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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엘하 강해 23] 나도 알지 못하는 하나님의 은혜
운영자 2022-02-15 추천 1 댓글 0 조회 646
[성경본문] 사무엘하20:14-22 개역개정

14. 세바가 이스라엘 모든 지파 가운데 두루 다녀서 아벨과 벧마아가와 베림 온 땅에 이르니 그 무리도 다 모여 그를 따르더라

15. 이에 그들이 벧마아가 아벨로 가서 세바를 에우고 그 성읍을 향한 지역 언덕 위에 토성을 쌓고 요압과 함께 한 모든 백성이 성벽을 쳐서 헐고자 하더니

16. 그 성읍에서 지혜로운 여인 한 사람이 외쳐 이르되 들을지어다 들을지어다 청하건대 너희는 요압에게 이르기를 이리로 가까이 오라 내가 네게 말하려 하노라 한다 하라

17. 요압이 그 여인에게 가까이 가니 여인이 이르되 당신이 요압이니이까 하니 대답하되 그러하다 하니라 여인이 그에게 이르되 여종의 말을 들으소서 하니 대답하되 내가 들으리라 하니라

18. 여인이 말하여 이르되 옛 사람들이 흔히 말하기를 아벨에게 가서 물을 것이라 하고 그 일을 끝내었나이다

19. 나는 이스라엘의 화평하고 충성된 자 중 하나이거늘 당신이 이스라엘 가운데 어머니 같은 성을 멸하고자 하시는도다 어찌하여 당신이 여호와의 기업을 삼키고자 하시나이까 하니

20. 요압이 대답하여 이르되 결단코 그렇지 아니하다 결단코 그렇지 아니하다 삼키거나 멸하거나 하려 함이 아니니

21. 그 일이 그러한 것이 아니니라 에브라임 산지 사람 비그리의 아들 그의 이름을 세바라 하는 자가 손을 들어 왕 다윗을 대적하였나니 너희가 그만 내주면 내가 이 성벽에서 떠나가리라 하니라 여인이 요압에게 이르되 그의 머리를 성벽에서 당신에게 내어던지리이다 하고

22. 이에 여인이 그의 지혜를 가지고 모든 백성에게 나아가매 그들이 비그리의 아들 세바의 머리를 베어 요압에게 던진지라 이에 요압이 나팔을 불매 무리가 흩어져 성읍에서 물러나 각기 장막으로 돌아가고 요압은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왕에게 나아가니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나도 알지 못하는 하나님의 은혜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의 인생은 하나님의 인도하심 가운데 살아갑니다. 저의 인생도 여러분의 인생도 주의 인도하심이 있어서, 오늘도 이렇게 기도하기 위해 주의 전에 나온 것입니다. 여러분의 의지대로 되는 것 같으나, 환경과 상황과 건강과 마음까지도 주장하시는 주님의 손길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우연이라고 생각하는 것들이 있습니다. 한 예로 천지창조가 그렇습니다. 무에서 유로 창조되니 과학적 해석으로는 도무지 답을 낼 수가 없어, 우연히 된 것이라는 궁색한 답을 냅니다. 또 이런 경우도 있습니다. 비행기를 타고 이동하는 승객 중에 한 사람이 갑자기 의식을 잃고 그 상태로 방치되면 죽을 상황인데, 마침 그 기내 안에 의사가 있었으므로 응급조치를 하고 살아나게 되었을 때에, 사람들은 말합니다. 그 사람 참 운이 좋았다!”

 

여러분, 하나님의 사전에 우연이란 없습니다. 또한 운이 좋아서 라는 상황도 없습니다. 시편 35절에 다윗이 고백합니다. 내가 누워 자고 깨었으니 여호와께서 나를 붙드심이로다 이 새벽에 우리가 잠에서 깨어나고, 생명이 유지되고, 그러므로 하루를 시작하는 것이 하나님의 손길로 이루어지는 일입니다. 어떻게 그렇게 하실 수 있을까요? 시편 1213절에 말씀합니다. 너를 지키시는 이가 졸지 아니하시리로다

 

사람의 생명과 연관하여, 사무엘상 26절에 이렇게 말씀합니다. 여호와는 죽이기도 하시고 살리기도 하시며 스올에 내리게도 하시고 거기에서 올리기도 하시는도다인간에게 미치는 복과 화에 대하여서는 사무엘상 27절에 말씀하십니다. 여호와는 가난하게도 하시고 부하게도 하시며 낮추기도 하시고 높이기도 하시는도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나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하나님께서 지켜 보호하셨음을, 하나님께서 상황을 그렇게 인도하셨음을 나중에야 알때가 있어요. 그런가하면 대부분이 나중에도 몰라요. 그저 부지불식간에, 알지도 못한 채 지나간 사건들이 수도 없이 많았다는 것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그것을 우리가 어찌 다 알겠습니까?

