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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전서 강해 08] 복음의 능력으로 가르치는 사역자
운영자 2023-04-27 추천 1 댓글 0 조회 213
[성경본문] 고린도전서4:14-21 개역개정

14. 내가 너희를 부끄럽게 하려고 이것을 쓰는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내 사랑하는 자녀 같이 권하려 하는 것이라

15. 그리스도 안에서 일만 스승이 있으되 아버지는 많지 아니하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내가 복음으로써 너희를 낳았음이라

16.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권하노니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가 되라

17. 이로 말미암아 내가 주 안에서 내 사랑하고 신실한 아들 디모데를 너희에게 보내었으니 그가 너희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나의 행사 곧 내가 각처 각 교회에서 가르치는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

18. 어떤 이들은 내가 너희에게 나아가지 아니할 것 같이 스스로 교만하여졌으나

19. 주께서 허락하시면 내가 너희에게 속히 나아가서 교만한 자들의 말이 아니라 오직 그 능력을 알아보겠으니

20.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아니하고 오직 능력에 있음이라

21. 너희가 무엇을 원하느냐 내가 매를 가지고 너희에게 나아가랴 사랑과 온유한 마음으로 나아가랴

제공: 대한성서공회

복음의 능력으로 가르치는 사역자

 

오늘 4장 본문을 마지막으로 사도바울은 고린도 교회 안에 문제 중 하나였던 사람을 중심으로 만들어진 당파에 관한 조언을 마칩니다. 그들을 전도하고 또한 그들과 함께 고린도교회를 설립한 바울은 고린도교회 성도들을 향한 애틋한 애정이 있었습니다. 교회 안에 문제가 바울에게는 큰 아픔이었어요. 그 모습은 마치 자녀를 사랑하는 아버지의 심정이었습니다.

 

그 마음이 14절과 15절에 표현됩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내가 너희를 부끄럽게 하려고 이것을 쓰는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내 사랑하는 자녀 같이 권하려 하는 것이라 그리스도 안에서 일만 스승이 있으되 아버지는 많지 아니하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내가 복음으로써 너희를 낳았음이라(고전4:14~15)

바울은 이제까지 고린도교회 성도들을 책망하며 꾸짖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을 부끄럽게 하려고 한 것이 아니라고 말씀합니다. 자녀같이 여기기 때문이었어요. 그릇되지 아니하고 올바르게 성숙하도록 아버지와 같은 심정으로 훈계했던 것입니다.

 

아시다시피 바울은 결혼하지 않았으므로 자녀가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이 말이 더욱 마음에 와닿습니다. 복음을 전하고 말씀과 돌봄으로 양육한 교인들이 바울에게는 자녀와 같은 존재였습니다. 본문에 등장하는 디모데를 향해서도 신실한 아들로 표현합니다.

 

목회자와 성도의 관계가 어떤 관계인지를 바울의 교우 사랑하는 모습을 통해 볼 수 있습니다.

고전 39절에 보니 성도들은 하나님의 밭이요, 바울은 그 밭을 가꾸는 농부로 표현합니다. 310절에 보니 성도들은 건축을 위한 터가 되고 바울은 그 터를 닦는 건축자의 모습으로 표현합니다. 이와 같은 표현들은 바울은, 즉 목회자는 성도가 영적으로 잘 성장하도록 양육하고 돌보는 아버지, 어머니와 같은 모습이어야 함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저는 이 모습을 선교현장에서 여러 번 경험하였습니다. 전도하기가 너무 어렵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야 합니다. 어찌하든지 전도의 틈새를 노려야 하고, 기회를 만들어야 하고, 친해져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 관계를 만들어야 합니다. 관계를 만들기 위해서 식사의 자리에 초청을 해야 합니다. 그 노력이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그렇게 하므로 전도에 성공하고 교회의 성도로 만들고 보면, 그를 향한 애정이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제가 고국에 들어와서 보니 그 모습이 전도하는 우리 성도들의 모습을 통해 봅니다. 우리 교회 전도단원들 모습이지요. 한 영혼을 주님 앞으로 인도하는 것이 결코 쉽지 않습니다. 수도 없이 방문하고, 반찬을 해다 주고, 관계를 맺고, 그 많은 사랑의 수고를 하고 전도대상자들이 마침내 교회에 출석하는 날, 그들을 반기는 성도의 그 환하고 감동에 젖는 그 얼굴을 보면서, 제 마음도 감동으로 젖습니다. 그들이 신앙 안에서 잘 성장해 가는 모습을 보는 것은 그야말로 자녀가 자라나는 모습을 바라보는 부모의 심정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어제 대심방을 하면서 32구역 구역원과 함께 예배드릴 때 많이 감사했습니다. 구역원이 구역장인 임미해 권사님을 제외한 모두가 새 가족이어서 그랬습니다. 그런데 더 특별한 것은 그들 모두가 외국 국적 또는 외국 출신이에요. 어제 예배에 참석한 세명의 구역원은 모두가 중국 출신이요, 한 명은 필리핀 출신 제인 집사님입니다. 시흥4동에는 중국인들이 많이 살고 있어요.

