 수가 많지 않았다고 했어요. 그런데도 유다는 패배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이겠어요? 24절에 그 이유를 말씀합니다.
“아람 군대가 적은 무리로 왔으나 여호와께서 심히 큰 군대를 그들의 손에 넘기셨으니 이는 유다 사람들이 그들의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를 버렸음이라 이와 같이 아람 사람들이 요아스를 징벌하였더라”(대하24:24)
여호와께서 아람군대의 편에 서서 유다를 이게 하신 것입니다. 여호와의 전을 버리고, 우상을 섬기라고 간언했던 방백들은 다 죽게 되었고, 결국 요아스도 큰 부상을 입었어요. 그리고 그의 신하들이 부상당하여 침대에 누워있는 요아스를 살해합니다. 여호야다의 아들 스가랴의 핏값으로 그렇게 비참하게 요아스는 죽었어요. 그때 그의 나이가 47세였습니다.
그는 불명예스럽게 선조 열왕의 묘실에 장사 되지도 못하였습니다. 성경은 25절 후반부에 기록하기를 “다윗 성에 장사하였으나 왕들의 묘실에는 장사하지 아니하였더라”(대하24:25) 대제사장 여호야다와 함께 개혁을 일으키며 훼파된 성전을 힘써 중수하였던 요아스는 결국 다윗 성에 장사되긴 했으나, 열 왕의 묘실에는 들어가지 못하는 영예롭지 못한 열왕 중의 한 사람이 되고 말았습니다.
요아스는 그의 통치 초기에는 잘하였어요. 우상을 척결하고 성전을 새롭게 하였으며 제사와 예배를 회복시켰습니다. 그러나 그의 인생은 비극으로 끝났습니다. 그가 초기에 이룬 그 크고 귀한 업적도 그를 구원으로 인도하지 못했습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가 오늘의 말씀을 통해서 무엇을 배웁니까?
중요한 것은 과거에 어떠했던 신앙이 아니라, 오늘 지금의 신앙이 어떠한가 하는 것입니다.
어떤 성도는 과거에 자신이 얼마나 교회에 충성하며 봉사했는지를 강조합니다. 그것이 의가 되었어요. “과거에 내가 행했던 뜨거운 기도와 열심과 충성과 봉사 때문에 지금도 현재도 나는 인정받을 자격이 있다!” 마치 그 모습은, 나라로부터 받은 무공훈장을 잘 보관하고 바라보며 과거의 회상 속에 젖어 있는 모습과 흡사해요. 그것이 나쁘다는 것이 아니라 중요한 것은 뭐라고 했어요? “오늘 지금의 신앙의 모습이 어떠한가?” 하는 것입니다.
나는 지금도 달려갈 길을 열심히 달려가고 있는가? 아니면 그만 됐다! 이 정도면 됐다! 생각하여 주저앉아 있는 것은 아닌지? 그러면 여지없이 사탄이 틈탑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말씀합니다.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고전10:12)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마26:41)
성도 여러분! 오늘도 주 안에 깨어있어, 요단강 건너 저 약속의 땅,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가나안으로 나아갈 때 초지일관 하시기 바랍니다. 중단없는 전진이 있기를 바랍니다.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시는 모두가 되시기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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