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경본문] 역대상8:33-40 개역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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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넬은 기스를 낳고 기스는 사울을 낳고 사울은 요나단과 말기수아와 아비나답과 에스바알을 낳았으며
34. 요나단의 아들은 므립바알이라 므립바알은 미가를 낳았고
35. 미가의 아들들은 비돈과 멜렉과 다레아와 아하스이며
36. 아하스는 여호앗다를 낳고 여호앗다는 알레멧과 아스마?과 시므리를 낳고 시므리는 모사를 낳고
37. 모사는 비느아를 낳았으며 비느아의 아들은 라바요 그의 아들은 엘르아사요 그의 아들은 아셀이며
38. 아셀에게 여섯 아들이 있어 그들의 이름은 이러하니 아스리감과 보그루와 이스마엘과 스아랴와 오바댜와 하난이라 아셀의 모든 아들이 이러하며
39. 그의 아우 에섹의 아들은 이러하니 그의 맏아들은 울람이요 둘째는 여우스요 셋째는 엘리벨렛이며
40. 울람의 아들은 다 용감한 장사요 활을 잘 쏘는 자라 아들과 손자가 많아 모두 백오십 명이었더라 베냐민의 자손들은 이러하였더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야곱의 막내아들 베냐민과 후손들
역대상 7장까지 야곱의 열두 아들의 후손들을 다 소개하였으나 오늘 8장에서 다시금 베냐민의 족보를 좀 더 구체적으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유가 있어요. 이 베냐민 혈통에서 이스라엘의 초대 왕이었던 사울이 태어났기 때문입니다. 사울왕이 언급되는 것은 이어지는 9장부터는 이스라엘 왕정시대가 기록될 것이라는 미리 암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베냐민은 야곱의 막내아들이었어요. 야곱은 라헬을 통해 두 아들을 얻었으니 요셉과 베냐민입니다. 야곱의 열두 아들 중에 요셉까지는 외삼촌과 함께 있었던 하란에서 나았어요. 그런데 베냐민만 약속의 땅이라 할 수 있는 가나안에서 낳았습니다.
벧엘에서 에브랏(베들레헴)으로 가던 도중 라헬이 막내 아들을 낳습니다. 그런데 출산 도중 라헬은 난산으로 목숨을 잃게 되요. 그때 라헬은 자신의 생명이 다함을 느끼면서 슬픔 중에 아들의 이름을 ‘베노니’라고 지어요. 그 이름의 뜻이 ‘슬픔의 아이’입니다. 그런데 야곱은 그 이름을 바꿉니다. 그 뜻이 ‘오른손의 아들’ 그래서 ‘베냐민’이라는 이름을 지어주었습니다. 더욱 긍정적인 이름이죠?
그러나 어머니 라헬의 생각이 맞았는지 베냐민의 생애는 어릴 적부터 슬픔으로 가득 차게 되었습니다. 보통 막내아들은 사랑을 많이 받고 크게 되는데 베냐민은 엄마 없이 크게 되었어요. 사실 어린 자녀에게 있어서 어머니의 사랑은 전부 아니겠습니까? 그 사랑없이 자랐어요.
베냐민의 친형인 요셉은 당연히 친동생인 베냐민을 많이 사랑했을 것입니다. 형 요셉과 동생 베냐민이 나이 차이는 12살 정도에요. 그러니까 요셉이 17살에 애굽에 팔려갈 때 베냐민은 5살 정도가 되었어요. 그때 그를 사랑하는 요셉마저 그의 곁을 떠난 것이었어요. 그러니까 요셉은 아버지 야곱이 베냐민을 불쌍히 여기고 사랑하는 모습을 보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베냐민은 아직 어리니 요셉의 사랑이 그저 어렴풋이 기억 나겠지요. 그가 애굽에 내려가서 요셉을 만났을 때는 20여년이 흘렀고 베냐민의 나이는 성장하여 25세를 넘게 되었습니다.
