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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전서 강해 07] 복음에 빚진 자
운영자 2023-04-26 추천 1 댓글 0 조회 187
[성경본문] 고린도전서4:7-13 개역개정

7. 누가 너를 남달리 구별하였느냐 네게 있는 것 중에 받지 아니한 것이 무엇이냐 네가 받았은즉 어찌하여 받지 아니한 것 같이 자랑하느냐

8. 너희가 이미 배 부르며 이미 풍성하며 우리 없이도 왕이 되었도다 우리가 너희와 함께 왕 노릇 하기 위하여 참으로 너희가 왕이 되기를 원하노라

9. 내가 생각하건대 하나님이 사도인 우리를 죽이기로 작정된 자 같이 끄트머리에 두셨으매 우리는 세계 곧 천사와 사람에게 구경거리가 되었노라

10. 우리는 그리스도 때문에 어리석으나 너희는 그리스도 안에서 지혜롭고 우리는 약하나 너희는 강하고 너희는 존귀하나 우리는 비천하여

11. 바로 이 시각까지 우리가 주리고 목마르며 헐벗고 매맞으며 정처가 없고

12. 또 수고하여 친히 손으로 일을 하며 모욕을 당한즉 축복하고 박해를 받은즉 참고

13. 비방을 받은즉 권면하니 우리가 지금까지 세상의 더러운 것과 만물의 찌꺼기 같이 되었도다

제공: 대한성서공회

복음에 빚진 자

 

고린도 교회를 향한 사도바울의 사랑의 권면과 훈계는 계속됩니다. 어제도 나누었습니다만 당시 고린도 교회 안에는, 하나님의 능력보다 사람과 개인의 능력을 중요시여기는 헬레니즘의 풍조가 강하게 영향을 미치고 있었어요. 그러므로 사역자들 중에 누가 더 우수하냐? 아볼로냐 바울이냐? 베드로냐? 그리고 교인들은 이 특정한 사역자들의 추종자가 되어 분파가 형성되었어요. 그 결과 교회 안에서 성도들은 하나가 되지 못하고 시기와 반목으로 치닫게 되었습니다.

 

이 모습을 바라보는 사도바울은 참으로 안타까운 마음으로, 하나가 될 것을 권면합니다. 교회 안에서 모든 가르침은 세상과 다르다. 세상은 인간의 지식과 생각과 철학과 사상을 강조하지만 교회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의 복음에 그 중심을 두어야 한다는 내용으로 권면하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강조할 때, 교우들은 하나가 될 수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러므로 교회 안에 성도들은 참 주의해야 하는데, 화려한 언변으로 또는 논리와 사상으로 가르치는 사역자들 그 개인에게 초점을 맞추지 말고, 그들이 전하는 바, 예수 그리스도, 믿음의 주요 우리를 온전케 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라고 권면합니다. 사람을 높이고, 사람을 자랑하지 말라고 전장인 321절에 단언하고 있습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사람을 자랑하지 말라 만물이 다 너희 것임이라(고전3:21) 23절도 보시겠습니다. 너희는 그리스도의 것이요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것이니라(고전3:23) 높임을 받으실 분은 오직 한분 창조주시며 심판주이신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교회 안에서 사람을 내세우고, 사람의 능력과 인기를 내세우면, 예수 그리스도가 가려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극대화되면, 그리스도교가 아니라 이단과 같은 사람교가 되기 때문입니다. 문선명, 권신찬, 안상홍, 이재록, 이만희, 정명석....., 기독교가 아니라 사람교가 되고 마는 것이에요.

 

사도바울은 7절에서 고린도 교회 교우들에게 질문합니다. 너희가 어떻게 복음을 받았느냐? 복음을 전한 자들이 있었을 것 아니냐? 그 복음이 다다르기까지 그 전도자의 노고와 애씀과 사랑과 헌신이 있었지 않았겠느냐?” 7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누가 너를 남달리 구별하였느냐 네게 있는 것 중에 받지 아니한 것이 무엇이냐 네가 받았은즉 어찌하여 받지 아니한 것 같이 자랑하느냐(고전4:7) 무슨 뜻이겠어요?

 

너희가 거져 복음을 듣고 구원을 받게 되었는데, 감사한 마음이 있느냐? 복음을 받았다고 돈을 내었느냐? 없지 않느냐? 그런데 왜 마치 너희들이 스스로 복음을 깨닫고 알게 된 것처럼 스스로를 자랑하느냐?” 그 말씀이에요.

 

8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너희가 이미 배 부르며 이미 풍성하며 우리 없이도 왕이 되었도다 우리가 너희와 함께 왕 노릇 하기 위하여 참으로 너희가 왕이 되기를 원하노라(고전4:8) 조금 난해하지요?

