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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라디아서 강해 05] 율법은 몽학선생(초등교사)
운영자 2022-03-11 추천 1 댓글 0 조회 1322
[성경본문] 갈라디아서3:23-29 개역개정

23. 믿음이 오기 전에 우리는 율법 아래에 매인 바 되고 계시될 믿음의 때까지 갇혔느니라

24. 이같이 율법이 우리를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초등교사가 되어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게 하려 함이라

25. 믿음이 온 후로는 우리가 초등교사 아래에 있지 아니하도다

26. 너희가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으니

27.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기 위하여 세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 입었느니라

28.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

29. 너희가 그리스도의 것이면 곧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약속대로 유업을 이을 자니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율법은 몽학선생(초등교사)

 

갈라디아서를 통해서 우리는 구원이 어떻게 임하는가를 배우고 있습니다. 율법이냐? 믿음이냐? 라는 질문을 통해 구원은 율법을 지킴으로서 얻는 것이 아니라, 이미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이루신 구원의 사건을 내가 믿음으로 이루신 구원이 내게 임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러면 율법의 기능과 역할이 무엇이냐? 왜 하나님께서 율법을 주시고 지키게 하셨는가에 대하여서도 말씀을 통해 알게 되었습니다.

 

첫째로, 죄성을 갖고 태어난 인간이 더 이상 타락하지 않고, 그나마 선을 행하게 하시기 위하셔 율법을 주셨다고 했습니다. 오늘날 질서를 세우기 위한 우리 사회의 법과 같다고 했습니다.

둘째, 율법을 주신 이유는 사람이 그것을 다 지킬 수 없구나!” 인간은 연약하고 부족한 존재구나!” 하여, 인간의 능력의 한계성을 깨닫게 하시기 위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셋째, 그러므로 우리가 율법으로는 구원을 받을 수 없으니 어쩌면 좋을 꼬!” 깨닫게 하시고, 따라서, 하나님의 도우심을 바라게 하시기 위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구원을 이루지 못하는 죄인 된 인류를 위하여 값없이 은혜를 베푸셨으니, 그것은 죄사함을 위해 제물되기를 자원하신 성자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의 대속으로 인류의 죄를 용서하시고, 이를 믿는 자마다 구원을 얻게 하신 것이라고 했습니다.

 

사도바울은 오늘 갈라디아서 3장 후반부의 말씀을 통해서 유대교 교사들의 그처럼 강조하고 갈라디아 교인들이 지키기를 바라는 율법이 무엇이냐? 또 다시 설명하고 있습니다. 구원과 연관하여 율법이 기능과 역할에 대해 알게 하십니다.

 

이번에는 쉽게 설명하고자 한 비유를 들었어요. 율법은 마치 초등교사와 같다 하는 것입니다. 324절을 함께 보시겠습니다. 이같이 율법이 우리를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초등교사가 되어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게 하려 함이라(3:24)

 

과거 한글개역성경에서는 이 초등교사를 몽학선생이라는 단어로 사용했었습니다. 율법은 초등교사와 같다. 몽학선생과 같다.” 이 몽학선생의 비유를 들었을 때에 갈라디아 교회 교인들은 무슨 뜻인지 금방 이해가 되었을 것입니다.

 

몽학선생이란 말의 원어는 파이다고고스란 성경원어를 번역한 것인데, 이들은 헬라와 로마시대에 유력한 가문의 아이를 지키고 돌봐주는 종이었습니다. 하는 역할은 주인의 아이가 7살 때부터 17살이 될 때까지 아이가 다치지 않도록 곁에서 지켜보고 또 위험한 행동은 하지 않도록 알려주었습니다. 예를 들어 아이를 학교나 체육관까지 데려다 주고, 또 데려오고, 길을 다닐 때에 안전하도록 보호하는 역할도 했습니다.

 

그러나 아이에게 교과목을 가르치거나 감독하는 일을 하지는 않았습니다. 그 일은 학교의 선생님이나 가정교사의 역할이었습니다. 이 몽학선생의 모습이 어떤 모습인지 그림이 그려지시나요?

 

주인 집 아이가 장성한 후에는 더 이상 몽학선생의 역할이 없습니다. 그러나 아이가 자라나는 과정에 몽학선생의 역할은 필요합니다. 예를 들어, 길을 걸어 갈 때에 말이나 수례가 다가오면 옆으로 피해서야 한다.” “다른 사람의 방 앞에서는 노크를 해야 한다.” “밥을 먹을 때에는 흘리지 말고 먹어야 한다.” “신발을 꾸겨 신으면 안된다.” “복도를 걸을 때에는 한쪽편으로 걸어야 하고, 남들에게 방해가 되지 않도록 뛰어다니면 안된다.”

 

아이의 안전과 기본 예의를 지키도록 겉으로 들어나는 행동거지를 바로 잡아 주는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몽학선생은 여전히 종입니다. 주인의 아들이 안전하게 잘 성장하기를 바라며 돕는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율법이 바로 그러하다는 것입니다. 아이가 장성하면 더 이상 몽학선생이 필요하지 않듯이, 예수를 믿고,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게 되면, 더 이상 율법의 굴레에 묶여 있지 않고, 자유함을 입는다는 것입니다. 한 마디로 말하면, ‘스스로 알아서 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지시 때문이 아니라, 이제는 몸에 배어서 익숙하게 행동하게 되니, 더 이상 몽학선생이 필요하지 않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제는 고인이 되셨지만 제가 장인어른을 볼 때마다 생각이 든 것은, 정말 법 없이 사실 분이다.”하는 것이었습니다. 늘 남을 먼저 배려하는 모습 때문이었습니다. 나 보다는 남을 먼저 생각하시고 행하시니 존경을 받을 수 밖에요. 그러나 그 모습이 의도적 가시적이 아니라 그저 몸에 배여 있으니 자연스럽습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가 예수를 믿으면서 행복해야 합니다. 자유함이 있어야 합니다. 그 행복과 자유함을 나눠줄 수 있어야 합니다. 보여주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몸에 행동과 언어에서 배어나오는 것이지요.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요? 마음에 평안이 있을 때에, 감사와 만족이 있을 때에 그럴 수 있을 것입니다.

