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돌새벽강단

  • 예배와 말씀 >
  • 산돌새벽강단
[고린도전서 강해 25] 사랑은 영원합니다
운영자 2023-07-11 추천 1 댓글 0 조회 170
[성경본문] 고린도전서13:8-13 개역개정

8. 사랑은 언제까지나 떨어지지 아니하되 예언도 폐하고 방언도 그치고 지식도 폐하리라

9. 우리는 부분적으로 알고 부분적으로 예언하니

10. 온전한 것이 올 때에는 부분적으로 하던 것이 폐하리라

11. 내가 어렸을 때에는 말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깨닫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생각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다가 장성한 사람이 되어서는 어린 아이의 일을 버렸노라

12. 우리가 지금은 거울로 보는 것 같이 희미하나 그 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요 지금은 내가 부분적으로 아나 그 때에는 주께서 나를 아신 것 같이 내가 온전히 알리라

13.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의 제일은 사랑이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사랑은 영원합니다

 

고린도전서 제13, 사랑의 장에서 사랑은 영원한 것이라고 정의를 내렸습니다. 우리가 상상해 볼 수 있어요. 장차 예수님께서 재림하시고 새 하늘 새 땅이 이루어질 그 날에는 많은 변화가 있을 것이에요. 그 중에는 현재 우리가 하고 있는 많은 수고들 중에 더 이상 필요하지 않을 것들이 있을 것입니다.

 

예를 들어 우리가 그처럼 애쓰고 공을 들이는 전도도 더 이상 필요 없고 선교도 더 이상 필요 없을 것이에요. 왜냐하면 하늘나라에는 이미 구원받는 자들만이 있게 되기 때문이지요. 가난한 자들이 없을 테니 구제도 필요 없고, 험난한 세상에서 믿음 지키기 위해 하는 우리의 간절한 기도도 더 이상 필요 없을 것입니다. 그러면 뭐가 남겠어요? 먼저는 예배, 하나님을 향한 예배는 계속 유지될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에서 말씀하고 있는 사랑은 영원히 남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랑은 바로 그 자체가 하나님의 속성이기 때문입니다. 성경 요한148절에 말씀합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함께 본문 8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사랑은 언제까지나 떨어지지 아니하되 예언도 폐하고 방언도 그치고 지식도 폐하리라(고전13:8)

 

그렇습니다. 예언도 필요 없고, 방언도 필요 없고, 지식도 필요 없는 날이 옵니다. 주님께서 재림하셔서 새 하늘 새 땅이 이루어지고 주님께서 다스리는 그 나라에서는 그렇게 될 것입니다.

 

오늘 이 사랑장은 먼저는 그 대상이 고린도 교회 안에 있는 성도들을 향하여 쓰여진 것입니다. 고린도 교회 성도들 중에 어떤 이들은 하나님께서 교회에, 교회를 위하여, 선물로 주신 은사들을 교회 전체를 위하여 사용하기 보다는 자기중심적으로 사용하였어요. 그래서 우쭐한 생각과 교만이 앞섰습니다. 교회가 하나가 되지 못했어요. 특별히 방언과 예언과 지식의 은사에 있어서 그랬습니다. 이 세 가지 모두가 다 혀의 권세, 즉 입술로 나타나는 은사들입니다.

 

예언은 하나님께서 주의 종들을 통하여 사람들에게 계시해 주신 것입니다. 구약 시대에서는 장차 오실 메시아에 관한 내용이 이 예언의 핵심을 이루었습니다. 또 신약 시대에서는 그리스도의 재림과 종말에 관한 계시가 핵심을 이루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장차 하나님 앞에 설 때는 예언은 더는 설 자리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예언이 완전히 성취된 하늘나라에서는 예언은 더 이상 필요치 않기 때문에 없어질 것입니다.

 

개인적인 방언은 성령의 은사의 하나로 사람들이 알아들을 수 없는 말로 하나님과 영적인 교제를 나누는 것입니다. 이 죄악된 세상과 우리 자신들의 죄악 때문에 하나님과 영적인 교제를 나누기 위해서는 방언이 필요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의 존전에 설 때는 더 이상 방언이 필요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알아들을 수 없는 방언으로 하나님과 얘기할 필요 없이 누구나 알아들 수 있는 공통된 언어로 하나님과 직접 대화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방언은 이 세상에서 필요한 일시적인 것으로 온전한 것이 올 때는 폐하여질 것입니다.

