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돌새벽강단

  • 예배와 말씀 >
  • 산돌새벽강단
[고린도후서 강해 17] 우리의 능력은 십자가의 복음
운영자 2023-09-27 추천 1 댓글 0 조회 160
[성경본문] 고린도후서10:1-11 개역개정

1. 너희를 대면하면 유순하고 떠나 있으면 너희에 대하여 담대한 나 바울은 이제 그리스도의 온유와 관용으로 친히 너희를 권하고

2. 또한 우리를 육신에 따라 행하는 자로 여기는 자들에 대하여 내가 담대히 대하는 것 같이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나로 하여금 이 담대한 태도로 대하지 않게 하기를 구하노라

3. 우리가 육신으로 행하나 육신에 따라 싸우지 아니하노니

4. 우리의 싸우는 무기는 육신에 속한 것이 아니요 오직 어떤 견고한 진도 무너뜨리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모든 이론을 무너뜨리며

5.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다 무너뜨리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하게 하니

6. 너희의 복종이 온전하게 될 때에 모든 복종하지 않는 것을 벌하려고 준비하는 중에 있노라

7. 너희는 외모만 보는도다 만일 사람이 자기가 그리스도에게 속한 줄을 믿을진대 자기가 그리스도에게 속한 것 같이 우리도 그러한 줄을 자기 속으로 다시 생각할 것이라

8. 주께서 주신 권세는 너희를 무너뜨리려고 하신 것이 아니요 세우려고 하신 것이니 내가 이에 대하여 지나치게 자랑하여도 부끄럽지 아니하리라

9. 이는 내가 편지들로 너희를 놀라게 하려는 것 같이 생각하지 않게 함이라

10. 그들의 말이 그의 편지들은 무게가 있고 힘이 있으나 그가 몸으로 대할 때는 약하고 그 말도 시원하지 않다 하니

11. 이런 사람은 우리가 떠나 있을 때에 편지들로 말하는 것과 함께 있을 때에 행하는 일이 같은 것임을 알지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우리의 능력은 십자가의 복음

 

여러분은 세계적인 명문인 미국의 하바드 대학교의 이름을 들어보셨을 것입니다. 일곱명의 미국 대통령을 배출하였고 졸업생들과 교수를 포함하여 세계에서 가장 많은 157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한 학교입니다.

 

이 학교 이름은 미국 개척 초기인 16393월 젊은 청교도 목사인 존 하버드의 성을 따서 지었어요. 그가 학교설립을 위해 자신의 책 400권과 재산의 절반인 779파운드를 기부하였습니다. 이 대학교는 목회자를 양성하기 위한 신학교로 시작을 하였어요. 1642년도 9월에 하버드 규칙에는 모든 학생에게 분명히 가르쳐야 할 삶과 공부의 목적은 하나님을 알고 또 영생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다라고 명시하였어요.

 

그런데 2013년도에 들어와서 하버드 대학에서 학교 교가인 "Fair Harvard"에 있는 기독교 뿌리가 담긴 가사를 폐지하려고 검토한다고 했습니다. 하버드 교수가 말하기를 그 노래 가사는 인종 차별을 야기시킬 수 있다고 했습니다.

 

하버드 대학을 비롯한 아이비리그 대학들이 기독교 진리로 훈련하며 열방에 선교사들을 보내기 위해 세워졌었는데 지금은 이렇게 세속적으로 변해가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언더우드 선교사에 의해 세워진 연세대학교가 비슷한 모습을 가지고 있습니다. 세속화돼가고 있습니다. 성경 말씀에 근거한 기독교의 교육 정신이 세상을 선도해 나가야 하는데 세상적 기준에 발을 맞춰가는 것입니다.

 

저와 아내가 22년 전에 네팔 카트만두에 설립한 리빙스톤 학교와 초급대학 그리고 장로교신학교가 철저하게 기독교 신앙에 입각하여 세워졌고, 처음부터 지금까지 철저하게 성경에 입각한 교과과정으로 그리고 예배를 드리므로 기독교 학교의 정신을 지켜가고 있으나 세속적인 기준이 계속 침투해 옵니다. 세상이 무너지더라도 지켜 나아가야 할 것이 바로 기독교 신앙입니다.

