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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엘하 강해 21] ‘나’ 보다 ‘우리’를 먼저 생각하는 지도자
운영자 2022-02-10 추천 0 댓글 0 조회 676
[성경본문] 사무엘하19:1-8 개역개정

1. 어떤 사람이 요압에게 아뢰되 왕이 압살롬을 위하여 울며 슬퍼하시나이다 하니

2. 왕이 그 아들을 위하여 슬퍼한다 함이 그 날에 백성들에게 들리매 그 날의 승리가 모든 백성에게 슬픔이 된지라

3. 그 날에 백성들이 싸움에 쫓겨 부끄러워 도망함 같이 가만히 성읍으로 들어가니라

4. 왕이 그의 얼굴을 가리고 큰 소리로 부르되 내 아들 압살롬아 압살롬아 내 아들아 내 아들아 하니

5. 요압이 집에 들어가서 왕께 말씀 드리되 왕께서 오늘 왕의 생명과 왕의 자녀의 생명과 처첩과 비빈들의 생명을 구원한 모든 부하들의 얼굴을 부끄럽게 하시니

6. 이는 왕께서 미워하는 자는 사랑하시며 사랑하는 자는 미워하시고 오늘 지휘관들과 부하들을 멸시하심을 나타내심이라 오늘 내가 깨달으니 만일 압살롬이 살고 오늘 우리가 다 죽었더면 왕이 마땅히 여기실 뻔하였나이다

7. 이제 곧 일어나 나가 왕의 부하들의 마음을 위로하여 말씀하옵소서 내가 여호와를 두고 맹세하옵나니 왕이 만일 나가지 아니하시면 오늘 밤에 한 사람도 왕과 함께 머물지 아니할지라 그리하면 그 화가 왕이 젊었을 때부터 지금까지 당하신 모든 화보다 더욱 심하리이다 하니

8. 왕이 일어나 성문에 앉으매 어떤 사람이 모든 백성에게 말하되 왕이 문에 앉아 계신다 하니 모든 백성이 왕 앞으로 나아오니라 이

제공: 대한성서공회

보다 우리를 먼저 생각하는 지도자

 

오늘 우리가 읽는 19장은 전쟁에서 승리한 다윗이 나라를 다시 하나로 만들고자 하는 노력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압살롬 편에 서서 다윗을 향하여 전쟁을 치렀으니 이제 분열된 그들의 마음을 돌이키는 것은 중요한 일이었습니다. 둘로 나눠진 마음을 다시금 한 나라의 백성으로 연합하는 그 과정이 참으로 쉽지 않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한번 분열된 백성들의 마음은 이처럼 하나가 되기가 어렵다는 것을 우리는 보게 됩니다.

 

이 위기의 때에 한때 이스라엘의 영웅이었던 다윗은 아들을 잃은 슬픔과 자신의 죄로 인해 나라가 휘청 거렸음에 죄책감과 우울감에 휩싸였습니다. 한 나라의 왕으로서, 그를 기다리고 있는 백성들을 생각하여, 그러한 감정을 씻어내고 다시금 분연히 일어서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였습니다. 어서 속히 회복이 되어야 하는데, 그 충격과 아픔은 다윗을 다윗답지 못하게 만들었습니다.

 

이러한 모습을 보면서 참 공인의 자리는 쉽지 않은 자리임을 알게 됩니다. 슬퍼도 슬프지 않은 것처럼, 아파도 아프지 않은 것처럼, 언제고 그를 믿고 따르며 지원하는 군중 앞에서, 강한 모습을 보여주어야 하는 것이 이상적인 지도자의 모습입니다. 따르는 자들은 언제고 강한 모습을 기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적인 일로 지도자가 자신의 감정을 다스리지 못하면 그 모습으로 인해 결국 백성의 사기가 떨어지게 되기 때문입니다.

