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돌새벽강단

  • 예배와 말씀 >
  • 산돌새벽강단
[에스더 강해 10] 惡의 멸망, 善의 승리
운영자 2021-07-09 추천 1 댓글 0 조회 692
[성경본문] 에스더9:20-28 개역개정

20. 모르드개가 이 일을 기록하고 아하수에로 왕의 각 지방에 있는 모든 유다인에게 원근을 막론하고 글을 보내어 이르기를

21. 한 규례를 세워 해마다 아달월 십사일과 십오일을 지키라

22. 이 달 이 날에 유다인들이 대적에게서 벗어나서 평안함을 얻어 슬픔이 변하여 기쁨이 되고 애통이 변하여 길한 날이 되었으니 이 두 날을 지켜 잔치를 베풀고 즐기며 서로 예물을 주며 가난한 자를 구제하라 하매

23. 유다인이 자기들이 이미 시작한 대로 또한 모르드개가 보낸 글대로 계속하여 행하였으니

24. 곧 아각 사람 함므다다의 아들 모든 유다인의 대적 하만이 유다인을 진멸하기를 꾀하고 부르 곧 제비를 뽑아 그들을 죽이고 멸하려 하였으나

25. 에스더가 왕 앞에 나아감으로 말미암아 왕이 조서를 내려 하만이 유다인을 해하려던 악한 꾀를 그의 머리에 돌려보내어 하만과 그의 여러 아들을 나무에 달게 하였으므로

26. 무리가 부르의 이름을 따라 이 두 날을 부림이라 하고 유다인이 이 글의 모든 말과 이 일에 보고 당한 것으로 말미암아

27. 뜻을 정하고 자기들과 자손과 자기들과 화합한 자들이 해마다 그 기록하고 정해 놓은 때 이 두 날을 이어서 지켜 폐하지 아니하기로 작정하고

28. 각 지방, 각 읍, 각 집에서 대대로 이 두 날을 기념하여 지키되 이 부림일을 유다인 중에서 폐하지 않게 하고 그들의 후손들이 계속해서 기념하게 하였더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의 멸망, 의 승리

 

오늘 성경본문, 91절은, 한 날에 대해 얘기하고 있습니다. 아달월 곧 열두째 달 십삼일입니다. 악한 자 하만이 유대인을 멸하기로 한 날이에요. 그러나 그 날에 역사는 완전히 반대의 모습이 되었으니, 그 날은 하만과 하만의 가족, 그리고 하만 편에서 유대인을 몰살하려면 자들이 죽는 날이 되었습니다. 하만 편에 서서 유대인을 멸살하려하던 자들이 많았습니다. 죽은 자의 수가 다 합치니 무려 75,800명이나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따르는 자들인 유대인에게 있어서, 이날은 하나님의 인도와 보호하심을 직접적으로 체험하게 된 구원의 날이요, 승리의 날이 되었던 것입니다. 영원히 잊지 못할 구원의 날이었어요. 그래서 유대인들은 이날을 명절로 삼아 부림절로 지켜 하나님의 주권적인 구원 섭리에 감사하는 날로 기념하고 있습니다. 지금도 유대인들은 이 날을 기념하여 명절로 지키고 있습니다.

 

부림절에서 부림이란 말의 뜻은 부르 라고 하는 단어에서 왔습니다. 부르라는 말은 페르시아어로 제비뽑는다 라는 뜻을 가지고 있어요. 악한 자 하만이 유대인을 제거하기 위한 날을 선정함에 있어 제비를 뽑아 정했습니다. 그런데 그 날이 거꾸로 자신이 멸망하는 날이 되었어요. 제비뽑는다라는 말이 명절 이름이 된 것입니다.

 

에스더의 요청에 따라 왕은 하만의 열 아들의 시체를 나무에 매달았습니다. 이 모습은 어찌 보면 참으로 잔혹한 행위입니다. 그러나 거기에는 목적이 있었으니 악한 마음을 품은 대적자들이 다시는 유대인을 박해하지 못하도록 엄중하게 경고하고자 했던 것입니다. 왕은 두 번째로 또다시 조서를 내려 하루 더 악인들을 살육 할 수 있도록 시간 연장을 허락하였습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대적자들의 재산에는 절대로 손을 대지 않았습니다. 이는 유대인들이 돈 때문에 잔인한 살상을 했다는 오해의 소지를 없애기 위해서였습니다.