 

오늘 성경 본문에 등장하고 있는 고린도 교회 안에 한 부류가 이처럼 세상적 기준으로 기독교 신앙을 해석하려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절대적 진리의 기준으로 보지 않고, 세상의 기준인 인간의 능력과 지식에 진리의 근거를 둔 소위 인본주의의 영향을 받은 자들이 한 분파를 형성하고 있었어요.

 

이들은 당시 시대적 대세의 문화인 헬레니즘의 정신세계를 끊어내지 못했습니다. 헬레니즘은 철학과 논리와 수사학 그리고 육체의 미를 강조했습니다. 그래서 인간을 강조하다보니 건강의 상징으로 벌거벗은 육체를 동상으로 만들어 세웠습니다. 이와 같은 사상을 끊어버리지 못한 고린도 교회 안의 한 부류는 십자가의 복음을 강조하는 사도바울을 못마땅하게 여겼으며 그러기에 그에게 순종하지 아니했습니다.

 

오늘 본문 1절에 바울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너희를 대면하면 유순하고 떠나 있으면 너희에 대하여 담대한 나 바울은 이제 그리스도의 온유와 관용으로 친히 너희를 권하고(고후10:1)

사도바울이 이렇게 자신을 표현한 것은 사도 바울의 입장이 아닙니다. 사도 바울의 말이 아니에요. 이 말은 그들이, 세상적인 풍조에 기준을 둔 사람들이, 그렇게 바울을 표현하고 있는 것을 다시금 바울이 그대로 재사용한 것이에요.

 

비슷한 내용이 10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들의 말이 그의 편지들은 무게가 있고 힘이 있으나 그가 몸으로 대할 때는 약하고 그 말도 시원하지 않다 하니(고후10:10) 그들의 말이 그랬어요. 그들의 말이 바울의 모습이란 서신을 보면 글은 잘 쓰는데, 직접 만나보면 육신적으로 연약하고 또한 말이 시원챦다 이 말은 그들의 기준인 수사학, 즉 언변에 능통하지 못하다 그런 말입니다.

 

그러나 사도바울이 그렇지가 않았습니다. 11절에 고백합니다.

이런 사람은 우리가 떠나 있을 때에 편지들로 말하는 것과 함께 있을 때에 행하는 일이 같은 것임을 알지라(고후10:11)

 

여기에서 이런 사람이란 바로 교회 안에서 인본주의인 헬레니즘의 영향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바울이 그들에게 말씀합니다. 편지 쓴 자가 바로 나고 그리고 그 편지 쓴 자인 내가 너희와 함께 있었다. 다르지가 않다.” 그 말씀입니다.

 

오늘 성경 본문에서는 세 부류의 사람이 등장합니다. 문법적으로 보면 주어인데요. 첫째, 입니다. 1인칭이죠. 바울입니다. 둘째 너희입니다. 2인칭입니다. 이들은 고린도 교회의 비교적 건전한 성도들입니다. 그런데 셋째 부류를 지칭할 때에 그들 라고 부릅니다. 3인칭이지요. 나와 너희 밖의 그들이라고 했어요. 이들이 바로 인본주의자들로 바울의 말에 순종하지 않은 자들입니다.

 

2절에 보시면 그들은 사도바울의 가르침을 자신들의 기준으로 판단하였습니다. 그래서 바울을 육신대로 행하는 자로 여겼어요. 여기에서 육신에 따라 행한다 하는 표현은 바로 인본주의를 말합니다. 세상의 기준이에요. 그것으로 사도바울을 판단하였어요. 그러므로 사도바울이 전하는 복음을 색안경을 끼고 보았던 것입니다.

 

이와 같은 그들을 대하는 사도바울은 답답합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기독교인들인 우리가 같은 상황 속에 있습니다. 대학의 인본주의 문화에 젖은 젊은이들은 지금까지 잘 배워왔던 기독교의 진리를 삐딱하게 봅니다. 기독교 진리가 절대진리가 아닌 여러 진리 중에 하나인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래서 생각하기를, 불교든 유교든 이슬람이든 다 일리가 있으니, 그저 산에를 올라가도 정상에 이르는 길은, 여러 갈래가 있다. 왜 꼭 기독교만 진리냐?” 그렇게 생각을 해요.

