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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강해 20] 주께서 가라 하신 그 곳에서 견뎌라
운영자 2024-04-18 추천 0 댓글 0 조회 28
[성경본문] 창세기12:10-20 개역개정

10. 그 땅에 기근이 들었으므로 아브람이 애굽에 거류하려고 그리로 내려갔으니 이는 그 땅에 기근이 심하였음이라

11. 그가 애굽에 가까이 이르렀을 때에 그의 아내 사래에게 말하되 내가 알기에 그대는 아리따운 여인이라

12. 애굽 사람이 그대를 볼 때에 이르기를 이는 그의 아내라 하여 나는 죽이고 그대는 살리리니

13. 원하건대 그대는 나의 누이라 하라 그러면 내가 그대로 말미암아 안전하고 내 목숨이 그대로 말미암아 보존되리라 하니라

14. 아브람이 애굽에 이르렀을 때에 애굽 사람들이 그 여인이 심히 아리따움을 보았고

15. 바로의 고관들도 그를 보고 바로 앞에서 칭찬하므로 그 여인을 바로의 궁으로 이끌어들인지라

16. 이에 바로가 그로 말미암아 아브람을 후대하므로 아브람이 양과 소와 노비와 암수 나귀와 낙타를 얻었더라

17. 여호와께서 아브람의 아내 사래의 일로 바로와 그 집에 큰 재앙을 내리신지라

18. 바로가 아브람을 불러서 이르되 네가 어찌하여 나에게 이렇게 행하였느냐 네가 어찌하여 그를 네 아내라고 내게 말하지 아니하였느냐

19. 네가 어찌 그를 누이라 하여 내가 그를 데려다가 아내를 삼게 하였느냐 네 아내가 여기 있으니 이제 데려가라 하고

20. 바로가 사람들에게 그의 일을 명하매 그들이 그와 함께 그의 아내와 그의 모든 소유를 보내었더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주께서 가라 하신 그 곳에서 견뎌라

 

하나님의 뜻을 분별할 수 있다고 하면 그리고 그 뜻을 이루고자 한다면 그래서 실천하고 끝까지 버티고자 한다면 세상에 못 이룰 것이 없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이 뜻이기 때문이지요.

 

다시 말씀드립니다.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는 것이 첫 번째 믿는 자의 일이요, 둘째, 뜻이 임했을 때 믿음으로 순종하므로 일을 시작하고, 세 번째, 여하한 어려움이 와도 주께서 원하시는 일이니 나는 버틴다, 나는 견딘다, 포기하지 않는다. 그곳에서 도망치지 않는다 하나님의 영광의 날이 오기까지 인고의 세월이라도 나는 버틴다. 영어로 grit이라는 단어를 사용합니다. 이를 악물고 버틴다는 것이지요.

 

오늘 우리는 본문에서 아브라함이 당하는 고난을 봅니다. 그래도 믿음의 사람인데, 하나님께서 택하신 종인데, 자손과 땅과 민족의 복을 받기로 준비된 자인데 왜 이렇게 무능해 보이고 비윤리적인 모습일까? 무엇을 잘못된 모습입니까?

 

표면적으로 들어나는 모습은 첫째, 거짓말입니다. 자신의 사랑하는 아내를 누이라고 속입니다. 왜냐하면 아래 사라는 그 외모가 많이 예쁘고 아름답기에 누군가 권력있는 자가 아내를 빼앗아 갈지 모른다. 그런데 그러기 위해서 자신을 죽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11,1213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그가 애굽에 가까이 이르렀을 때에 그의 아내 사래에게 말하되 내가 알기에 그대는 아리따운 여인이라 애굽 사람이 그대를 볼 때에 이르기를 이는 그의 아내라 하여 나는 죽이고 그대는 살리리니 원하건대 그대는 나의 누이라 하라 그러면 내가 그대로 말미암아 안전하고 내 목숨이 그대로 말미암아 보존되리라 하니라(12:11~13)

