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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상 강해 12] 인격자의 손을 들어주시는 하나님
운영자 2025-03-20 추천 0 댓글 0 조회 32
[성경본문] 역대상12:1-7 개역개정

1. 다윗이 기스의 아들 사울로 말미암아 시글락에 숨어 있을 때에 그에게 와서 싸움을 도운 용사 중에 든 자가 있었으니

2. 그들은 활을 가지며 좌우 손을 놀려 물매도 던지며 화살도 쏘는 자요 베냐민 지파 사울의 동족인데 그 이름은 이러하니라

3. 그 우두머리는 아히에셀이요 다음은 요아스이니 기브아 사람 스마아의 두 아들이요 또 아스마?의 아들 여시엘과 벨렛과 또 브라가와 아나돗 사람 예후와

4. 기브온 사람 곧 삼십 명 중에 용사요 삼십 명의 우두머리가 된 이스마야이며 또 예레미야와 야하시엘과 요하난과 그데라 사람 요사밧과

5. 엘루새와 여리못과 브아랴와 스마랴와 하룹 사람 스바댜와

6. 고라 사람들 엘가나와 잇시야와 아사렐과 요에셀과 야소브암이며

7. 그돌 사람 여로함의 아들 요엘라와 스바댜더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인격자의 손을 들어주시는 하나님

 

우리가 이 새벽에 대하는 역대상 12장에는 이스라엘의 성군인 다윗을 존경하고 따르고 충성하는 자들의 이름들이 주욱 열거되고 있습니다. 그것도 자신의 소속 지파인 유다 지파에서만이 아니라, 형제 지파인 베냐민 지파에서, 갓 지파에서, 므낫세 지파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다윗을 존경하며 따랐습니다. 나아가서 잇사갈과 스불론과 납달리 지파에서도 다윗을 응원하고 지원하며 협력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왕이 되었기 때문에 그랬겠지! 생각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이미 그 이전부터 그랬습니다. 사울왕 밑에서 장수의 모습으로, 전쟁터에 나갈 때마다, 다윗을 존경하며 따르는 자들이 많았어요. 심지어는 사울왕의 시기와 질투로 죽여도 좋다는 나라의 적이 되고 수배범이 되어 도망 다닐 때도, 그를 따르며 함께 죽기를 각오하고 기거하는 동료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이 누구였는가를 기록한 내용이 우리가 함께 읽은 1절에서 7절의 내용이에요.

 

다윗이 아둘람 동굴로 몸을 피하였을 때, 그 소식을 들은 그의 형들과 온 집안이 다윗을 찾아 그곳으로 내려왔습니다. 뿐만 아니었어요. 사울의 폭정에 시달린 자들, 억울한 일을 많이 당하여 마음이 원통한 자들이 다윗에게 몰려들었습니다. 생사를 같이 하기로 한 운명공동체의 인원이 400명이나 되었어요. 아둘람 공동체를 이루었어요. 다윗은 그들의 지도자가 되었고, 그들 중에는 장차 다윗 왕국을 이룰 훌륭한 인재들이 됩니다.

 

왜 사람들은 나라의 현상 수배자인 다윗을 그처럼 존경하고 좋아하고 따랐을까요? 그렇습니다. 첫째는 하나님을 경외하고 주의 뜻대로 행하고자 했기 때문이요, 둘째는 전쟁에서 패배를 모르는 승리자였기 때문이었으며, 셋째로 마음이 넓고 배려심이 많은 그의 넓고, 깊고, 고매한 인격과 성품 때문이었습니다.

 

리더쉽 분야에 탁월한 통찰력을 제시했던 풀러신학교의 로버트 클린턴 교수는 이런 명제를 남겼습니다. “Ministry flows out of being!” “사역은 성품의 결과다!” 성공하는 사역은 인격의 산물이라는 것입니다.

 

이 시간에는 주를 기쁘시게 한 다윗의 그 고매한 인격과 성품에 대해서 좀 더 알아가고자 합니다.

 

첫째로, 다윗은 사랑이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시편 1094절에 그의 고백을 들어 보십시오. 나는 사랑하나 그들은 도리어 나를 대적하니 나는 기도할 뿐이라 그들이 악으로 나의 선을 갚으며 미워함으로 나의 사랑을 갚았사오니(109:4~5) 그는 선을 악으로 갚는 악한 자들에게 맞서지 아니했고, 앙갚음하지도 않았어요. 만약 다윗이 앙갚음을 했다면, 피의 복수가 계속 일어났을 것입니다. 그의 심장에는 늘 평화가 고동쳤으며, 그 평화는 머리로 그리고 손과 발로 이어졌습니다.

