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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고보서 강해 05] 믿음은 내적으로도 외적으로 드러난다
운영자 2022-10-04 추천 1 댓글 0 조회 462
[성경본문] 야고보서1:19-25 개역개정

19.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너희가 알지니 사람마다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며 성내기도 더디 하라

20. 사람이 성내는 것이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함이라

21. 그러므로 모든 더러운 것과 넘치는 악을 내버리고 너희 영혼을 능히 구원할 바 마음에 심어진 말씀을 온유함으로 받으라

22. 너희는 말씀을 행하는 자가 되고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지 말라

23. 누구든지 말씀을 듣고 행하지 아니하면 그는 거울로 자기의 생긴 얼굴을 보는 사람과 같아서

24. 제 자신을 보고 가서 그 모습이 어떠했는지를 곧 잊어버리거니와

25. 자유롭게 하는 온전한 율법을 들여다보고 있는 자는 듣고 잊어버리는 자가 아니요 실천하는 자니 이 사람은 그 행하는 일에 복을 받으리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믿음은 내적으로도 외적으로 드러난다

 

격언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금언이라고도 하지요. 그 뜻의 사전적 정의는 사리에 맞아 교훈이 될 만한 짧은 어구나 문장입니다. 예를 들어 이런 격언을 들어보셨습니까? 기분 좋을 때 약속하지 말고, 화났을 때 대답하지 말고, 슬플 때는 결정하지 마라.” 무슨 말이겠어요? 감정에 휩쓸려 결정하고 나면, 평정을 되찾고 났을 때 그 결정에 대해 후회한다 하는 교훈을 담고 있어요. 일리가 있는 삶의 지혜입니다.

 

오늘 사도 야고보는 이스라엘 사람들 중에 널리 알려진 격언, 또는 금언을 가지고 진리를 전합니다. 그 첫째는 19절의 말씀이에요.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며 성내기도 더디 하라 둘째는 22절의 말씀이니, 말씀을 행하는 자가 되고 듣기만 하는 자가 되지 말라입니다. 둘다 듣는 이로 하여금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삶의 지혜입니다.

 

그런데 사도 야고보는 그 상식적이고도 대중적인 가르침에 고개를 끄덕이는 자들을 예수 그리스도께서 가르치신 진리로 인도합니다. 첫 번째 격언에서는 성내기도 더디하라는 구절을 사용합니다. 20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사람이 성내는 것이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함이라(1:20) 이 말씀에서 언급한 성을 낸다에서 은 성경원어로 올게라고 하는데, 그 의미가 부정적이기보다는 긍정적 의미로서, 불의를 볼 때 내는 화이니 義憤(의분)’이라 하겠습니다.

 

그런데 사도 야고보가 말씀하시고자 하는 것은 그러한 선한 의미의 분노요, 의분이라 할 지라도, 그것은 사람의 판단과 기준에서 나온 것이기에, 하나님께서 생각하시는 ()를 이루어내지는 못한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를 이루고자 하는 인간의 생각과 감정의 한계를 지적하는 것이에요. 그 기준이 마치 모래 위에 세운 집과 같이 불안정하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무엇으로 가능한 것일까요?

 

영혼을 구원하는 마음에 심어진 말씀온유함으로 받을 때 비로소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함께 21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더러운 것과 넘치는 악을 내버리고 너희 영혼을 능히 구원할 바 마음에 심어진 말씀을 온유함으로 받으라(1:21)

 

한 마디로 표현하면 복음!’입니다. 사람의 심령의 밭에 뿌려지고 뿌리를 내린 예수 그리스도의 진리의 말씀으로만이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분을 내고, 화를 내고, 격분하고, 진노를 해도 이루지 못할 정의가 말씀으로 구원받아 변화된 심령의 사람이 될 때 의가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그와 같은 자의 모습은 성을 내고 격노하기 보다는 오히려 온유함으로 의를 이루는 자라는 것입니다.

 

그 성품이 바로 예수님의 성품이니, 주가 말씀하셨습니다. “(심령이)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5:5) 그 성품은 성령의 아홉가지 열매 중에 한 성품입니다.

 

역사 속에 존경받는 훌륭한 지도자들의 모습을 연상하면 금방 이해가 됩니다. 조선초기 나라의 기강을 잡고자 수많은 사람과 자신의 형제까지 죽인 폭군 이방원의 모습과 온유한 성품으로 나라를 부강하게 만든 세종의 모습을 비교해보아도, 다윗을 향해 창을 던진 사울왕과 그런 왕을 두 번이나 죽일 기회가 있었어도 정적을 죽이지 아니한 다윗왕의 모습에서도, 죄인아닌 예수를 죄인으로 삼아 십자가에 못박은 제사장들과 그들을 향해 용서를 비는 예수님의 극명한 모습을 통해서도 우리는 볼 수 있습니다.

