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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전서 강해 05] 교회 안에 두 종류의 성도
운영자 2023-04-18 추천 1 댓글 0 조회 207
[성경본문] 고린도전서3:1-9 개역개정

1. 형제들아 내가 신령한 자들을 대함과 같이 너희에게 말할 수 없어서 육신에 속한 자 곧 그리스도 안에서 어린 아이들을 대함과 같이 하노라

2. 내가 너희를 젖으로 먹이고 밥으로 아니하였노니 이는 너희가 감당하지 못하였음이거니와 지금도 못하리라

3. 너희는 아직도 육신에 속한 자로다 너희 가운데 시기와 분쟁이 있으니 어찌 육신에 속하여 사람을 따라 행함이 아니리요

4. 어떤 이는 말하되 나는 바울에게라 하고 다른 이는 나는 아볼로에게라 하니 너희가 육의 사람이 아니리요

5. 그런즉 아볼로는 무엇이며 바울은 무엇이냐 그들은 주께서 각각 주신 대로 너희로 하여금 믿게 한 사역자들이니라

6.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께서 자라나게 하셨나니

7. 그런즉 심는 이나 물 주는 이는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자라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뿐이니라

8. 심는 이와 물 주는 이는 한가지이나 각각 자기가 일한 대로 자기의 상을 받으리라

9. 우리는 하나님의 동역자들이요 너희는 하나님의 밭이요 하나님의 집이니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교회 안에 두 종류의 성도

 

교회 안에는 두 종류의 성도들이 있습니다. 하나는 영적인 성도들이요, 또 하나는 육적인 성도들입니다.

 

영적인 성도는 말씀과 믿음과 행동에 있어서 성숙한 성도입니다. 그래서 십자가의 도를 잘 압니다. 십자가의 도를 알기에 교회의 기초에 대해서 잘 알아요. 교회의 기초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입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리심으로 인류의 죄를 다 속량하시고 장사 지낸바 되셨다가 삼일 만에 다시 부활하셨습니다. 이 사실에 근거하여 교회가 설립되었음을 알고 있어요.

 

육적인 성도는 말씀과 믿음과 행동에 있어서 미성숙한 성도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교회의 기초가 예수 그리스도인 줄을 모르고 사람이라고 여깁니다. 그래서 그리스도를 따르기 보다는 사람을 따릅니다. 그래서 결국 게바파, 바울파, 아볼로파처럼 사람을 중심으로 신앙이 형성됩니다.

 

이것이 바울이 지적한 고린도 교회의 문제였습니다. 성도 간에 시기와 분쟁입니다. 3절 말씀이 이 육에 속한 자의 속성을 보여줍니다.

너희는 아직도 육신에 속한 자로다 너희 가운데 시기와 분쟁이 있으니 어찌 육신에 속하여 사람을 따라 행함이 아니리요(고전3:3)

 

어떤 성도님들은 이렇게 생각합니다. 여의도 순복음 교회는 조용기 목사님이 설립하셨어.” “명성교회는 김삼환 목사님이 설립하셨어.” 이 말이 맞습니까? 맞기도 하고 틀리기도 합니다. 맞다 라고 한다면 이는 오늘 본문에서 6절 말씀에 해당합니다. 나는 심었고...”

사도바울이 말씀합니다. 나는 고린도 교회의 설립자다.” 틀렸다고 한다면 이는, 심기는 심었으나 심은 터가 있었느냐?” “있었다면 무엇이냐?” 하는 질문에 대한 답에서 나옵니다. 바울이 씨앗을 심었다면 어디에 심었느냐? 하는 것이에요.

 

교회 설립에 있어서 제일로 중요한 것은 터입니다. 기초에요. 터가 없으면 심지도 못하고 심지 못하면, 물을 줄 이유도 없습니다. 이 터가 무엇이겠습니까? 11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이 닦아둔 것 외에 능히 다른 터를 닦아둘 자가 없으니 이 터는 곧 예수 그리스도니라(고전3:11)

 

이 터는 곧 예수 그리스도십니다. 왜 예수님이 터가 되시는가? 바로 십자가의 사건이요, 부활의 사건 때문입니다. 그 사실의 바탕 위에, 그 사실의 터 위에, 비로소 교회는 세워지기 때문입니다.