 

이 구역원들의 전도가 재미있습니다. 저는 안령근 형제의 부인인 제인 자매를 전도했습니다. 원래 필리핀 카톨릭교회 성도였죠. 그리고 우리 교회 백상민 형제의 부인이며, 우리 교회에 등록한 중국 출신 룻 집사님이 같은 시흥4동에 살고 있는 김미옥 성도를 전도했어요. 그리고 김미옥 성도는 김실 성도를 전도했어요. 그리고 김실 성도는 오명월 성도를 전도했습니다. 룻 집사님도 그렇고 김미옥 성도님도 그렇고 얼마나 믿음이 좋은 지 몰라요. 그렇게 전도를 열심히 합니다. 주일학교 학생들도 몇 명을 전도해 데리고 왔어요.

 

선교가 먼 곳에만 있는 것이 아니에요. 한국의 경제적 위상이 높아지면서 이제 우리 주변으로 외국인이 들어옵니다. 앞으로 우리 교회가 그들을 향하여 복음을 전합니다. 그들의 자녀들은 자동으로 따라 옵니다. 그러므로 다국적 영적 가족이 됩니다. 얼마나 감사한지 몰라요. 교회 설립 43주년을 맞이하는 우리교회가 새로운 국면의 선교와 전도시대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전도해봐야 영혼의 귀함을 압니다. 그리고 그 한 영혼에게 관심을 가지고 양육을 해봐야 정말 영적 자녀로 느껴집니다. 이 수고는 해 본 자만이 알아요. 오늘 본문의 사도바울의 절절한 사랑과 안타까움의 표현이 정말 가슴에 와 닿을 수 있는거에요.

 

바울은 복음을 듣고 교인이 되었으나 믿음이 제대로 성장하지 못하는 고린도 교인들에게 안타까운 심정으로 말합니다. 15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일만 스승이 있으되 아버지는 많지 아니하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내가 복음으로써 너희를 낳았음이라(고전4:15)

 

일만 스승은 누구입니까? 철학자들이에요. 당시 헬레니즘의 도시문화에서 화려한 수사학으로, 감동을 주는 웅변으로, 빈틈없는 논리로 자신의 사상을 펼치고, 사람들의 이목과 관심을 끄는, 인기가 많은 사람들, 그러나 그들은 한 영혼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이 없었어요.

 

20세기의 많은 영향력을 미친 헨리 나우웬 이라는 영성신학자는 In the Name of Jesus라는 작은 소책자에서 그런 말을 했습니다.

대중의 인기를 먹고 사는 것은 성경적이 아니다 왜냐하면 인기는 얻는 것이지 주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주시기 위해 오셨다. 사역자들은 돌보는 자들이어야만 한다.”

이 조언은 오늘날 인기를 받기를 원하나, 한 영혼에 대한 관심과 삶이 곤고한 영혼을 돌보는데에는 인색한 교회의 지도자들을 향한 질책이었습니다.

