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돌새벽강단

  • 예배와 말씀 >
  • 산돌새벽강단
[욥기 강해 36] 고난이 올 때 더욱 주를 신뢰하라
운영자 2023-03-07 추천 0 댓글 0 조회 275
[성경본문] 욥기35:9-16 개역개정

9. 사람은 학대가 많으므로 부르짖으며 군주들의 힘에 눌려 소리치나

10. 나를 지으신 하나님은 어디 계시냐고 하며 밤에 노래를 주시는 자가 어디 계시냐고 말하는 자가 없구나

11. 땅의 짐승들보다도 우리를 더욱 가르치시고 하늘의 새들보다도 우리를 더욱 지혜롭게 하시는 이가 어디 계시냐고 말하는 이도 없구나

12. 그들이 악인의 교만으로 말미암아 거기에서 부르짖으나 대답하는 자가 없음은

13. 헛된 것은 하나님이 결코 듣지 아니하시며 전능자가 돌아보지 아니하심이라

14. 하물며 말하기를 하나님은 뵈올 수 없고 일의 판단하심은 그 앞에 있으니 나는 그를 기다릴 뿐이라 말하는 그대일까보냐

15. 그러나 지금은 그가 진노하심으로 벌을 주지 아니하셨고 악행을 끝까지 살피지 아니하셨으므로

16. 욥이 헛되이 입을 열어 지식 없는 말을 많이 하는구나

제공: 대한성서공회

고난이 올 때 더욱 주를 신뢰하라

 

엘리후의 세 번째 연설이 오늘 35장의 내용입니다. 욥이 하나님에 대하여 무엇을 잘못 이해하고 있는가를 엘리후는 지적하고 있습니다. 그 주제는 사람이 고통을 당하고 압제를 당할 때 울부짖으며 자신의 신세와 처지를 한탄한다고 할지라도 정작 그 마음에 하나님을 향한 신뢰가 없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함께 9절과 10절을 보시겠습니다.

사람은 학대가 많으므로 부르짖으며 군주들의 힘에 눌려 소리치나 나를 지으신 하나님은 어디 계시냐고 하며 밤에 노래를 주시는 자가 어디 계시냐고 말하는 자가 없구나(35:9~10)

 

사람은 학대와 압제로 인해 받는 고통 때문에 부르짖고 신음하지만 정작 그 마음에는 하나님을 향한 신뢰가 없는 자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고난과 고통이 가증될 때 생명체는 반응합니다. 두려워 떱니다. 눈물을 흘리며 웁니다. 비명 소리와 신음소리가 터져나옵니다. 견딜 수 없으니 몸부림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러한 가운데에서도 그 상황에서 건져 주실 절대주이신 하나님을 찾지 않는 자들이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믿지 않기 때문이지요. 고통스러워 부르짖고 소리치지만 정작 그 마음에는 하나님이 어디있느냐?” “하나님은 없다!”고 불신하는 모습입니다.

 

밤에 노래를 주시는 자가 어디 계시냐고 말하는 자가 없구나!” 이 말씀은 캄캄한 밤과 같은 고통의 때를 벗어나게 하시고 다시금 노래 할 수 있게 되었을 때, 그렇게 구원하신 분이 누구인가 생각도 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모습은 인본주의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좋은 의미로 사람의 일은 사람이 해결 할 수 있다.”라는 정신입니다. 안 좋은 의미로는 그러므로 이제 더 이상 신은 필요없다.” 창조주와 피조물의 관계성을 끊어버리고자 하는 것입니다. 이어지는 11절도 마찬가지 내용입니다. 함께 보시겠습니다. 땅의 짐승들보다도 우리를 더욱 가르치시고 하늘의 새들보다도 우리를 더욱 지혜롭게 하시는 이가 어디 계시냐고 말하는 이도 없구나(35:11)

