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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욥기 강해 16] 율법의 잣대와 이를 넘는 은혜
운영자 2023-01-13 추천 0 댓글 0 조회 322
[성경본문] 욥기15:1-16 개역개정

1. 데만 사람 엘리바스가 대답하여 이르되

2. 지혜로운 자가 어찌 헛된 지식으로 대답하겠느냐 어찌 동풍을 그의 복부에 채우겠느냐

3. 어찌 도움이 되지 아니하는 이야기, 무익한 말로 변론하겠느냐

4. 참으로 네가 하나님 경외하는 일을 그만두어 하나님 앞에 묵도하기를 그치게 하는구나

5. 네 죄악이 네 입을 가르치나니 네가 간사한 자의 혀를 좋아하는구나

6. 너를 정죄한 것은 내가 아니요 네 입이라 네 입술이 네게 불리하게 증언하느니라

7. 네가 제일 먼저 난 사람이냐 산들이 있기 전에 네가 출생하였느냐

8. 하나님의 오묘하심을 네가 들었느냐 지혜를 홀로 가졌느냐

9. 네가 아는 것을 우리가 알지 못하는 것이 무엇이냐 네가 깨달은 것을 우리가 소유하지 못한 것이 무엇이냐

10. 우리 중에는 머리가 흰 사람도 있고 연로한 사람도 있고 네 아버지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도 있느니라

11. 하나님의 위로와 은밀하게 하시는 말씀이 네게 작은 것이냐

12. 어찌하여 네 마음에 불만스러워하며 네 눈을 번뜩거리며

13. 네 영이 하나님께 분노를 터뜨리며 네 입을 놀리느냐

14. 사람이 어찌 깨끗하겠느냐 여인에게서 난 자가 어찌 의롭겠느냐

15. 하나님은 거룩한 자들을 믿지 아니하시나니 하늘이라도 그가 보시기에 부정하거든

16. 하물며 악을 저지르기를 물 마심 같이 하는 가증하고 부패한 사람을 용납하시겠느냐

제공: 대한성서공회

율법의 잣대와 이를 넘는 은혜

 

욥이 그처럼 어려움 가운데 있을 때 찾아온 세 친구들의 조언과 위로의 말이 욥에게는 도움이 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상처가 되었습니다. 당연히 욥은 그들의 조언을 듣지 아니했어요. 욥에게 닥친 불같은 시련은 하나님 앞에 죄를 지었기 때문이다라는 인과응보의 논리를 내 세운 친구들의 직언이 통하지 않았어요. 왜냐하면 욥은 자신의 인생을 돌이켜 볼 때, 그처럼 고난의 심판을 받아야 할 죄를 하나님 앞에 범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한 친구들의 조언에 항변하는 욥의 모습을 보면서 친구들은 자존심이 상했습니다. 경험으로나 학적으로나 전통에 관하여 자신들이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지혜자로 여겼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므로 가장 연장자인 엘리바스가 다시 등장합니다. 이번에는 좀 더 강한 어조로 욥을 질책하고 나섭니다. 그는 생각하기를 욥이 교만하여 자신의 죄를 인정하지 않는다고 여겼기 때문이었어요. 다시 등장하여 욥에게 말하는 엘리바스의 어조를 보면, 이제는 더 이상 위로요, 조언이 아니라, 칼과 같은 비난이요, 꾸중하는 질책의 어조입니다.

 

2절에 엘리바스가 욥에게 하는 말을 보십시오. 지혜로운 자가 어찌 헛된 지식으로 대답하겠느냐 어찌 동풍을 그의 복부에 채우겠느냐(15:2)욥 너는 지혜로운 자가 아니냐? 그런데 너의 대답은 마치 동풍과 같다.”

 

여러분, 동풍은 좋지 않은 바람입니다. 당시 동쪽 우리가 알고 있는 앗시리아와 바벨론 쪽에서 불어오는 바람이니, 사막을 통과하여 불어오는 아주 건조한 바람이에요. 동풍이 불면 채소들과 작물들이 말라 죽습니다. 반대로 서풍이 불면 지중해 쪽에서 불어오는 습기가 많은 바람입니다. 당연히 채소와 작물의 성장에 많은 도움이 됩니다. 어찌 너는 동풍과 같은 의미없는 생각을 갖고 있느냐?” “네 자신이 너의 생각으로 망하게 될 것이다.” 그런 강한 어조의 질책입니다.

 

엘리바스가 계속해서 욥의 생각이 잘못되었다고 비판합니다. 4절과 5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참으로 네가 하나님 경외하는 일을 그만두어 하나님 앞에 묵도하기를 그치게 하는구나 네 죄악이 네 입을 가르치나니 네가 간사한 자의 혀를 좋아하는구나(15:4~5)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구나!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을 깊이 헤아리지 않는구나! 너의 입을 통해 나오는 말이 그렇지 않느냐?”

