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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라디아서 강해 08] 율법의 멍에를 메지 말고 은혜의 멍에를 메라
운영자 2022-04-22 추천 0 댓글 0 조회 638
[성경본문] 갈라디아서4:21-31 개역개정

21. 내게 말하라 율법 아래에 있고자 하는 자들아 율법을 듣지 못하였느냐

22. 기록된 바 아브라함에게 두 아들이 있으니 하나는 여종에게서, 하나는 자유 있는 여자에게서 났다 하였으며

23. 여종에게서는 육체를 따라 났고 자유 있는 여자에게서는 약속으로 말미암았느니라

24. 이것은 비유니 이 여자들은 두 언약이라 하나는 시내 산으로부터 종을 낳은 자니 곧 하갈이라

25. 이 하갈은 아라비아에 있는 시내 산으로서 지금 있는 예루살렘과 같은 곳이니 그가 그 자녀들과 더불어 종 노릇 하고

26. 오직 위에 있는 예루살렘은 자유자니 곧 우리 어머니라

27. 기록된 바 잉태하지 못한 자여 즐거워하라 산고를 모르는 자여 소리 질러 외치라 이는 홀로 사는 자의 자녀가 남편 있는 자의 자녀보다 많음이라 하였으니

28. 형제들아 너희는 이삭과 같이 약속의 자녀라

29. 그러나 그 때에 육체를 따라 난 자가 성령을 따라 난 자를 박해한 것 같이 이제도 그러하도다

30. 그러나 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냐 여종과 그 아들을 내쫓으라 여종의 아들이 자유 있는 여자의 아들과 더불어 유업을 얻지 못하리라 하였느니라

31. 그런즉 형제들아 우리는 여종의 자녀가 아니요 자유 있는 여자의 자녀니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성경본문] 갈라디아서5:1 개역개정

1.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건하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율법의 멍에를 메지 말고 은혜의 멍에를 메라

 

구원은 율법을 지킴으로 얻는 것이 아니요, 은혜로 주신 것을 믿음으로 얻는 것이다 라는 사도바울의 가르침은 계속됩니다. 그 비유를 이제는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를 통해 태어난 이삭과 사라의 몸종 하갈을 통해서 낳은 이스마엘에 빗대어 설명하고 있습니다.

 

함께 22절과 23절을 읽겠습니다. 기록된 바 아브라함에게 두 아들이 있으니 하나는 여종에게서, 하나는 자유 있는 여자에게서 났다 하였으며 여종에게서는 육체를 따라 났고 자유 있는 여자에게서는 약속으로 말미암았느니라(4:22~23)

 

아브라함에게 두 아들이 있으니 종인 하갈을 통해서 난 아들 이스마엘과 정실부인인 사라를 통해서 난 이삭의 차이점은, 마치 율법과 은혜가 다른 그 내용과 흡사하다고 말씀합니다. 함께 생각해 보겠습니다.

 

하갈은 사라의 몸종으로 아브라함과 직접적인 연관이 없는 사람이었어요. 그런데 사라가 아이를 갖지 못하자 아브라함과 사라 사이를 비집고 들어온 것입니다. 비록 아브라함과 하갈은 관계를 맺었지만, 영원히 함께 할 인생동반자는 아니었어요. 이 모습은 마치 율법과 같으니, 시내산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어진 율법의 모습과 흡사하다는 것입니다. 율법이 주어졌으나 그 율법은 본래 구원을 이룰 동반자는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율법의 역할은 그저 구원을 갈망하게 하는 일시적인 것이었습니다.

 

반면에 사라의 경우는 달랐습니다. 사라는 잉태하지 못하므로 하갈에게 잠시 그 자리를 빼앗긴 것 같았으나, 원래가 아브라함의 아내요 영원히 함께 살아갈 인생 동반자였습니다. 이 사라의 모습이 마치 은혜로 말미암는 복음의 모습 같다는 것입니다. 종인 하갈의 역할은 끝이 났어요. 언제 끝났습니까? 사라가 아들 이삭을 낳았을 때 끝났어요.

