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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강해 19] 새로운 시작
운영자 2024-04-17 추천 0 댓글 0 조회 29
[성경본문] 창세기11:27-32 개역개정

27. 데라의 족보는 이러하니라 데라는 아브람과 나홀과 하란을 낳고 하란은 롯을 낳았으며

28. 하란은 그 아비 데라보다 먼저 고향 갈대아인의 우르에서 죽었더라

29. 아브람과 나홀이 장가 들었으니 아브람의 아내의 이름은 사래며 나홀의 아내의 이름은 밀가니 하란의 딸이요 하란은 밀가의 아버지이며 또 이스가의 아버지더라

30. 사래는 임신하지 못하므로 자식이 없었더라

31. 데라가 그 아들 아브람과 하란의 아들인 그의 손자 롯과 그의 며느리 아브람의 아내 사래를 데리고 갈대아인의 우르를 떠나 가나안 땅으로 가고자 하더니 하란에 이르러 거기 거류하였으며

32. 데라는 나이가 이백오 세가 되어 하란에서 죽었더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성경본문] 창세기12:1-9 개역개정

1.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2.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3.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

4. 이에 아브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갔고 롯도 그와 함께 갔으며 아브람이 하란을 떠날 때에 칠십오 세였더라

5. 아브람이 그의 아내 사래와 조카 롯과 하란에서 모은 모든 소유와 얻은 사람들을 이끌고 가나안 땅으로 가려고 떠나서 마침내 가나안 땅에 들어갔더라

6. 아브람이 그 땅을 지나 세겜 땅 모레 상수리나무에 이르니 그 때에 가나안 사람이 그 땅에 거주하였더라

7.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 이르시되 내가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라 하신지라 자기에게 나타나신 여호와께 그가 그 곳에서 제단을 쌓고

8. 거기서 벧엘 동쪽 산으로 옮겨 장막을 치니 서쪽은 벧엘이요 동쪽은 아이라 그가 그 곳에서 여호와께 제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더니

9. 점점 남방으로 옮겨갔더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새로운 시작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온 인류의 구원의 역사를 시작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봉독한 말씀을 통해서 우리는 볼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을 통해 우리에게 구원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깨닫고자 합니다.

 

첫째, 하나님의 택정하심이 있습니다. 이는 절대적인 하나님의 영역입니다. 왜 나를 부르셨는지 우리는 헤아릴 길이 없어요. 더욱이 창세 전에 미리 예정하셨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을 보면, 내가 이 세상에서 태어나서 잘 살아서가 아니고 못 살아서가 아니에요. 하나님의 일방적인 은혜로 하나님은 그의 백성을 택하십니다. 그래서 성경은 말씀합니다.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1:4~5)

 

이미 예정하셨으나 현시점에서 구원받은 우리의 입장에서는 참 감사하다 나를 택해주신 하나님! 이 땅에 살아가는 동안 주의 손안에 두시고, 이 땅을 떠난 뒤에도 영원한 하늘나라에 영생하도록 은혜를 베푸셨구나!” 하고 감사하는 것입니다.

 

둘째, 구원을 위하여 죄인을 부르시는 것입니다. 이 부르심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부르십니다. 부흥사를 통해서 말씀이 오든지, 전도를 받으면서 말씀이 오든지, 말씀을 읽는 중에 부르심을 받든지, 모태신앙으로 자라나 부모님으로부터 말씀을 듣든지, 성경공부를 하면서 부르심을 깨닫든지 여하튼 하나님은 죄인을 부르실 때, 말씀으로 부르십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는 복음으로 부르십니다.

 

이 말씀으로 부르시는 일은 오늘날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주의 종들을 통하여 복음을 전하는 자들의 발걸음과 입술을 통해서, 교회 안에서, 복음 전하는 전도와 선교 현장에서, 성경과 도서를 통하여, 그리고 방송매개체를 통하여 하나님의 말씀이 다양한 채널을 통해서 전해지며 오늘도 말씀으로 죄인을 부르고 있습니다.

셋째, 부름을 받는 죄인이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3:16)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3:20)

 

죄인을 부르시는 주님의 음성, 곧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귀 울이고 그렇습니다. 나는 죄인입니다. 구원이 필요합니다.” 마음을 열고, 주의 말씀을 진리로, 아멘으로 받아들이는 자에게 구원이 임합니다. 여기에는 우리의 반응이 필요한데 이 반응이 믿음입니다. 이는 말씀에 대한 믿음이에요. 성경은 말씀합니다.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10:10).

 

넷째, 믿음은 적극적인 순종으로 이어집니다. 이 순종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순종이에요. 이 순종은 구원받은 자로 하여금 새로운 삶을 살게 합니다. 그 새로운 삶이란 곧 예수 안에서 선하게 사는 것이에요. 그러므로 성경은 말씀합니다.

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2:10)

 

이 선한 모습은 원래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실 때에 인간의 본성으로의 회귀를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형상의 회복인 것이에요. 그래서 Re-Creation, 재창조의 역사가 개인의 삶에 새 생명의 모습으로 역사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고후5:17).