 

둘째, 다윗은 기도의 사람이었습니다.

시편에 수록된 150편의 시 중에 절반은 다윗의 시이며, 그 절반 중에 대부분은 하나님께 드리는 토설적인 기도시였습니다. 기도로 하나님께 원통한 것, 괴로운 것 다 쏟아내며 하나님의 선하신 인도하심으로 문제를 해결했습니다.

 

생각을 해 보십시오. 절대권력을 가진 왕으로서 만일 다윗이 기도하지 않고, 인간적인 방법으로 악을 갚았다면 결코 성군이 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즐거울 때나 슬플 때나 항상 하나님께 나아가 기도했던 다윗은 기도의 사람이요, 그러기에 사랑의 사람이었던 것입니다.

 

주 안에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기도로 여러분의 마음을 다스리시기 바랍니다. 성품을 다스리기 바랍니다. 화날 때, 슬플 때, 억울할 때, 견디기 어려워 눈물이 앞을 가릴 때도 기도하면 그 성품이 주님을 닮아갑니다. 결국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편이 되어주시고, 원수 앞에서 손을 높이 들어 주십니다.

 

셋째, 다윗은 늘 하나님 앞에서 살았던 사람이었습니다. ‘코람데오의 신앙으로 살았어요.

시편 35편에 그의 고백을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이해를 돕기 위하여 쉬운성경 번역본으로 읽겠습니다. 그들은 내게 선을 악으로 갚고 내 목숨마저 노렸습니다. 그렇지만 그들이 병들었을 때 나는 굵은 베옷을 걸치고 금식하며 기도 했습니다. 그들을 위한 내 기도의 응답이 없을 때 내 친구나 형제들을 위해 슬퍼하듯 나는 그들을 위해 슬퍼하며 울었습니다. 마치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내가 우는 것처럼 고개를 떨구고 슬퍼하였습니다(35:12~14)

 

여러분의 목숨을 노리는 적이 병들었다면 그거 봐라~! 내 그럴 줄 알았다. 정의의 하나님이 심판하시지! 속이 다 시원하다!” 그렇게 생각할 수 있어요. 그러나 다윗은 굵은 베옷을 입고 금식하며, 그들을 위해 기도했다고 했습니다. 코람데오의 신앙! 하나님 면전에 서 있는 모습으로 살지 아니했다면, 도저히 설명할 수 없고, 이해할 수 없는 모습입니다.

 

우리가 하루에 몇 번이나 하나님 면전을 의식하며 살까요? “내가 지금 하나님 앞에 있지!”

그렇게 주를 의식할 때 어떤 모습이 더 많을까요? 첫째 모습, 아아~! 내가 뭔짓을 하고 있나~! 이러면 안되지! 하나님이 보고 계시는데~!” 둘째 모습, “나의 참음을 주님이 보고 계시지~! 나의 선행을 주님이 보시지~! 내가 좌절하지 않고, 포기하지 않고 이렇게 일어나는 것을 주님이 보시지~!” 사실 전자나 후자나 둘 다 필요해요. 죄를 범할 때는 불꽃같은 하나님의 눈길 앞에서 즉시로 멈추고, 선을 행할 때는 자애로운 하나님의 얼굴 앞에서 선행을 지속하고! 그러나 많기로 한다면, 여러분은 선을 행하는 모습으로 하나님의 자애로운 얼굴 앞에 서시기를 간절히 축복합니다.

 

넷째, 다윗은 용서의 사람이었습니다. 그 모습이 예수님을 많이 닮았어요.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실 때, 자신을 십자가형으로 죽어가게 하는 그들의 악한 죄를 용서해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하셨습니다.

 

사울 왕에게 쫓기는 신세가 된 죄 없는 도망자 다윗! 그가 유대 광야로 도망가 아둘람 큰 굴로 피했을 때, 다윗의 처지와 소문을 들은 사울을 싫어하는 자들이 속속 모이게 되고, 다윗은 이들 400명의 공동체를 이끄는 리더가 되었습니다.

