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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브리서 강해 15] 하늘의 본향을 사모하는 인생
운영자 2021-06-11 추천 0 댓글 0 조회 689
[성경본문] 히브리서11:13-16 개역개정

13. 이 사람들은 다 믿음을 따라 죽었으며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되 그것들을 멀리서 보고 환영하며 또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임을 증언하였으니

14. 그들이 이같이 말하는 것은 자기들이 본향 찾는 자임을 나타냄이라

15. 그들이 나온 바 본향을 생각하였더라면 돌아갈 기회가 있었으려니와

16. 그들이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들의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시고 그들을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느니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하늘의 본향을 사모하는 인생

 

어릴 적에 긴 겨울방학을 보내면서 친구들과 놀 때는 참 즐거웠습니다. 전기가 들어오지 않았던 마을이었으니 주로 집 밖에서 놀았습니다. 주로 땅 바닥에서 하는 놀이니, 구슬치기, 자치기, 땅따먹기, 오징어가이상, 딱지치기, 썰매타기, 팽이 돌리기 등등 참 놀이종류도 많았습니다. 그런데 요즈음 아이들은 땅 바닥을 놀이터 삼아 노는 것은 없고, 주로 실내놀이가 많지요.

 

그렇게 재미있게 놀다보면 시간가는 줄 몰랐습니다. 그런데 이 놀이를 멈추게 하는 소리가 있었으니, 그것은 마치 학교 수업시간이 끝남을 알리는 종치는 소리처럼 들리는 소리가 있었어요. “땡땡땡!” 종소리가 아니라, 사람 목소리였으니, 겨울철 짧은 해로 하루가 저물고, 저녁때가 되면, 연진아 밥 먹어라. 연정아, 밥 먹어라저녁밥 먹으러 집으로 오라는 할머니 목소리였습니다. 그러면 그 재미있던 놀이도 끝이 났습니다. 한 순간에 끝이 났어요. 누가 많이 따고, 많이 잃고, 적게 따고, 적게 잃고...., 미련도 없이, 뒤 돌아보지 않고 집으로 뛰었습니다.

 

우리의 인생이 그렇지 않을까요? 열심히 땀을 흘리고 수고하며 살아요. 딸 때는 인생이 재미있어요. 그러나 잃을 때에는 기가 죽어요. 때로 아프면 놀지도 못하고, 집안에 갇혀, 밖에 놀고 있는 친구들이 너무 부러워요. 함께 친구로 놀다가도 지거나 잃기 시작하면, 감정이 예민해 져요. 그래서 다투기도 해요. 더 많이 따고 싶어 기를 써요.

 

그러나 주께서 부르시면 다 놓고 떠나야 해요. 그 인생의 날이 길면 100년이에요. 짧으면 대중없어요. 광주에서, 건물붕괴 참사처럼, 사랑하는 늦둥이 아들 생일상 차리러 시장에 가려고, 버스에 올랐다가, 잠깐 버스 정류장에 멈추어 선 버스위로 건물이 무너져 덮치니 그렇게 갑자기 떠날 수도 있어요. 너무도 가슴이 아픕니다.

 

성도 여러분, 이 땅에 살아가는 동안에는 어디에 어떤 모습으로 살든 나그네 인생입니다. 불교에서 기독교로 개종한 시인 박목월 시인은 빠르게 흘러가는 나그네 인생길을 이렇게 노래했어요. 강나루 건너서 밀밭 길을/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길은 외줄기 남도 삼백 리/ 술 익는 마을마다 타는 저녁놀/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참 세월이 빠르지요. 구름이 흐를 때에 달은 더 빨리 가는 것 같고, 타는 저녁놀이 보이기 시작하면 곧 어두워지는 것이니, 때를 아는 새들도 집을 찾아 듭니다.

 

사람들은 떠날 줄을 안다고 하면서, 막상 준비하며 사는 인생은 많지 않습니다. 나이가 아주 지긋해지고, 내 몸도 내 것이 아니구나! 내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어~!” 피부로 와 닿을 때에야 갈 때가 되었음을 감지하지만, 뒤 돌아 보아 못 다한 일들로 후회가 많습니다.

 

죽음 앞에서 대부분의 후회는,

많이 사랑하지 못한 후회입니다. 부부든, 자녀든, 가족이든, 동료든.., 왜 그렇게 악착같이 벌려고 했는지! 그래서 사랑해야 할 시간을 잃어버린 것이 후회스럽고, 왜 그렇게 내 것만 챙기려고 했는지! 자신의 옹졸하고 인색했던 모습이 후회스럽습니다. 그래서 품지 못하고 사랑하지 못하고, 미움으로 보냈던 시간이 아깝고 아쉬운 것입니다.

 

그런데 믿음으로 산 사람들은 정작 죽음이 두려운 것이 아니에요. 예수님 말씀대로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라 살아서 예수를 믿었으니 영혼이 천국 저 하늘나라에서 영원히 살 것을 믿으니, 천국에서 먼저가신 분을 뵈올 생각에, 또한 나중에 천국에서 가족들과 자녀들도 교우들도 만나게 될 것을 믿으니, 나 먼저 갑니다. 나중에 뵈요.” 소망 속에 떠납니다.

 

그런데 무엇이 후회스럽습니까? 보통 사람들처럼 많이 사랑하지 못한 후회 있지요. 그런데 그것 뿐만 아니라, 또 다른 후회가 있으니, 내가 주님 사랑한다고 하면서, 얼마나 주를 위해, 시간과 물질과 봉사로 드렸는지..., 떠날 때가 되어서야 후회막급입니다.