 

오늘날 세상에 믿지 않는 사람 중에 좀 유식하다고 하는 사람들이 교회를 향하여 또는 믿는 사람들을 향하여 말합니다. 그렇게 맹목적으로 맹신적으로 예수 믿지 말어!” 그럽니다. 예수 믿는 사람이 단순하고 무식하다는 것이에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이런 경우에 어떻게 하십니까? 오늘 성경 본문의 말씀을 통해 우리는 배워야 합니다.

 

그들을 향하여 바울이 말씀합니다. 3, 4절 말씀입니다. 함께 읽습니다. 우리가 육신으로 행하나 육신에 따라 싸우지 아니하노니 우리의 싸우는 무기는 육신에 속한 것이 아니요 오직 어떤 견고한 진도 무너뜨리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모든 이론을 무너뜨리며(고후10:3~4)

우리에게 병기가 있다고 했습니다. 그 병기는 세상적인 기준에 따른 육신에 속하지 않았다고 했어요. 그 병기는 견고한 진을 파하는 능력이라고 말씀합니다. 능력이란 곧 강한 힘이라고 본다면 이 병기는 무엇이겠습니까?

 

한 절 더 나아가겠습니다. 이 병기의 능력을 봅니다. 5절 말씀입니다.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다 무너뜨리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하게 하니(고후10:5)

이 병기는 바로 모든 생각을 사로잡는 진리의 말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에게 복종한다 하였으니 이는 곧 십자가의 복음이요, 부활의 능력입니다. 십자가의 능력은 사랑과 용서의 능력이요, 부활의 능력은 죄를 도말하고 사망의 쏘는 것을 이기는 능력입니다. 이 십자가의 능력과 부활의 능력은 모든 이론을 능가하고 초월하고 대적하면 무너뜨립니다.

 

사람은 인간 내면에 감추어진 죄성, 아담과 하와로부터 시작된 그 사망에 이르게 하는 죄성, 그 인간의 악한 마음을 해결하지 못하고서는 결코 선을 이룰 수가 없습니다. 구원을 이룰 수가 없어요. 그 죄성을 도말하는 것은 바로 십자가의 복음이요, 예수를 구세주로 믿지 않는 마음에 어둠은 가시지를 않습니다.

 

인본주의에 의해 세워진 바벨탑인 쾌락주의와 물질만능주의와 다원주의는 그럴듯합니다. 그러나 세상에 혼돈과 어두움을 더 해 갈 뿐입니다. 세상을 보세요. 전쟁이 끝이 나지 않습니다. 이 땅에 인간의 능력으로 과학으로 유토피아를 건설한다고 했지만 제1차 제2차 세계대전이 터졌습니다. 과학이 핵폭탄을 만들고 하나님이 창조하신 이 지구를 불바다로 만들려고 합니다.

 

무엇이 문제입니까? 인간의 내면의 죄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해 그렇습니다. “먹을 것이 있으면 죄를 범하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공평히 나눠주면 행복이 올 것이다.” 그래서 공산주의가 행복을 가져다 주었습니까? 분배하는 자들이 세금을 걷고 보니 욕심이 생겼습니다. 고위 관리층은 더욱 더 부유하게 되고, 자신들은 농약을 뿌리지 않은 채소를 먹으며 자녀들은 외국으로 유학을 보냅니다.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에 능력이 있습니다. 부활에는 권세가 있습니다. 죄성을 도말하고 사망의 쏘는 것을 이기며 완전히 새로운 삶을 살게 합니다. 이것이 교회의 목표요 주께서 원하시는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 가는 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진리의 말씀을 잘 알아야 합니다. 쑤나미와 같은 세상 풍조에 휩쓸려 가지 말아야 합니다. 오늘도 이 복음, 진리의 말씀 위에 굳건히 서서 세상을 이겨나아가시는 저와 여러분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자유게시판 목록
구분 제목 작성자 등록일 추천 조회
이전글 [고린도후서 강해 18] 자랑하는 자는 주안에서 자랑하라 운영자 2023.10.04 1 120
다음글 [고린도후서 강해 16] 이웃교회가 어려울 때 도와라 운영자 2023.09.26 1 140

08610 서울 금천구 시흥대로75길 20 (시흥동, 산돌중앙교회) 산돌중앙교회 TEL : 02-803-1135 지도보기

Copyright © 산돌중앙교회. All Rights reserved. MADE BY ONMAM.COM

  • Today135
  • Total204,290
  • rss
  • facebook
  • facebook
  • 모바일웹지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