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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엘상 강해 36] 사울의 죽음을 통한 교훈
운영자 2024-02-14 추천 0 댓글 0 조회 50
[성경본문] 사무엘상31:1-13 개역개정

1. 블레셋 사람들이 이스라엘을 치매 이스라엘 사람들이 블레셋 사람들 앞에서 도망하여 길보아 산에서 엎드러져 죽으니라

2. 블레셋 사람들이 사울과 그의 아들들을 추격하여 사울의 아들 요나단과 아비나답과 말기수아를 죽이니라

3. 사울이 패전하매 활 쏘는 자가 따라잡으니 사울이 그 활 쏘는 자에게 중상을 입은지라

4. 그가 무기를 든 자에게 이르되 네 칼을 빼어 그것으로 나를 찌르라 할례 받지 않은 자들이 와서 나를 찌르고 모욕할까 두려워하노라 하나 무기를 든 자가 심히 두려워하여 감히 행하지 아니하는지라 이에 사울이 자기의 칼을 뽑아서 그 위에 엎드러지매

5. 무기를 든 자가 사울이 죽음을 보고 자기도 자기 칼 위에 엎드러져 그와 함께 죽으니라

6. 사울과 그의 세 아들과 무기를 든 자와 그의 모든 사람이 다 그 날에 함께 죽었더라

7. 골짜기 저쪽에 있는 이스라엘 사람과 요단 건너쪽에 있는 자들이 이스라엘 사람들이 도망한 것과 사울과 그의 아들들이 죽었음을 보고 성읍들을 버리고 도망하매 블레셋 사람들이 이르러 거기에서 사니라

8. 그 이튿날 블레셋 사람들이 죽은 자를 벗기러 왔다가 사울과 그의 세 아들이 길보아 산에서 죽은 것을 보고

9. 사울의 머리를 베고 그의 갑옷을 벗기고 자기들의 신당과 백성에게 알리기 위하여 그것을 블레셋 사람들의 땅 사방에 보내고

10. 그의 갑옷은 아스다롯의 집에 두고 그의 시체는 벧산 성벽에 못 박으매

11. 길르앗 야베스 주민들이 블레셋 사람들이 사울에게 행한 일을 듣고

12. 모든 장사들이 일어나 밤새도록 달려가서 사울의 시체와 그의 아들들의 시체를 벧산 성벽에서 내려 가지고 야베스에 돌아가서 거기서 불사르고

13. 그의 뼈를 가져다가 야베스 에셀 나무 아래에 장사하고 칠 일 동안 금식하였더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사울의 죽음을 통한 교훈

 

오늘 사무엘상 마지막 장, 31장의 내용은 우리로 하여금 슬프게 합니다. 이스라엘의 초대 왕인 사울의 종말이 어떠했는지를 보여주고 있어요. 한마디로 비극입니다. 사울은 블레셋 군대와의 전쟁에서 패하고 그 전장에서 죽습니다. 자신뿐만 아니라 자신의 세 아들인 요나단과 아비나답과 말기수아가 함께 전사합니다. 큰 비극이에요.

 

그를 쫓는 적군의 활에 맞아 큰 중상을 입었고, 죽게 될 것을 감지한 사울은 자신의 곁에 있었던 아군의 병사에게 자신을 죽여달라고 합니다. 그 이유가 적군의 활에 맞아 죽었다라는 불명예스러운 죽음보다는 자결하였다는 모습으로 명예를 지키고자 했던 것입니다. 자신의 병사에게 자신을 죽여달라고 요청을 하였지만 그러나 병사는 왕을 죽인다는 두려움에 요청을 거부했어요. 그러나 사울은 자신의 칼을 세우고 그 위에 엎드려져서 자결합니다. 그때 그의 나이가 70세였습니다.

 

성경에 보니 그의 시신과 아들들의 시신은 블레셋 군사에 의해 벧산 성벽에 못 박아 걸었다고 했어요. 나중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 시신을 내려서 장사를 지내고 칠일동안 금식하였더라 기록하고 사무엘상은 끝이 납니다. 이어 사무엘 하에서는 왕이 되어가는 다윗의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너무나 슬프고 비참한 사울의 말로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이 세상에 한번 태어나고 또 당연히 죽음을 맞이하지만 사람들은 자신들이 바라고 기대하는 죽음의 모습이 있어요. 여러분은 어떠한 모습으로 죽음을 맞이하기를 바라십니까? 생각해 보셨나요?