 

저는 산돌중앙교회에서 담임목사로서의 리더쉽을 가지고 있습니다. 늘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감당해야 할 자리입니다. 저는 천성적으로 강한 성품의 소유자가 아닙니다. 온유하고 심미적인 성품을 갖고 있습니다. 직선적이지 않고 곡선적이며, 독단적이기 보다는 협의와 조정을 선호합니다. 그래서 저의 기도 중에 많은 부분이, 저의 리더쉽 계발입니다. 강할 때에 강하게 해 주세요. 하나님의 뜻이라면 칼이 목에 들어와도 물러서지 않고, 진리를 수호하는 일이라면 차라리 순교자가 되게 해 주세요.” 정말 그러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그런데 금년에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이 저에게 큰 힘이 됩니다. 고린도후서 610절의 말씀입니다.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유하게 하고, 아무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고후6:10) 맡겨주신 양무리를 목양해야 할 목회자에게 정말 꼭 필요한 말씀이죠.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유하게 하고, 아무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 정말 그러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습니다. 저를 위해서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이렇게 감정을 다스리는 일이 정말 쉽지 않아요. 그 모습이 다윗이 가져야 할 왕의 자세여야 했습니다. 그런데 다윗이 슬픔과 우울감에 젖어 있어요. 이제 다윗의 나이도 60이 넘었습니다. 체력과 야성과 패기가 넘쳤던 젊었을 때와 다릅니다. 총애하는 아들이 반란의 주역이 되고, 정적이 된 그 아들은 요압장군에 의해 당연히 목숨을 잃었습니다. 아들의 죽음을 슬퍼하자니, 생명을 걸고, 아들의 군대와 전쟁을 치룬, 자신의 편에 서 있던 군대의 사기가 땅에 떨어집니다. “우리가 왜 전쟁을 했나?” 하는 생각을 갖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 1절과 2절을 읽겠습니다. 어떤 사람이 요압에게 아뢰되 왕이 압살롬을 위하여 울며 슬퍼하시나이다 하니 2.왕이 그 아들을 위하여 슬퍼한다 함이 그 날에 백성들에게 들리매 그 날의 승리가 모든 백성에게 슬픔이 된지라(삼하19:1~2)

 

승리가 기쁨이 되어야 하는데 거꾸로 슬픔이 되었다고 했습니다. 다윗왕이 그런 모습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승리를 한 군사들과 백성들이 어떤 모습이 되었습니까? 3절 말씀을 함께 보시겠습니다. 그 날에 백성들이 싸움에 쫓겨 부끄러워 도망함 같이 가만히 성읍으로 들어가니라(삼하19:3) 전쟁에서 승리하였으나 패배한 군사처럼 부끄러워 도망함같이 가만히 성읍으로 들어가는 모습입니다.

 

그러한 때에 다윗의 모습은 어떠합니까? 4절을 읽습니다. 왕이 그의 얼굴을 가리고 큰 소리로 부르되 내 아들 압살롬아 압살롬아 내 아들아 내 아들아 하니(삼하19:4)

여전히 슬픔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다윗입니다.

 

이러한 때에 압살롬을 죽인 요압장군이 가만히 있지 못합니다. 첫째, 압살롬을 죽인 자신은 뭐가 됩니까? 둘째, 전쟁을 치러 승리한 군사들이 사기가 땅에 떨어졌습니다.

나라가 다시금 일어서야 하는데, 군주로서의 체통을 잃어버린 다윗의 모습을 보다 못한 요압이 나서서 다윗에게 직언을 합니다. 5절 말씀을 함께 보시겠습니다. 요압이 집에 들어가서 왕께 말씀 드리되 왕께서 오늘 왕의 생명과 왕의 자녀의 생명과 처첩과 비빈들의 생명을 구원한 모든 부하들의 얼굴을 부끄럽게 하시니

 

그러시면 안됩니다. 지금 그럴 때가 아닙니다.” 하는 신하의 충언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요압의 성품과 기질이 나타납니다. 권력을 지키기 위해서는, 강직하고, 직선적이고, 저돌적이고, 폭력적인 그의 기질입니다. 6절과 7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이는 왕께서 미워하는 자는 사랑하시며 사랑하는 자는 미워하시고 오늘 지휘관들과 부하들을 멸시하심을 나타내심이라 오늘 내가 깨달으니 만일 압살롬이 살고 오늘 우리가 다 죽었더면 왕이 마땅히 여기실 뻔하였나이다

7.이제 곧 일어나 나가 왕의 부하들의 마음을 위로하여 말씀하옵소서 내가 여호와를 두고 맹세하옵나니 왕이 만일 나가지 아니하시면 오늘 밤에 한 사람도 왕과 함께 머물지 아니할지라 그리하면 그 화가 왕이 젊었을 때부터 지금까지 당하신 모든 화보다 더욱 심하리이다 하니(삼하19:6~7)

 

지금 왕의 모습은 마치, 반역한 압살롬이 살고, 왕 편에 있는 우리가 다 죽었으면 하는 모습으로 비춰지니 삼가 하옵소서! 속히 전쟁을 치룬 군사를 격려하소서! 그렇지 아니하면 오늘 밤에 그 누구도 왕 편에 서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면 화가 미치게 될 것이니 젊었을 때부터 지금까지 당하신 화보다 더욱 심하리이다.” 그런 충언입니다. 틀린 말은 아니지요.

