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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전서 강해 26] 은사: 하나님의 선물
운영자 2023-07-12 추천 1 댓글 0 조회 181
[성경본문] 고린도전서14:1-12 개역개정

1. 사랑을 추구하며 신령한 것들을 사모하되 특별히 예언을 하려고 하라

2. 방언을 말하는 자는 사람에게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께 하나니 이는 알아 듣는 자가 없고 영으로 비밀을 말함이라

3. 그러나 예언하는 자는 사람에게 말하여 덕을 세우며 권면하며 위로하는 것이요

4. 방언을 말하는 자는 자기의 덕을 세우고 예언하는 자는 교회의 덕을 세우나니

5. 나는 너희가 다 방언 말하기를 원하나 특별히 예언하기를 원하노라 만일 방언을 말하는 자가 통역하여 교회의 덕을 세우지 아니하면 예언하는 자만 못하니라

6. 그런즉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나아가서 방언으로 말하고 계시나 지식이나 예언이나 가르치는 것으로 말하지 아니하면 너희에게 무엇이 유익하리요

7. 혹 피리나 거문고와 같이 생명 없는 것이 소리를 낼 때에 그 음의 분별을 나타내지 아니하면 피리 부는 것인지 거문고 타는 것인지 어찌 알게 되리요

8. 만일 나팔이 분명하지 못한 소리를 내면 누가 전투를 준비하리요

9. 이와 같이 너희도 혀로써 알아 듣기 쉬운 말을 하지 아니하면 그 말하는 것을 어찌 알리요 이는 허공에다 말하는 것이라

10. 이같이 세상에 소리의 종류가 많으나 뜻 없는 소리는 없나니

11. 그러므로 내가 그 소리의 뜻을 알지 못하면 내가 말하는 자에게 외국인이 되고 말하는 자도 내게 외국인이 되리니

12. 그러므로 너희도 영적인 것을 사모하는 자인즉 교회의 덕을 세우기 위하여 그것이 풍성하기를 구하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은사: 하나님의 선물

 

주의 몸 된 교회를 든든히 세우시기 위하여 하나님께서는 성도들에게 선물을 주셨는데 이를 은사라고 일컫습니다. 그 은사의 모습은 열한 가지나 되는데, 지혜와 지식의 은사, 믿음과 신유와 능력의 은사, 섬김과 치리의 은사, 예언과 영 분별의 은사 그리고 방언과 방언 통역의 은사를 주셨습니다. 이 모든 은사는 말씀드린 것처럼 개인을 위한 것이 아니라, 교회 모두에게 유익을 끼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방언의 은사는 알아들을 수 없는 말로 하는 것이기에 그 뜻을 알아서 통역하는 통역의 은사자가 없으면 방언으로 말하는 것이 의미가 없었습니다. 2절 말씀이 그것입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방언을 말하는 자는 사람에게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께 하나니 이는 알아 듣는 자가 없고 영으로 비밀을 말함이라(고전14:2) 그러기에 방언의 뜻을 알도록 하기 위하여 통역하는 자가 필요했습니다. 13절에 보니 그러므로 방언을 말하는 자는 통역하기를 기도할지니 라고 권면합니다.

 

이 통역하는 자는 거짓 방언을 가려내고 또 통역하므로 그 말씀이 교인들에게 덕이되게 하였습니다. 그런데 교회 안에 통역할 사람이 없으면 교회에서 공개적으로 방언으로 말하지 말라고 했어요. 왜냐하면 방언은 하나님의 비밀을 말하는 것이므로 자기 자신과 하나님에게만 말하라고 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방언을 하지마라 그런게 아닙니다. 영적으로 유익합니다. 방언으로 기도하고 방언으로 말하므로 개인은 믿음의 증진을 가져올 수 있어요. 사도바울도 방언을 하였다고 했어요. 18절 말씀에 보면, 내가 너희 모든 사람보다 방언을 더 말하므로 하나님께 감사하노라(고전14:18)

 

그러나 주의할 점은 무엇이에요? 방언으로 기도하기 보다는, 방언으로 가르치려고 하는 사람들이, 고린도 교회 안에 있었던 것이었어요. 듣는이가 그 뜻을 모르는데 방언으로 가르친다는 것은 소귀에 경 읽기가 되고, 교회 안에는 이 일로 분란이 일었어요. , 여러분, 제가 말하는 것을 잘 들어 보세요. 하므로 뿌러브 예수 그리스도 묵띠다따 후누훈쳐! 하므로라기 크루수마 머리누버요, 가리누버요, 떠러 무리뜌 지테러 버우리 우트누버요.” 무슨 말인지 알 수가 없쟎아요? 뜻이 이러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구원자십니다.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 죽으시고, 무덤에 갇히셨으며, 그러나 죽음을 이기시고 다시 부활하셨습니다.” 그런 뜻이었어요. 제가 해석을 해서 그렇지, 만일 해석을 하는 자가 없으면, 아무리 제가 네팔말로 설교를 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 그런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결론은 이렇습니다. 내가 은밀한 중에 개인적으로 하나님께 방언으로 기도하는 것은 개인에게 덕이 됩니다. 4절 말씀이 그것을 가르쳐 줍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방언을 말하는 자는 자기의 덕을 세우고 예언하는 자는 교회의 덕을 세우나니(고전14:4) 방언은 자기의 덕을 세운다고 했어요. 그러나 가르칠 때는 방언으로 하지 말고 예언으로 하라고 말씀합니다. 19절 말씀을 또 함께 읽겠습니다. 그러나 교회에서 네가 남을 가르치기 위하여 깨달은 마음으로 다섯 마디 말을 하는 것이 일만 마디 방언으로 말하는 것보다 나으니라(고전14:19)