 

또한 하늘나라에서는 더 이상 지식의 은사도 우리에게 필요하지 않습니다. 왜 그렇겠어요? 12절의 있는 말씀대로입니다. 우리가 지금은 거울로 보는 것같이 희미하나 그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요, 지금은 우리가 부분적으로 아나 그때에는 주께서 우리의 아신 것같이 우리도 온전히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12). 그러므로 지식의 은사도 이 세상에서 필요한 일시적인 것이요, 부분적인 것이기 때문에 온전한 것이 올 때는 폐하여질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지식의 은사란 상황적으로 볼 때, 수사학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가지고 있는 지식을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능력을 말하는 것이에요. 그 배경은 그리스 도시문명의 토론문화에서 온 것입니다. 화려한 언변으로, 말과 논리로 사람들의 생각을 휘어 잡았어요. 철학자들로 불리운 그들은 세상의 인기를 얻었습니다. 그러나 정작 그들은 교회 안에서 믿는자들로서 우선적으로 갖추어야 할 사랑의 실천이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말은 무성한데, 천상유수처럼 말은 잘 하는데, 정작 있어야 할 십자가의 도, 그리고 하나님의 능력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은사의 바탕에 사랑이 없으니, 모두를 위한 유익함이 없었던 것이었어요.

 

그러므로 사도바울은 고린도전서 419절과 20절에서 그들을 향하여 이렇게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주께서 허락하시면 내가 너희에게 속히 나아가서 교만한 자들의 말이 아니라 오직 그 능력을 알아보겠으니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아니하고 오직 능력에 있음이라(고전4:19~20)

 

같은 맥락에서 고린도전서 24절과 5절에 말씀했습니다. 내 말과 내 전도함이 설득력 있는 지혜의 말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 나타나심과 능력으로 하여 너희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아니하고 다만 하나님의 능력에 있게 하려 하였노라(고전2:4~5)

 

예수 그리스도께서 보여주신 십자가의 도, 십자가의 능력, 그 사랑과 용서의 능력과 사망의 쏘는 것을 이겨낸 부활과 승리의 능력은 이 전쟁터와 같은 세상, 사랑없어 냉냉한 세상에서 얼마나 얼마나 성도들에게 필요한 것입니까?

 

저는 매일 새벽 기도합니다. “주여, 내가 천마디 말을 할 지라도, 정말 사모하는 것은 하나님의 능력이오니, 말씀을 전할 때에는 생명이 살아나고, 기도할 때에는 능력이 나타나고, 전도할 때에는 영혼이 돌아오고, 양육을 할 때는 성숙이 나타나고, 돌볼 때에는 지친 영혼들이 소생케 하옵소서!”

 

이 기도 제목이 또한 여러분의 기도제목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리고 응답으로 이루어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런데 이 모든 능력의 바탕에는 뭐가 있어야 합니까? 그렇습니다. 사랑입니다. 앞에서 말씀드린 대로 사도바울이 고린도전서 420절에 강조했습니다.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아니하고 오직 능력에 있음이라(고전4:20) 바로 이어 21절에 이렇게 말씀합니다. 너희가 무엇을 원하느냐 내가 매를 가지고 너희에게 나아가랴 사랑과 온유한 마음으로 나아가랴(고전4:21) 그가 그처럼 강조한 능력은 바로 사랑의 능력인 십자가의 사랑과 용서의 능력인 것이에요. 그렇습니다. 한 영혼을 존귀히 여기는 사랑, 지친 영혼을 불쌍히 여기는 사랑, 어찌하든지 고침받고 회복되기를 원하는 사랑이 있어야, 전능하신 하나님의 크고 놀라우신 능력이 위로부터 부어지심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이 땅에 살아가는 동안에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가기 위하여 성품적으로 꼭 있어야 할 세가지가 있다고 오늘 본문 13절에 말씀합니다. 첫째는 믿음이요, 둘째는 소망이요, 셋째는 사랑입니다. 그런데 그중에 제일은 사랑이라고 말씀합니다.

 

믿음과 소망과 사랑은 그리스도인들에 주어진 3대 보물로 일컬어져 왔습니다. 이것들은 하나님의 백성으로 택함받은 성도의 삶을 온전케 하는 필수적인 저마다의 빛을 발휘합니다.