 

오늘 우리가 읽은 사무엘하 20장에도 역사의 뒤편에서 전쟁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봅니다. 한 여인의 지혜를 통해 수 많은 동족을 죽이고 죽여야 할 반란의 사건이 한 사람 반역자 세바를 죽이므로 끝이 납니다. 정말 다행한 일이었어요. 이스라엘과 동시에 다윗을 위해 베푸시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오늘 읽은 20장에는 다윗의 통치에 반대하여 반란을 일으킨 세바의 얘기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반란을 제압하고자 다윗 왕편의 요압장군이 다시금 대장군이 되어 반역자 세바와 그의 편에 있는 군대를 멸하고자 합니다. 반란군이 진치고 있는 성을 공격하게 되었어요.

 

이 전쟁은 결국 같은 동족을 죽이는 전쟁이 될 것이었습니다. 자연히 이 상황은 그 나라의 왕인 다윗에게는 큰 수치가 될 것이었습니다. 가뜩이나 아들 압살롬의 반역으로 인해서 무고한 동족 군인이 2만 명이나 죽었는데, 또 다시 반란이 일고, 동족상쟁의 끔찍한 일이 발생하게 될 것이니, 이는 그 나라를 다스리는 통치자 다윗에게, 심적으로도 너무나 견디기 힘든 상황이요, 하나님 앞에 한 없이 죄송한 일이 될 것이었습니다.

 

다윗은 이미 그의 아들 압살롬의 반역사건을 통해 철저히 회개하였습니다. 그 반역이 일게 된 것은 다윗의 죄로 인한 것이니, 다윗이 우리아 장수를 죽이고 그의 아내 밧세바를 취한 죄로 인해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내린 징계의 과정이었습니다. 다윗이 무엇을 깨달았을까요?

 

자신이 능력이 있고, 권세가 있다고 해서, 자신이 원하는 대로, 마음가는대로, 자신의 계획대로, 인생을 계획하고 디자인한다고 해서, 그대로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라고 여겼을지 모르지만, 그러지 못할 수도 있다는 것을 철저히 깨달았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많이 겸손해졌을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인생도 그렇지 않습니까? 실패로 인해 겸손해 집니다.

 

다윗은 공인이었으니 더욱 그러했어요. 양과 같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잘 먹이고 치라고 다윗을 목자로 세우셨으니 더욱 책임과 의무가 큰 자리였습니다. 지도자를 향한 하나님의 손길은 더욱 엄중합니다. 하나님께서 개인이 아니라, 가정을 넘어서서, 여러 사람을 다스리라고 권세를 주셨으니 더욱 더 그렇습니다. 그러한 하나님께서 불꽃같은 눈으로 지켜보시고, 잘못하면 매를 드시니, 사회적으로는 공의를 세우시고, 다윗 개인에게는 성품을 새롭게 하셨던 것입니다.

 

그런데 또 다시 반역이 발발한 것입니다. 반역의 발단의 요인이 있겠지요. 그것은 다윗이 속한 유다지파가 다른 지파들보다 더 큰 혜택을 받고 있다는 생각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오늘날로 말하면 지방색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한 나라의 대통령이 어느 지역 출신인가에 따라서 그 출신 지방에 주어지는 특혜, 혜택이 있을 수 있겠지요. 그러나 그 모습을 바라보는 다른 지방의 사람들은 심경이 불편한 것입니다. 다윗은 유다지파에 속해 있었습니다. 같은 편에 베냐민지파가 있었습니다. 나머지 다른 열지파가 유다지파에 비하여 자신들은 왕의 은총에서 배제되었다고 하는 불만이 커졌습니다. 그 요인이 담긴 전장, 사무엘 하 1943절을 찾아가 보시겠습니다.