 

그러면 이제 본문으로 돌아가 등장인물인 아브라함의 구원의 여정을 살펴보겠습니다. 앞서 언급한 구원의 서정이 그대로 드러납니다. 이 모습은 과거나 현재가 똑같습니다. 다른 점이 있다면 하나님께서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 제일 먼저 아브라함을 부르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이 우리 믿는 자들의 믿음의 조상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실 때에 아브라함의 나이가 일흔다섯살이었습니다. 구원에는 나이가 상관이 없어요. 아브라함은 자신보다 열 살이 어린 사라와 결혼을 하였는데 사라는 아브라함의 이복 여동생이였습니다. 이 부부에게는 자녀가 없었어요. 늦은 나이이니 이제는 포기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의 고향은 갈데아 우르입니다. 이곳은 오늘날 이라크의 지역으로 과거 메소포타미아 문명이 꽃을 피웠던 곳입니다. 지금도 그곳에서는 과거 신전들이 발견되는 것을 보면 종교적으로 이방신인 님롯을 대대적으로 섬기는 지역이었어요. 우상을 섬기는 사람들로 가득한 도시였습니다. 아브라함의 부친 데라는 우상을 만드는 일에 종사하고 있는 자였습니다.

 

이 우상과 죄로 가득한 세상에서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보셨어요. 그리고 인류의 구원의 시작을 위하여 그를 택하셨습니다.

 

우리는 의아해 할 수 밖에 없어요. 어떻게 이러한 자를 하나님은 택하셨을까? 무엇하나 잘 난 것이 없는데....!! 여러분, 그런데 알아야 해요. 이 아브람의 모습은 우리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뭐 잘 난 것이 있어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택한 것이 아니지 않겠어요? 우리를 부르신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로 되어진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아브라함에게 임한 날이 있었습니다. 아브라함이 하란에 거하고 있을 때에 주의 말씀이 임하였습니다. 창세기 121절에 말씀합니다.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2절과 3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12:2~3)

 

하나님은 먼저 떠나라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라

 

이 모습은 구원을 이루어감에 있어서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중요한 교훈을 줍니다. 이 새벽에도 주의 말씀으로 여러분의 마음을 두드리십니다. 아브라함에게 떠나라 라고 말씀하시는 것은 그 뜻이 죄로부터 떠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지시할 땅, 축복의 땅으로 가라는 것이에요.

 

우상을 섬기고 그 습관 속에 젖어 있는 환경, 그곳으로부터 벗어나라! 죄악의 습성으로부터, 환경으로부터 새 삶을 시작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떠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에게도 이 일이 쉽지 않아요. 강한 믿음이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에요.

 

그러므로 야고보서에는 이와 같은 상태에서 머뭇거리는 자는 믿음이 없는 자라고 말씀합니다. 그 모습은 확고한 믿음이 없기에 두 마음을 품은 자라고 표현했어요.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 두 마음을 품어 모든 일에 정함이 없는 자로다(1:6~8) 같은 맥락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마태복음 624절에 말씀하셨어요.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의 말씀이 임할 때 우리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 축복의 말씀이 우리의 삶에 이루어지기 위하여 우리는 떨쳐 버릴 것, 떨쳐 버려야 하고, 잘라 버려야 할 것 잘라 버려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어요.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화평이 아니요 검을 주러 왔노라(10:34)

 

이 검은 죄를 대적하기 위한 검이에요. 잘라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믿음이 있을 때, 이 일이 가능합니다. 그리고 이 믿음은 말씀을 들을 때에 일어나며 기도할 때에 능력을 받습니다.

 

아브라함이 믿음의 조상으로 일컬어지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임했을 때, 그 말씀을 믿음으로 들은 것이에요. 그리고 하나님께서 지시할 땅으로 가라 했을 때, 그 믿음으로 순종했기 때문입니다.

 

가나안 땅이 어떠한 곳인지 저는 알지 못했어요. 미지의 나라입니다. 그래서 신앙은 결단인 것이에요. 내가 과거에 믿던 불교를 버리고 유교를 버리고 예수를 믿는다고 하는 것이 정말 내 생애에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가 보지 않으니, 아직 그 결과를 모르니, 주저, 주저 합니다. 그래서 결단이 요구됩니다. 믿음이 필요한 것이에요.

 

그런데 아브라함은 믿습니다. 약속의 말씀을 믿었어요. 가족과 함께 미지의 땅으로 출발을 합니다. 땅과 자손과 민족을 주실 것이다. 이 믿음이 우리에게 있어야 합니다. 그러기에 순종할 수 있습니다.

 

오늘도 약속의 말씀은 우리의 마음에 울려 퍼져요. 성령으로 주어집니다. 중요한 것은 믿음이에요. 이 눈에 아무 증거 아니 뵈어도 믿음만을 가지고서 늘 걸으며 내 귀에 아무 소리 아니 들려도 하나님의 약속위에 서리라

 

믿는 자에게 하나님이 역사가 나타납니다. 믿음으로 순종하는 자에게 축복의 역사가 나타날 줄로 믿습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후손답게 삶을 살아가시는 저와 여러분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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