 

7절과 8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네가 제일 먼저 난 사람이냐 산들이 있기 전에 네가 출생하였느냐 하나님의 오묘하심을 네가 들었느냐 지혜를 홀로 가졌느냐(15:7~8) 무슨 말이겠어요? “, 네가 그렇게 똑똑하냐? 네가 제일 먼저 난 사람이야?” 제일 처음 난 사람이란, 곧 에덴동산에서 하나님과 직접적인 교제를 했었던 아담을 지칭하는 것입니다. “네가 아담이란 말이냐? 그래서 하나님과 직접 소통하여 그의 뜻과 지혜를 네가 다 알고 다 가지고 있단 말이냐? 그렇지 않지 않느냐?”

 

엘리바스는 말하는 것입니다. “네가 그렇게 똑똑하냐? 우리가 너만 못하지 아니하다.” 욥이 그들의 조언을 받아들이지 아니하니, 엘리바스가 엄청 자존심이 상한 모양이에요. 9절과 10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네가 아는 것을 우리가 알지 못하는 것이 무엇이냐 네가 깨달은 것을 우리가 소유하지 못한 것이 무엇이냐 우리 중에는 머리가 흰 사람도 있고 연로한 사람도 있고 네 아버지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도 있느니라(15:9~10)

 

우리 중에는 머리가 흰 사람도 있고 연로한 사람도 있고, 네 아버지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도 있느니라 그러니 어떻게 하라는 거에요? 말 들어라!” 하는 것입니다. 인생을 오래 산 경험자의 말을 들어라!”

 

이러한 모습을 가리켜 오늘날 젊은이들은 꼰대라는 은어를 사용합니다. 이 단어를 표준국어대사전을 통해 사전적 정의를 보니, 은어로, '늙은이'를 이르는 말 또는 학생들의 은어로, '선생'을 이르는 말로 설명했습니다. 그런데 요즈음에는 이 단어와 연관하여 신조어가 등장했어요. 젊꼰이라고 해요. 들어보셨나요? 젊꼰이란 젊은 꼰대의 줄임말입니다.

 

그러므로 꼰대란 꼭 나이 들어, 자신의 경험과 지식이 판단의 잣대가 되어, 자신보다 못하다고 여기는 남을 훈계하려드는 어르신들만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에요. 그보다는 의미 그대로, 나이를 떠나서, 권위주의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을 비하하는 데 사용되는 혐오성 단어입니다.

 

우리 중에는 머리가 흰사람도 있고 연로한 사람도 있고 네 아버지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도 있느니라. 그러니 겸손하게 듣고 배워라 엘리바스는 오늘 이 시대의 기준으로 보면 표준어로는 권위주의자이지만, 은어로는 꼰대의 모습이에요. 그러므로 엘리바스는 오늘날 이 시대의 전형적인 꼰대의 시조가 되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이 시대에 젊은 세대와 소통하고 꼰대라는 소리를 듣지 아니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제는 나이가 90이 다 되신 신경정신과 전문의, 네팔에 귀한 사역을 감당하신 분이에요. 이근후 박사님은 이렇게 조언합니다. 각 세대와 소통하려면 경험을 말하려 하지 말고 경청을 하라권합니다. 그 예로 한 상품에 대한 젊은이와의 대화를 예로 든다면, 우리 때는 말야” “이런저런 것이 다 내가 한 건데등 생색을 내기보다는, 이 상품의 어떤 점에 끌리니?” 라고 물어본 후, 젊은이들이 대답하면 ~! 그렇구나! 사실 우리 동료들이 만든거야! 지금까지 사랑받으니 참 기분이 좋아~!” 라고 말하며, 살짝 미소를 지으면 된다는 것입니다. , 꼰대 안되기도 쉽지 않죠?^^!

 

엘리바스의 결론은 무엇이겠습니까? , 너는 죄인이야! 너의 현재의 형편이 그것을 말하고 있어~!” 11절과 1213절입니다. 하나님의 위로와 은밀하게 하시는 말씀이 네게 작은 것이냐 어찌하여 네 마음에 불만스러워하며 네 눈을 번뜩거리며 네 영이 하나님께 분노를 터뜨리며 네 입을 놀리느냐(15:11~13)

 

욥이 교만하다 생각하여 나무라고, 또 죄가 없다 하니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로 여긴 엘리바스는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 악인이 어떤 모습인가? 그러한 자가 심판당할 때 모습이 어떠한가? 를 구체적으로 묘사하기 시작합니다. 17절입니다. 내가 네게 보이리니 내게서 들으라 내가 본 것을 설명하리라(1:17) 자신이 듣고 본바, 경험을 들려주고자 합니다.

 

왜 엘리바스가 이런 예를 들겠어요? 간접적으로 말하는 것입니다. , 너는 아니라고 하는데 네가 죄인이 아니냐? 바로 네가 지금 당하는 모습과 그 악인들이 당하는 심판과 다를 바가 없지 않느냐?” 그런 악인의 못된 모습과 비참한 결과를 15장 마지막 절까지 이어가고 있습니다.