 

이 터가 없었다면 바울이 무엇을 심을 수 있었겠습니까? 또한 아볼로는, 심은 것이 없는데 어떻게 물을 줄 수 있겠습니까? 없어요. 그러므로 우리가 확실히 알아야 합니다. 교회의 설립자는 영원히 주 예수 그리스도가 되십니다. 나아가서 교회의 주인 또한 예수 그리스도십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사람을 높이지 마십시오. 사람을 자랑삼지 마십시오. 교회 안에서 사람을 높이게 되면, 그리스도가 낮아지게 되고, 그러므로 그리스도가 낮아지게 되고 사람이 높아지게 되면, 그 결과는 비참합니다. 파당이 생기고 파벌이 생깁니다. 321절 말씀을 읽겠습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사람을 자랑하지 말라 만물이 다 너희 것임이라(고전3:21)

 

이 시대에 한국 교회에 진행되고 있는 일 가운데 믿는 자들의 마음을 불편하게 하고, 또한 세상에 알려지게 되니, 그야말로 전도의 문이 막히고 있습니다. 아시는 분은 다 아세요. 한 큰 교회에서 아주 큰 교회지요. 은퇴하신 목사님의 후계자로 그 아들을 세웠습니다. 교단에서는 교회법으로 세습이 금지되어 있어요. 그런데도 당회에서 밀어 붙였습니다.

은퇴 목사님은 말했어요. 저는 개인적으로 제 아들이 후임이 되는 것 원치 않습니다”. “그런데 나는 이제 당회원이 아닙니다. 제게는 권한이 없습니다 하고 한 걸음 뒤로 빼는 모습을 연출했습니다. 당회에서는 그렇게 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설립 목사님의 후광이 너무 커서 다른 분이 후임 목사님으로 오면 상충 될 수 있다고 하는 이유였습니다. 그러므로 그 초대 목사님의 뜻을 계속 이어가기 위해서는 아들을 세워야 한다고 주장했어요.

 

반대하는 교인들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강행했습니다. 교단과 교회 간에 이 문제가 아직도 다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추진하려는 교인들과 반대하는 교인들 사이에 분쟁이 끝나지 않고 있어요. 서로의 주장이 옳다고 여기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가 나뉘게 되었어요. 이 모습은 이 시대의 고린도 교회의 모습 아닙니까? 그 모습 보면서 또 사회는 교회를 손가락질하고 교회의 이미지는 많이 실추되었습니다. 제가 제일 안타까워하는 것은 전도의 문이 막히는 것이에요.

 

누구의 말대로 세습이 뭐가 나쁘냐? 구약시대 제사장들도 세습으로 세워지지 아니했느냐?” 틀린말이 아니지요. 그런데 복음을 전함에 있어서, 한 영혼의 실족을 원치 아니했던 사도바울은 이렇게 천명했습니다.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유익한 것은 아니요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덕을 세우는 것은 아니니 누구든지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말고 남의 유익을 구하라(고전10:23~24) 여기에서 남의 유익을 구하라고 했는데 그 남은 누구겠습니까? 아직 예수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요, 또는 믿음이 연약한 초신자들입니다. 그들이 예수 믿는 일이라면 나는 나의 유익을 구하지 않고, 그들이 시험드는 일이라면, 내가 하지 않겠다고 하는 것입니다. 괜히 사도바울이요, 괜히 주님이 쓰시는 종이요, 괜히 오고 오는 세대에 존경받는 전도자였겠습니까?

 

그러므로 성경은 말씀합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사람을 자랑하지 말라 그러면서 만물이 다 너희 것임이라말씀하고 있습니다. 바울도 아볼로도 다 성도의 것이라 그 말인데요. 왜 이런 말씀을 하시는가? 바로 다음절에 그 답을 봅니다. 322, 23절입니다.

바울이나 아볼로나 게바나 세계나 생명이나 사망이나 지금 것이나 장래 것이 다 너희의 것이요 너희는 그리스도의 것이요 너희는 그리스도의 것이요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것이니라(고전3:22~23)

이 말씀은 교회의 교역자들은 성도를 위해 존재한다는 표현입니다. 그리고 모든 성도는 다 예수 그리스도를 머리로 섬기는 지체인 것입니다.

 

오늘의 말씀처럼 바울도 아볼로도 게바도 다 성도를 섬깁니다. 말씀으로 섬기고 기도로 성도를 섬깁니다. 어찌하든지 믿음 위에 굳게 서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그렇게 섬깁니다.