 

사도바울은 그와 같은 일만 스승 중에 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정말 한 영혼을 사랑하는 전도자요 목회자였습니다. 그러므로 그는 안타까운 마음으로 권면합니다. 나를 본 받는 자가 되라 16절 말씀을 읽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권하노니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가 되라(고전4:16)

 

여기에서 바울 자신을 본 받는 자가 되라 이 말씀은 그의 지식과 인격과 성품과 경험을 닮으라는 말씀이 아니에요. 그 모든 것들을 바울은 그야말로 하찮은 배설물로 여겼다고 했습니다. 그러면 무엇을 본받으라는 말씀인가요?

 

그것은 그가 섬기는 예수, 그리스도, 예수 그리스도 안에 속하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울이 세상 스승과 다른 점이었어요. 바울은 철저하게 그리스도인으로 그 정체성, 그 소속감을 가지고 살았습니다. 자신은 죽고 예수로 살기를 원했어요. 그래서 그는 갈라디아서 220절에서 고백합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그러므로 바울은 말씀하고 있는 거에요.

내가 예수에게 속하고 그를 전심으로 섬기니, 너희도 사람에 속하지 말고 아볼로에게 게바에게 바울에게 속하지 말고, 예수 그리스도에 속하고, 그 분만을 전심으로 섬기라

그래야 교회가 분쟁을 멈추고 하나가 될 수 있음을 알고 마지막으로 간절히 권면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울은 당시에 철학자들같이 스승으로서 그들을 훈육하는 것이 아니었어요. 복음으로 낳은 자녀들, 본인은 영적인 아버지로써 애정으로 훈계하고 있는 것입니다. 성령의 능력으로, 십자가의 능력으로 살지 못하고 배운바 들은바 지식으로 교만 해 하던 고린도 교인들을 향하여 바울은 아버지와 같이 온유함과 책망을 함께 보이며 권면합니다.

 

21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너희가 무엇을 원하느냐 내가 매를 가지고 너희에게 나아가랴 사랑과 온유한 마음으로 나아가랴(고전4:21)

 

오늘 바울은 말씀합니다. 내가 너희들을 방문하여 엄하게 징계하고 책망하기 전에, 디모데를 보내니 잘 보고 듣고, 너희들의 잘못을 고쳐라말씀합니다.

 

사도바울이 그 고린도교회에 가게 되면 어떤 일을 하겠다고 했습니까? 가르치는 자들의 능력을 알아보겠다고 했습니다. 말이 아니라 능력이라고 했어요. 19, 20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주께서 허락하시면 내가 너희에게 속히 나아가서 교만한 자들의 말이 아니라 오직 그 능력을 알아보겠으니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아니하고 오직 능력에 있음이라(고전4:19~20)

 

성도 여러분! 십자가의 복음은 사람들의 마음과 생활에 변화를 가져옵니다. 그것이 복음의 능력이에요. 단순히 지식을 축적하는 것이 아닙니다. 바울은 본문에서 고린도 교회의 교사들이 복음의 능력으로 교우들의 삶의 변화를 이루어내는지 아니면, 그저 지식의 전달자인지를 알아보겠다고 하는 것입니다.

 

사역자는 복음의 능력으로 살아야 하고, 그 영향력을 가지고 말씀으로 가르칠 때, 심령의 변화가 일어납니다. 거기에서 또한 권위가 세워지게 됩니다. 직분 자체가 사역자의 권위를 세우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그러므로 사역자의 권위란 능력에서 나타나며, 그 능력이란 성령의 열매로 나타나는 인격적인 감화력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그 감화력은 철저하게 하나님을 의지하는 겸손과 주어진 사명에 대한 철저한 순종과 실천에서 비롯되는 것입니다.

 

이 복음의 능력으로 맡은 바 직분을 잘 감당하는 교역자가 있는 교회, 또한 교역자와 함께 주안에서 성장하며, 충성으로 주를 섬기는 성도가 있는 교회, 우리 산돌중앙교회요, 한국교회가 될 수 있기를, 저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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