 

마음에 두려움이 일었습니다. 생존해야 하겠습니다. 이러한 상황을 보고 사라는 남편에게 순종하는 마음으로 받아드립니다. 참 착한 아내에요. 요즈음에 젊은 사람들 중에 이런 아내 보기 힘들어요.^^! 자신을 지켜주지 못하는 남편, 남편이 얼마나 무능해 보였을까요? 자신은 여하튼 그렇게 왕의 첩으로 호사를 누리며 살아갈 수도 있겠지요. 그러나 남편을 살려야 하겠지요? 그래서 정말 그런 상황이 벌어지게 되고 사라가 애굽 왕에게 불리워갑니다.

 

바로에게는 잘못이 없어요. 아브라함의 아내가 아니라 누이라고 했으니 사라를 궁으로 데려갔고 그리고 그 댓가로 16절에 보니까 이에 바로가 그로 말미암아 아브람을 후대하므로 아브람이 양과 소와 노비와 암수 나귀와 낙타를 얻었더라(12:16) 선하고 후한 왕입니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어떤 사람은 그러겠지요. 특별히 남존여비 사상에 젖어 있는 사람들은..., 봐라, 아브라함이 약았다. 그러니 기근도 면했고 자신과 식솔의 생명도 구했고 재물까지 얻었으니 일거양득. 일거삼득 아니냐?”

나중에는 어떠했어요? 아내까지 도로 데려가라고 해요. 아브람에게 주었던 재물도 도로 돌려 받지도 않았어요. 왜냐하면 사라를 취하여 궁으로 들였는데 하나님께서 그 바로와 그 집에 역병을 내린 것이에요. 성경에는 큰 재앙이라고 했는데 원어에 보니 심각한 질병입니다. 17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여호와께서 아브람의 아내 사래의 일로 바로와 그 집에 큰 재앙을 내리신지라(12:17)

 

그래서 부자가 되었어요. 일은 해결이 되었어요.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러면 정말 그것이 그렇게 아내를 넘기면서까지 이루어야 할 생존이 하나님의 뜻일까요? 뭔가 이상하지 않습니까? 사람 꾀의 냄새가 나지 않아요? 권모술수의 모습 아니겠습니까? 하나님의 창조 세계의 법칙은 아담과 하와 둘이 서로 맺어진 부부관계는 하나님이 주례를 서신 것이요.

 

예수님도 마가복음 10:9절에 그렇게 말씀하셨어요. 하나님이 짝 지워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찌니라 이 모습은 분명 믿음이 조상, 아브라함의 실수에요. 잘못이에요. 아내에게 책 잡히고, 평생 기죽어 살아야 할 일이에요^^!

 

이제 뭐가 문제인지를 분석하고자 합니다. 아브람이 갈데아 우르를 떠나고 그 다음에는 하란을 떠나 하나님께서 지시할 땅 가나안으로 갔어요. 믿음으로 행진했어요. 그리고 마침내 세겜에 도착하고 보니 기근이 생겼어요. 살기가 힘들어요. 그래서 애굽으로 내려갔어요. 상황은 간단합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애굽은 하나님께서 지시한 약속의 땅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세겜에 머물기를 원하셨어요. 그래서 거기에서 제단도 쌓았어요. 7절 말씀을 다시금 읽겠습니다.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 이르시되 내가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라 하신지라 자기에게 나타나신 여호와께 그가 그 곳에서 제단을 쌓고(12:7)

 

여기까지 좋았습니다. 하나님의 지시를 따랐습니다. 하나님이 뜻을 분별하고 순종하며 행했어요. 이제 그곳에서 하나님의 약속하심을 소망 중에 바라보며 살아야 했어요. 그런데 기근이 닥쳤습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버텨야 했습니다. 인고의 날이 얼마가 될지언정 견뎌야 했습니다. 이를 악물고 이른바 grit, 참아내며 버텨야만 했어요. 그런데 하나님의 뜻에도 없는 인간적인 생각을 가지고 기근으로 인해 죽지나 않을까 두려워하여 남쪽으로 남쪽으로 애굽까지 내려갔습니다.

