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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강해 18] 하나님 앞에 교만의 결말
운영자 2024-04-16 추천 0 댓글 0 조회 30
[성경본문] 창세기11:1-9 개역개정

1. 온 땅의 언어가 하나요 말이 하나였더라

2. 이에 그들이 동방으로 옮기다가 시날 평지를 만나 거기 거류하며

3. 서로 말하되 자, 벽돌을 만들어 견고히 굽자 하고 이에 벽돌로 돌을 대신하며 역청으로 진흙을 대신하고

4. 또 말하되 자, 성읍과 탑을 건설하여 그 탑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여 우리 이름을 내고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 하였더니

5. 여호와께서 사람들이 건설하는 그 성읍과 탑을 보려고 내려오셨더라

6.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이 무리가 한 족속이요 언어도 하나이므로 이같이 시작하였으니 이후로는 그 하고자 하는 일을 막을 수 없으리로다

7. 자, 우리가 내려가서 거기서 그들의 언어를 혼잡하게 하여 그들이 서로 알아듣지 못하게 하자 하시고

8. 여호와께서 거기서 그들을 온 지면에 흩으셨으므로 그들이 그 도시를 건설하기를 그쳤더라

9. 그러므로 그 이름을 바벨이라 하니 이는 여호와께서 거기서 온 땅의 언어를 혼잡하게 하셨음이니라 여호와께서 거기서 그들을 온 지면에 흩으셨더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하나님 앞에 교만의 결말

 

에덴 동산의 반역 이후에 타락한 인간은 계속해서 반복적으로 잘못을 범하고 악을 행합니다. 그러지 말아야 하는데 그러면 안되는데..... 이 모습은 의로우신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였고 마땅한 심판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창세기를 통해서 우리가 발견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인간이 죄를 범할 때마다 의로우신 하나님은 심판을 하십니다. 그러나 완전히 멸망시키시는 것이 아니에요. 구원의 길을 만드십니다. 이는 은혜라고 말할 수밖에 없어요. 그러시면서 그가 만드신 창조세계를 완전히 포기하시지 아니하시고 이어 가십니다.

 

아담과 하와가 죄를 범하고 에덴동산에서 쫓겨 날 때 하나님은 그들을 위하여 가죽으로 옷을 만들어 입히셨어요. 장차 여자의 후손 중에 구원자를 보내실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카인이 아벨을 죽였을 때는 아담과 하와를 위로하시기 위해서 다시금 셋을 아들로 주셨습니다. 또한 셋의 후손들이 카인의 후손들 중에 여자들을 취하고 도덕적으로 무너졌을 때 하나님은 대홍수를 통하여 세상을 멸하십니다. 그러나 여전히 노아의 가족을 구원하시고 그들을 통해 세상에 저들의 후손들이 창대해가도록 길을 마련하셨습니다.

 

이 모습은 마치 우리가 자녀를 사랑하는 모습과 같습니다. 믿음에서 멀어져가고 말도 듣지 않고 속을 썩이고, 부모의 맘을 몰라줘도.....어찌하든지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부모의 아픈 마음과 같습니다.

 

하나님은 참으로 자비로우시며 은혜가 많으시며, 그러시기에 반역한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여러분과 저를 위하여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시고 십자가에 달리게 하시면서 까지 우리를 구원하신 아버지 하나님이십니다. 이 새벽에도 기도하는 자에게 이 하나님의 은혜가 여러분을 새롭게 하실 줄로 믿습니다.

 

우리는 11장에서 또 죄를 범하는 인류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바벨탑 사건입니다. 대 홍수 이후에 하나님께서는 노아의 후손들이 땅에 편만하게 번성해 갈 것을 축복하셨습니다. 97절에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생육하고 번성하며 땅에 가득하여 그 중에서 번성하라 하셨더라 축복 하셨어요.