 

이게 무슨 말씀인가 하면 곧 율법은 일시적이며, 임시방편이라고 한다면, 은혜로 주어진 복음은 영원한 구원의 진리라는 것입니다.

 

이 비유가 계속됩니다. 하갈의 아들 이스마엘과 사라의 아들 이삭의 신분의 차이점이 또한 율법과 은혜로 얻은 복음의 차이점과 같다고 하는 것입니다. 하갈이 종이고, 종의 아들인 이스마엘 또한 종인 것과 다를 바가 없다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성도가 율법과 관계를 맺으면 율법의 종이 된다는 것이에요. 이것이 구원에 있어서 율법의 한계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도가 은혜로 이룬 복음과 관계를 맺으면 종이 아니라 왕이 된다는 것입니다. 이삭이 정실인 사라의 아들이기에 이스마엘과 달라요. 종이 아니라 자유함을 입은 왕자인 것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은 본래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그 약속의 근거에 따라 은혜로 주어졌습니다. 사라의 경수가 끊어진 후 생리학적으로 임신할 수 없을 때에 주어졌으니 약속의 근거한 은혜로 주어진 아들입니다. 그러나 하갈과 이스마엘은 아니에요. 인간적인 수단과 방법에 의해 얻은 아들입니다.

 

이 비유를 통해 우리는 율법의 한계를 보고, 은혜로 주어진 복음의 권세와 능력을 알게 됩니다. 즉 율법이 아닌 복음과 관계를 맺는 사람은 이미 하나님의 자녀요, 억압된 종이 아닌 자유를 가진 왕자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로마서 517절에 말씀합니다. 복음으로 사는 자는 은혜의 왕 노릇 한다고 했어요. 그러나 율법에 얽매인 자는 삶이 힘들고 영혼은 지칩니다. 억지로 하기 때문이지요.

 

예수님께서 이 율법에 얽매이고 지친 인생을 부르시고, 은혜로 말미암은 구원의 자리에 초청하십니다. 우리가 익히 잘 알고 있는 마태복음 1128절 이하 30절까지의 내용입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도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11:28)

 

예수님께서는 그 무거운 율법에 얽매여 그 수 많은 조항을 지키면서 좌절하는 수고하는 자들, 그 율법의 무거운 짐을 지고 가다가 지친 자들을 부르시는 것입니다. 그들은 율법을 지키지 못하니 정죄함을 받는 자들이에요.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에게, 왜 율법을 지키지 못하느냐?” 꾸중을 듣고, 죄인이라고 정죄를 받고, 때로는 마을에서 추방을 당하여, 성 밖으로 쫓겨나기도 하는 자들입니다.

 

주님은 그런 불쌍한 인생을 보시며 부르시며 안식으로 초청하십니다.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그러시면서 하시는 예수님의 말씀은 따뜻합니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무슨 말씀입니까? 다르다고 하는 거에요. “율법을 강조하고, 정죄하는 바리새인이나 서기관들과 달리,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단다.” 예수님은 그러시다는 것입니다.

 

이어 하시는 말씀이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11:29~30) 바래새인들과 서기관들이 강조하는 수 많은 율법, 그 멍에를 메지 말고,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여러분, 예수님도 멍에가 있으세요. 그리고 우리에게 그 멍에를 메라고 하세요. 놀랍지요? 그런데 그 예수님의 멍에는 쉽다고 하시고, 또 가볍다고 하세요. 그래서 마음이 쉼을 얻는다고 했어요. 여러분, 이런 멍에라면 메고 싶겠지요? 그래서 짐을 지고서도, 진정한 안식과 마음의 쉼을 얻는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아마도 제가 메겠습니다. 아니요, 제가 메겠습니다.” 서로 메려고 하겠지요.

