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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전서 강해 23] 많은 지체들이 한 몸을 이루듯
운영자 2023-07-06 추천 1 댓글 0 조회 152
[성경본문] 고린도전서12:20-27 개역개정

20. 이제 지체는 많으나 몸은 하나라

21. 눈이 손더러 내가 너를 쓸 데가 없다 하거나 또한 머리가 발더러 내가 너를 쓸 데가 없다 하지 못하리라

22. 그뿐 아니라 더 약하게 보이는 몸의 지체가 도리어 요긴하고

23. 우리가 몸의 덜 귀히 여기는 그것들을 더욱 귀한 것들로 입혀 주며 우리의 아름답지 못한 지체는 더욱 아름다운 것을 얻느니라 그런즉

24. 우리의 아름다운 지체는 그럴 필요가 없느니라 오직 하나님이 몸을 고르게 하여 부족한 지체에게 귀중함을 더하사

25. 몸 가운데서 분쟁이 없고 오직 여러 지체가 서로 같이 돌보게 하셨느니라

26. 만일 한 지체가 고통을 받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고통을 받고 한 지체가 영광을 얻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즐거워하느니라

27. 너희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지체의 각 부분이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많은 지체들이 한 몸을 이루듯

 

바울이 전도함으로 시작된 고린도 교회 안에는 고린도 교회가 세워진 지역의 세상 풍속과 문화의 모습이 여과 없이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그 세상 풍속은 교회가 서 가는데 방해가 되었어요.

 

교회는 주님의 몸으로 함께라는 공동체가 강조되었으나, 고린도 도시의 문명은 라고 하는 개인을 강조했습니다. 소위 말하는 개인주의가 정신적으로 문화적으로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었습니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가 머리가 되시고 그분만이 구심점이 되어야 하는데, 고린도 도시의 이 개인주의 사상은 인간의 능력을 강조하다 보니, 교회 안에서도 사람을 중심으로 하는 파벌이 생겼습니다. 그 모습이 아볼로파요, 베드로파요, 바울파로 나뉘었습니다.

 

부자와 가난한 자들 사이에도 괴리감이 커서 하나가 되지 못했으며, 은사를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의 사이에서도 마찬가지였어요. 은사를 받지 못한자는 받은 자를 시기하였으며, 또한 은사를 가진 자는 교만하여 교회 안에서 성도가 하나가 되지 못했습니다. 사랑이 식고, 배려와 용납이 없는 냉냉한 모습이 되었어요. 영적으로 빼빼 말라가는 것이었어요.

 

사도 바울은 안타까운 마음으로 교우들이 예수 안에서 공동체 의식을 가지고 하나가 되기를 간절히 원했습니다. 그러므로 다시금 교회가 무엇인가? 교회는 어떠한 모습이어야 하는지에 대하여 다시금 가르칩니다. 잘 이해하도록 사람의 몸을 예로 들고 있습니다. 한 몸은 여러 지체로 이루어져 있지 않느냐? 어느 것 하나 소중하지 않은 것이 없지 않느냐? 그러니 서로가 지체인 줄로 알아, 나만 잘 난 것처럼 착각하여 교만하지 말고 서로를 귀히 여기라 라고 권면합니다. 눈은 눈의 역할로, 귀는 귀의 역할로, 각 지체의 중요한 기능들을 언급하면서...... 그러한 마음으로 형제 자매를 귀하게 여길 때에 비로소 교회가 하나가 될 수 있음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저는 간절히 바랍니다. 성도들은 행여라도 이러한 교만의 모습이 없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런데 우리 교회는 그런 모습이 없어서 정말 감사합니다. 저는 지금까지 우리 교회에서 나는 다른 사람에게 없는 이런 은사가 있다라고 하며 교만해 하는 성도를 본 적이 없어요. 모두가 다 협조적이고, 겸손한 모습에, 우리 교회 성도님들은 참 선하고 착하다라는 그래서 참 감사합니다.