 

우리 인생이 그래요. 첫째 하나님의 뜻을 몰라요. 그래서 임의로 행해요. 둘째, 그러니 그 결과로 예기치 않은 어려운 상황이 벌어져요. 그 가운데에서 하나님의 뜻을 어긴 것은 모르고 그저 생존하기 위해 권모술수를 쓰고, 사람을 의지하고, 어찌하든지 벗어나려고 해요. 그러면서 여전히 믿음이 있는 사람은 당연히 기도하겠지요. 하나님 구해주세요. 살려주세요.

 

제가 네팔 선교지에서 많은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가장 큰 어려움 중에 하나는 마오공산당의 위협이었어요. 학교로 찾아와 공작금을 요구한 것이었어요. 가난한 학교, 고아들의 학교인데도 설명을 해도 듣지 않아요. 날짜를 정하고 그때까지 마련해놓아라. 처음에 약 1,750불이었는데요. 이거 주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 없어요. 다른 학교 주지 않았던 학교들은 교장이 잡혀가서 고문을 당하여 실어증에 빠지게 되었고, 학교버스가 불로 전소되고 또 어떤 학교는 컴퓨터실이 폭파당했습니다.

 

그때에 저는 기도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밥맛이 없어요. 잠을 못이루어요. 스트레스가 가증되요.

 

그런 가운데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고국에 가서 교회를 개척하자 그런데 기도하는데 기쁨이 없어요. 지금도 교회가 많은데 그 수많은 교회들 중에 왜 너까지 또 교회를 세우려 하니? 둘째, 그러면 다른 나라로 가자 세상에 선교할 나라가 네팔 밖에 없겠는가? 그런데 마음에 기쁨이 없어요. 또 다시 새로운 언어를 배운다고? 영어권은 이미 선교가 막바지에요. 그러니 새로운 언어를 해야만 미전도 종족으로 나갈 수 있습니다. 마지막에는 한국에 가서 선교학 교수하면 되겠네. 그런데 한국에 싸이고 싸인게 박사더라. 네가 교수하려면 하겠지만 하나님이 너를 왜 선교지로 보냈겠니? 그것이 하나님 뜻이겠니?

 

결론은 뭐에요? 거기에 머무르라. 죽더라도 머무르라. 내가 영광을 받으리라.”

그래서 그대로 있기로 했습니다. 처음에는 두려움, 그리고 눈물, 초조함, 그러나 그래도 주의 종이요, 60여 명의 교직원이 저를 처다 봅니다. 한국 선교사들도 바라봅니다. 저 김선교사 내외가 어떻게 견뎌낼까?” 잠시라도 한국으로 피하는 것이 어때요?” 이 상황을 알고 있는 동료선교사들이 조언을 줍니다. 저를 사랑해주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어려운 상황에서 지도자는 그 자리를 피하면.....결국 세월호 선장이 되는거에요^^!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나요?

 

이 사건이 종결은 하나님께서 하셨습니다. 지혜를 주셨어요. 그래 주기는 주는데 우리 학교는 고아들의 학교고 가난하니 열 번으로 나눠서 줄 테니 그렇게 하자. 월부로 하자.” 그런데 그게 통했어요. 그래서 위기를 넘겼어요. 그런데 하나님의 손길은 살아계셔서 카트만두에 입성해 있었던 마오공산군대가 패하면서 지방으로 철수하였습니다. 그래서 열등분 중에 첫 번째 것, 175불만 만 주고 그다음부터 받으러 오지를 않았어요. 하나님의 손이 지켜주셨기 때문이지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이 뜻을 아는 것은 너무 중요합니다. 이 뜻을 무시하고 가지 말아야 할 선교지로 가서 고통당하는 선교사들도 많구요. ? 거기가면 편하니까, 영어권이니 자녀들 교육이 유리하지요. 비자가 나오지요. 물론 영어권에도 꼭 필요한 일은 있습니다.