 

이 사건을 보면서 우리는 한 사건을 기억하게 되니, 사무엘상 15장의 내용입니다. 사울왕이 아말렉 족속과의 전쟁 때에, 하나님께서는 사무엘을 통해 사울왕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아말렉 족속을 진멸하고 절대 전리품을 취하지 말라 명하셨습니다. 그런데 사울은 순종하지 아니했으니, 아말렉 족속을 진멸하되, 그들의 왕인 아각왕을 죽이지 아니하고, 또한 그들의 소유 중, 양과 소중에 가장 좋은 것을 취합니다. 사무엘이 진노하여, 왜 순종하지 아니하였느냐?” 물을 때에 하나님 여호와께 제사하려고 그렇게 했다라고 사울은 핑계를 댑니다.

 

그때에 사울을 향하여 한 사무엘의 말이 유명합니다.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삼상15:22) 거역하는 것은 점치는 죄와 같고 완고한 것은 사신 우상에게 절하는 죄와 같음이라(삼상15:23) 그 일로 사울왕은 왕의 자리에 오래 머물지 못할 것이라는 사무엘의 예언을 듣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완전히 다른 모습입니다. 아주 냉정하리만큼 아말렉의 후손인 하만과 그의 편에 서 있는 자들을 살육합니다. 그 수가 수산성에만 800명이요, 지방에서는 75,000명입니다. 이 모습을 보면서 그런 생각이 들지 않습니까? 좀 봐주지~! 좀 용서해주지~!”

 

성도 여러분,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께서는 공의의 하나님이 되시니, 믿음의 사람들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 악인들에게 하나님의 뜻을 보여주시고자 하십니다. 하나님을 무시하고, 그 마음은 완악하여 변하지 않고, 자신의 욕심대로 살고자, 갖은 죄를 범하는 자들에게 영원히 잊지 못할 아주 강한 사건으로 역사하여 보여주십니다. 본때를 보여주시는 것이에요.

 

예를 들어, 2차 세계대전에서, 아돌프 히틀러의 야욕과 일본제국의 태평양 전쟁에서 하나님은 전쟁하시는 하나님으로 등장하십니다. 자민족의 부귀영화를 명목삼아 평화를 깨뜨리고, 이웃나라를 침공하고, 수많은 사람들을 죽이고 숙청하는 모습은 아니다라는 것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도 보여주시는 교훈이 있으니 정당한 전쟁이라는 것입니다. 이 모습은 오늘날 법정용어로 소위 정당방위라는 것이에요. 개인이든, 단체이든, 누군가가 자신의 이익을 얻기 위해, 누군가를 침략하고, 공격하고, 생명을 빼앗거나 자유를 박탈하고자 할 경우, 방어할 권리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지 못하도록 상대를 제압하는 것은 정당하다는 것입니다.

 

침략하는 자들! 악한 자 하만의 행위가 그러했다는 것입니다. 미국의 본토인 하와이 진주만을 공격한 일본제국이 그러했다는 것입니다. 해방군이라는 명목 하에, 하나님을 무시하고, 남한을 공산화하고자 밀고 내려온 북한과 이를 도운 소련과 중국이 그러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16개 연합군이 동맹하여 적을 물리치고 남한을 자유대한민국으로 보호했던 것은 정당방위였다는 것입니다.

 

이 모습은 우리 개인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며 선한 일을 행하는 자들을 향하여 못되게 구는 자들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나쁜 사람에게 그런 어려움을 당하신 적이 없습니까?

 

이 모습은 고난당하는 다윗의 모습을 통해 우리가 배웁니다. 하나님의 신이 떠난 사울 왕이 온 정신이 아니었어요. 장차 왕이 되기로 기름 부음을 받은 다윗을 사울이 죽이고자 합니다. 다윗이 두려워하여 피합니다. 집에 돌아오지도 못하고, 심지어 숨을 곳이 없으니, 적국으로까지 들어가 미친 사람 흉내를 내며 겨우겨우 목숨을 부지합니다.

 

이럴 때에 하나님이 가만히 계시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공의의 하나님이십니까? 당연히 관여하시지요.