 

지난 화요일 저녁이었어요. 운동을 하러 문화센터로 갔는데 주방 앞에 잔뜩 기물들과 부엌 용품들이 쌓여 있는 거에요. 그리고 교우들 여러분이 함께 땀을 흘리며 정리를 하는 것이었어요. “뭐지?” 알고보니 주방 바깥 쪽에 있는 부엌 창고 안에 있는 냉장고가 고장이 나서 작동이 멈췄으니 상하지 않도록 그 안에 있는 음식물들을 끄집어 내고, 또 창고안에 있는 여러 물건들을 다 꺼낸 것이었는데요. 왜냐하면 냉장고는 30년이 넘었다고 해요. 고장날 만도 하지요. 그리고 창고 바닥에는 물이 찜어 오르고 장마철이라 마르지도 않아 이 참에 냉장고도 갈고, 바닥도 새롭게 공사하지 않으면 안되겠다 생각하여 모든 물건을 꺼내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럼, 그렇지 해야지! 할 거면 빠를수록 좋지!”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관리위원회 장로님에게 연락하고 또 재정장로님에게 연락하여 조처하시는게 좋겠다 말씀드렸습니다.

 

그리고 어제였어요. 보니 일터에서 장영봉 장로님이 교회에 오시고, 관리 집사님과 함께 우리 교역자들이 트럭에서 세멘트 포대를 나르고 있어요. 가보니 창고에서는 이미 바닥 콘크리트 공사가 시작되었어요. 일터에서 온 김학재 안수집사님이 바닥 공사를 이미 시작하고 있었어요. 바닥 공사가 먼저 되고 마른 다음에야 냉장고도 들어가고, 음식물도 넣고, 정리를 마칠 수 있기 때문이라고 그렇게 서두르는 것이었어요.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여럿이 함께 힘을 합쳐, 그렇게 빠르게 일들이 착 착 진행되는 모습을 보면서, 제 마음에 감동이 임했어요. 그래! 교회는 이런 곳이지~!” “서로 도우며 해야 할 일 하는 영적인 공동체지!”

 

성도 여러분, 오늘 본문을 통해 주시는 멧세지가 같습니다. 교회는 믿음의 공동체이기에 가진 은사와 재능으로 함께 문제를 해결하고, 사랑의 공동체이기에 서로서로 도와 연약한 부분을 강하게 세워가는 한 몸임을 강조하고 있어요. 20, 21, 22절 말씀을 함께 읽습니다. 이제 지체는 많으나 몸은 하나라 눈이 손더러 내가 너를 쓸 데가 없다 하거나 또한 머리가 발더러 내가 너를 쓸 데가 없다 하지 못하리라 그뿐 아니라 더 약하게 보이는 몸의 지체가 도리어 요긴하고(고전12:21~22)

 

세상 사람의 생각으로는 좀 이해가 안 되는 말씀 같애요. 더 약하게 보이는 몸의 지체가 도리어 요긴하고...” 왜 약한 자가 있어 도리어 요긴합니까? 능력 중심의 세상에서는 약한 자에게, 너는 저리 가라!” 그럴거에요. 그러나 교회는 그런 곳이 아니에요. 우리 교회 안에 교우들의 모습을 보세요. 연약한 자들이 보입니다. 육신적으로 정서적으로 사고로 인해서, 그런가 하면 태어날 때부터...., 본인의 잘못 때문이 아니 쟎아요?

 

그와 같은 모습은 교회에 유익이 없는 것처럼 보여요. 봉사를 할 수 있나, 가르치는 일을 할 수 있나! 할 수 있는 일이 없어 보여요. 그런데 우리가 그들을 귀히 여기고 도와요. 그러면 그들의 기쁨과 행복 어린 모습을 우리가 보면서, 우리 마음에는 왠지 모를 기쁨이 샘솟아요. 왜 그럴까요? 이 마음은 바로 주님의 마음이기 때문입니다.

 

오늘도 저와 교역자들이 세종시에서 오랫동안 병석에 계신 정순섭권사님 뵈러 갑니다만, 참 오랜 세월 교회를 위해서 수고 많이 하셨지요. 가서 위로하고 기도하면 심방을 받는 권사님이 힘도 나고 위로를 받겠지요. 그런데 교회에 발걸음이 어려우신 분들 찾아뵐 때마다 제가 느낍니다. 제가 더 감사하고 힘이 나요. 위로하고 격려하는 일로 제 잠자던 영성이 깨어나기 때문이에요. 주님을 닮은 사랑이 영성, 긍휼의 영성이 깨어납니다. 그게 감사하고 감사해서 먼길이라도 심방하는 거에요.