 

그러므로 교회의 덕과 질서를 위하여 방언보다는 예언의 은사를 사모하라고 권면합니다. 바로 1절 말씀이지요. 함께 읽겠습니다. 사랑을 추구하며 신령한 것들을 사모하되 특별히 예언을 하려고 하라(고전14:1) 왜 바울이 방언보다는 예언을 하라 고 말씀하시는가 하면, 예언은 명료하게, 이해하기 쉽게,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로 하나님의 뜻을 전할 수 있고, 또한 듣는 자가 알아들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여기에서 말하는 예언의 은사에 대해 우리가 먼저 이해할 것이 있습니다.

구약 시대에는 예언자(豫言者)가 있었어요. 미리 말하는 자란 뜻이지요. 이들을 다른 말로 선지자(先知者)라고도 말합니다. 먼저 안 사람이라는 뜻이지요. 하나님의 뜻을 먼저 안 사람들, 그래서 미리 말하는 자들, 이들이 예언자요, 선지자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임의로 자신의 능력으로 미래의 일에 대해서 말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시는 영감으로 하나님께서 주시는 계시를 받아 백성들에게 전했습니다. 그러므로 또 다른 말로 이들을 가리켜 말하기를 대언자(代言者)라고 합니다. 대신하여 말하는 자입니다. 하나님을 대신하여 말하는 자입니다.

 

그러면 오늘날에도 이 하나님의 계시와 대언의 일이 일어나고 있을까요? 신약시대에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천국의 비밀을 말씀하시고, 또한 예수님의 제자들, 즉 사도들과 사도바울, 또한 예언자들인 바나바와 니게르라하는 시므온과 구레네 사람 루기오와 분봉 왕 헤롯의 젖동생 마나엔과 및 사울과 같은 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들을 통해 주신 하나님의 말씀 중에 꼭 필요한 말씀은 성경에 기록이 되었습니다. 장차 일어날 미래의 모든 일에 대해서 또한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뜻에 대해서 이미 다 기록이 되었어요. 주후 96년에 사도 요한이 밧모섬에 받은 요한계시록을 끝으로 다 기록되고 나서 더 이상의 하나님의 감동으로 이루어질 예언은 없습니다. 이미 구원을 이루기에 충분한 진리가 되었어요. 천국백성으로 살아가기에 충분한 말씀으로 기록되었어요.

그러므로 주의 할 것은 무엇입니까? 지금도 예언이 나타나고, 그 예언은 이루어지고 있다. 라고 말할 때, 그 예언이 성경에 새로이 기록될 만한 어떠한 새로운 것이라고 한다면 이는 문제가 있어요. 귀 기울이지 말아야 합니다.

 

어느 목사님은 미래의 일을 말하더라. 어느 권사님은 신령하셔서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지 미리 알더라. 이런 말이 들릴 때, 참으로 주의해야 할 것은 그 예언이 성경에 이미 기록된 내용을 풀어 말씀하시는 것이라면 맞아요. 틀림없어요. 그런데 성경에서 말하지 않는 그 어떤 새로운 것을 계시로 받아 말한다면, 예를 들어 제가 사업을 하려고 하는데요. 어디에서 어떤 직종을 하면 대박이 터질까요? 목사님께서 기도해주시고 답을 주세요.” 오죽 답답하면 그런 요청을 하겠습니까만은....., 그런데 그 부탁을 받은 소위 신령하다고 하는 목사님이 기도를 해 보더니 답하기를 동쪽으로 가면 귀인을 만날 것이요. 그의 말을 잘 듣고 따르면 일이 잘될 것입니다.” “? 동쪽?”

 

그렇다면 오늘 성경에서 말씀하고 있는 예언의 은사는 왜 필요했을까요? 그 시대는 아직 신약성경이 다 기록되기 전이었습니다. 신약성경이 대부분 주후 52년에서 96년까지, 44년간 쓰여졌습니다. 사도바울은 주후 64년에 천국으로 떠납니다. 그 시대에는 이 성경이 완성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영감과 교훈이 있었어요. 그것을 말로 전하고 또한 기록으로 남겼어요. 그것이 바로 신약성경이에요. 그리고 95년에 성경 기록은 끝났어요.