사울 왕으로부터 생명의 위협을 느끼고 피하여 도망할 때부터 곁에서 다윗을 호위했던, 다윗의 조카인 요압입니다. 누구보다 다윗을 잘 아는 요압장군이기에, 그렇게 강하게 말하지 아니하면 아니 될 것이라 생각하여, 아주 칼날 같은 직언으로 다윗에게 말한 것입니다.

 

그리고 다윗은 비로소 정신을 차리고 왕의 위치로 돌아갑니다. 둘로 나뉜 나라를 바로 세워야 합니다. 8절에 보니 왕이 일어나 성문에 앉았다고 했습니다. 정사를 보기 위해 다시금 일어선 모습입니다. 8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왕이 일어나 성문에 앉으매 어떤 사람이 모든 백성에게 말하되 왕이 문에 앉아 계신다 하니 모든 백성이 왕 앞으로 나아오니라 이스라엘은 이미 각기 장막으로 도망하였더라(삼하19:8)

 

성도 여러분, 우리가 오늘의 이 일을 통해 무엇을 배웁니까?

앞에서도 말씀으로 나누었습니다. 지도자의 자리는 하나님께서 세우시는 자리입니다. 로마서 131절에 말씀합니다. “(중략) 권세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바라(13:1)

 

지도자는 공의를 실천하는 자입니다. 지도자가 갖추어야 할 가장 큰 덕목은 나 보다는 우리를 먼저 생각하는 자 이어야 합니다. 그래서 쉬운 자리가 아니요, 힘든 자리입니다.

 

오늘날 위정자들이 국민들의 존경을 받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잘 아십니다. 나라고 하는 울타리 속에 갇혀서, 부여받은 권력을 모두가 아닌, 자신의 가족과 자녀의 유익을 위해 사용하지를 않나, 개인의 이익을 위해 사용하지 말아야 할 법인카드를 다른 목적으로 사용하지를 않나, 소위 내로남불이라는 신조어가 생겨나오는 이유들이 다 비슷합니다. 지도자들이 공익보다는 내편과 내 것을 먼저 챙기기 때문입니다.

 

더욱이 윤리와 도덕과 거룩을 추구하는 교회는 절대로 그러지 말아야 하겠지요. 그것이 무너지면 떠나는 것입니다. 몸도 떠나고 마음도 떠납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우는 것입니다.

 

두 번째로 배우는 것은 지도자의 곁에는 충언을 할 수 있는 진정한 동역자가 있어야 합니다.

권력에 아부하여 내 이익을 챙기려는 자가 아니라, 전체를 위하여, 공익을 위하여, 옳고 그름에 민감하여, 지도자가 실수로든 잘못된 판단을 할 때에,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자가 있어야 합니다. 그러한 자가 곁에 있음이 복인 것입니다.

 

요압은 그 성경이 포악하였으나, 나라가 다시금 서야 하니, 감정에 휩싸여 있는 다윗을 일깨웠습니다. 이런 신하가 있는 군주는 복 있는 자입니다. 그러면에서 다윗은 복 있는 자입니다. 그가 결정적인 죄를 범했을 때에 나단 선지자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오늘 요압장군이 있습니다.

 

세 번째로 배우는 것은, 충언을 듣는 지도자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윗의 됨됨이가 바로 그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8절에 왕이 일어나 성문에 앉았다고 했습니다. 슬프고 아픈 감정을 뒤로 하고 다시금 분열된 나라의 기강을 세우고자 일어선 모습입니다. 이 모습은 쉽지 않아요. 그러나 기도하는 자는 가능합니다. 하늘에 상전이신 하나님 앞에 겸손하기 때문입니다.

 

성도 여러분, 누구에게나 지도력을 발휘 할 때가옵니다. 가장으로서, 어머니로서, 직장에서, 상사로서, 학교에서 교사로서, 사업장의 사업주로서, 교회에서 중직자로서, 위정자로서....,

오늘의 교훈을 가슴에 담고 기도하시므로, 주께서 주신 권세를 모두를 위하여 잘 사용하시므로 주의 영광, 나에게 기쁨과 보람, 이웃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끼치시는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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