 

원리는 똑같습니다. 연약한 자들을 세우고 사랑하는 것은 서로에게 유익함을 줍니다. “~! 세상은 이토록 냉냉하여 자기밖에 모르는데, 교회는 누구나 다 환영하고 또 사랑받는 곳이구나~!” 이 모습이 자연스러운 교회라면, 이는 이 땅에 작은 천국의 모형을 세워가는 것입니다.

 

성경 말씀에는 이를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23절입니다. 우리가 몸의 덜 귀히 여기는 그것들을 더욱 귀한 것들로 입혀 주며 우리의 아름답지 못한 지체는 더욱 아름다운 것을 얻느니라 그런즉(고전12:23) 26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만일 한 지체가 고통을 받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고통을 받고 한 지체가 영광을 얻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즐거워하느니라(고전12:26)

 

저는 왼손 약지가 언제부터인가 통증이 간헐적으로 시작되었어요. 벌써 한 7년 정도 된 것 같아요. 병원에 가보니 퇴행성 관절염이라고 해요. 제 생각에는 아마도 중학교 때부터 열심히 친 기타로 인해서...., 기타를 칠 때 왼손 약지 손가락을 제일 힘을 주어 사용해야 하는데...., 누구나 다 그런 것은 아니죠. 저는 남달리 손가락 관절마디가 약했던 것이겠죠. 여하튼 재미있는 것은 무의식 중에 제 오른손이 그 약지 손가락을 주물러 주고 있는 거에요. 통증이 올 때마다 자동으로 움직여요. 그러면 통증이 사라지곤 합니다. 나의 의지와 상관이 없이 자동이에요.^^!

 

성도 여러분, 교회는 그러한 곳이어야 합니다. 서로의 연약함을 도움이 자연스러운 곳이어야 해요. 성도들이 주님을 닮아갈 때 교회는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고린도 교회는 서로 사랑하지 못했습니다. 가지고 있는 은사들을 사랑으로 행하지 않았어요.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은사로 인해 오히려 교만해 졌어요. 그 중에 대표적인 은사는 방언의 은사였습니다.

 

28절은 하나님께서 교회에 선물로 주신 은사들 중에 교회에 그 유익함의 정도에 따라 순서적으로 보여주고 있어요. 제일 중요한 은사는 사도적 은사로 하나님의 뜻을 전하는 은사입니다. 둘째 이 모습은 선지자들을 통해서도 전해졌어요. 성경이 쓰여지지 전이었으니까요. 그래서 사도와 선지자의 은사로 성경이 기록되었습니다.

 

그런데 사도행전 131~3절에 이렇게 말씀합니다. 안디옥 교회에 선지자들과 교사들이 있으니 곧 바나바와 니게르라하는 시므온과 구레네 사람 루기오와 분봉 왕 헤롯의 젖동생 마나엔과 및 사울이라 사도와 선지자의 역할이 마쳐지자 이제는 교사들이 등장합니다.

 

이 교사는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자들로써 신약시대에는 아볼로가 그 대표적인 모습이지요. 이 은사는 오늘날까지 유지되고 있습니다. 바로 신학자들이나 목회자들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진리를 가르치는 일은 너무 중요하지요. 직분이자 직분자가 행하는 은사입니다.

 

그 다음으로 큰 믿음의 소유자인 능력의 은사가 나오고, 또 다음으로 병고치는 신유의 은사가 나옵니다. 그리고 맨 나중에 방언의 은사와 방언 통역의 은사가 소개됩니다. 방언은 은사군 중에 맨 마지막에 위치하고 있어요. 그런데 고린도 교회 교인들은 이 방언의 은사를 가지고 교만했던 것입니다. 나는 남들과 다르다!” 교만했어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러기에 마지막 절 31절은 권면합니다. 방언은사에 머무르지 말고 더욱 큰 은사를 사모하라!” 너희는 더욱 큰 은사를 사모하라

 

이 새벽에도 기도하실 때 은사를 사모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크신 능력을 사모하시기 바랍니다. 그 능력이 우리의 믿음 성장에 도움이 되고, 교회를 든든히 세워가는데 귀하게 사용되기를 바랍니다. 그 사모함의 동기가 교회 사랑, 성도 사랑이시를 바랍니다. 교회 안에 연약한 지체들을 세우는 사랑의 발로에서 은사를 받으시고 활용하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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