 

믿음은 예수 그리스도께 나아가 그 구원의 약속에 동참할 수 있게 하는 힘이며, 소망은 하나님 나라를 향해 흔들림 없이 나아가게 하는 힘이며, 사랑은 영원히 추구해야 할 그리스도의 성품입니다. 사랑이 없다함은 이는 사상누각모래위에 세운 집처럼 바람이 불고 창수가 나면 다 부서질 것입니다. 그러기에 사랑은 모든 행사와 은사의 기초가 되는 것입니다.

 

믿음을 통해 성도들은 하나님께서 보내신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고 영접하여 의로움을 인정받게 됩니다. 그러기에 믿음은 구원의 보증수표와 같은 것이에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고 했습니다. 또한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가 없다 고 했습니다. 나아가서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 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믿음이 있는 사람은 어떠한 어려움 속에서도 굳건히 행진해 갑니다.

오늘 이 새벽에 특별히 여러 기도 제목을 가지고 나아오신 성도 여러분, 어떤 육신의 질고로 고통당하고 있습니까? 인간관계에 문제가 있습니까? 자녀들의 문제가 있습니까? 사업장에서 일터에서 가정에서 관계적으로 재정적으로 고난을 당합니까?

 

믿음으로 마음에 밝은 그림을 그리십시오. 나의 고통과 아픔과 질병을 위해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를 바라보십시오. 십자가에서 뻗어 나오는 강한 빛줄기가 어둠속에 있는 문제들을 완전히 도말하는 믿음을 가지십시오. 놀라운 역사가 나타납니다. 깜짝 놀랄만한 일들이 일어납니다.

소망은 무엇입니까? 소망은 캄캄한 밤바다에 유리하는 배에게 빛을 비춰주는 등대불과 같습니다. 등대의 불빛을 따라 나아가는 배는 결코 항로를 이탈하지 않습니다. 소망은 성도의 삶을 비춰 흔들림 없이 하나님께로 나아가게 하는 등대와도 같습니다. 소망은 하나님의 신실한 약속을 바라보며 전진해 나아가는 힘입니다. 그런데 이 힘을 성령께서 주십니다. 기도하는 자에게 부어주십니다. 약속의 말씀을 부여잡는 자에게 부어주십니다. 때로는 물같이 때로는 불같이 때로는 기름같이 우리의 영혼에 능력으로 부어주십니다. 그래서 결국 안전한 포구에 도착하게 하십니다. 이 소망의 능력이 이 새벽 기도하시는 여러분에게 임하기를 축원합니다.

 

사랑은 영원합니다. 사랑은 하나님의 속성이라고 했습니다.

믿음과 소망은 이 땅에 살아가는 동안에 없어서는 아니 될 거룩한 힘입니다. 그러나 삶의 여정에 필요한 방편일 뿐 궁극적인 목적은 아닙니다. 모든 사람이 주님의 얼굴을 직접 대하여 보며, 모든 부분적인 것들이 완전케 되는 그때에는 믿음과 소망은 사라지게 됩니다.

 

믿음은 영화구원으로 연결되고 소망은 실제 현실로 이루어지게 되니 더 이상 필요가 없게 됩니다. 그 날이 옵니다. 그런데 사랑은 영원합니다. 영원한 나라가 이루어진 후에도 남아 새하늘, 새땅에서도 하나님의 통치의 근원입니다.

 

이 사랑이 세상에 나타났으니 바로 예수님의 사랑입니다. 그의 삶 전체가 사랑으로 일관되었습니다. 그리고 십자가에서 사랑을 완성하셨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제자들로써 여전히 부족하고 약해도 조금씩, 조금씩 늘려가며 이 사랑을 실천하며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그 인생이 복된 인생입니다. 그 모습이 이 땅에서 천국을 살아가는 예행연습입니다.

 

이 은혜 이 축복이 여러분의 삶에 충만하여서 오늘도 승리하시는 귀하고 복된 날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자유게시판 목록
구분 제목 작성자 등록일 추천 조회
이전글 [고린도전서 강해 26] 은사: 하나님의 선물 운영자 2023.07.12 1 180
다음글 [고린도전서 강해 24] 사랑이란? 운영자 2023.07.07 1 159

08610 서울 금천구 시흥대로75길 20 (시흥동, 산돌중앙교회) 산돌중앙교회 TEL : 02-803-1135 지도보기

Copyright © 산돌중앙교회. All Rights reserved. MADE BY ONMAM.COM

  • Today25
  • Total201,697
  • rss
  • facebook
  • facebook
  • 모바일웹지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