은사에 따라 바울은 전도자의 모습으로 섬기고, 아볼로는 양육자의 모습으로 섬기고, 그래서 모든 성도들이 하나님을 잘 믿고 잘 성장할 수 있게 하는 것입니다. 5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그런즉 아볼로는 무엇이며 바울은 무엇이뇨 저희는 주께서 각각 주신대로 너희로 하여금 믿게 한 사역자들이니라(고전3:5)

 

여기에서 사역자 라는 말은 원어로는 디아코노스, 영어로는 Servants로 쓰여졌습니다. 섬기는 자들이란 란 뜻이에요.

 

이 시대에 유명한 신학자인 톰 라이트 라고 하는 분은 이 사역자의 역할에 대해서 식탁에서 수종드는 자로 설명합니다. 바울과 아볼로는 음식을 나르는 사람에 불과하지만, 주님은 주방에서 음식을 선택하고 요리하는 책임을 지고 계신다는 것이에요. 여러분이 앉은 식탁에 어떤 웨이터가 음식을 가져오는지를 두고 호들갑 떨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누가 음식을 가져오는지, 그 웨이터에 관심을 둘 것이 아니라, 정말 알아야 할 것은, 주방에서 그 음식을 만드시는 분이 누구냐 하는 것이에요. 누구십니까? , 바로 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주님께서 주방에서 저와 여러분을 위한 요리를 책임지고 계신 것입니다.

우리의 영을 살리시고, 먹이시고, 키우시고,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시기 위해서 주님께서 말씀을 주십니다. 이미 계시 되어진 66권의 하나님의 말씀이 다 그것이에요. 그리고 저 같은 사역자들은 섬기는 자가 되어, 그 말씀을 delivery, 즉 전달자로 전하는 것 뿐이에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초점을 나를 위하여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고, 무덤에서 사흘 만에 부활하신 예수님, 믿음의 주요, 우리를 온전케 하시는 예수님만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그럴때, 교회는 평안히 서 가는 것이에요. 시기와 분쟁과 파벌과 당파는 필요없는 것이에요. 왜 그렇겠습니까?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가 되시기 때문입니다.

 

제가 이렇게 전하니까, 그러면, 우리가, 성도가 왕이네~! 이렇게 생각하실 수 있겠습니다. 아닙니다. 예수님이 왕이십니다. 그러면 사역자들 보다는 우리가 더 귀하네~!! 섬김을 받아야 하니까! 예 맞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런데 왜 그렇게 귀합니까?

 

답은 이러합니다. 여전히 부족하지만, 여전히 육에 속한 자이지만, 그러나 양질의 음식으로 먹으면 잘 성장하여, 육에 속한 자가 아니고, 영에 속한 자가 될 것이기 때문에, 그러면 예수님의 제자가 되고, 하나님의 사명자로 설 수 있기 때문에........, 성도는 여전히 귀한 존재요, 섬김을 받는 존재인 것입니다.

 

여러분, 한 가정을 생각해 보면 쉽게 이해가 되요. 오늘 성경본문, 9절에 보니 이 가정이 하나님의 집으로 표현되었어요. 우리는 하나님의 동역자들이요, 너희는 하나님의 밭이요 하나님의 집이니라(고전3:9)

하나님의 집이란 교회를 말하지요.

 

한 가정에 자라나는 어린이를 상상해 보시면 금방 이해가 됩니다. 자녀들을 키우고자 애쓰는 어머니의 마음이 주님의 마음이요, 그 일을 돕는 자들이 사역자들이요, 주의 종들입니다. 9절에 보니 우리는 하나님의 동역자들이요라고 했어요.

 

어릴 적에는 그저 식탁에만 앉아 있으면 되요. 먹을 것을 다 가져다 주니까요. 그러나 장성해지면 형이 되고 누나가 되어 그 음식을 나르며 어머니를 돕는 자들이 됩니다. 형이 되고 누이가 되는 분들이 바로 사역자들이요, 주님의 동역자인 것입니다.

 

이제 말씀을 맺습니다.

여러분은 이미 많은 말씀으로 들었고, 배웠고, 그 말씀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영적으로 육에 속한 자들이 아니라 영에 속한 자들입니다.

오늘도 삶의 터전에서, 가정과 일터에서, 주님의 동역자로 서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아버지의 눈길이 가는 영혼에게 여러분의 눈길이 가고,

아버지의 눈물이 있는 곳에 여러분의 눈물이 있고,

아버지가 다가가기를 원하는 자들이 있으면 기꺼이 다가가시고 선한 손길을 내밀어 저들을 돕는 영에 속한 자! 하나님의 귀한 동역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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