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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상 강해 09] 징계의 끝에서 시작되는 회복
운영자 2025-03-13 추천 1 댓글 0 조회 59
[성경본문] 역대상9:1-9 개역개정

1. 온 이스라엘이 그 계보대로 계수되어 그들은 이스라엘 왕조실록에 기록되니라 유다가 범죄함으로 말미암아 바벨론으로 사로잡혀

2. 그들의 땅 안에 있는 성읍에 처음으로 거주한 이스라엘 사람들은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과 느디님 사람들이라

3. 유다 자손과 베냐민 자손과 에브라임과 므낫세 자손 중에서 예루살렘에 거주한 자는

4. 유다의 아들 베레스 자손 중에 우대이니 그는 암미훗의 아들이요 오므리의 손자요 이므리의 증손이요 바니의 현손이며

5. 실로 사람 중에서는 맏아들 아사야와 그의 아들들이요

6. 세라 자손 중에서는 여우엘과 그 형제 육백구십 명이요

7. 베냐민 자손 중에서는 핫스누아의 증손 호다위아의 손자 므술람의 아들 살루요

8. 여로함의 아들 이브느야와 미그리의 손자 웃시의 아들 엘라요 이브니야의 증손 르우엘의 손자 스바댜의 아들 무술람이요

9. 또 그의 형제들이라 그들의 계보대로 계수하면 구백오십육 명이니 다 종족의 가문의 우두머리들이더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징계의 끝에서 시작되는 회복

 

오늘 우리가 함께 대하는 역대상 9장에서는 바벨론 포로 생활을 마치고 돌아온 이스라엘인들의 이름과 그들이 소속된 지파에 대하여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들 중에 특별히 예루살렘 성읍에 거주하게 된 자들의 지파와 가문과 이름들이 열거되고 있어요.

 

1절에 보니 그들의 이름은 이스라엘 왕조실록에 기록되었다고 했어요. 이는 그들의 예루살렘 거주에 큰 의미를 두는 것입니다. 바벨론 침공으로 인해 파괴되고, 황폐해져 버린 예루살렘이 다시금 재건된다고 하는 것은, 이스라엘 역사에 큰 의미를 갖고 있기 때문이에요. 하나님께 범죄하므로 심판을 받아 멸망 당하고, 포로로 잡혀가서, 70년의 세월을 이방인의 땅에서 보내야 했던 그들은, 비로소, 자신들의 죄악을 깨닫고, 참회하고, 눈물로 회개하며, 하나님의 긍휼을 간구했습니다.

 

주전 605, 1차 바벨론 포로 때에는 다니엘을 포함한 왕족과 귀족들이 끌려갔습니다(1:3). 당시 여전히 유다에 남았었던 여호야김 왕은 처음 3년은 바벨론을 섬기다가 마음이 변하여 애굽과 동맹하여 반()바벨론 정책을 펼쳤어요(왕하 24:1). 결국 그는 주전 602, 쇠사슬로 결박당하여 바벨론으로 끌려갔으며, 성전 기구들을 약탈당하였습니다(왕하24:2, 1:1-2,5:2).

 

그로부터 8년 뒤, 주전 597년에, 2차 바벨론 포로가 있었습니다. 바벨론은 예루살렘 성전의 모든 보물과 왕궁 보물을 약탈하였고, 성전의 금기명을 다 훼파하였습니다(왕하 24:10-13;대하36:10). 그리고 여호야긴 왕과 왕의 모친과 왕의 아내들과 내시와 나라의 권세 있는 자들, 그리고 군사들도 다 포로로 잡아갔습니다(왕하24:12,15). 그때 에스겔 선지자와 에스더의 사촌인 모르드개도 포함되어 있었어요(1:1-3,2:5-6).

 

그로부터 11년 뒤인 주전 586, 바벨론의 제3차 침공이 있었어요. 예루살렘이 완전히 포위된 동안 기근이 극심하여 자녀를 잡아먹을 정도로 비극적 참상이 빚어졌습니다

(2:20,4:10,9:20,5:10), 성이 함락되던 때 시드기야 왕은 밤에 도망하다가 갈대아 군대에게 잡혀, 하맛땅 립나로 끌려가 바벨론 왕에게 심문을 당하였습니다. 바벨론 왕은 시드기야의 목전에서 그 아들들을 죽이고, 시드기야의 두 눈을 빼고, 사슬로 결박하여 바벨론으로 끌어다가 죽는 날까지 옥에 가두었습니다(왕하 25:4-7,39:4-7,52:7-11). 너무 잔인하고 끔찍하지요.