 

이게 무슨 말씀인가 하면 앞에 구절과 연관 지어서 하시는 말씀인데요. 너희가 이미 복음을 받았다. 우리가 전하는 복음을 통해, 생명을 살리고 영혼을 소생시키는 그 귀한 복음을 받았는데, 거기에 너희의 수고는 없었다. 가만히 앉아서, 마치 왕이 어느 사절단의 선물을 받는 것처럼 그렇게 받았다. 그리고 그것이 자랑이 되었다. 그런데 그 선물을 전해 준, 나와 사역자들은 안중에도 없었다. 나도 그렇게 왕과 같은 모습으로 그저 복음을 누리며 편하게 지냈으면 좋겠다.” 그런 말씀이에요. 정말 부럽다는 것이 아니라, 그러면 되겠느냐? 도리가 아니지 않느냐?” 간접적으로 저 교만한 고린도 교인들을 꾸짖는 것이에요.

 

그러면서 사도바울은 복음을 전하는 사역자의 노고와 헌신을 언급합니다. “복음이 어떻게 전해지는가? 아픔과 수고 없이 복음이 전해질 수 있겠는가?” 10절부터 13절까지 그 전도자의 수고를 보겠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때문에 어리석으나 너희는 그리스도 안에서 지혜롭고 우리는 약하나 너희는 강하고 너희는 존귀하나 우리는 비천하여 바로 이 시각까지 우리가 주리고 목마르며 헐벗고 매맞으며 정처가 없고 또 수고하여 친히 손으로 일을 하며 모욕을 당한즉 축복하고 박해를 받은즉 참고 비방을 받은즉 권면하니 우리가 지금까지 세상의 더러운 것과 만물의 찌꺼기 같이 되었도다(고전4:10~13)

 

성도 여러분, 복음을 전하는 사역자와 선교사의 길을 가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길이에요. 예수님이 그러셨어요. 결혼도 하지 않으셨으니 가정도 없으셨어요. 3년 동안 거처가 없었습니다. 형제들로부터 외면을 당하셨고, 같은 동족인 유대인들로부터, 또한 십자가에 앞에 섰을 때, 심지어는 그렇게 사랑으로 키웠던 제자들도 떠나가 버렸습니다. 그러나 그 헌신(獻身)으로 말미암아 구원이 이루어졌습니다.

 

사도바울은 어떠했습니까? 35년간 사역을 하면서, 가정도 꾸리지 못했고, 2만 킬로를 발로 걷고 배로 항해했습니다. 앞 절에서 고백한 대로, 복음을 전하기 위해, 주리고 목마르며 헐벗고 매맞으며, 정처가 없었고, 또 수고하여 친히 손으로 일을 하며, 욕을 먹어도 축복을 해주었고 핍박을 당하여도 참았고, 비방을 당하여도 권면을 했고, 그는 세상의 더러운 것과 만물의 찌끼와 같이 되었던 것입니다.

 

이 나라 우리 민족에게도 복음이 당도하기 위하여 전하는 자들의 여정은 얼마나 힘들었겠습니까? 배로 항해를 해서, 한 달이 넘도록 태평양을 건너는 일이 쉬었겠습니까? 이 땅에 와서 복음을 전하는 중에, 구한말의 의료시설이 너무 열악해서, 사랑하는 어린 아기를 먼저 보낸 선교사 부부도 있습니다. 남편을 먼저 보낸 아내 선교사도 있습니다. 양화진 선교사 묘지에 가보면요, 참으로 마음이 숙연해 집니다. 그들의 헌신, 그들의 노고에 감사드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저는 선교지에 있을 때, 어쩌다 고국을 방문하게 되면 으레 양화진 선교사 묘지를 찾아갔습니다. 때로는 혼자서 가고, 때로는 가족이 함께 들어오면 아내와 어린 자녀들도 데리고 방문하곤 했어요. 경제적으로 환경적으로 열악한 네팔 선교지에서 지치고 상한 몸과 마음으로 들어왔어도, 거기에 가면 힘을 얻었어요. 그 비석에 쓰여진 묘비명만 읽어도, ~! 내가 지금 겪고 있는 수고는 아무것도 아니구나! 더 힘을 내야지! 내게 주어진 달려가야 할 사명의 길을 달려 가야지! 그 땅에 복음이 전해질 수만 있다면, 그리스도의 푸르른 계절이 올 수만 있다면..! 더 무엇을 바라겠는가!”

 

참배를 마치고 나올 때 그들을 기리기 위해 드려진 시()를 읽었습니다. 그리고 가슴에 새겼습니다. 그 내용은 이러합니다.