 

그런데 노아의 후손들은 생육하고 번성해 가면서 다른 생각을 품었습니다. 그들이 생육하고 번성해 가면서 동쪽에 있는 시날 평지에 이르게 되었는데 거기에서 하나의 대도시를 형성하고 흩어지기를 거부하였어요.

 

하나님의 원래 계획은 땅에 편만하도록 흩어지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거부했습니다. 그들이 그렇게 하고자 하는 목적이 있었는데 그것은 인간 스스로가, 하나님 없이, 힘과 권력을 갖기를 원했던 것이었어요. 114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또 말하되 자, 성읍과 탑을 건설하여 그 탑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여 우리 이름을 내고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 하였더니

이 힘과 권력이란 하나님과 같이 높아지고자 하는 야망이었어요. 본문 말씀에 우리의 이름을 내고 라고 말하는 것은 하나님과 같이 되자는 것이에요. 하나님 없는 집단, 하나님 없는 힘과 권력, 이것은 곧 하나님과의 관계를 끊어버리겠다는 행동입니다. 하나님께서 피조물을 창조하신 그 창조의 목적을 잊어버린 아주 잘못된 생각이에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성경을 통하여 약속하셨어요. 내가 너의 이름을 높이리라 그런데 오늘 바벨탑을 쌓고자 하는 자들은 우리가 우리의 이름을 높이자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 앞에서 겸손한 자를 높이시고, 의로운 자를 높이시는데, 누가 하는가? 하나님께서 높이십니다. 우리가 이것을 잘 알아야 해요. 하나님께서 높이시는 자는 결코 망함이 없습니다. 존귀함을 받습니다.

 

그런데 인간이 높임을 받기 위하여, 명예를 갖기 위하여, 야망을 품고, 인간적인 생각과 계획을 세워, 스스로가 높아지고자 하는 자! 그래서 고위 직책을 갖고, 직분을 받고, 힘을 과시하고자 하는 자는 하나님께서 세우신 것이 아니기 때문에 얼마가지 못하여 패망의 길을 걸어갑니다. 그런데 많은 경우 성도들 중에서도 스스로 권위를 세우고자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나님은 이에 대하여 시편 756절과 7절에 아주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무릇 높이는 일이 동쪽에서나 서쪽에서 말미암지 아니하며 남쪽에서도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재판장이신 하나님이 이를 낮추시고 저를 높이시느니라(75:6~7)

 

여호와 하나님께서 높이실 자 높이시고 낮추실 자 낮추십니다. 그 권한이 주께 있어요. 사람의 눈은 속일 수 있어도, 하나님의 불꽃같은 눈은 속일 수 없지요. 그런데 과거나 오늘이나 사람들은 명예와 권력을 얻기 위해서는 어떠한 일도 주저하지 않습니다. 바벨탑를 세우고자 하는 사람들은 이러한 명예과 권력 때문에 하나님의 보좌까지도 넘보고 말았어요.

 

이러한 일들은 우리의 본분이 아니며,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뜻도 아닙니다. 우리는 마땅히 하나님의 이름만을 높여야 하며, 그리스도의 영광을 위해서만 살아야 합니다. 이렇게 신실한 모습으로 살아갈 때, 우리는 스스로 높아지지 않아도, 하나님께서 높이시는 영광을 맛보게 되는 것입니다.

 

20세기에 존경을 받았던 영성신학자인 헨리 나우웬이라고 하는 분이 계십니다. 우리에게는 그의 저서인 상처입은 치유자또는 세상의 길, 그리스도의 길과 같은 영성 깊은 책들로 잘 알려졌습니다. 하바드와 예일대학교 신학부에서 신학교수로서 직임을 갖고 재직하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실천이 없는 신학을 그만 둡니다. 행함이 없는 신학의 건조함에 회의를 느낍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떠나 캐나다 토론토의 데이브레이크 공동체에서 정신박약 장애인들을 위해서 봉사하다가 그의 인생을 마감합니다.

