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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강해 59] 회개와 용서와 축복
운영자 2024-08-06 추천 2 댓글 0 조회 158
[성경본문] 창세기42:18-23 개역개정

18. 사흘 만에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나는 하나님을 경외하노니 너희는 이같이 하여 생명을 보전하라

19. 너희가 확실한 자들이면 너희 형제 중 한 사람만 그 옥에 갇히게 하고 너희는 곡식을 가지고 가서 너희 집안의 굶주림을 구하고

20. 너희 막내 아우를 내게로 데리고 오라 그러면 너희 말이 진실함이 되고 너희가 죽지 아니하리라 하니 그들이 그대로 하니라

21. 그들이 서로 말하되 우리가 아우의 일로 말미암아 범죄하였도다 그가 우리에게 애걸할 때에 그 마음의 괴로움을 보고도 듣지 아니하였으므로 이 괴로움이 우리에게 임하도다

22. 르우벤이 그들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내가 너희에게 그 아이에 대하여 죄를 짓지 말라고 하지 아니하였더냐 그래도 너희가 듣지 아니하였느니라 그러므로 그의 핏값을 치르게 되었도다 하니

23. 그들 사이에 통역을 세웠으므로 그들은 요셉이 듣는 줄을 알지 못하였더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회개와 용서와 축복

 

오늘 본문의 말씀에서 우리의 마음에 가장 크게 들려오는 소리가 있다면 그것은 형제들의 회개입니다. 21절 말씀을 다시 한번 읽겠습니다.

그들이 서로 말하되 우리가 아우의 일로 말미암아 범죄하였도다 그가 우리에게 애걸할 때에 그 마음의 괴로움을 보고도 듣지 아니하였으므로 이 괴로움이 우리에게 임하도다(42:21)

 

이와 같은 일이 시작된 것은 그들이 정탐군이라는 혐오를 받고 감옥에 갇힐 지경에 이르렀기 때문이었어요. 당시 애굽은 동쪽으로부터 쳐들어오는 이방족속인 미디안 족속과 블레셋 족속으로부터 나라를 보호하고자 애굽의 동쪽을 요새화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기에 요셉이 형들을 정탐군이라고 몰아세울 충분한 명목이 있었어요.

 

형들은 아버지 야곱의 명으로 애굽땅에 곡식을 사러 왔는데, 전혀 예상치 않았던 난관에 부딪히게 되었습니다. 졸지에 정탐군의 누명을 쓰게 되었고 진실을 증명해내기 위해서는 자신들의 신분을 드러내야만 했습니다. 자신들이 어디에 사는지 누구의 자손인지를 밝히는 것이었어요. 111213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우리는 다 한 사람의 아들들로서 확실한 자들이니 당신의 종들은 정탐꾼이 아니니이다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아니라 너희가 이 나라의 틈을 엿보러 왔느니라

그들이 이르되 당신의 종 우리들은 열두 형제로서 가나안 땅 한 사람의 아들들이라 막내 아들은 오늘 아버지와 함께 있고 또 하나는 없어졌나이다(42:11~13)

 

그때 요셉이 추궁합니다. 그게 사실이라면, 모두가 한 사람의 자녀들이고 형제라면 왜 막내가 없느냐?” 는 논리였습니다. 그리고는 막내 아들을 데려와 보여라는 명을 내립니다.

안 그러면 감옥에서 내 보내지 않겠다고 합니다. 하여 사흘을 옥에 가두었습니다.

 

그리고 삼일 뒤에, 요셉이 그들에게 다시금 돌아와 조건을 제시합니다. 처음에는 한 명이 가서 막내 동생을 데려오라고 하였으나 그러지 말고 열 형제들 중 한 형제만 남겨두고 나머지, 아홉명이 가서 막내 동생을 데려오라고 조건을 제시합니다.

 

왜 그랬겠습니까? 이유는 두 가지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첫째, 요셉은 양식이 없어 배고품에 지쳐있을 부친 야곱과 막내 동생인 베냐민, 그리고 형제들의 가족들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형제 중 한 사람만 가게 되면 그가 얼마나 많은 곡식을 가져갈 수 있겠습니까?

 

그러니 여러 형제를 보내게 되면 충분한 곡식을 가져갈 수 있고, 하여 아버지 야곱과 베냐민과 그리고 형제와 가족들이 먹을 수 있는 충분한 양식이 됩니다. 이처럼 요셉은 그의 아버지와 동생과 가족들을 향하여 불쌍히 여기는 사랑의 마음이 있었던 것입니다.