아버지 야곱은 요셉을 읽고 나서, 100살이 넘어서 얻은 막내아들 베냐민을 곁에 두고 더욱 총애하였을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기근이 들어서 야곱의 아들들이 이집트에 식량을 구하러 갔을 때, 야곱은 베냐민은 두고 가게 하였어요. 그러나 애굽에 있던 요셉은 베냐민을 데려오라고 합니다. 볼모로 형제 중 시므온을 잡아 두고 베냐민을 데려오게 합니다. 그때 야곱의 마음이 어떠했을까요? 요셉처럼 막내마저 잃는 것 아닌가 불안과 염려가 많았을 것입니다.
결국, 베냐민마저 애굽에 내려오게 되었는데 오랜 시간이 지나서 20여년 만에 막내동생 베냐민을 본 요셉이 감정이 북받쳐 올라 몰래 울음을 터뜨립니다. 이후 요셉의 형들이 자기를 희생해서 베냐민을 아버지 야곱에게 돌려보내려 하자 요셉이 그것을 보고 생각하게 됩니다. “형들이 요셉을 버린 자신들의 잘못을 알고, 아버지를 효로 섬기고, 배다른 동생 베냐민을 사랑하는구나!” 생각하여 형들을 용서합니다.
야곱이 세상을 떠나기 전 아들들에게 축복기도를 할 때 야곱은 리더쉽이 좋은 유다와 유다의 후손에게는 어떻게 복을 비는가? 새끼 사자와 같을 것이다, 원수의 목을 잡을 것이다. 왕이 되어 통치할 것이다 라는 예언과 복을 빌었습니다. 그렇게 되었지요. 다윗이 나오고 그 후손들이 나라를 다스렸습니다. 그리고 그 반열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태어나셨습니다.
요셉과 그의 후손을 위해서는 담을 넘는 무성한 가지처럼 뻗어나갈 것이며, 활쏘는 팔에는 힘이 있을 것이며, 하나님께서 도우실 것이라고 예언하며 복을 빌어 주었어요. 그리고 베냐민과 그의 후손을 위해서는 ‘이리’의 복을 빌었습니다. 호전적이죠? 물어뜯는 이리와 같이 승리할 것이다. 호전적 생활 와중에도 안전을 유지할 것이다라고 예언하며 축복하였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그렇게 되었습니다.
이와같은 모습을 보면 부모님은 자녀를 잘 알아요. 누구보다 잘 알지요. 어머니는 태중에서부터 태동하는 것을 느끼면서 알지 않습니까? 그러나 장차 어떤 모습이 될까 하는 것은 어렴풋이 알 뿐이에요. 잘 되기를 바라며 양육하고 기도하며 복을 기원합니다. 그런데 야곱은 산전수전 거친 인생을 살면서 늘 하나님만을 의지하고 하나님과 교통한 영적 거장으로서 자녀들이 다 보이는 것이에요. 성품과 기질과 미래까지도 보이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도 야곱처럼 미리 내다볼 수 있으면 좋겠습니까? 자녀의 미래가 좋으면 좋겠지만, 좋지 않으면 오히려 슬픔이 가증되지 않을까요? 그렇습니다. 모르는 것이 나아요.
하나님께서 주신 지침대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녀들로 양육하고, 오늘도 내가 가장으로서 어머니로서 믿음의 사람으로 그 역할을 신실히 감당하고, 믿음과 소망과 사랑의 씨앗을 뿌릴 때 약속대로 자녀들의 앞날에 복의 역사가 나타날 것입니다. 그래서 이 새벽에도 기도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베냐민 지파에서 초대 왕이 나왔다는 것은 자랑스러운 일이었습니다. 바로 사울 왕이죠. 한 세대로 끝나기는 했지만 베냐민 지파의 영광이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아들 요나단은 다윗을 보호하고 왕이 되게 하는 일에 아주 중요한 조력자의 역할을 합니다.
요나단이 다윗을 그렇게 지키고 보호하고 도운 이유가 있었어요.