 

그러면 오늘날은 이 예언의 은사는 아예 없을까요? 오늘 본문에서 말씀에서는 예언의 은사를 사모하라라고 했는데 그러면 이 은사는 무엇을 말씀하는 것일까요? 예언의 은사가 있습니까? , 있습니다. 이 예언의 은사란 바로 이미 기록되어진 구약성경이든 신약성경이든 하나님의 감동으로 주어진 계시의 말씀을 잘 알아듣기 쉽도록 풀어서 전하고 가르치는 일을 말하는 것입니다.

 

베드로후서 119절로 21절에 말씀합니다. 또 우리에게는 더 확실한 예언이 있어 어두운 데를 비추는 등불과 같으니 날이 새어 샛별이 너희 마음에 떠오르기까지 너희가 이것을 주의하는 것이 옳으니라 먼저 알 것은 성경의 모든 예언은 사사로이 풀 것이 아니니

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받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임이라(벧후1:19~21) 길게 말씀하고 있지만 간결하게 표현하면 예언은 성령의 감동하심을 받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인데 그게 무엇인가 하면 성경에 계시된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설교가 그것이고 성경공부가 그것입니다. 이 일에 전문적인 목사와 신학자들이 하는 일이 바로 예언의 은사를 사용하는 것입니다. 물론 기도 많이 해야 하고 성령의 조명을 받아 말씀을 이해해야 합니다. 같은 성경을 보고서도 이상하게 깨닫고 풀어서 이단으로 나아가는 자들도 있으니 말입니다.

 

영등포에 있는 교회에는 신유은사를 강조하는데 이 이단의 교주는 그런 말을 하곤 했어요. 예수님은 승천하셔서 하나님의 우편에 앉아 계신다. 성경말씀이지요. 그런데 또 말합니다. 그러면 예수님의 좌편에는 누가 앉아 계신가? 예수님의 좌편? 이게 성경에 나옵니까? 안나옵니다. 그런데 그 자리에 누가 앉는가? 베드로인가? 요한인가? 아니다. 바로 자신이 앉는다는 것이에요. 미혹합니다. 혼돈스럽게 만들어요. 그럴 듯하게 위장을 해요.

 

또 어느 교파는 가르칩니다. 불교도 이슬람도 힌두교도 다 구원의 길이 있다. 맞어요? 틀려요? 틀려요. 성경에 분명히 말씀합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14:6)

예수님이 아니고서는 천국에 들어갈 수 없어요. 그런데 해석을 어떻게 하는가 하면 불교를 믿어도 힌두교를 믿어도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공로로 들어간다는 거에요. 그들이 예수를 알든 모르든, 믿든 안 믿든, 선하게 살면, 결국 예수님의 십자가의 공로가 임해서 천국으로 들어간다는 논리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모두를 위하여 돌아가셨기 때문이라는 것이에요. 어떻습니까? 혼돈스럽죠?

 

그러나 성경은 어떻게 설명합니까? 로마서 109절과 10절에 분명히 말씀합니다.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10:9~10)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시인하지 않으면, 그가 부활하셨다는 것을 믿지 아니하면, 그러므로 그가 구세주이심을 믿지 않으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갈 수 없어요. 그런데 엉뚱하게 해석을 하는 것이에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은 능력이 있습니다. 참 진리이기 때문에 죽은 영혼을 살리고 지친 영혼을 소생케 하는 능력이 있으며, 이 험난한 세상에서도 주눅들지 않고 이길 수 있는 힘을 줍니다. 그러나 말씀이 말씀으로 증거될 때에 역사가 나타납니다. 성령으로 우리 맘에 임할 때, 능력이 나타납니다. 죄로 물든 인생이 거듭나고, 옛 사람을 새 사람으로 변화시키는 능력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히브리서 412절에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4:12) 그러므로 드러나지 않은 것이 없다고 말씀합니다.

 

말씀은 수술하는 칼과도 같다는 것이에요. 배가 몹시 아파요. 어느 부분이 잘못되었는지 말씀의 칼로 수술 해 보니 썩은 부분이 드러납니다. 그러므로 그 부분을 도려냅니다. 그러므로 죽어가던 자가 살아납니다. 그것이 말씀의 능력인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새벽에도 주께서 주신 말씀은 이 강단을 통해 예언의 은사를 통해 전파되고 여러분에게 전해지고 있는 것이에요. 말씀을 아멘으로 받으시기 바랍니다. 믿음으로 가슴판에 새기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이 어두운 세상에서도 좌로나 우로나 치우지지 않고 진리에 굳건히 서시므로 모든 얽매임으로부터 자유함을 얻으시기 바랍니다.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아멘! 진리의 말씀을 통해 모든 문제들이 해결되고 하나님의 크신 복을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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