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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욥기 강해 37] 하나님 사랑의 두 가지
운영자 2023-03-08 추천 0 댓글 0 조회 258
[성경본문] 욥기36:1-16 개역개정

1. 엘리후가 말을 이어 이르되

2. 나를 잠깐 용납하라 내가 그대에게 보이리니 이는 내가 하나님을 위하여 아직도 할 말이 있음이라

3. 내가 먼 데서 지식을 얻고 나를 지으신 이에게 의를 돌려보내리라

4. 진실로 내 말은 거짓이 아니라 온전한 지식을 가진 이가 그대와 함께 있느니라

5. 하나님은 능하시나 아무도 멸시하지 아니하시며 그의 지혜가 무궁하사

6. 악인을 살려두지 아니하시며 고난 받는 자에게 공의를 베푸시며

7. 그의 눈을 의인에게서 떼지 아니하시고 그를 왕들과 함께 왕좌에 앉히사 영원토록 존귀하게 하시며

8. 혹시 그들이 족쇄에 매이거나 환난의 줄에 얽혔으면

9. 그들의 소행과 악행과 자신들의 교만한 행위를 알게 하시고

10. 그들의 귀를 열어 교훈을 듣게 하시며 명하여 죄악에서 돌이키게 하시나니

11. 만일 그들이 순종하여 섬기면 형통한 날을 보내며 즐거운 해를 지낼 것이요

12. 만일 그들이 순종하지 아니하면 칼에 망하며 지식 없이 죽을 것이니라

13. 마음이 경건하지 아니한 자들은 분노를 쌓으며 하나님이 속박할지라도 도움을 구하지 아니하나니

14. 그들의 몸은 젊어서 죽으며 그들의 생명은 남창과 함께 있도다

15. 하나님은 곤고한 자를 그 곤고에서 구원하시며 학대 당할 즈음에 그의 귀를 여시나니

16. 그러므로 하나님이 그대를 환난에서 이끌어 내사 좁지 않고 넉넉한 곳으로 옮기려 하셨은즉 무릇 그대의 상에는 기름진 것이 놓이리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하나님 사랑의 두 가지

 

엘리후는 하나님의 대언자로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어떻게 다스리고 있는지를 오늘 36장을 통해서 욥과 그의 친구들에게 알려 줍니다. 그가 알고 있는 지혜는 그의 고백대로 하나님께서 주시는 영감으로 깨달아 알게 된 것이었어요. 함께 3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내가 먼 데서 지식을 얻고 나를 지으신 이에게 의를 돌려보내리라(36:3) 먼데서 지식을 얻었다고 했습니다. 여기에서 먼 데서는 곧 천상이요, 하나님이 계신 하늘나라입니다. 시편 기자는 표현하기를 하나님께서 멀리서도 나의 생각을 아시오며(139:2)라고 말했습니다. 그런가 하면 예레미야서에서 하나님은 자신을 먼 데에 있는 하나님(23:23)이라고 부르십니다. 그러므로 엘리후가 욥에게 전하는 지식은 위로부터 주신 지식이니 욥이 알고 있었던 하나님에 관한 제한적인 이해의 폭을 넓혀주게 될 것입니다. 물론 저와 여러분도 귀담아 들어야 할 귀중한 가르침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가 만드신 세상을 어떻게 다스리시는가? 그분의 성품대로 다스리십니다. 그러면 그분의 성품은 무엇이겠습니까? 사랑과 거룩입니다. 하나님을 가장 잘 나타내는 성품, 첫째 사랑입니다. 성경이 그렇게 말씀합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라(요일4:16) 또한 성경은 말씀합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3:16) 독생자이신 예수님은 또한 십자가의 용서를 통해 성자의 사랑을 보여주셨습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받은 저와 여러분도 그 모습을 닮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또 말씀하기를 사랑안에 거하는 자는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도 그 안에 거하시느니라(요일4:16) 믿으시면 아멘하십니다.

 

둘째는 거룩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참고:11:44-45) 거룩은 히브리말로 카도쉬라고 하는데 이는 곧 경건이요, 경건은 죄 없음이요, 不義(불의)의 반대인 正義(정의)입니다.