 

그렇다면 예수님이 지신 그 멍에는 어떤 멍에일까요? 어떤 짐일까요? 어떤 짐이기에 우리를 부르시고 너희도 메라고 하실까요? 그리고 곁에서 배우라고 하실까요? 이것이 오늘의 멧세지의 주제입니다.

 

이 멍에는 곧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입니다. 즉 하나님의 사역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예수님께서 행하신 일이에요. 예수님은 수 많은 일들을 하셨고, 그 모든 일이 우리에게 감동을 주기에 충분합니다. 크게 세 가지로 보면 첫째, 천국복음으로 전하셨고, 둘째, 천국시민으로 살아가는 모습을 가르치셨고, 친히 본으로 보이셨으며, 셋째, 병든자, 어려운 자, 슬픔에 잠긴 자, 가난한 자, 방황하는 자..., 사랑으로 돌보시고 다시 일어나도록 도우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셨습니다. 이러한 사역이 곧 예수님의 멍에였어요.

 

그런데 우리에게도 하라고 하시는 거에요. 그 멍에를 메라고 하시는 거에요. 아이고~! 힘들어요. 버거워요. 예수님이시니까 하시지 저는 아니에요.” 그런데 예수님이 말씀하시기를 그 멍에를 메고, 멀리 있지 말고, 혼자 하려고 애쓰지 말고, 내 곁에서 내게 배우라 말씀하세요. 그러면 멍에가 멍에가 아니에요. 오히려 쉼과 안식을 얻으며 그러기에 기쁘고 즐겁겠지요.

 

여기에 은혜의 비밀이 있습니다. 싫어도 억지로 행하는 율법이 아니에요. 분명 사역이니 일은 일인데, 신기하게도 그 일로 인하여 기쁘고 즐겁습니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겠어요? 그렇게 멍에를 메는 자에게 하나님의 신비하고 신령한 은혜가 임하기 때문이에요.

 

선교사님들을 보세요. 누가 나가라고 밀어서 나갔나요? 그 먼 나라 상황도 불안하고, 환경적으로 열악하고, 우리가 가서 보면 한 달도 못살 것 같아요. 그런데 스스로 자원하여 나갔어요. 그리고 기쁨으로 멍에를 집니다. 하나님의 사역을 기쁨으로 감당하니, 들어오라고 해도 안들어와요. 지진 중에도 안들어오고, 코로나로 많은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는데도 안들어와요. 우리교회 파송선교사들이 하나같이 그랬어요. 참 신비하지요? 왜 그렇겠습니까?

하나님께서 부어주시는 은혜 때문이에요. 그래서 거기에는 억지가 없어요. 자유함이 있습니다. 자신이 좋아서 합니다. 이 모습이 은혜로 주어진 구원의 역사에요. 억지로 부과한 율법으로서가 아닌 것입니다.

 

아프리카의 성자 알버트 슈바이쳐가 그랬지요. 인도 콜커타의 마더 데레사가 그랬지요. 전쟁터에서 간호사 나이팅게일이 그러했고, 그렇게 땀을 흘려 번 수많은 돈으로 교회를 세우고, 학교를 세우고, 어려운 자들을 도왔던 인생 55세 이후의 록 펠러가 그러했습니다. 이런 인물들을 손꼽자면 수도 없어요.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은혜로 임한 구원, 그 심령에는 성령이 주시는 필요한 지력과, 체력, 영력으로 채워주시니 자원하여 기쁨으로 멍에를 진 것입니다.

 

많은 헌금을 드리면서도 오히려 기뻐하고 즐거워하고, 그런 모습, 세상 믿지 않는 사람들이 보면 당연히 이해가 되지 않겠지요. 내가 가진 것을 나눠주면서, 마음은 부자가 되고,

계속 같은 내용이요, 주제입니다. 율법은 속박이요, 복음은 자유요, 율법은 종이 지는 멍에요, 은혜로 받은 복음은 주와 함께 지는 멍에인 것입니다.

 

오늘 말씀이 결론이 그것입니다. 성경 본문 51절 말씀을 함께 읽고 말씀을 마칩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건하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5:1)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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