이스라엘 사람이 유다 사람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우리는 왕에 대하여 열 몫을 가졌으니 다윗에게 대하여 너희보다 더욱 관계가 있거늘 너희가 어찌 우리를 멸시하여 우리 왕을 모셔 오는 일에 먼저 우리와 의논하지 아니하였느냐 하나 유다 사람의 말이 이스라엘 사람의 말보다 더 강경하였더라(삼하19:43)

 

왕을 모셔오는 일에 있어서 유다가 독차지 했다는 내용입니다. 압살롬의 반역이 평정된 후에, 요단강 동편에 피난해 있었던 다윗왕을 다시금 예루살렘으로 모실 때에 압살롬의 편에 있었던 열 개지파가 다윗 왕을 모시려고 했습니다. 전쟁에서 패했으니 잘 보이고도 싶었겠지요. 그런데 정작 요단강을 건넜을 때에, 유다지파의 고관들이 다윗을 섬기고 예루살렘으로 올라갑니다. 여기에서 이스라엘 열 개 지파가 뿔이 난 것이었습니다.

 

간접적인 불만이 다윗왕을 향했습니다. “왜 차별하십니까?”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차별받는다는 것은 결코 해피한 일이 아닙니다. 잘 하면 상이요, 잘못하면 벌을 받는 세상원리지만, 잘 하고자 하는데도, 능력이 부족하든, 실력이 없어서 그렇든, 무시당하고 차별당하면, 누구나 그 마음이 상할 수 있습니다. 참 주의해야 할 부분입니다.

 

이는 자녀를 대하는 부모와 자녀관계도 마찬가지요, 특별히 지도자의 위치에 있을 때에 더욱 주의해야 할 부분이니, 참으로 주의해야 할 것은, 따로 개인적으로 만나서, 사적인 시간을 갖는 것은, 지도자로서 참 주의해야 할 부분입니다. 늘 공평을 생각하고, 중립에 서 있어야 할 지도자는 그러기에 본질상 외로운 것입니다. 만나기로 하면 모두에게 공평히 개인적 만남의 시간을 가져야 하겠지요. 그럴 시간이 있나요.

 

목적을 이루기 위한 개인적인 만남은, 주의해야 하니, 차별의 시작이요. 이는 같은 동료들에게 시기심을 조장하는 계기가 됩니다. 이런 모습을 사람들은 정치한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중요한 결정은 공적인 자리를 통하여 발의하고 논의하고, 결정하는 것이 공정한데.....,

사전에 정치를 통해, 이미 결론을 내리고 나서, 명목상의 토론을 하는 모습들이 있습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빛의 자녀로서, 모든 것이 정오의 빛처럼, 빛 가운데 행하는 것이 주께서 기뻐하시는 성경적인 모습입니다.

 

다윗이 이 부분에서 찬찬하지 못했으므로, 열 개지파가 소외된 마음으로 하나가 되어 유대지파를 향하여 반기를 들고 일어나게 되었고, 이 모습은 전쟁으로 치닫게 된 것이었습니다. 또 수 많은 사람들이 전쟁으로 죽어야 할 상황이 된 것입니다.

 

그러나 이때에 하나님의 긍휼의 손길이 임합니다. 그것이 바로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내용이니, 한 여인을 통하여 전쟁이 종결되는 내용입니다. 요압의 군대가 성을 무너뜨리기 위해 그 높이에 달하는 토성을 쌓을 때에 성안에 있던 한 여인이 등장합니다. 16절의 말씀을 함께 보시겠습니다. 그 성읍에서 지혜로운 여인 한 사람이 외쳐 이르되 들을지어다 들을지어다 청하건대 너희는 요압에게 이르기를 이리로 가까이 오라 내가 네게 말하려 하노라 한다 하라(삼하20:16)

 

이 여인은 전쟁을 반대했습니다. 많은 동족이 죽는 것을 원치 않았어요. 그러므로 요압장군의 말을 듣고, 그가 원하는 반역의 주동자 세바의 목을 가져다주기로 약속하고 백성들과 함께 힘을 합쳐 이를 실행합니다. 그러므로 전쟁 없이 반란은 종결되었습니다.

 

이런 여인이 나타날 줄을 누가 예상했겠습니까? 다윗도, 요압도, 세바도 그 누구도 몰랐습니다. 오늘 성경은 무엇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까?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것입니다. 철저하게 회개하고 돌아온 다윗에게 긍휼을 베푸는 것입니다.

 

오늘도 그러시지 않겠습니까? 오늘도 나를 생명으로 깨우시고, 하루를 시작하게 하신 하나님, 그리고 이렇게 기도의 자리에 나오게 하신 하나님, 내가 알지 못하는 가운데, 주의 손길은 우리를 지키시고, 보호하시며, 여러분을 통해, 주의 선하신 뜻을 이루어가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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