 

그러나 선교지역의 우선순위로 본다면 그 숫자가 상대적으로 많이 필요한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이런 모습들이 주의할 부분들이이에요. 힘들다고 이 나라 저 나라로 옮겨다니는 선교사들도 많아요. 열매가 나타나지 않아요. 나타날 시간이 없어요. 중요한 것이 무엇이에요. 하나님의 뜻이죠. 하나님의 뜻은 성경말씀에도 있구요. 현재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하나님의 손길을 보면 알 수 있어요. 기도 중에 알려 주십니다.

 

선교는 복음이 있는 곳에서 복음이 없는 곳으로 가면돼요. 평안이 있는 곳에서 평안이 없는 곳으로 가면돼요.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가는 모습이면 돼요. 예수께서 하신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아주 단순해요. 그런데 중요한 것은 그 자리에서 버티는 것이에요.

 

사업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생업의 현장 우리의 가정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하나님의 뜻과 상관이 없이 기도하지 않고 내 뜻과 사람들이 말을 먼저 따르고 하나님의 뜻을 행하다가 조금 힘들면...., “하나님이 뜻이 아니가봐~! 다른 일로 전환해야 하겠네~!” 버팀이 없습니다. 견딤이 없어요. 인내가 없어요. 인고의 날이 없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하나님은 어떻게 하실까요? 약속은 약속이지 않겠습니까? 아브람 하나님의 사람, 믿음의 조상, 그에게 약속하신 하나님의 말씀, 122,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12:2)

 

우리 하나님은 은혜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렇게 아내를 빼앗기는 어려운 상황에서 아브람에게 긍휼을 베푸십니다.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를 내가 저주하고....” 실수하였으나 건지십니다. 아내를 돌려받게 하시고 재물도 취하게 하십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을 다시금 약속의 땅으로, 축복이 나타날 자리로, 본래의 자리로, 있어야 할 그 자리로 돌아가게 하십니다. 이게 은혜에요. 133, 4절 말씀이지요.

그가 네게브에서부터 길을 떠나 벧엘에 이르며 벧엘과 아이 사이 곧 전에 장막 쳤던 곳에 이르니 그가 처음으로 제단을 쌓은 곳이라 그가 거기서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

 

그가 처음으로 제단을 쌓은 곳이라고 했어요. 그 주님께서 머물기를 원하셨던 그 약속의 땅으로 돌아가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 혹시 현재 있지 않아야 할 곳에 있지는 않습니까? 하나님의 뜻과 상관이 없이 내 뜻으로, 내 맘대로 서 있는 자리, 그러나 여전히 갈등과 번민은 끝이 나지 않고 주님과의 관계는 엉클어지고 심령은 빼빼 말라가는 자리, 이제 다시금 본래의 자리로 돌아가시기 바랍니다. 이 새벽도 주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약속의 땅, 하나님의 축복이 있는 그곳에 돌아가셔서, 다시금 하나님과의 본래의 관계로 회복하시기 바랍니다. 첫사랑의 때, 그 자리, 그 마음, 그 열정을 회복하시기 바랍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은혜와 자비와 긍휼을 베푸십니다. 그것이 독생자 아들을 제물로 주시는 예수님의 십자가의 사랑으로 증거하셨습니다. 모두에게, 모든 인류에게, 모든 믿는자에게는 구원이요, 축복이요, 영생복락입니다.

 

이 은혜의 하나님이 손을 다시금 붙잡으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뜻이 아니면 가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이 새벽에도 우리가 기도하는 것입니다. 주여! 주의 뜻을 알게 하시고 믿음으로 순종하게 하시고 견뎌야 할 상황이면 견딜 힘을 주옵소서~! 끝까지 버티게 하여 주옵소서~! 그러므로 종내 열매를 거두고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하옵소서!” 저와 여러분 모두의 기도가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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