 

사람들이 바라는 죽음의 모습은 공통점이 있어요. 그것은 살 만큼 다 살고 평안한 가운데 가족들과 이별을 하고, 기력이 다 쇠진하여 숨이 멈추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바라지 않는 모습으로 세상 떠나는 모습은 슬픔이요, 아픔이에요. 갑작스런 사고로 인하여, 또는 질병으로 인하여, 또는 전쟁에서 죽는 것일 것입니다. 이러한 죽음의 공통점이 있으니, 아직 때가 아닌 것 같은데, 더 살아야 하는데, 세상을 떠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본인과 가족과 사랑하는 이들에게 큰 아픔과 슬픔을 줍니다.

 

인명재천(人命在天)이란 숙어가 있습니다. 사람의 목숨은 하늘의 뜻에 달려 있다라는 것이지요. 그렇습니다. 인간의 생사화복은 영혼의 창조주요, 생명의 소유주가 되신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분명합니다. 그렇다면 사울은 왜 이렇게 슬프고 비참하게 죽어야 했을까요? 하나님의 뜻이었을까요? 성경은 그 이유에 대하여 진술합니다.

 

이스라엘의 역사를 기록한 역대기상 1013절과 14절에 기록하기를, 사울이 죽은 것은 여호와께 범죄하였기 때문이라 그가 여호와의 말씀을 지키지 아니하고 또 신접한 자에게 가르치기를 청하고 여호와께 묻지 아니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그를 죽이시고 그 나라를 이새의 아들 다윗에게 넘겨 주셨더라(대상10:13~14)

 

그의 비극적인 죽음의 이유는 여호와께 범죄하였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 구체적인 내용을 기술하였으니, 첫째, 여호와의 말씀을 지키지 아니한 것이요, 둘째, 신접한 여인에게 가르침 받기를 바란 것이요, 셋째는 하나님을 의뢰하지 아니했던 것입니다.

 

그 이외에도 사울은 사무엘 선지자에게 거짓 보고를 하였습니다. 아말렉 군대의 모든 전리품을 취하지 말라는 명령을 거역하고 아깝다하여 남겨두었습니다. 하지 않았으면서 진멸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다 실행하였다고 사무엘 선지자를 거짓으로 속였습니다. 그러나 사무엘은 알지요. 하나님께서 알려 주셨어요.

 

그런가 하면 전쟁 앞에서 선지자의 조언과 기도를 받아야 하는데, 사무엘이 늦게 오게 되자 기다리지 못하고, 왕의 영역이 아닌 제사장의 역할인 제사를 집례하는 일을 자신이 직접 하였습니다. 이는 영적교만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또한 왕권은 하나님께서 내려 주시는 것인데 그 권좌를 자신의 임의대로 자신의 아들을 세우려하고 당시 백성의 존경과 신뢰를 받고 있던 다윗을 죽이려고 했던 것입니다.

 

세상 표현으로 권력을 맛보게 되면 헤어나오지를 못한다는 말이 있는데, 사울이 그러했던 것입니다. 왕이 되기 전에 사울의 모습이 얼마나 겸손했습니까? 감히 나는 그 자리에 설 수가 없다고 생각하여 숨었던 자였어요. 또한 부모에게는 효자였습니다. 잃어버린 암나귀들을 찾아오라는 아버지 기스의 명령에 찾기 전에는 집에 오지 아니하고, 이곳저곳 여러 지역들을 다니며 찾아 다녔던 그는 그처럼 순수했던 자였어요.

 

그런데 변했습니다. 왕이 되어 권좌에 앉으니, 모든 사람이 자신의 명령 앞에 복종하니, 자신의 뜻대로 행하기 시작했습니다. 자신의 야욕을 이루기 위해, 하나님의 뜻을 구하지 않게 되었어요. 그의 인생가치관이 바뀌고 신앙관이 변질되었습니다.

 

그의 변한 모습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성경의 기록이 있습니다. 사무엘상 1530절의 말씀이에요. 사울이 이르되 내가 범죄하였을지라도 이제 청하옵나니 내 백성의 장로들 앞과 이스라엘 앞에서 나를 높이사 나와 함께 돌아가서 내가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 경배하게 하소서 하더라(삼상15:30) 이 모습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내가 범죄하였을지라도 나를 높여 주소서!”입니다. 내가 죄를 지었어도 장로들과 이스라엘 백성 앞에서 나를 높여 주소서!” 어떤 자들의 모습이 연상됩니까? , 야욕을 이루기 위한 권력자들의 멘탈리티 아니겠어요? 죄를 범하면서까지 양심의 소리를 듣지 아니하고 더 높은 자리를 탐하는 자들의 모습이 보입니다.