 

이 정의를 공의로 이루시기 위해 하나님은 의인에게 상주시고, 악인을 벌하십니다. 5절과 6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하나님은 능하시나 아무도 멸시하지 아니하시며 그의 지혜가 무궁하사 악인을 살려두지 아니하시며 고난 받는 자에게 공의를 베푸시며(36:5~6) 악인을 살려두지 아니하신다고 하셨습니다. 13절에는 뭐라고 하십니까? 마음이 경건하지 아니한 자들은 분노를 쌓으며 하나님이 속박할지라도 도움을 구하지 아니하나니(36:13) 이어지는 말씀이 그 결과로 인해 그들의 몸은 젊어서 죽으며 그들의 생명은 남창과 함께 있도다(36:14) 경건하지 못한 자의 일면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남창과 함께 있으므로 젊은 사람이 병들어 죽는다는 것입니다. 그때나 신약시대나 이 시대에도 문젯거리인 성을 역리로 사용하니, 남자가 남자와 더불어 동침하는 죄악입니다. 아시는대로 후천성면역결핍증(AIDS)에 걸려 죽습니다.

 

그러면 악인은 그럴진대 의인은 어떻다는 것입니까? 하나님께서는 그를 경외하고 순종하며 그의 뜻대로 살려고 하는 자에게는 어떻게 하신다는 것입니까? 바로 욥과 같은 경우입니다. 믿음의 사람을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지침이 있습니다. 그것은 사랑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것을 잘 알아야 해요. 여호와 하나님 아버지께서 갖고 계신 사랑은 두 종류가 있습니다. 첫째는 은혜의 사랑이요, 둘째는 공의의 사랑입니다. 은혜의 사랑이란 값없이 베푸는 사랑이요, 공의의 사랑이란 를 세우는 사랑입니다. 그 모습을 오늘 36장에서 이 사랑으로 의인을 다스리시는 하나님이심을 엘리후의 설명을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믿음의 사람을 다스리시는 지침, 그것은 은혜의 사랑과 공의의 사랑입니다.

 

먼저 은혜의 사랑의 경우를 보시겠습니다. 15절과 16절을 보시겠습니다. 하나님은 곤고한 자를 그 곤고에서 구원하시며 학대 당할 즈음에 그의 귀를 여시나니 그러므로 하나님이 그대를 환난에서 이끌어 내사 좁지 않고 넉넉한 곳으로 옮기려 하셨은즉 무릇 그대의 상에는 기름진 것이 놓이리라(36:15~16) 축복의 말씀입니다.

 

누구를 이렇게 하시겠다는 것입니까? 욥을 그렇게 하시겠다는 것이에요. 엘리후는 욥이 이 환난에서 곧 벗어나게 될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요. 욥을 향하신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모습은 마찬가지로 이 시대에도 거친 광야와 같은 인생길을 어찌하든지 믿음으로 여호와께 순종함으로 걷는 저와 여러분에게도 마찬가지에요. 결코 그냥 내버려 두지 안으시겠다는 것입니다. 아멘입니다.

 

그러면 둘째로, 믿는 자에게 행하시는 공의의 사랑은 어떤 사랑일까요?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에게 회초리를 드시는 것입니다. 세상 이생의 자랑과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에 한눈 팔고, 마음을 빼앗기고, 곁길로 가게 되면, 하나님께서 가만히 안 계세요. 내 사랑하는 자녀가 그런다면 여러분은 그냥 내버려 두시겠습니까? 그럴 수 없어요.

 

오늘 성경본문 7절부터 10절까지 하나님의 이 공의의 사랑을 함께 보시겠습니다. 그의 눈을 의인에게서 떼지 아니하시고 그를 왕들과 함께 왕좌에 앉히사 영원토록 존귀하게 하시며

혹시 그들이 족쇄에 매이거나 환난의 줄에 얽혔으면 그들의 소행과 악행과 자신들의 교만한 행위를 알게 하시고 그들의 귀를 열어 교훈을 듣게 하시며 명하여 죄악에서 돌이키게 하시나니(36:7~10) 너무 분명하지 않습니까?

 

혹시 그들이,”라고 했어요. 이들이 누구입니까? 의인이, 믿음의 사람들이, 족쇄에 매이거나 환난의 줄에 얽혔으면 성도 여러분, 믿음의 사람에게도 이런 환난이 와요. 이러한 고난과 고통이 닥쳐올 때, 하나님이 믿음의 사람은 그대로 내버려 두시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알게 하시고 깨닫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무엇을? 그들의 소행과 악행과 자신들의 교만한 행위를 알게 하시고,” 그래서 어떻게 하신다는 것입니까? 귀를 열어 교훈을 듣게 하시며, 명하여 죄악에서 돌이키게 하시나니 아멘, 아멘, 아멘이에요.