 

성경은 요한계시록 1413절에 말씀합니다. 또 내가 들으니 하늘에서 음성이 나서 이르되 기록하라 지금 이후로 주 안에서 죽는 자들은 복이 있도다 하시매 성령이 이르시되 그러하다 그들이 수고를 그치고 쉬리니 이는 그들의 행한 일이 따름이라 하시더라(요한계시록 14:13)

 

주안에서 죽는 자들은 복이 있도다 아멘이에요. 그런데 그들이 수고를 그치고 쉬리니 이는 그들의 행한 일이 따름이라 하시더라 이 땅에서 살아가는 동안에 행한 일이 따름이라

 

필리핀 동료선교사님이셨던 신용태 선교사님이 당뇨로 인한 망막상실과 간과 신장이 기능을 잃어 복수가 차고 몸은 바싹 마르고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웠을 때에 저의 손을 잡고 했던 말씀이 기억납니다. 막상 주님을 뵙는다고 생각하니, 내가 주를 기쁘시게 한 일이 뭔 일이 있나? 더 많이 충성했어야 했는데...., 그 부분이 많이 생각됩니다.” 그러시는 거에요.

 

성도 여러분, 오늘 본문의 말씀 14절에는 천국을 본향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우리 육신의 고향은 서울이요, 경기도요, 전라도요, 경상도요, 강원도와 충청도가 있겠지만, 육신이전에 영혼의 고향이 있으니, 저 하늘나라입니다. 본문에 연관되어 등장하는 인물은 아브라함과 사라입니다. 15절에 뭐라고 말씀합니까? 그들이 나온 바 본향을 생각하였더라면 돌아갈 기회가 있었으려니와

 

아브라함과 사라의 나온 바 본향은 갈대아 우르입니다. 그곳으로 돌아가려면 가겠지만, 아니라고 했어요. 16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그들이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들의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시고 그들을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느니라


하늘나라 영혼의 본향을 사모한다고 했습니다. 아브라함과 사라를 사랑하시는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위하여 한 성을 예배해 놓으셨다고 했습니다. 성도 여러분, 하늘나라에는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해 놓으신 집이 있는데, 35평형을 넘어서 45평 또는 57평 아니 100평집을 넘어서서, 한 성을 준비해 놓으신다고 했어요. 생각만 해도 좋지 않습니까?

 

성도 여러분, 이 땅에서 우리가 주를 위하여 우리가 충성하며 행한 일이 그 마지막 아름다운 결실을 맺지 못하고 떠날 수도 있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신용태 선교사님의 그 마음을 가질 수 있어요. 내가 주님 앞에 내 놓을 수 있는 결과가 무엇인가?” 생각하면 부족함을 느끼지 않을 성도가 저를 포함하여 과연 얼마나 있을까요? 찬송가 143웬말인가 날 위하여 찬송가의 가사처럼, “3. 나 십자가 대할 때에 그 일이 고마워 내 얼굴 감히 못 들고 눈물 흘립니다. 4. 늘 울어도 눈물로써 못 갚을 줄 알아 몸 밖에 드릴 것 없어 이 몸 바칩니다.”

 

그런데 우리가 주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행한 일들은 아무리 작은 일이라도 하나님께서는 다 기억하십니다. 마음이 중요한 것입니다. 특별히 죄인 중에 부르셔서, 천사도 흠모할 직분으로 주시고, 주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시작한 일들, 내 비록 그 사명 다 감당하지 못했어도, 행하고자 하는 그 선한 마음을, 우리 하나님은 기억하십니다. 또한 그 출발이 아름다운 결과로 이어지도록 행하십니다.

 

오늘 본문의 아브라함과 사라는 땅과 후손과 민족의 복이 약속되었고, 그 약속을 믿으며 사명에 충실했습니다. 그러나 살아생전에 그는 하나뿐인 아들 이삭을 얻었을 뿐이에요. 성경본문 13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이 사람들은 다 믿음을 따라 죽었으며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되 그것들을 멀리서 보고 환영하며 또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임을 증언하였으니

 

그러나 아브라함과 사라는 살아생전에 믿음으로 순종하므로 주신 사명 감당했어요. 이것이 우리가 배워야 할 긍정적인 인생의 태도입니다. 보십시오. 그가 떠난 이후에 그의 후손들이 계속 늘어갔습니다. 중다하고 번성하여 이스라엘이라고 하는 민족이 세워지고 그 후손 중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강림하시고, 이스라엘 민족은 오늘날도 전 세계에 영향력을 미치는 아브라함의 후손이 되었습니다.

 

이러한 진취적이고 긍정적인 모습이 오늘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것입니다. 비록 우리가 이 세상을 떠나 본향으로 간다고 해도, 여러분의 주를 위한 충성과 봉사로 인해, 여러분들의 자녀들이 복을 받게 될 것입니다. 우리의 애씀과 수고로 인해 미래의 산돌중앙교회는 더 큰 역사를 이루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지금은 보지 못해요. 그 전에 이 세상을 떠날 수 있습니다. 우리교회의 개척교회 당시 충성으로 섬기고 하늘나라 가신 분들이 바로 그런 모습이었지요. 그러나 나에게 주어진 하루, 하루 충성봉사하며 믿음으로 행했으니, 하나님께서 복을 주셔서, 우리가 오늘 이처럼 밝은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소망 중에 오늘도 충성하며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믿음으로 전진하시기 바랍니다. 뒤돌아보아 후회가 없는 복된 인생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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