 

다윗은 죄 없는 자신을 잡으려고 삼천 명의 군사를 끌고 온 사울왕을 죽일 기회가 두 번이나 있었습니다. 첫 번째 기회는 다윗이 자신의 동료들과 함께 엔게디 동굴 지역에 피해 있을 때, 사울이 혼자 굴 안으로 들어와 볼일을 볼 때였습니다. 당연히 사울은 그 굴 안쪽에 다윗이 있는 줄을 알지 못했지요. 그 모습을 본 다윗의 동료가 말합니다. 보소서! 여호와께서 당신에게 이르시기를 내가 원수를 네 손에 넘기리니 네 생각에 좋은대로 그에게 행하라 하시더니 이것이 그날 이니이다(삼상24:4)

 

그때 다윗이 사울 뒤편으로 가만히 가서, 그를 죽인 것이 아니라 사울의 옷자락을 베어 옵니다. 그리고서 바로 후회합니다. 마음에 찔림이 왔다고 했어요. 왕에게 할 짓이 아니라 여겼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기름 부으신 왕인데 내가 어찌 해하리요.” 그가 행여나 그의 부하들이 사울을 해하지 못하게 막습니다.

 

두 번째는 십광야 하길라 산 길가에, 사울이 다윗을 잡으려고, 그의 병사 삼천명과 함께 진을 치고 있었을 때였습니다. 그 밤에 다윗과 아비새가 정탐을 하러 그 진영 안에 들어가게 되었고, 그 진영 중앙, 텐트 안에서 잠들어 있는 사울에게까지 접근할 수 있었어요. 그때 함께 간 아비새가 다윗에게 말합니다. 하나님이 오늘 당신의 원수를 당신의 손에 넘기셨나이다

 

그런데 아비새가 다윗에게 죽이라고 안그래요. 아비새가 다윗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청하노니 내가 창으로 그를 찔러서 단번에 땅에 꽂게 하소서!” 전에도 같은 상황에서 다윗이 사울을 죽이지 않는 것을 그가 알아요. 그러니 자기가 하겠다는 것이죠. 그러나 다윗이 죽이지 말라고 합니다. 말하기를, 내가 손을 들어 여호와의 기름부음 받은 자를 치는 것을 여호와께서 금하신다. 그의 머리 곁에 있는 창과 물병만 가지고 가자!”(삼상 26:11)

 

다섯 번째로, 다윗은 부하를 귀하게 여기는 자였습니다.

사울왕이 전쟁에 전심을 쏟지 못하여, 다윗의 고향인 베들레헴 도성을 블레셋 군대에게 빼앗겼을 때, 슬픈 마음으로 그처럼 그리운 자신의 고향을 정탐하러 가게 되었습니다. 자신이 자라날 때 보았던, 베들레헴 성문 곁, 우물이 보이고, 그러자 그 우물의 물을 먹고 싶은 생각에 자기도 모르게 한탄합니다. 저 베들레헴 성문 곁 우물 물, 누가 내게 마시게 할까?”

 

눈치가 빠른 충성스런 부하 장수 세명이 적의 진지를 뚫고, 그 우물 물을 길어오는데 성공합니다. 물을 가져온 그 병사들을 보면서 다윗은 놀라며 후회를 합니다. 아니야, 내가 어찌 장수들의 피를 마시랴!” 다윗은 자신의 부하들이 목숨을 걸고 가져온 피 같은 생수를 그냥 땅에 쏟아붓습니다. 이유인즉 나 때문에 아까운 병사들이 세명이나 죽을 뻔 했구나! 목숨을 걸고 그곳에서 물을 가져오다니~!”

 

뿐만 아니었죠. 아들 압살롬이 아버지를 대항하여 반역을 꾀하고 예루살렘으로 진격해 올 때 주저 없이 백성들과 요단강 동편으로 피합니다. 왜 그랬을까요? 자신이 사랑하는 선량한 양민이 아버지와 아들간의 전쟁으로 인해 그 생명을 잃을 것을 차마 보지 못하여 함께 피난한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다윗의 그러한 면을 보신 것입니다. 자기보다 백성을 더 사랑하는 다윗의 마음을 보신 하나님! 백성을 잘 다스릴수 있는 다윗의 인품을 보신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다윗을 보니 내 마음에 합하도다!”

 

말씀을 맺습니다. 다윗이 주님을 닮은 성품과 인격으로 이스라엘의 전무후무한 성군이 되었던 것처럼, 여러분도 성령의 인치심을 받아,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의 성령의 열매를 맺고, 그 성숙한 인품과 성품으로, 많은 사람에게 선한 영향력과 감화를 끼치는 존경받는 리더요, 단체의 책임자요, 가정의 가장이요, 교회의 신실한 직분자들이 다 되시기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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