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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엘하 강해 27] 인도하는 자리에서 주의 인도함을 받는 자리로
운영자 2022-02-23 추천 0 댓글 0 조회 854
[성경본문] 사무엘하23:8-17 개역개정

8. 다윗의 용사들의 이름은 이러하니라 다그몬 사람 요셉밧세벳이라고도 하고 에센 사람 아디노라고도 하는 자는 군지휘관의 두목이

9. 그 다음은 아호아 사람 도대의 아들 엘르아살이니 다윗과 함께 한 세 용사 중의 한 사람이라 블레셋 사람들이 싸우려고 거기에 모이매 이스라엘 사람들이 물러간지라 세 용사가 싸움을 돋우고

10. 그가 나가서 손이 피곤하여 그의 손이 칼에 붙기까지 블레셋 사람을 치니라 그 날에 여호와께서 크게 이기게 하셨으므로 백성들은 돌아와 그의 뒤를 따라가며 노략할 뿐이었더라

11. 그 다음은 하랄 사람 아게의 아들 삼마라 블레셋 사람들이 사기가 올라 거기 녹두나무가 가득한 한쪽 밭에 모이매 백성들은 블레셋 사람들 앞에서 도망하되

12. 그는 그 밭 가운데 서서 막아 블레셋 사람들을 친지라 여호와께서 큰 구원을 이루시니라

13. 또 삼십 두목 중 세 사람이 곡식 벨 때에 아둘람 굴에 내려가 다윗에게 나아갔는데 때에 블레셋 사람의 한 무리가 르바임 골짜기에 진 쳤더라

14. 그 때에 다윗은 산성에 있고 그 때에 블레셋 사람의 요새는 베들레헴에 있는지라

15. 다윗이 소원하여 이르되 베들레헴 성문 곁 우물 물을 누가 내게 마시게 할까 하매

16. 세 용사가 블레셋 사람의 진영을 돌파하고 지나가서 베들레헴 성문 곁 우물 물을 길어 가지고 다윗에게로 왔으나 다윗이 마시기를 기뻐하지 아니하고 그 물을 여호와께 부어 드리며

17. 이르되 여호와여 내가 나를 위하여 결단코 이런 일을 하지 아니하리이다 이는 목숨을 걸고 갔던 사람들의 피가 아니니이까 하고 마시기를 즐겨하지 아니하니라 세 용사가 이런 일을 행하였더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인도하는 자리에서 주의 인도함을 받는 자리로

 

어느 단체에서든지 지도자 한 사람은 너무나 중요합니다. 그 한사람의 지도력을 통해 잘 되는 단체가 있는가 하면, 또 어떤 단체는 지도자 한 사람의 부족한 지도력 때문에 망하는 경우를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한 스승 아래에서, 동기로서, 똑같이 공부를 하고, 똑같은 훈련을 받았어도, 결과가 전혀 다르게 나타납니다. 개인이 가지고 있는 기질과 체력과 생각과 자라온 배경에 따라 전혀 다른 리더쉽을 행사하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의 두 왕인 사울와 다윗의 비교를 통해서도 우리는 금방 알 수가 있습니다. 또한 다윗과 그의 아들 솔로몬을 통해서도 얼마나 서로 다른지를 볼 수 있습니다.

 

오늘 사무엘하 238절 이하는 다윗의 충성스러운 용사들에 대한 소개를 하고 있습니다. 다윗은 생사고락을 함께 했던 서른일곱명의 용사들의 이름을 주욱 열거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행했던 용감무쌍한 얘기들을 곁들이고 있습니다.

왜 그들은 다윗에게 충성을 다했을까요? 기름부음을 받는 왕이었기 때문이었을까요? 물론 그렇겠지요. 그런데 사울이나 다윗이나 똑같이 기름부음을 받고 왕의 자리에 섰습니다. 그 자리가 충성을 받을 자리인 것은 맞습니다. 그러나 분명히 사울에 비하여 다윗에게는 더 많은 충성을 다하는 부하들이 있었어요. 무엇을 보여줍니까?

 

다윗은 분명히 사람들을 포용하고 사랑하는 마음이 넓은 지도자였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에게는 사람들이 따랐습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사랑받고 인정받기를 원합니다. 그러기에 자기를 인정해주는 사람을 따르며, 그를 위해서 목숨까지 바치면서 충성을 다 바칩니다.