인간을 만물의 영장이라고 사람들은 자부심을 갖고 말합니다. 실제로 그렇습니다. 모든 피조물 중에 가장 뛰어납니다. 그러나 정작 누가 인간을 그러한 존재로 만들었는지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을 배제한 인본주의로 인해 나타나는 현상은 교만입니다. 대표적인 모습은 바벨탑을 쌓는 것입니다. 그들은 그 목적을 선포합니다. 창세기 114절의 내용입니다. 또 말하되 자, 성읍과 탑을 건설하여 그 탑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여 우리 이름을 내고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 하였더니(11:4) 탑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여 우리 이름을 내고 하나님의 위치까지 이르고자 하는 사람의 생각을 그렇게 표현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신 목적에 대해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다니 나를 찬송하게 하려 함이니라(43:21)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복 있는 인생이란 그 관계가 잘 설정되어있을 때 이뤄집니다. 하나님은 창조주시기 때문에 모든 만물로부터 경배와 찬양을 받으시기를 원하십니다. 사람은 하나님께서 명하신 계명을 순종하며 잘 지키면 하나님은 그 인생에 복을 주십니다. 이 관계성은 창조의 목적이니 천륜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런데 인본주의는 하나님을 배제합니다. 인간이 신의 위치에 있는 것입니다. 유명한 무신론 신학자인 잉거솔이라는 사람이 큰 광장에서 여러 사람들 앞에서 신은 없다라는 주제로 강연을 하고 있었습니다. 강연이 절정에 이르렀을 때 그는 신이 없음을 증명해 보이겠다고 하면서 자신의 시계를 풀었습니다. 그리고 하늘을 바라보며 외쳤습니다. 신이여, 내가 앞으로 5분 동안 당신을 저주할 것이오. 만약 당신이 살아있다면 나를 저주하고 나에게 벌을 내리시오 그리고 5분 동안 입에 담을 수 없는 많은 말로 신에게 욕을 하며 저주하는 말을 했습니다. 그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 그 상황을 흥미진진하게 지켜보았습니다. 그런데 5분이 다 지나갔는데도 아무런 일이 벌어지지 않았어요. 그가 의기양양한 목소리로 그를 지켜보는 사람들에게 말했습니다. 보셨지요? 이만하면 신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 충분히 입증된 것입니다.”

 

그때 한쪽 편에 앉아서 그 모습을 보던 한 노인이 일어나서 그에게 말했습니다. 나는 예수를 믿는 사람이오. 내가 보니 오늘 당신은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한 것이 아니라, 당신이 신과 아무 상관이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증명한 것이오. 왜냐하면 나는 경험했소, 나의 하나님은 내가 그분에게 거스려 행할 때, 나를 책망하시고 나를 징계하셨기 때문이오. 왜 그런고하니 나는 그대로 내 버려둘 수 없는 그분의 자녀였기 때문이오. 그런데 그 하나님은 오늘 당신의 행위에 대해서 침묵하셨소. 오늘 당신이 그렇게 하나님을 저주했는데도 하나님이 침묵하시는 것을 보니 당신은 하나님의 자녀도 아니고 완전히 버림받은 사람인 것을 충분히 증명한 것이오.”

 

성도 여러분!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 내리시는 심판 중에 하나는 그들을 그대로 내버려 두시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하나님 앞에 나아오려고 하지 않기 때문이에요.

그런데 사람이 그렇게 자유를 얻고자 그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면, 로마서 128절에 말씀합니다. 또한 그들이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그들을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버려 두사 합당하지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1:28)

 

이어서 그 결과로 나타나는 죄악된 모습이 죽 열거됩니다. 곧 모든 불의, 추악, 탐욕, 악의가 가득한 자요 시기, 살인, 분쟁, 사기, 악독이 가득한 자요 수군수군하는 자요 비방하는 자요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자요 능욕하는 자요 교만한 자요 자랑하는 자요 악을 도모하는 자요 부모를 거역하는 자요 우매한 자요 배약하는 자요 무정한 자요 무자비한 자라(1:29~31)

 

, 이처럼 하나님을 부인하고, 인정하지 않고, 자기의 뜻대로 살려는 자가 병들었습니다. 사고가 났습니다. 고통과 고난이 닥쳐왔습니다. 어떻게 하겠습니까? 고통에 못 이겨 부르짖습니다. 울고 신음하며 한탄합니다. 그 하나님 없는 부르짖음에 하나님이 응답하시겠냐는 것입니다. 그러한 부르짖음은 염원이요, 소원이요, 바람일 뿐이요, 기도가 아니에요. 기도는 분명 기도를 받는 대상이 있습니다. 기도는 구원자에게 간청하는 것입니다.