 

27절에 보니 그 모습이 악인이지만 잘 사는 부자의 모습이에요. 그의 얼굴에는 살이 찌고 허리에는 기름이 엉기었고(15:27) 그런데 그를 하나님께서 심판하시니 어떻게 되었습니까? 29절과 30절에 그 대조적인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는 부요하지 못하고 재산이 보존되지 못하고 그의 소유가 땅에서 증식되지 못할 것이라 어두운 곳을 떠나지 못하리니 불꽃이 그의 가지를 말릴 것이라 하나님의 입김으로 그가 불려가리라(15:29~30) 이 모습이 자녀를 잃고, 재산을 잃고 건강까지 잃은 욥의 모습과 흡사하지 않습니까? 엘리바스가 말하고자 하는 바입니다.

 

죄인에게는 심판이 임하니 그 비참한 상태가 어떠한가? 33절에 비유로 말합니다. 포도 열매가 익기 전에 떨어짐 같고 감람 꽃이 곧 떨어짐 같으리라(15:33)

 

그렇습니다. 엘리바스의 경험과 지혜와 전통에 근거하면, 하나님을 거역하고, 멀리하고, 죄를 범하는 자는 하나님 앞에 서지 못합니다. 그의 부귀와 권세가 오래가지 못하고 결국 망하게 될 것입니다. 이 원리가 세상이 인식하고 또한 바라는 권선징악이요, 인과응보입니다. 엘리바스의 말이 틀린 말이 아니에요.

 

그러나 욥은 그 케이스가 아닙니다. 그는 알지 못해요. 죄 없는 자가 겪는 고난이 있고 고통이 있음을 엘리바스는 보지를 못해요. 그저 자신이 알고 있는 경험과 지혜의 잣대를 들이댄 것입니다.

 

우리가 이 새벽에 오늘의 말씀을 통해 알아야 할 한 가지 중요한 영적교훈이 있습니다. 이렇게 질문해 보겠습니다. 그래서, 엘리바스의 신앙대로, 그렇게 죄를 범하여 하나님의 심판이 다가오고 있는 그들에게는 결코 소망이 없는가? 그 불같은 심판 앞에서 멸망당함으로 그 인생이 끝이 나고 영원한 지옥 불로 떨어지고 말 것인가?

 

그렇다라고 주장하는 것이 엘리바스의 입장입니다. 죄를 짓고 하나님을 떠나 어둠속에 있는 자들 영원히 죽을 수 밖에 없는 자들, 오늘 그들의 모습을 엘리바스는 정죄합니다. 15절과 16절을 함께 찾아가 읽겠습니다. 하나님은 거룩한 자들을 믿지 아니하시나니 하늘이라도 그가 보시기에 부정하거든 하물며 악을 저지르기를 물 마심 같이 하는 가증하고 부패한 사람을 용납하시겠느냐(15:15~16)

엘리바스가 바라보는 하나님은 이처럼 늘 불꽃같은 눈으로만 바라보시는 심판주로서의 모습입니다.

 

이와 같은 생각을 갖고 있었던 자들이 예수님 당시에도 있었습니다. 그들은 율법주의자로 바리새파 사람들과 서기관이었어요. 그 때 예수께서 그들을 향해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913절에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가서 내가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하신 뜻이 무엇인지 배우라...(중략)”(9:13)

그리고 마가복음 217절에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 들으시고 그들에게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 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느니라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2:17)

 

그러므로 죄인을 불러 치유하시고, 죄인의 죄악을 용서하시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임하시고, 그 모든 인류의 죄악을 짊어지시고 십자가에 친히 달려 돌아가신 것입니다.

그래서 구원은 은혜입니다. 내가 아닌 내 대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못박히시고 피를 흘리시고 희생제물로 생명을 바쳐 이루신 구원입니다. 그래서 거저로 베푸신 은혜입니다.

 

오늘 엘리바스는 그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율법은 알지만 은혜를 모르고 있어요. 심판주로서의 하나님은 잘 알고 있지만, 사랑과 은혜와 용서의 하나님은 알지도 못하고 깨닫지도 못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성경의 말씀대로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였습니다.”(3:23)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 얘기는 거기서 끝이 아닙니다. 주께서 창조하신 피조물과 타락한 인류를 회복시키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본래의 성품을 엘리바스는 보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 앞에 감사해야 합니다. 죤 뉴톤의 고백과 같이, 나같은 죄인 살리신 그 은혜 놀라워 잃었던 생명 찾았고 광명을 얻었네 우리가 늘 찬송을 불러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처지에 있는 사람들에게, 죄인이라고 정죄하기 보다는, 좋은 소식! 기쁨의 소식! Good News! 십자가의 용서와 사랑의 복음을 전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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