 

사람은 태어나면 누구나 사명을 받습니다. 그 사명은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을 이 땅에 생명으로 보내신 이유이기도 합니다. 오늘도 살게 하시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크게 생각하면 하나님의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이 땅에서도 이루어지는 일에 쓰임 받는 모습으로 사는 것이에요. 그런가하면 적게는,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주신 은사를 가지고 십분발휘하여 여러 다양한 생업에 종사하며 최선을 다해 행하고, 그 일로 이웃의 필요들을 도우며, 그 착한 행실을 보고, 사람들이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도록 하나님께서는 가정을 이루게 하시고 가장으로서 어머니로서 자녀들로서 행복을 갖게 하시고, 더 확대한 가정의 모습으로 주의 몸된 교회를 이루게 하시는 것입니다. 믿음의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피차 서로 도우며 격려하며 위로하며 주신 사명을 잘 감당하라 하시는 것이지요. 그래서 교회는 천국의 모형이라고 했어요.

 

그러는 중에 하나님께서 부여하신 사명을 다 마치면 다시금 우리의 영혼의 본향인 하늘나라 주님의 품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주와 더불어 영생복락을 누리는 이것이 이 땅에 보내심을 받은 모든 믿는 자의 인생인 것입니다.

 

그런데 영혼의 창조주요, 생명의 주가 되신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고, 자기의 뜻대로 자신의 야욕을 이루기 위하여 범죄하면서도 권력을 누리고 이기적인 행복을 추구하는 모습은 인생을 잘못 살아도 많이 잘못 사는 것입니다.

 

어떤 한 사람이 위대한 전도자인 죤 웨슬리(John Wesley)에게 물었습니다. 오늘 밤 열두 시에 죽는 것이 확실하다면, 오늘 하루 동안 무엇을 하시겠습니까?” 그때 죤 웨슬레는 이렇게 대답했다고 합니다. 다른 날과 다름없이 설교 준비와 심방을 하겠소. 그리고 다른 날보다 30분 일찍 잠자리에 들어가겠소!”

무슨 뜻이겠어요? 참된 그리스도인들은 마지막 순간까지 주님의 영광을 위하여 꾸준히 노력하고 최선을 다하면서, 죽음을 30분 앞당겨서 맞이할 수 있는 여유를 갖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죤 웨슬리의 동생이며 찬송가 작사자인 찰스 웨슬리(Charles Wesley)는 죽음 직전에 이런 기도를 드렸다고 합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니, 기쁠 뿐입니다. , 만족하다, 만족하다.” 얼마나 평화스럽고, 행복한 죽음인가요? 그는 천국에서 자기를 맞이해 주시는 하나님의 기쁜 낯을 보고 있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을 믿는 자에게 죽음은 인생의 마침표가 아니라, 잠시 쉬었다가 영원한 그 나라의 삶으로 이어지는 쉼표인 것입니다. 우리모두는 죽음을 맞이할 때, 기쁨으로 행복한 죽음을 맞이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여기에 작자미상의 한 시가 있습니다. 시의 내용을 볼 때 이 시를 쓴 사람은 미국 대륙의 한 농장에서 성실하게 신실하게 한날 한날의 수고를 하던 한 사람입니다. 그 시의 제목이 그가 오실 때입니다. 주님은 다시 오실 것인데 주께서 내 살아생전에 오신다면 그렇다면 나는 어떤 모습으로 주를 맞이할 것인가? 이 시는 그 바람직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가 오실 때 / 작자 미상

 

그가 오실 때, 목화 따는 나를 보시리라

하늘의 천군 천사들이 소리 높이 외치는 소리

그가 오실 때, 목화 따는 나를 보시리라

그가 오실 때, 나는 목화 밭에서 무릎을 꿇으리라.

 

주께서 내게 맡겨주신 매일 매일의 일에 충실하겠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주님 오시는 날, 주께서는, 변함없이 신실하게 주께서 주신 동산에서 땀을 흘리며 수고하는 자를 안아 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말씀하실 것이기 때문이에요.

잘했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니, 이제 네 주인의 잔치에 참여할지어다!”

 

성도 여러분, 이 확신이 있습니까? 이 믿음이 있습니까? 내가 이 세상을 떠날 때, 아니면 주님 오늘 밤에 오셔도, 내일 아침에 오신다 해도, 평안함으로 주를 맞이할 것입니까?

 

그러시기를 저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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