 

또 한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형제들 중 시므온입니다. 시므온이 주동자였습니다. 포악하고 잔인한 성격의 시므온은 과거 도단에서 아버지의 심부름을 따라 그들을 찾아온 요셉을 죽이고자 했습니다. 3720절에 요셉이 다가오는 것을 보고서는 , 그를 죽여 한 구덩이에 던지고 우리가 말하기를 악한 짐승이 그를 잡아먹었다 하자 그의 꿈이 어떻게 되는지를 우리가 볼 것이니라 하는지라(37:20)

 

그때 장남인 르우벤이 말렸습니다. 창세기 3721절과 22절의 기록이 이러합니다. 르우벤이 듣고 요셉을 그들의 손에서 구원하려 하여 이르되 우리가 그의 생명은 해치지 말자

르우벤이 또 그들에게 이르되 피를 흘리지 말라 그를 광야 그 구덩이에 던지고 손을 그에게 대지 말라 하니 이는 그가 요셉을 그들의 손에서 구출하여 그의 아버지에게로 돌려보내려 함이었더라(37:21~22)

 

요셉은 혈육인 동생을 죽여서 구덩이에 넣으려 했던 시므온을 인질로 잡아 홀로 감옥에 있게 하므로 과거 자신이 범했던 그 끔찍한 잘못을 회개할 수 있는 기회를 주고자 했던 것이었습니다. 또한 우물 속에 그렇게 홀로 버려졌던 요셉이 어떠한 마음이었는가를 깨달아 알기를 바랬던 것이었어요.

 

이때 형제들의 반응이 우리가 함께 읽었던 오늘 본문 창세기 4221절 말씀입니다. 그들이 서로 말하되 우리가 아우의 일로 말미암아 범죄하였도다 그가 우리에게 애걸할 때에 그 마음의 괴로움을 보고도 듣지 아니하였으므로 이 괴로움이 우리에게 임하도다(42:21)

 

요셉을 살리고자 했던 르우벤이 그들의 후회하는 마음에 일침을 가합니다. 이어지는 22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르우벤이 그들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내가 너희에게 그 아이에 대하여 죄를 짓지 말라고 하지 아니하였더냐 그래도 너희가 듣지 아니하였느니라 그러므로 그의 핏값을 치르게 되었도다 하니(42:22)

 

그제서야 형제들이 그들이 잘못을 인정합니다. 자신들이 잘못이 얼마나 컸었는가를 그들은 깨닫고 후회합니다. 우리가 범죄하였도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이 괴로움이 임하였도다!”

 

성도 여러분, 사람이란 본래 고통을 당해봐야 자신의 잘못을 생각하는 존재입니다. 하나님 앞에서나 사람 앞에서나, 죄를 범한 인간은, 굳이 세상의 법정에서 심판을 받지 않아도, 자신의 평안했던 삶이 어그러지고, 무너지며, 전혀 생각지 않았던 어려움이 발생하면 비로소 자신을 돌아보게 되어 있습니다. 왜 나에게 이렇게 어려운 일이?” 비로소 자신을 돌아보는 것이에요. 오늘 본문의 형제들이 그러했습니다. 이와 같은 일은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용서하시는 사랑의 하나님이시지만 죄를 지은 자가 자신의 잘못을 깨달아야 용서해 주십니다. 내가 죄를 범하였습니다!” 먼저 깨닫게 하시는 거에요. 이 원리가 오늘 요셉이 형제들을 대하는 과정에서도 여실히 나타내 보여주고 있습니다.

 

왜 요셉이 형제들에게 이렇게 모질게 대하는 것일까요? ~! 그것은 그의 형제들이 정말 자신들의 잘못을 인정하고 있는가? 그것을 확인하고 싶었던 것이었어요. 그런데 형제들이 잘못을 인정하고 후회하는 모습을 보게되자 요셉은 형들을 용서하기로 마음을 먹었던 것이었습니다. 24절과 25절을 읽겠습니다.

요셉이 그들을 떠나가서 울고 다시 돌아와서 그들과 말하다가 그들 중에서 시므온을 끌어내어 그들의 눈 앞에서 결박하고 명하여 곡물을 그 그릇에 채우게 하고 각 사람의 돈은 그의 자루에 도로 넣게 하고 또 길 양식을 그들에게 주게 하니 그대로 행하였더라(42:24~25)

 

요셉이 울었다고 했습니다. 이미 그의 마음은, 자신들의 잘못을 인정하고 돌아서고 후회하는 형들의 모습을 보면서, 그처럼 자신을 힘들게 했던 그들을 용서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해야 할 일은 아버지 야곱과 베냐민에게 곡식을 보낼 일을 진행하고, 최종적으로 베냐민을 데려오고 야곱을 데려와서, 어려운 흉년의 기간을 애굽에서 편히 쉬게 할 일만 남아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오늘 본문을 통해서 배우는 것이 무엇입니까?