양화진, 영혼의 고향 하늘나라로 가는 길목, 백년전에 이 땅을 예수께서 지적하신 땅끝으로 믿고, 아비의 집을 떠난 젊은이들이, 그 생애를 기꺼이 바치고 주안에서 잠든 곳,

가난과 질병과 무지와 억압 속에서 신음하던 이 땅의 사람들을 그리스도 예수께로 인도하고 우리들의 가난 우리들의 질병을 함께 지고 가다가 한 알의 밀알로 땅에 떨어져 죽은 이들의 그 육신을 묻은 언덕,

강물은 세월의 매듭을 풀어 끝없이 흐르는데 이 땅의 역사와 개화의 진통은 뭇 형제의 목숨을 이 언덕에 심었으니, 그 사랑의 텃밭에서 열매 맺은 믿음은 이 땅을 하나님의 나라로 만든 사랑의 승리리라. 선한 싸움 다 싸우고 이 땅에 주어야 할 것 아낌없이 주어

썩지 아니할 것과 영광스러운 것과 강하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살기 위하여

그 몸을 이곳에 심었으니 이곳은 하나님이 만드신 변화산의 정수리............,”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모두는 복음에 빚진 자입니다. 갚아야 되요. 누리는 것만으로는 안됩니다. 그래서 선교하는 교회, 선교하는 성도님들이신 거에요.

 

작은 일로부터 가능합니다. 먼저는 기도지요. 오늘 새벽도 이렇게 나오셔서 기도하시는데 우리가 보낸 선교사들과 사역을 위해서 기도할 수 있습니다. 네팔과 이집트와 캄보디아와 인도네시아의 복음화를 위해서 그 외에 우간다와 몽골과 북한선교를 위하여 필리핀과 키르키즈스탄과 미국에 선교를 위해서 기도로 지원할 수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주변에 예수 믿지 아니하는 자를 전도하는 것은 너무도 귀하고 귀한 것입니다. 내가 직접 전도자가 되고 사역자가 되는 것이에요. 쉽지 않죠? 때로는 문전박대를 당하기도 하고, 속는 것 같기도 하고, 이용당하는 것 같기도 하고, 무시당하기도 합니다. 그래도 그렇게 전도하니까 교회에 나오지 않습니까? 영혼이 구원을 받아요.

 

주일 아침이 되면 올까 안올까? 전도한 전도단원들이 교회 앞에서 서성이세요. 그 모습을 보는 제 마음에도 절로 기도가 됩니다. 그 전도자의 마음을 누가 알겠어요? 전도해보지 않고는 정말 몰라요. 정말 눈물로 씨를 뿌리고 기쁨으로 단을 거두는 일이지요. 새로운 영혼이 주님 앞에 나오는 일에는 언제고 전도자의 수고가 있습니다. 그럼요, 많은 수고가 있어요.

 

어제는 대심방 예배를 드리면서 감사한 일이 있었어요. 처음으로 대심방에 참여한 여성도가 있었기 때문이었어요. 코로나 전에 남편이 먼저 우리 교회에 나왔어요. 제가 무지개 아파트 살 때 뵐 때마다 전도했어요. 또 그전에도 무지개 아파트에 사시는 우리 교회 권사님들이 늘 전도했지요. 남편 분이 아내의 권유를 받아 길 건너편 교회에 가끔 따라 나섰는데, 아직 때가 안되었는지, 교회 예배당 안에만 앉아 있으면 중압감을 느끼고, 또 졸음이 쏟아지고....., 그래서 교회 나가는 것을 멈췄어요. 아내 분이 많이 안타까웠죠. 그런데 남편이 우리 교회에 전도되어 나오시면서는, 한 번도 조는 것을 본 적이 없었어요. 아주 초롱초롱한 눈으로 말씀을 잘 들으세요. 그래서 부인도 놀라고, 반갑고, 생각하기를, 하나님께서 이 교회에서 신앙생활하라고 하시나보다!” 그래서 남편을 따라서 부인도 함께 우리 교회에 나오게 되었습니다. 한 달에 두 번은 1부 예배에 참석하시고, 그리고 두 번 일을 쉬는 날에는 부부가 함께 3부 예배에 나오세요. 코로나가 끝나면서 이제 본격적으로 예배에 참석하시는데요. 이제 신앙생활이 무엇인지 알아가시는 것 같아서 참 기쁘고 감사합니다. 귀한 분들이세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복음이 온 천하에 증거되기를 원하시고, 이 일에 부름 받은 자들은 영광스러운 전도자의 반열에 서는 것입니다. 그러나 언제고 드려야 할 헌신이 있고 수고가 있어요. 그런데 주님께서는 열매를 거두는 기쁨도 주십니다. 전도하고 열매를 거두는 기쁨만큼 큰 기쁨도 세상에 없어요. 이 축복이 이 감사가 여러분에게도 함께 하시기를 저는 간절히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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