 

그런데 보십시오. 사울의 칼날로부터 다윗의 생명을 보호하시고 지키시지만, 그 날들이 10년이었습니다. 왜 그렇게 길게 고생하게 하시는가? 하나님의 손안에 두시고 다윗을 훈련시키십니다. 도망자로 사는 동안 이스라엘 땅의 지형지물, 곳곳을 다 알게 하십니다. 심지어 적국의 지형지세까지 다 익히게 하십니다. 장차 이스라엘의 성군으로 세우시기 위하여, 전쟁에서 한 번도 패하지 않을 왕으로 세우시기 위하여, 10년의 기간을 훈련시키신 것입니다.

 

그러나 때가 되었을 때에, 하나님은 다윗을 높이시니 다윗이 고백합니다.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차려 주시고 기름을 내 머리에 부으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23:5)

 

성도 여러분, 어려운 때에 있습니까?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베푸실 하나님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전화위복의 역사가 나타날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나는 나를 보호하시는 여호와의 손안에 있으니, 조금 만 더 참고 견디며, 믿는 자의 기백으로 살아가자! 승리의 날이 올 거야!” 애매히 어려움을 당할 때에 이 자세가 바로 믿는 자의 모습인 것입니다.

 

아울러 이처럼 냉정하리만큼 철저한 하만의 몰락과 살육을 통해 하나님께서 보여주시고자 하는 것이 있으니, 그 날에 그리하리라 라고 하는 멧세지를 주시는 것입니다. 그 날이 언제이겠습니까?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금 이 땅에 오시는 날입니다. 그날은 심판의 날입니다.

 

초림으로 오신 예수님은 구원주로 오셨습니다. 인류구원을 위해 십자가에 달리시기까지 섬김으로 사랑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그 모습만 기억하는 자들은 예수님은 사랑이시라” “이래도 저래도 예수님은 용서하실거야!” 과연 그런가요?

 

다시금 오실 예수님은 심판주로 오십니다. 우리가 신앙으로 고백합니다. 저리로써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시리라 무슨 말씀입니까? 예수 믿지 않고 죽어서 이미 무덤에 있는 자들까지도 다시 일으켜 세워 심판하시게 될 것입니다. 그들은 제2의 사망에 들어갈 것입니다.

 

산자들에게도 그 날은 심판의 날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을 떠나 자기 뜻대로, 자기 멋대로, 자기 옳은 대로 행하며 사는 자들은 불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영원한 지옥 불에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믿는 자들에게 그날은 축제의 날이 될 것입니다. 오늘 에스더서에 반전을 이루어 주시는 그 감사와 기쁨의 날인 부림절이 모든 믿는 자들에게 주어질 것입니다. 환난 중에도 끝까지 믿음을 지키고, 세상유혹에서 자신을 지켜 주를 섬긴 자들에게, 그날은 축제의 날이요, 기쁨의 날이요, 위로의 날이요, 영광의 날이 될 것입니다.

 

그 날을 소망 중에 기다리며 우리가 오늘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에게 절망은 없습니다. 어떠한 상황가운데에서도 부활신앙으로 살아갑니다. 이것이 에스더서가 우리에게 주는 멧세지요, 가슴에 담아야 할 영적교훈입니다.

 

오늘로서 에스더서를 마치겠습니다. 모두들 수고 많으셨습니다. 신앙에 도움이 되셨기를 바랍니다. 나라와 민족을 위한 기도의 시간이 되셨기를 바랍니다.

 

이어서 다시금 신약성경으로 돌아가 빌립보서를 묵상해 가겠습니다. 빌립보서는 옥중서신이에요. 감옥에 갇힌 바울은 그 환란의 때에 “Rejoice! 기뻐하라! 기뻐하라!" 를 수도 없이 외칩니다. 거기에는 이유가 있었어요. 코로나19로 모두가 어려운 이 때에 빌립보서의 말씀은 우리에게 힘이 될 것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자유게시판 목록
구분 제목 작성자 등록일 추천 조회
이전글 [빌립보서 강해 01] 특별한 교회, 빌립보 교회 운영자 2021.07.13 0 647
다음글 [에스더 강해 09] 주의 이름으로 이겨야 할 영적전쟁 운영자 2021.07.08 1 803

08610 서울 금천구 시흥대로75길 20 (시흥동, 산돌중앙교회) 산돌중앙교회 TEL : 02-803-1135 지도보기

Copyright © 산돌중앙교회. All Rights reserved. MADE BY ONMAM.COM

  • Today19
  • Total201,790
  • rss
  • facebook
  • facebook
  • 모바일웹지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