 

그가 쓴 책 중에 제가 사랑하는 작은 소책자가 있습니다. In the name of Jesus라고 하는 책인데요. 거기에서 그는 교회 안에서 직분자로써의 리더쉽에 대해서 언급합니다. 그리고 그의 인사이트는 저의 평생사역에 있어서 권위와 리더쉽을 세워가는데 모토가 되고 지침이 되었습니다.

 

그는 말합니다. "From leading to Being Led" 그 뜻은 인도하는 자의 자리에서 인도함을 받는 자의 자리로....” 이 뜻은 이러합니다. 누구를 이끌려고 하기 보다는 네가 이끌림을 받아라. 사람의 이끌림이 아니라 주님의 인도함을 받는 자임을 보이라 는 것입니다. 네가 정말 주님의 인도하심을 받는 자의 모습으로 살아간다면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너를 따르게 될 것이다 라는 것이에요.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이 모습을 보이셨습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는 삶, 그래서 바쁜 와중에도 새벽이면 일찍이 한적한 곳에 가셔서 기도하시며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간구했습니다. 늦은 밤에도 산에 올라 가셔서 기도하시는 중에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았어요. 십자가의 죽음 앞에서도 겟세마네 동산에서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주시는 힘을 힘입어 일어나라 함께 가자 보라 나를 파는 자가 가까이 왔느니라 담대하게 십자가를 지시러 가셨습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는 자로써의 예수님의 모습이 바로 제자들 앞에서 보이신 리더쉽이었습니다. 사역도 그랬습니다. 하나님께서 일하시니 나도 일을 한다. 나는 나 혼자 내 임의로 일하는 것이 없다. 아버지께서 하라 하시니 나도 일을 한다(5:7)

 

그렇게 인도하심을 받을 때에 하나님의 능력이 그의 심령에, 그의 눈길에, 그의 입술에, 그의 손길에 강하게 나타났습니다. 귀신이 물러가고 병자가 일어났어요. 자연이 굴복하여 풍랑이 일던 바다가 잠잠해 졌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났고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받게 되었습니다.

 

성도 여러분!

누구에게나 직분이 있고 직책이 있습니다. 지도력을 가지고 사람을 대해야 하겠지요. 그런데 그 지도력의 본질은 사람들이 나를 바라보게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에요. 세상은 나를 따르라 라고 말할 때에 우리 믿는 사람들은 예수를 따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내가 예수님의 인도함을 받는 자의 모습으로 설 때 권위는 저절로 서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바벨탑 사건의 죄악의 본질은 이것입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지 않은 것이었어요. 하나님은 허락하지 않았는데 그들은 자기들의 계획을 세우고 밀어 부쳤습니다. 인간적인 계획과 생각으로... 왜 그렇겠어요? 그게 좋아보였기 때문이었겠지요.

 

그러나 하나님은 하나님의 계획이 있으셨어요. 생육하고 번성하고 땅에 충만하고 그 방법은 땅에 편만하게 거하기를 원했어요. 그러나 그들은 모였으며 힘을 키웠고 그들 스스로 그들의 이름을 높이고자 하나님처럼 높아지고자 하여 바벨탑을 쌓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그 결과는 비참했습니다. 언어의 혼잡이 왔습니다. 서로의 말을 이해할 수 없게 되었어요. 그러니 같은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끼리 모이게 되었고 그리고 흩어지게 되었습니다. 결국 하나님의 원래의 계획으로 인류의 역사는 발전해 갔던 것입니다.

 

왜 이런 소모가 착오가 있었겠습니까?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지 않았기 때문이지요.

우리가 이 새벽에 기도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깊으신 뜻을 알아가는 거에요. 그리고 그 뜻에 순종하는 거에요. 그리고 그 뜻에 순종할 수 있는 힘을 얻기 위하여 기도하는 줄로 믿습니다. 거기에 역사가 나타나고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고 우리의 삶에는 은혜요 복이 되는 줄로 믿습니다.

 

이 한날도 주님의 뜻에 순종하며 놀라운 역사를 이루어가시는 저와 여러분 모두가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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