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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엘상 강해 08] 사람을 세워 일을 이루시는 하나님 II
운영자 2023-11-02 추천 1 댓글 0 조회 243

사람을 세워 일을 이루시는 하나님 II

 

우리는 지난 시간에 사람을 세워 일을 이루시는 하나님 이란 주제를 가지고 은혜를 나누었습니다. 그 두 번째 시간 이어갑니다.

 

시대마다 사람을 들어 주의 역사를 이루어가시는 하나님은 어느 한순간 갑자기, 한 영웅을 내세워 일을 이루시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 성경본문에 사울의 모습을 보면서 깨닫습니다. 보통의 경우 하나님은 사람을 들어 쓰실 때, 관찰의 단계를 거치십니다. 일상의 삶에 개인에게 주어진 일에 열심히 감당하고 있는지 그 모습을 가만히 보고 계십니다. 관찰하시는 거에요.

 

, 보십시오.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한 인물 사울이 경우가 그러합니다. 성경말씀 93절 이하에 보니, 자신의 집안 생업인 목축업에 충실하고 있는 사울의 모습이 나옵니다. 아버지 기스가 암나귀들을 잃었다고 했어요. 아버지가 사울에게 명합니다. 사환을 데리고 가서 암나귀를 찾으라!” 그랬습니다. 그때 사울의 모습을 보십시오. 충실히 행합니다. 4절을 다시 읽겠습니다.

그가 에브라임 산지와 살리사 땅으로 두루 다녀 보았으나 찾지 못하고 사알림 땅으로 두루 다녀 보았으나 그 곳에는 없었고 베냐민 사람의 땅으로 두루 다녀 보았으나 찾지 못하니라(삼상9:4)

 

이 돌아다니는 거리의 반경이 큽니다. 에브라임 산지사알림 땅베냐민 사람의 땅으로 여기저기 사방팔방으로 끊임없이 찾아다니는 거에요. 물론 목축업에 있어서 새끼를 나야하는 암나귀가 소중하니까 그렇게 합니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는 사울은 아버지에게 효자인 것이에요. 아버지가 찾아오라고 하니...... 그 일에 여념이 없습니다. 효자죠. 여러분, 효자치고 부지런하지 않는 자가 없어요. 효자임을 또 알 수 있는 구절이 다음 구절입니다.

5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5.그들이 숩 땅에 이른 때에 사울이 함께 가던 사환에게 이르되 돌아가자 내 아버지께서 암나귀 생각은 고사하고 우리를 위하여 걱정하실까 두려워하노라 하니(삼상9:5)

 

가자, 이제 집으로 가자. 내 아버지께서 암나귀는 고사하고 우리를 위하여 걱정하실 거야~!” .아버지에게 걱정을 끼쳐드리면 안 되니까~! 참 효자입니다.

 

성도 여러분, 이 암나귀를 찾는 일이 그리고 아버지의 마음을 헤아리는 일이, 한 나라의 왕으로 서기에는 보잘것없은 일로 보입니까? 또는 아버지를 생각하는 사울의 마음이 너무 소심하게 보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2521절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 주인이 이르되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하고(25:21) 오늘 말씀의 교훈이에요.

 

모세가 그러지 않았나요? 이제는 애굽의 왕자가 아니라, 일개 무명의 목자로써 그의 본분이 양을 먹이고 치는 일이었습니다. 자신의 양도 아닌 장인 이드로의 양을 칠 때, 양에게 더 좋은 꼴을 먹이려고, 서쪽으로, 서쪽으로 가다가 호렙산에 다다르게 되었고, 그곳에서 그의 인생이 바뀌는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됩니다. 불타는 떨기나무 앞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역사에 그 이름이 길이 남는 주의 종이며, 이스라엘의 민족적 지도자로 부름을 받게 된 것입니다.

 

또한 기드온이 그렇지 않습니까? 자신의 나라를 침략하여 억압하고 있는 미디안 족속의 눈을 피하여, 곡식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숨어서 포도즙 틀에서 밀을 타작하다가, 천사의 방문을 받습니다. 자신의 본분이 농사일이었어요. 그 일에 최선을 다하고 있는 기드온의 모습이에요. 그러는 중에 사사로써 부름을 받고, 300명의 용사와 미디안 적을 무찌르고, 이스라엘에 자유를 가져오는 일에 큰 사사로 용사로 쓰임을 받았습니다.