 

민족 전체가 갈기갈기 찢기고 그 존재가 점점 사라지는 최악의 비극적 상황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이는 모세의 예언대로(26:28-29,28:53-57)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한 결과였습니다. 결국 이렇게 남유다는 바벨론에 의해 완전히 멸망하였고, 예루살렘 성이 함락된 49일은 유대인들이 바벨론 포로 기간 내내 애통의 날로 지켜졌습니다(7:5,8:19).

 

포로로 끌려간 땅에서 그들은 어떠했을까요? 시편 기자는 그 상황을 단편적으로 이렇게 기록했어요. 우리가 바벨론의 여러 강변 거기에 앉아서 시온을 기억하며 울었도다(137:1)

선민 유다 백성이 하나님 없는 이방 나라, 바벨론으로 포로가 되어 끌려간 것은, 하나님의 진노로 말미암은 최대의 비극이요 수치였습니다. 이는 우상을 숭배하고 안식일과 안식년을 지키지 않고, 십일조를 드리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그 거룩하신 뜻을 멸시한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징계와 진노의 표현이었습니다(대하36:21,참고-34:8-16).

 

이 비참한 모습의 역사는 지금으로부터 약 2,600년 전에 있었던 일입니다. 그런데 역사는 반복되고 있어요. 오늘날에도 세상 사람 중에는 그 형편이 그 바벨론 땅, 포로들이 살고 있었던 그발 강가에서 자유없이 묶여 있는 모습으로 사는 인생이 많습니다.

 

가깝게는 저 북녘땅이에요. 인권이 없고, 자유가 없어요. 그저께 들어 알게 되었습니다. 북한에서 오빠라는 단어를 쓰면, 남한의 사상에 물들었다 하여 체포되고 6년간 감옥형에 처한다고 합니다. 남한 드라마에서 쓰는 용어라는 것이죠. ‘오라버니라는 말만 허용된다고 해요. 남한 드라마를 보는 것 자체도 금지되어 걸리면 바로 체포되어 10년을 감옥에서 살아야 한다고 합니다. 자유가 없어요.

 

하나님께서 언제나 저 북한에 자유를 주시고, 자유롭게 왕래할 수 있게 하실는지 우리는 그날을 알지 못하지만, 소망을 놓아서는 안 됩니다. 1985년에 어떤 일이 벌어졌어요? 아무도 예측하지 못했습니다. 미하일 고르바초프의 페레스트로이카 혁명으로 거대한 쏘련이 무너진 모습을 보면서, 우리는 포기하지 말고 소망 중에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역사의 주관자가 되신 하나님께서 우리 민족에게 긍휼을 베푸시도록, 다시금 만나고 왕래하고 인권이 회복되어 자유로이 예배를 드리고, 평양에도 찬송 소리가 다시 울려 퍼지도록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그렇게 절대로 망하지 않을 것만 같던 바벨론 왕국이 하나님의 주권 역사로 메대와 바사의 연합군에 의해 멸망되게 하셨어요. 마침내 이스라엘 백성이 귀환하도록 하셨습니다. 이 구체적인 내용은 앞으로 역대하 36장 이하를 통해서 다시금 대하게 될 것입니다.

 

이렇듯 포로에서 자유함을 얻고 본향으로 돌아와 감사를 드리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습은 영적으로 볼 때 오늘날의 성도들의 모습과 같습니다. 예수를 믿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혈의 공로로 구원받고, 악한 죄의 세력에서 해방되어, 구원의 은총을 감사하며, 오늘도 주의 인도하심을 따르며 살아가는 모습이 그 모습인 것이에요. 언젠가는 이 세상을 떠나서 영혼의 본향인 천성에 들어가겠지만 오늘 이 하루도 살아가게 하시는 분이 하나님 아버지십니다.

 

간밤에도 약 340명의 생명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대한민국에서 하루에 세상을 떠나는 사람이 하루평균 1,022명이에요. 주어진 수명 다 살고 가면 좋겠습니다만, 그렇게 고령으로 떠나시는 분의 비율이 반 정도에요. 나머지 반은 질병으로 수를 다 누리지 못하고, 그런가하면 예기치 않은 사고로, 그리고 극단적인 선택으로 가족에게 큰 슬픔을 남기고 세상을 떠납니다. 어제도 사건 사고 소식 들으니 고속도로에서 불난 자동차 보고 차를 곁길에 세우고 소화기를 꺼내여 불끄는 일을 돕다가, 그 곁을 고속으로 지나가는 SUV가 미처 보지를 못해 치어서 그 사람도 죽고, 그 전에 심정지가 왔었던 운전자도 죽었습니다. 아무도 내일을 내 생명을 장담할 수 없어요.