 

성경본문으로 돌아갑니다. 12절과 13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그들이 악인의 교만으로 말미암아 거기에서 부르짖으나 대답하는 자가 없음은 헛된 것은 하나님이 결코 듣지 아니하시며 전능자가 돌아보지 아니하심이라(35:12~13) 그들의 부르짖음은 헛된 것이라고 했어요. 하나님 보시기에 그렇다는 것입니다. 그들 마음에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없기 때문이에요. 여전히 자신의 지식과 경험을 하나님의 위치에 두고 믿고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이러한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러나 왜 여전히 영적으로 빼빼마른 인생으로 살아가는 것입니까?

 

처음과 끝이 좋아야 정말 좋은 평가를 받겠지요? 태어날 때는 다 똑같아요. 그러나 죽음을 눈 앞에 둔 인생은 천차만별입니다. 자신의 권력과 재물과 건강과 주먹을 믿고 사는 사람도 한때겠지요. 당장 건강검진결과가 생명과 연관이 있게 되면 얼굴색이 변합니다. 드물게 개중에는 죽으면 되지 뭐~!” 큰소리치는 자도 있겠지만 과연 몇 명이나 있을까요? 있다고 한다면, 고통 가운데 한탄하고 울부짖는 소리를 하나님께서 들으시겠냐는 것입니다. 이러한 모습은 자신의 지혜와 경험을 믿는 자의 결말인 것입니다.

 

그런데 욥은 어떻다고 하는 것입니까? 14절부터 16절 마지막 절까지 함께 보시겠습니다. 하물며 말하기를 하나님은 뵈올 수 없고 일의 판단하심은 그 앞에 있으니 나는 그를 기다릴 뿐이라 말하는 그대일까보냐 그러나 지금은 그가 진노하심으로 벌을 주지 아니하셨고 악행을 끝까지 살피지 아니하셨으므로 욥이 헛되이 입을 열어 지식 없는 말을 많이 하는구나(35:14~16) 이해하기가 쉽지 않죠? 새번역 성경의 번역을 보면 이러합니다.

 

욥 어른은 하나님을 볼 수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참고 기다리십시오. 어른께서 걸어 놓은 소송장이 하나님 앞에 놓여 있습니다. 어른은, 하나님이 벌을 내리지 않으시고, 사람의 죄에도 별로 관심이 없다고 생각하십니다. 그러나 명심하십시오. 어른께서 말씀을 계속하시는 것은, 쓸데없는 일입니다. 어른은 자기가 하는 말이 무엇인지도 모르시는 것이 분명합니다.”(35:14~16)

 

하나님은 뵈 올 수 없고 무슨 뜻이겠어요? 나의 고통이 죄로 인한 것이 아님을 하나님은 아시는데 나타나시지 아니하시고, 대변해 주지 아니하시고, 그러므로 내가 친구들 앞에서 조롱거리가 되었으니, 나는 억울합니다. 이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없습니다. 나는 할 일을 다 했으니, 단지 그를 기다릴 뿐입니다. 그런 뜻이에요.

 

과연 하나님은 욥의 상황에 관심이 없으실까요? 선과 악에 관하여 침묵을 지키실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그 상황을 보고 계시며, 등장해야 할 그 때를 정확히 알고 계십니다. 그런데 의인 욥의 인내에 한계가 온 것입니다. 그 상황이 너무 고통스럽고 너무 힘들기 때문에 그가 스스로 그러한 결론을 내린 것입니다.

 

그러한 욥의 자세를 엘리후는 꾸짖는 것입니다. 모든 것을 다 아는 것처럼 지레 판단한 욥의 자세를 교만하게 본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가 고난 당할 때 더욱 바짝 가까이 주 앞에 나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을 향한 신뢰를 놓치면 안 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붙잡아야 합니다. 생사화복에 대한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그를 예배하는 것이 참 지혜인 것입니다. 

자유게시판 목록
구분 제목 작성자 등록일 추천 조회
이전글 [욥기 강해 37] 하나님 사랑의 두 가지 운영자 2023.03.08 0 257
다음글 [욥기 강해 35] 믿음의 실체는 고난의 때 드러난다 운영자 2023.03.03 0 269

08610 서울 금천구 시흥대로75길 20 (시흥동, 산돌중앙교회) 산돌중앙교회 TEL : 02-803-1135 지도보기

Copyright © 산돌중앙교회. All Rights reserved. MADE BY ONMAM.COM

  • Today83
  • Total202,246
  • rss
  • facebook
  • facebook
  • 모바일웹지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