 

오늘 성경에 등장하는 37명의 충성스러운 용사들 중에 소개되고 있는 세 명의 충절은 그 관계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다윗이 블레셋 사람들과 전쟁할 때에, 물을 마시고 싶었습니다. 그 때에 다윗은 자신의 고향 베들레헴 성문 곁의 우물물이 생각났습니다. 자랄 때에 어린 시절부터 갈증을 느낄 때마다 자신의 목을 시원하게 해갈 시켜주던 우물물입니다. 다윗은 그 바라는 심정을 그의 용사들이 있는 자리에서 말했습니다. 15절 말씀입니다. 다윗이 소원하여 이르되 베들레헴 성문 곁 우물 물을 누가 내게 마시게 할까 하매(삼하23:15) 그러면 가서 떠오면 되겠지요.

 

그런데 문제는 현재 다윗이 있는 산성으로부터 베들레헴까지는 약1.3Km 거리가 있고 그 가는 길은 르바임 골짜기를 따라서 가야 하는데, 블레셋 군대가 진을 치고 있습니다. 그곳의 물을 가져오려면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고, 적진을 뚫고 가야하고, 또 올 때에도 그리해야 합니다.

 

주군 다윗의 말을 들은 용사 중에 세 용사가 다윗 왕 모르게 은밀히 그 일을 추진합니다. 왜 그렇게 했겠습니까? 시켜서 한 일이 아니에요. 다윗은 소원을 말 했을 뿐인데, 그들이 그렇게 행하는 이유는 주군 다윗의 마음을 기쁘게 하고 싶어서였겠지요. 생명의 위협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을 추진하고, 결국 그 일을 이룹니다. 충성심의 결과입니다.

 

그 세 용사가 그의 소원대로 정말 그 위험을 무릅쓰고 베들레헴의 물을 길어왔을 때에 그들을 보는 다윗은 깜짝 놀라고 그의 마음에는 큰 감동이 일었습니다. 그러기에 그 사건을 이렇게 성경에 기록했겠지요. 19절 후반부에 보니 다른 훌륭한 용사들 중에, 적군을 삼백 명이나 죽여 큰 공을 세운 아비새를 그들과 비교하여 말합니다. 그러나 아비새도 첫 세 사람에게는 미치지 못하였더라

 

그런데 다윗이 그 길어온 물을 마실 수가 없었습니다. 그 물을 바라볼 때에는 마시고 싶었을지 모르나 그 세 명의 용사를 볼 때에 가슴에 찔림이 왔습니다. 17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이르되 여호와여 내가 나를 위하여 결단코 이런 일을 하지 아니하리이다 이는 목숨을 걸고 갔던 사람들의 피가 아니니이까 하고 마시기를 즐겨하지 아니하니라 세 용사가 이런 일을 행하였더라(삼하23:17)

 

다윗은 그 물을 마시지 아니하고, 16절 후반부에 보니, 여호와께 부어드립니다. 그러면서 다짐을 합니다. 내가 나를 위하여 다시는 이런 일을 하지 않겠습니다. 이 물을 내게 가져오고자 충성된 용사 세 사람이 죽을 뻔 하였습니다.”

 

그러한 자신들의 군주인 다윗의 모습을 보는 부하들의 마음에는 어떤 생각이 들었을까요?

~! 우리가 어떻게 가져온 물인데~! 너무 아깝지 않는가!” 하는 생각을 가졌을까요? 아니겠지요. 그 물은 부하들의 피다. 그러므로 피는 여호와께 드려야 함이 마땅하지 아니한가?” 부하들의 생명을 염려하며 자신의 개인적인 만족을 위해 그 물을 마시지 아니하는 군주 다윗을 바라보며 더욱 존경하는 마음을 갖게 되었을 것입니다.

 

오늘의 말씀을 통해 우리가 배우는 영적교훈이 있습니다.

첫째, 인간의 생명은 결코 헛되이 허비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둘째, 모든 희생은 생명의 주인이신 하나님께 드려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셋째, 어떠한 생명이라도 인간의 사적인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희생되어서는 아니된다하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러나 교훈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습니다. 처음 주제로 돌아갑니다.

어떠한 단체나 국가나 교회나 구역이나 가정에 있어서도, 누군가를 지도하고, 인도해야 할 자가 가져야 할 덕목이 있으니, 단체나 교회나 구역이 함께 추구하는 궁극적인 목표 앞에 먼저 자신을 드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씀드립니다. 여러 사람을 인도하는 지도자라면, 자신을 따르는 자들과 함께 추구하고 목표하는 일에, 자신이 먼저 헌신하는 모범을 보여주지 못한다면, 그는 이미 지도자로서의 자질이 없다는 것입니다.