 

내 영혼이 은총을 입어 구원받았습니다. 인간이 가장 두렵게 여기는 사망과 저주와 죄로부터 해방되었습니다. 인간으로서 이 궁극적인 문제가 해결되었으니 나머지는 부수적인 것들뿐입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에 내 안에 내주하시는 성령께서 지혜를 주십니다. 구원으로 인해 주께 감사하고, 주를 전심으로 사랑할 때에, 갈라디아서 522절 이하에 소개되지만, 성령의 열매, 우리의 심성에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의 열매가 열립니다. 자유함이 있어요. 감사가 있어요. 얽매이지 않습니다.

 

요것도 지켜야 하고, 저것도 지켜야 해!” 늘 율법에 묶여 살아요. 이제는 미성년자가 아닌데도 어른답지 못합니다. 자기만 보는 것도 아니에요. 남들까지 참견합니다. 지키지 못하는 사람들의 경찰관 역할까지 하려고 해요. 그 사람 때문에 교회 오기가 싫어요. 문제는 자신이 잘 하고 있는 줄로 알고, 그래야 구원받은 자요, 구원받는 줄로 아니 문제입니다.

 

그러면 율법의 굴레로부터 자유로운 모습을 어디에서 봅니까? saint라고 하는 성인들에게서 보겠지요. 아프리카의 성자라 일컫는 알버트 슈바이쳐, 인도의 빈민가에서 죽어가는 사람들을 돌본 마더 데레사, 사랑의 원자탄 손양원 목사님, 한국의 슈바이쳐라고 하는 장기려 박사님 등등...., 하나같이 누가 시켜서 억지로 한 것이 아니요, 자원하여, 그것이 좋아서, 기쁨으로, 율법에 얽매여서가 아니라, 자유함을 입고, 복음으로, 구원으로 살아간 사람들입니다.

 

이 시대 우리 주변에도 그런 사람들이 있나요? 그럼요. 왜 없겠어요. 최근에 지난 39일 조선일보 신문기사를 통해 보았습니다. 제목이 벌어서 남 주자, 113억 기부하고 떠난 99세 의사였습니다. 장응복 씨, 본인 전 재산인 113억원을 지난 2015년부터 2020년까지 6년 동안 한동대에 기부하였습니다. 장학금의 혜택을 받고 공부한 학생들이 250명이나 된다고 했습니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던 그는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는 성경 구절처럼, 자신의 생전엔 기부 사실을 외부에 알리지 말라고 해서, 이 아름다운 얘기가, 지난 36일 이 분이 노환으로 세상을 떠나고 나서야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모습 기뻐하셔서 장수의 복을 주셨을까요? 99세의 일기로 하나님의 품에 안겼습니다.

 

1923년 황해도에서 태어난 그는 평양의학전문학교를 나와 의사 생활을 하다 한국전쟁이 발발한 195012월 피란길에 올랐고, 그 뒤 서울 용산구 한남동에 개인 병원인 장의원을 열고 30년간 일했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많은 돈을 벌었으면서도 늘 검소하게 살아서, 아들이 셋이 있는데 아버지가 돈이 있는 줄로 몰랐다고 했습니다. 자기 소유의 자가용 한 대 없이, 대중교통을 이용했고, 옷도 아내인 김영선씨, 지금 93세에요. 아내가 손수 뜨개질한 것을 즐겨 입었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저금한 재산은 미래 세대를 돕는 일에 쓰기로 작정하고, 2015357000만원을 시작으로 2020년까지 매년 1~50억 원가량을 한동대에 기부했습니다. 왜 한동대인가? 한동대 표어가 배워서 남 주자에 감명 받아 벌어서 남 주자는 말을 종종 했다고 합니다. 아버지가 전 재산을 기부하겠다고 했을 때, 자녀들도 가족들도 흔쾌히 동의했다고 하니 물질에 얽매이지 않은 참으로 복된 신앙의 가정입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율법은 필요하고 중요한 것입니다. 그러나 거기에 얽매여 살면서 구원을 이루겠다고 하는 것은 믿음이 여전히 미성숙한 자의 모습입니다. 율법의 정신이 중요합니다. 그것은 하나님 사랑, 이웃사랑입니다. 그 정신을 지키며 살면 됩니다. 이 정신은 억지로 하는 것이 아니니, 율법을 넘어서서 위로부터 내려 주시는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가 임할 때에 비로소 가능합니다.

 

구원은 하나님의 은혜로 주어졌습니다. 내가 노력하여 얻는 것이 아닙니다. 십자가에서 이루신 그 사랑을 감사하며 믿음으로 받으면 됩니다. 그럴 때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령으로 믿는 자의 심령가운데 거하시고 인도하시니, 감사하는 마음으로 따르면 복음의 능력으로 자유함을 얻습니다. 이 복된 인생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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