 

우리가 잘 알아야 합니다. 믿음의 사람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은 은혜의 사랑만 있은 것이 아니에요. 공의의 사랑이 있음을 잘 알아야 합니다. 믿지 아니하는 사람들은 말해요.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라고 하는데, 왜 예수 믿는 사람이 어려움을 겪느냐고, 사업이 간당간당하고, 젊은 사람이 암병에 걸리고, 예상치 못한 사고가 나고...., 그 시련과 풍파를 왜 겪느냐고, 나 같으면 그런 하나님 안믿는다고!

 

여러분, 사랑이 무조건적인 사랑이면 이미 그것은 사랑이 아니에요. 진정한 사랑은 살리는 사랑입니다. 죽이는 사랑은 이미 사랑이 아니라 방종일 수 있어요. 공의가 없는 사랑은 죽이는 사랑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장이라고 하는 고린도전서 13장에 분명히 말씀하고 있지 않아요? (사랑은)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며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고전13:5,6) 여러분, 하나님의 사랑은 공의의 사랑이니 사랑하면 사랑할수록 정의가 세워지고, 진리가 드러납니다. 아무리 사랑이 지나쳐도 절대 방종으로 치닫지 않습니다.

 

쉽게 생각하면 우리가 어머니가 자녀를 사랑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사랑이 공의를 세우는 사랑이 아닐 경우, 다시 말씀드리면 무조건적인 사랑, 무분별한 사랑일 경우, 아이는 그 사랑으로 인해 오히려 정의롭지 못하고, 악한 존재가 되든지 아니면 나약한 존재가 되고 맙니다. 이는 잘못된 사랑이요, 엄밀히 말하면 사랑이 아니에요. 하나님께서 인간의 성품에 넣어 주신 사랑이 아닙니다. 그저 본능적인 애정일 뿐입니다. 생육하고 번성하라고 하나님께서 동물의 세계에도 넣어 준 내리사랑, 본능적으로 제 새끼를 지키고 보호하라고 넣어 준 기초적인 성품입니다. 그 모습은 성숙한 사랑, 하나님의 성품으로 창조하신 그 공의의 사랑에 미치지 못하는 것이요, 그 사랑의 본을 보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과는 너무나 거리가 먼 것이에요.

 

하나님께서 믿는 자에게 주시는 사랑은 두 가지라고 했습니다. 은혜의 사랑과 공의의 사랑이라고 했습니다. 이 사랑을 실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보십시오. 십자가에서는 물과 피를 다 쏟으시며 죽음으로 용서를 이루셨습니다. 이 모습이 은혜의 사랑이에요. 값없이 주시는 사랑입니다.

 

그러나 부활을 생각해 보십시오. 사탄과 권세로 인한 죄의 저주와 사망의 저주, 그 추악하고 더럽고 비참한 모습을 그래 내가 용납한다. 네 맘대로 해라 아니지 않습니까? 죽음에서 다시금 살아나시므로, 그 능력으로, 사망의 쏘는 것을 이기시고, 죄악의 사슬을 끊어내고, 사탄의 권세를 물리치신 것 아니겠습니까? 그러므로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이 땅에도 이루어져, 정의가 다시 회복되고, 거룩이 살아나고,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져 가도록 승리하신 것 아니겠습니까?

 

엘리후가 욥에게 권면합니다. 24절 보시겠습니다. 그대는 하나님께서 하신 일을 기억하고 높이라 잊지 말지니라 인생이 그의 일을 찬송하였느니라(36:24) 왜 이 말을 주시겠어요? 측량할 수 없는 크고 깊으신 하나님의 손길이 있으니 겸손하라는 것입니다. 26절을 보시겠습니다. 하나님은 높으시니 우리가 그를 알 수 없고 그의 햇수를 헤아릴 수 없느니라(36:26) 그 깊고 심오하신 뜻을 다 알 수 없으니 겸손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라는 것입니다. 그 예로 엘리후는 하늘의 구름과 쏟아지는 비를 예로 듭니다. 30절과 31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보라 그가 번갯불을 자기의 사면에 펼치시며 바다 밑까지 비치시고 이런 것들로 만민을 심판하시며 음식을 풍성하게 주시느니라(36:30~31) 폭우가 내립니다. 사람에게는 자연적 재앙일 수도 있어요. 그러기에 심판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그 비로 논밭의 채소를 키우시니 사람이 식탁에 음식을 풍성하게 하시는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누가 그 하나님의 깊으신 뜻을 다 안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가 교만하지 말고 겸손함으로 더욱 하나님을 더욱 더 깊이 알아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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