첫째, 때로 우리에게 어려움이 닥칠 때, 우리 자신을 돌이켜 보아야 합니다. 내가 주님 앞에 잘못한 것이 무엇이 있는가?”

 

왜 없겠습니까? 우리 인생은 완벽하지 못합니다. 우리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회개하고 돌아오기를 기다리십니다. 용서하시기 위해서입니다.

 

둘째, 남을 향한 용서입니다. 남이 잘못을 인정하고, 진정으로 회개하는 모습을 본다면, 용서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 두 가지가 성경이 보여주고 있는 회개와 용서의 과정입니다.

 

저는 2003년도 미국에 공부하고자 도착한지 일주일이 안되서 가족과 함께 차를 타고 가다가 교통사고를 경험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비교적 2차선 정도의 좁은 길에서 비보호 신호를 줍니다. 그래서 차가 오지 않으면 조심하며 좌회전을 하면 됩니다.

 

그런데 미국의 미시건 주에서는 큰 사거리에서도 비보호가 있어요. 파란색 신호등이 깜빡이고 있으면 비보호로 좌회전을 할 수 있습니다, 아직 미국의 교통법규를 모르는 가운데 큰 사거리에서 신호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제 앞에 서 신호를 기다리던 차가 출발을 하며 좌회전을 하게 되니, 저는 생각하기를 좌회전 푸른 신호등이 켜졌나보다 생각하며, 앞차의 꼬리를 물고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신호등은 여전히 비보호 상황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반대편에서 속력을 줄이지 않고 직진하며 달려오던 차가 그 속도로 제 차를 들이받게 되었습니다. 양쪽 차 다 폐차를 시킬 정도로 큰 충돌이었습니다.

 

뒤쪽 의자에 앉아 안전벨트를 메지 않았던 어린 아들이 앞 의자에 얼굴을 부딪히면서 눈썹 윗 부분이 찢어졌고 얼굴에는 찰과상을 입었습니다. 조수석에 앉아 있었던 아내와 뒷 의자에 앉아 있었던 딸아이는 다행히 안전벨트를 맺지만 그 큰 충격에 머리가 크게 흔들려 목에 충격을 받았습니다. 저는 무릎에 충격이 와서 차에서 내렸지만 통증으로 절뚝거려야 했습니다. 가족 모두가 너무 놀랐습니다. 특히 얼굴에 피를 흘리며 울고 있는 아들이 구급차에 병원으로 후송되면서 너무 당황스러웠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치유가 되고 회복이 되었습니다만은 아내와 딸의 아픈 목과 어깨 허리는 오래도 갔습니다. 그리고 아들의 얼굴에 흉터도 몇 년이 걸리면서 점차로 사라졌습니다. 가족에게 저는 너무 너무 미안했습니다. 저의 과실이었으니까요.

 

그런데 그 날 그 사건을 경험하면서 저는 하나님 앞에 눈물로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특별하신 은총을 간구했습니다. 다행히 보험처리로 100프로 보상을 받아 차는 새로 구하게 되었지만

마음에는 질문이 일었습니다. 왜 이런 사고가 일어났을까? 무엇이 문제인가? 기도하는 가운데 주시는 주님의 음성은, 교만하지 말아라!” 였습니다.

 

선교사가 누구나 다 안식년을 갖는 것도 아닌데, 명문 신학교에 입학이 되었고, 가족 모두가 함께 미국에서 정착하여 좋은 교육환경에서 살아가게 되었으니 제 마음에 우쭐한 마음이 있었던 것입니다. 내가 잘 나서 그런 줄 알고..., 하나님께서 값없이 베푸신 은혜로 이루어진 일인데..., 그러면 겸손하게 감사함으로 받아야 할 것을...., 내가 잘 나서 그런 줄로 여겼던 것이었습니다.

 

아들의 상처를 바라보면서 몇 달에 걸쳐 철저히 회개를 했습니다. 이후로 겸손한 마음으로 그리고 하나님께 감사한 마음으로 성실하게 학업에 집중하게되니 석사 학위 과정을 기한 내에 잘 마칠 수 있었습니다.

 

요셉의 형들은 지난날의 죄를 진심으로 회개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모습을 보는 요셉은 그들을 용서하기로 작정하였습니다. 하여 마침내 해피엔딩의 결말을 맺게 되었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진정으로 자신의 죄와 허물을 회개하는 자를 외면치 아니하십니다. 다시금 살길을 마련하십니다. 회개와 용서와 축복의 역사가 저와 여러분의 삶에 역사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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