첫째, 요나단은 자신의 유익보다 하나님의 뜻을 먼저 찾았어요. 그러므로 자신이 왕이 되면 안된다는 것도 알았습니다. 골리앗 장군을 죽인 용맹한 다윗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둘째, 아버지 사울에게서 하나님이 영이 떠난 것을 알았어요. 더는 이스라엘의 왕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알았어요. 셋째, 자신과 다윗은 하나님께서 맺어주신 동역자요, 친구인 것을 알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아버지의 사울왕의 분노에도 불구하고 다윗을 배반하지 아니하였습니다.
그 결과가 무엇이었습니까? 다윗이 왕으로 등극하는 것이었어요. 나라는 영광의 때를 이루게 되었어요. 개인적으로는 어떤 유익이 있었나요? 전쟁에서 그는 아버지 사울왕과 함께 전사하였지만 다윗은 그의 사랑과 믿음을 잃지 않았습니다. 그가 왕이 되었을 때 그 은혜와 사랑을 기억하고, 요나단의 살아남은 아들 므비보셋을 왕궁에 들여 양자처럼 대우해 주었습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사람이 무엇을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사5:1~7;갈6:7~10) 오늘도 우리는 선을 심고, 의를 심고, 사랑을 심고, 믿음을 심어야 하겠습니다. 행여라도 썩은 씨앗은 걸러내 버리고 심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만일에 심었다면...., 늦지 않았습니다. 주님 앞에 가슴을 찢고, 중심으로 회개하고 자복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혈의 능력이 모든 기승하는 죄악을 도말하십니다. 성령의 불로 태우십니다. 사망의 쏘는 것까지 물리치시고 승리하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주님은 부활의 첫 열매가 되셨고, 죄로 죽은 자를 의의 새 생명으로 살려내십니다.
베냐민 지파는 계속 유지됩니다. 하나님께서 보호하신 것이지요. 베냐민의 지파를 번성케 하셨습니다. 첫째, 수적으로 번성했습니다. 본문에 열거된 바와 같이 베냐민의 다섯 아들들로부터 많은 후손이 나왔습니다(1,2절). 그들은 야곱의 축복과 같이 물어뜯는 이리와 같이 아침에는 빼앗은 것을 먹고 저녁에는 움킨 것을 나누웠습니다.(참조, 창49:27). 또한 모세의 축복과 같이 여호와의 사랑을 입은 자로서 그의 보화를 받았습니다(참조,신33:12).
둘째, 좋은 땅을 분배받았습니다. 베냐민 지파는 유다 지파와 에브라임 지파 사이의 좋은 땅에 살게 되었습니다(참조,수18:11-28). 이스라엘이 분열 왕국이 된 후에도 베냐민 지파만큼은 유다 지파와 함께 다윗 왕통을 이은 남 왕국, 하나님의 성전이 있는 곳에 속하였습니다.
그리고 신약시대에 와서 베냐민 지파에 위대한 인물이 출현합니다. 바로 사도바울입니다. 그가 고백합니다. “나는 팔일 만에 할례를 받고 이스라엘 족속이요 베냐민 지파요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요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요”(빌3:5) 사도 바울을 통하여 복음은 소아시아를 넘어 로마에까지 전파되었습니다. 그리고 “모든 길은 로마도 통한다” 라는 말이 있는데 잘 발달한 로마의 길을 따라서 복음은 동서남북으로 땅끝까지 퍼져가게 되었습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선민으로 택하시고, 그들을 통해 하나님은 어떠하신 분이신가를 드러내셨습니다. 열두지파를 통하여 하나님은 때로는 공의를 나타내시고, 때로는 심판하시며, 때로는 용서하시고 때로는 크신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오늘 21세기에 지파는 하나입니다. 바로 크리스챤 지파입니다.
하나님을 창조주로 믿고 경외하며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고 따르는 지파입니다. 이 지파에 저와 여러분이 속해 있습니다.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같이, 이 땅에서도 이루어지는 일에 귀하게 쓰임 받으시는 지파요, 가문이요, 자녀 손들이 되시기를 저는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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