 

오늘 사울이 또한 그러한 것입니다. 사울은 잃어버린 나귀를 찾다가 왕으로 부름을 받습니다. 작은 일에 충성하다가 부르심을 받는 모습이에요.

 

저는 오늘날 젊은이들의 모습을 봅니다. 일자리를 구해요. 그런데 물론 다는 아니지만 힘든 일은 아예 하려 들지를 않습니다. 그렇게 자랐어요. 그러니 힘든 일은 거들떠 보지도 않습니다. 물론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요. 제가 한 어머니에게 들었어요. 아들이 지방에 내려가서 자동차 도색하는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구요. 그래도 꽤 규모가 있는 자동차 정비업소라고 했어요. 호텔경영학을 전공했는데, 적성이 안 맞는 것 같다고 그렇게 하기로 했대요. 이 아들이 엄마 아버지의 부지런한 성격을 닮아서, 좌우지간 일주일만 일을 안 해도, 가만히 있지를 못한다고 했어요. 부지런한 것이죠.

 

그래서 제가 격려했습니다. 그래요. 잘 했습니다. 그렇게 젊은 때, 시간을 소중이 여기고 뭔가 열심히 하고자 하는 자에게는 반드시 길이 열립니다. 그럼요. 하나님께서 보고 계시니까요.”

 

그런데 오늘 날 많은 젊은이들이 부모의 집에서 무전취식을 하려고 해요. 과거에는 그러지 않았습니다. 농사를 짓는 가정이면 가족이 모두 일을 해야 했어요. 저는 어릴적에 주로 멍석에 깔린 고추나 벼가 마르면 거두어 드리는 일을 했습니다. 콩밭에서 풀을 뽑았습니다. 숲에 가서 소 풀을 먹여 와야 했습니다. 겨울철에는 방을 데워야 하니 군불을 땠습니다. 때로는 엄마 일을 돕는다고 큰 대청마루를 열심히 걸레질 했습니다. 안 하면 학용품을 사야 하는데 어머니가 돈을 안주셨어요. 공돈은 오직 한번, 설날에 세배 할 때만 공돈을 받았습니다. 그러면 입이 귀에 걸렸습니다.

 

밥을 먹으면 밥값을 해야 했지요. “일을 안하면 밥을 먹지 못하지!” 은연 중에 그런 교훈으로 교육받은 거에요. 이런 교훈을 하나님께서는 성경을 통해 다 알고 가르치십니다. 뭐라고 했어요? 누구든지 일하기 싫어하거든 먹지도 말게 하라(살후 3:10)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자리에는 그런 분 한 사람도 없는데..., 무전취식 하면 안돼요. 이게요. 법으로 따지면 형사법에 걸린대요. 가족이니까 봐주는 거지! 이 자리에 부모님들은 자녀들 밥 먹을 때, 미성년자 지나고 성인되고 나서도 공짜밥 먹으면, 몇끼 먹었는지 다 적어놓으세요. 그리고 나중에 효도 안하면 청구서로 내밀어요. 그런 자녀가 없기를 축복합니다.

 

사울이 집안 가업인 목축업에 최선을 다하고 있을 그때, 그를 바라보시는 하나님께서 그를 누구에게 인도합니까? 그처럼 부지런한 사울을, 당시 성소가 있는 실로, 그리고 그곳에서 사명 감당하고 있는 주의 종 사무엘에게 인도하십니다. 사환의 아이디어 였죠. 6절의 내용입니다. 그가 대답하되 보소서 이 성읍에 하나님의 사람이 있는데 존경을 받는 사람이라 그가 말한 것은 반드시 다 응하나니 그리로 가사이다 그가 혹 우리가 갈 길을 가르쳐 줄까 하나이다 하는지라(삼상9:6) 무슨 뜻이겠어요? 우리가 이렇게 여기저기 알지도 못하면서 사방팔방으로 헤매고 다닐 것이 아니라 신령한 분에게 찾아가서 물어봅시다.”