 

오늘날 세상의 모습도 다를바가 없어요. 그야말로 전쟁터와 같은 세상이지요. 정치권은 말할 것도 없고, 심지어 교회 안에서도 그런 일이 일어납니다. 전체보다는 자신 한 사람의 유익을 위해, 얼굴을 붉히고, 책상을 치고, 고성이 일고, 심지어는 욕설이 오가고.....,

오늘의 말씀은 지적합니다. 영혼을 능히 구원하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거듭난 자, 새롭게 된 자는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구습을 끊어버리고, 새사람, 새생명, 새성품으로 주의 의를 이룬다는 것이니, 기도합니다. 저와 여러분이 그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다음으로 이어지는 말씀은 말씀의 실천에 관한 교훈입니다. 야고보서의 가장 핵심 주제입니다.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라(2:26) 야고보서 매장마다 반복되고 강조되는 주제이며 실천의 적용까지도 구체적으로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함께 22절 말씀을 읽겠습니다. 너희는 말씀을 행하는 자가 되고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지 말라(1:22) 이 구절은 유대인들의 격언으로 널리 통용되는 말씀이라고 초두에 나누었습니다. 아는 바를 들은 바를 행하라 어느 나라에서도, 학교 교실에서, 교과서에서 강조하고 가르치는 도덕입니다. 그런데 사도 야고보는 이 격언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갑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으로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지 말라 고 경고합니다.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지 말라 무슨 말씀인가 하면 착각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말씀을 듣고, 읽고, 배워서 머리로는 구원이 뭔지는 알지 몰라도, 행함이 없다면, 실천이 없다면, 자신이 구원받은 자라고 착각하지 말라!” 그런 말씀이에요. 정말 가슴 뜨끔, 뜨끔한 말씀아니겠습니까? 물론 이 자리에는 그런 분이 한 사람도 없으시리라 생각합니다만....,

 

그러므로 이 말씀은 21절의 말씀과 일맥상통합니다. 뭐라고 말씀하셨는가 하면 너희 영혼을 능히 구원할 바 마음에 심어진 말씀이라고 했어요. 구원받게 하는 말씀과 그 말씀을 믿은 자의 심령은 새사람이 되고, 새삶으로 살게 되니 천국백성의 모습으로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25절에는 이 구원받은 자를 자유롭게 하는 온전한 율법을 들여다보고 있는 자라고 표현했습니다.

 

온전한 율법을 들여다보고 있는 자이 표현에서 온전한 율법이란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 새롭게 하시고 완성하신 율법입니다. 그러므로 주께서 말씀하셨어요.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5:17) 사도 야고보가 정확히 예수님이 산상수훈을 기억하며 온전한 율법으로 가르치고 계세요. 온전한 율법 복음이요, 예수님의 가르침입니다.

 

그러므로 이 복음, 예수님의 가르침을 믿어 구원을 받은 자는 그 증거가 나타난다. 변화된 성품으로 나타나고, 그 성품은 주를 닮아가게되니, 언어와 행실로 나타나게 된다.” 말씀하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에 보면 23절에 행하지 아니하는 자에 대해 말씀하세요. 그러한 자는 거울로 자기의 생긴 모습을 보는 사람과 같다고 했어요. 당신의 거울의 수준이란 동으로 만든 것이니 분명하게 보이지가 않아요. 또렷하지가 않아요. 확실하지 않다는 표현입니다.

 

예배에 참석해요. 말씀을 들어요. 때로는 깊이 묵상도 해요. 그러나 여전히 불분명해요. 본인은 생각합니다. “내가 구원받은 자인가? 정말 하나님의 자녀인가?” 그리고 곁에 사람들도 마찬가지로 생각해요. “저 양반은 구원받은 사람 맞어?” “믿는 사람이 왜 저래?”

 

그러나 온전한 율법이 그 마음밭에 뿌려지고 뿌리를 내린자는 성장합니다. 줄기가 자라고 꽃이 피고 열매를 맺습니다. 성령의 열매를 맺습니다. 성화를 이루어갑니다. 당연히 그 삶의 모습이 언행심사가 주를 닮아갑니다.

 

땅끝에서 주님을 만나고자 그곳의 영혼 구원을 위해 수고하시는 선교사님들의 모습을 보십시오. 누가 가라고 해서 억지로 갑니까? 마지못해 사역합니까? 성탄절이 되면 고국에서 선교헌금이 더 와요. 생활비에 보태 쓰라고..., 감사하지요. 그런데 자신들을 위해서가 아니에요. 성탄절임에도 먹을 것이 부족한 동역자들 닭이라도 한 마리 사서 가족이랑 함께 먹으라고, 쌀을 사서 배고픈 자들에게 나눠주고..... 그 기뻐하는 모습을 보고 선교사는 감사하고 기뻐합니다. 이게 억지로 되는가 말이에요. 어떤 때는 웃다가 눈물이 나요. “하나님께서 나같이 부족한 자도 이렇게 쓰시는구나~!” 그래서 감격이 되어서 눈물이 나요.

 

모두가 존경하는 마더 데레사가 억지로 콜커타에서 그 죽어가는 사람들을 그렇게 섬겼을까요? 아니쟎습니까? 오히려 기쁨과 감사로 살지 않았을까요? 저절로 드러납니다. 구원받은 자로써 그 심령에 성령이 충만하니 저절로 열매로 나타납니다.

 

실천은 열매가 되고 그 모습으로 인해 하나님께서 복을 주시니 25절 후반부에 약속하십니다. 이 사람은 그 행하는 일에 복을 받으리라

 

저는 기도합니다. 저와 여러분이 바로 이 모습, 구원받은 자의 모습으로 마음에는 평강이요, 기쁨으로 행하고 실천하므로 복된 인생이 되시기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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