 

주 안에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도 내가 살아 있음이 하나님의 은혜요, 이 새벽에 나와 기도하는 것이 감사요, 가정에서 일터에서 섬기는 교회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있음이 복인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오늘 9장 말씀에 보니, 예루살렘에 정착하게 된 지파는 누구인가? 역대상을 통하여 우리에게 이미 익숙한 이름의 지파의 후손들이 정착합니다. 야곱의 축복 그대로에요. 그들은 레위 지파요, 유다 지파요, 베냐민 지파요, 에브라임 지파와 므낫세 지파입니다. 레위 지파는 성전에서 그 사명을 감당하는 자들입니다. 당연히 예루살렘 성전에 있어야지요.

 

유다 지파는 원래 그들이 살고 있었던 땅이 예루살렘 성읍이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다시 돌아온 것이지요. 그리고 에브라임과 므낫세 지파는 요셉의 두 아들로 야곱이 요셉대신 복에 복을 빌어주었던 두 손주입니다. 그 지파의 후손들에 의해 영적인 센터요, 하나님의 전이 있었던 예루살렘은 다시 시작됩니다. 이와 같은 모습은 이미 호세아 선지자를 통해 그리고 에스겔 선지자를 통해 예언된 바였습니다(참고,1:11;37:22). 이러한 역사의 진행이 다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진행되고 있음을 보는 것입니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 아니겠습니까? 현재 나라가 어수선하고 탄핵이냐? 기각이냐? 아니면 각하냐? 국민의 마음이 둘로 나뉘어져 있습니다. 안정을 위해 제일 중요한 것은 무엇이겠습니까? 법치국가이니 법을 다루는 재판의 결정을 존중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로마서 131절에 말씀합니다.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복종하라 권세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바라(13:1)

 

그러나 법을 집행하는 자가 마치 빌라도와 같이 양심의 소리를 듣지 아니하고, 여론의 인기에만 치중하여 선과 악을 구분하지 못하고 재판한다면, 그를 하나님께서 손 보실 것이에요. 그의 종말은 빌라도 그 이름처럼 역사에 영원히 불미스러운 이름으로 남아서 지워지지 아니할 것입니다. 두고두고 가문과 역사의 수치스러운 존재가 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2절 후반부에 등장하는 낯선 모습을 살펴 보겠습니다. 느디님 사람이 나옵니다. 이들은 레위인들과 함께 거주하게 되었어요. 그런데 이들은 이스라엘 혈통의 사람들이 아닙니다. 이들이 누구인가 하면 성전에서 레위인들을 돕던 하급 일군들입니다. (참조,2:43;8:20). 이들은 주로 나무 패는 일과 물 긷는 일을 했는데 대부분이 이방인들이었습니다.

 

예를 들면 기브온 족으로서(참조,9:27) 비록 미천한 대우를 받았지만, 그들 중 많은 사람이 여호와를 하나님으로 믿는 신앙을 갖게 되었습니다. 이들은 느헤미야가 성벽을 재건하기 위해 구성한 조직에도 등장하여 돕습니다(참조:3:26). 바벨론 귀환자들의 목록에 그들의 이름이 등장하는 거에요. 무엇을 보여주는 것일까요?

 

보잘것없어 보이는 사람들조차도 하나님께서는 긍휼히 여기사 하나님의 나라 건설에 사용하신다는 것입니다. 이방인들에게도 관심을 가지시고, 여호와 앞에 나아오는 자에게 구원의 길을 여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이방인 선교의 중요성을 배울 수가 있습니다. 오늘날 이 땅에 와서 수고하는 외국인 노무자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한국인들이 기피하는 소위 3D 업종에 종사하면서 대한민국의 경제발전에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그들을 대하여 우리가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하겠습니까? 마음을 열고 환대하며 수고한 만큼 재정적 도움을 줄 뿐만 아니라 우리가 열심히 전도하고 선교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도 누군가에게서 값없이 받은 복음이라면, 누군가에게 또한 값없이 전해야 하겠습니다. 그것이 우리가 주님께 받은 은혜의 빚을 조금이라도 갚은 것 아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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