 

이러저러한 얘기가 오고 가게 되었는데, 여기에서 사울의 부족한 영성이 드러납니다. 그가 키가 크고 준수했어요. 성품도 좋아요. 부지런해요. 효자에요. 그런데 영적으로 무지합니다. 사무엘이 누군지도 몰라요. 그 말은 성소에 가본 적이 없는 거예요. 이스라엘 사람이라면 매년 최소한 꼭 한번은 성소에 올라가서 제사를 드려야 하는데, 그 경험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 사무엘을 본적도 없겠지요. 그런데 상식은 있어요. 뭐라고 해요? 7절 말씀을 읽겠습니다. 사울이 그의 사환에게 이르되 우리가 가면 그 사람에게 무엇을 드리겠느냐 우리 주머니에 먹을 것이 다하였으니 하나님의 사람에게 드릴 예물이 없도다 무엇이 있느냐 하니(삼상9:7)

 

이게 세상 말로 복채입니다. 사울이 그 사람에게 라고 말씀하고 있어요. 어떤 주의 종은 이 구절을 근거로 해서, 주의 종에게 기도 받으러 올 때는 빈손으로 오지 말고 봉투를 가져오라 고 합니다. 참 어떻게 성경을 그렇게 해석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이것은 사울이 영적으로 몰라서 제사법도 알지 못해서 한 식언입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복을 구하는 마음으로 드리는 모든 헌금은 사람에게가 아니라 하나님께 드리는 것인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교회 앞에 드리는 것도 그래요. 과거에 교회가 너무 가난하고 힘들 때, 목사님도 힘들었어요. 성도들도 힘들었어요. 그러니 먹고사는 것이 힘들어서, 가족도 이웃도 나누어서 먹는데, 목사님도 마찬가지지 생각하고 먹을 것, 마실 것, 입을 것, 성미도, 과일도, 때로는 양복도 해드렸습니다. 너무 감사하지요.

 

그런데 오늘날은 누구나 다 먹고 사는 일에 큰 어려움이 없습니다. 그리고 우리 교회 사이즈의 중형교회의 담임목사는 여러분이 드리신 헌금에서 당회에서 알아서 주십니다. 쓸 만큼 주십니다. 그러니 목사로서의 마땅히 감당해야 할 일들, 즉 직무를 행할 수 있습니다. 말씀을 전하고, 성도의 복을 빌며, 기도하는 일, 장례식, 결혼주례, 돌 잔치..., 그런데 여러분, 이와 같은 일들로 드려야 하느니, 말아야 하느니, 고민하기 마시고 그냥 교회에 감사하며 드리시면 됩니다. 그런데 물론 예외는 있어요. 여전히 자립이 힘든 농어촌 교회 목사님들, 그리고 여전히 사례비로 살기가 빠듯한 부교역자들에게는 관심을 가져주셔야 해요. 그것이 하나님 앞에서 성도로써 바른 모습입니다.

 

그런데 오늘 성경에서 사울이 잘한 것이 있습니다. 10절 말씀을 읽겠습니다.

사울이 그의 사환에게 이르되 네 말이 옳다 가자 하고 그들이 하나님의 사람이 있는 성읍으로 가니라(삼상9:10)

왜 하나님의 사람을 찾아갑니까? 왜 사무엘을 찾아갑니까? 그 답은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기 위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 위해서 가는 것입니다. 사람의 생각과 지혜를 뛰어넘는 하나님의 말씀의 인도를 받기 위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이 새벽에도 주님 전에 나온 것은 기도하러 나왔습니다. 그런데 기도하기 전에 먼저 하나님의 말씀을 듣습니다. 그래야 기도의 방향이 잡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 발의 등이요, 우리 길에 빛인 줄로 믿습니다.

말씀을 통해 우리 인생의 문제가 해결이 됩니다. 영생의 도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깨달아 집니다. 말씀의 인도를 받는 인생은 결코 헛된 길로 가지 않습니다.

 

결국 하나님의 사람을 만나러 성소에 가게 된 사울은 암나귀들을 찾았을 뿐만 아니라, 사무엘로부터 엄청난 소식을 듣습니다. 이스라엘의 왕으로 부르심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인생의 대변혁의 역사가 그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암나귀를 잃게 하신 것도 알고 보면 하나님의 섭리였습니다. 찾다가, 찾다가 성소로 인도하신 것도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손길이었습니다.

 

성도 여러분, 일이 이리저리 꼬이고 갈 바를 알지 못할 때, 그래서 몸도 마음도 힘들 때 있습니다. 그러나 그 상황에서 여전히 여러분을 보시고, 그 상황을 보시는 분이 계심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십니다. 찾는 자에게, 그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고 기도하며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주의 선하신 인도하심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 어려운 때가 기회가 됨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내일 이어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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