 

헨리 나우웬이라는 탁월한 영성신학자가 있습니다. 미국의 명문인 하바드와 예일대학교 신학부에서 목회학 교수로 사역하던 중, 마음에 채워지지 않은 영적 갈증을 느꼈습니다. 그것은 한 마디로 표현하면, 나도 행동하는 그리스도인이 되고 싶다 였습니다. 학교 강단에서 하는 일이란 항상 같았습니다. 자신이 배워온 지식과 생각과 깨달음을 학생들에게 전수하는 일이었어요. 교수가 그렇지요. 교수의 삶이 그렇습니다. 그런데 그의 마음에는 허전함이 일었습니다.

나도 행동하는 그리스도인이 되고 싶다.” “나의 손과 발과 나의 시간을 드리고 싶다. 나의 사랑을 필요로 하는 자들에게 사용하고 싶다.” 그래서 안식년이 되면 빈민가에서 어려운 사람들을 돕곤 했습니다.

 

예수님은 입을 열어 가르치셨지만, 그러나 행동으로 보여주셨으니, 죄인들과 함께 식사를 하고, 병자들에게 다가가서 그들의 슬픔을 보시고, 아픔을 체휼하시고 고쳐주셨습니다.

많은 날들이 그의 스케쥴 대로 진행되지 않았습니다. 말씀을 전하러 가시는 길에, 다윗의 아들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내가 보기를 원하나이다.” 눈이 보이지 않는 바디매오가 소리 소리를 지를 때에 가던 길을 멈춰 서셨습니다. 그리고 고쳐주셨습니다.

 

또 다시 가는 길에 열두해나 혈루병을 앓던 여인이, 그 군중으로 헤집고 다가와 예수님의 옷자락을 만졌습니다. 그러면 내가 치유함을 받을꺼야!” 하는 눈물겨운 믿음이 그 여인을 그렇게 움직이게 했던 것입니다. 그럴 때에 자신의 몸으로부터 기운이 빠져나가는 것을 느끼신 예수님은 가던 길을 멈추시고 그 여인을 온전히 고쳐주십니다.

 

예수님은 눈으로 보시고, 마음으로 느끼시면, 바로 손과 발로 행하셨습니다. 가르침과 행함이 떨어지지 아니하고 하나였던 것입니다.

 

결국 헨리 나우웬 교수는 그 하바드와 예일대학교의 교수직을 내려놓고, 카나다의 장애인 공동체 기관인 데이브레이크 공동체에 들어갑니다. 그곳에서 장애인들을 사랑하며 섬깁니다. 그가 입으로 전하는 신학적 가르침은 그들은 못 알아들어요. 그러나 오직 사랑으로 행하는 행동만이 소통의 방편이었습니다. 헨리 나우웬은 과거에 경험하지 못한 사랑의 충만한 빛이 그의 영혼을 새롭게 하는 것을 체험하며 그의 남은 생애를 살았습니다.

 

그가 리더쉽과 연관하여 이런 교훈을 남겼습니다. "From Leading to Being Led" 번역하면 인도하는 자리에서 인도함을 받는 자리로 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내가 누군가를 지도하고 인도하려면, 내가 먼저 주의 지도하심과 인도하심을 받는 자가 되라 그런 뜻입니다. 기도하시오 라고 가르치려면 내가 기도하는 자임을 보여주면 따라온다는 것입니다. 사랑으로 섬기십시오 가르치려면 내가 사랑하면 따라온다는 것입니다. 가장 귀한 것으로 주께 드리십시오 가르치려면 내가 나의 가장 귀한 것을 주님께 드릴 때에, 배우는 자들은 그 모습으로 따라온다는 것입니다. 무슨 말입니까?

 

누군가를 인도하려면, 그들을 가르치려면, 나를 따르라고, 순종하라고, 목청을 높이는 것이 아니라, 내가 주의 인도하심을 받는 자이면, 기도 할 때에 기도의 응답을 받는 자이면, 행하는 일이 주의 도우심으로 절로 되어가는 모습이 보이면......, 가르치는 자의 권위는 저절로 서게 되는 것이며, 그 모습으로 인해 따라오는 자들은 알고 깨닫고, 변화된다는 것입니다.

 

보십시오. 다윗은 그처럼 부하들이 생명을 무릅쓰고 구해온 그 귀한 물을 자신이 마시지 않고 주님께 드립니다. 그 때에 부하들이 무엇을 배웠을까요?

 

말씀을 마칩니다.

이 시대에, 정보가 난무하고, 지식이 난무하고, 내 생각이 옳다 라고 목청을 높이는 이 시대에, 누군가를 지도하고 가르쳐야 할, 지도자들, 특별히, 저를 포함해 한국교회 주의 종들과, 교회 안에 중직자들이, 나아가서, 일터에서, 사회에서, 가정에서, 이루어져야 할 지도자의 자세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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