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돌새벽강단

  • 예배와 말씀 >
  • 산돌새벽강단
[히브리서 강해 12] 예수의 피로 이루어진 속죄
운영자 2021-06-08 추천 0 댓글 0 조회 840
[성경본문] 히브리서9:11-22 개역개정

11. 그리스도께서는 장래 좋은 일의 대제사장으로 오사 손으로 짓지 아니한 것 곧 이 창조에 속하지 아니한 더 크고 온전한 장막으로 말미암아

12.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자기의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

13. 염소와 황소의 피와 및 암송아지의 재를 부정한 자에게 뿌려 그 육체를 정결하게 하여 거룩하게 하거든

14. 하물며 영원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흠 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너희 양심을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하지 못하겠느냐

15. 이로 말미암아 그는 새 언약의 중보자시니 이는 첫 언약 때에 범한 죄에서 속량하려고 죽으사 부르심을 입은 자로 하여금 영원한 기업의 약속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16. 유언은 유언한 자가 죽어야 되나니

17. 유언은 그 사람이 죽은 후에야 유효한즉 유언한 자가 살아 있는 동안에는 효력이 없느니라

18. 이러므로 첫 언약도 피 없이 세운 것이 아니니

19. 모세가 율법대로 모든 계명을 온 백성에게 말한 후에 송아지와 염소의 피 및 물과 붉은 양털과 우슬초를 취하여 그 두루마리와 온 백성에게 뿌리며

20. 이르되 이는 하나님이 너희에게 명하신 언약의 피라 하고

21. 또한 이와 같이 피를 장막과 섬기는 일에 쓰는 모든 그릇에 뿌렸느니라

22. 율법을 따라 거의 모든 물건이 피로써 정결하게 되나니 피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예수의 피로 이루어진 속죄

 

성도 여러분, 구원받는 길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로만을 통해서만이 가능합니다. 인류의 죄를 용서함 받도록 친히 십자가의 제물로 못 박히시고, 희생당하며 흘리신 예수님의 보혈의 공로를 믿어야 우리가 구원을 받습니다. 이것이 복음이요, 새롭게 세워진 새 언약입니다.

 

그런데 초대교회 당시 유대인들에게 이러한 예수님의 희생을 통한 구원은, 너무나 새로운 소식이었습니다. 그러지 않았겠습니까? 모세 때부터 시작되어 수천 년 동안 이어져 내려온 구원을 얻는 방편은, 제사를 통한 방법이었습니다. 짐승에게 나의 죄를 전가하고, 그 짐승을 죽여, 그 피를 성전의 제단에 뿌리는 방법으로, 죄 용서함을 받고, 구원을 받는다고 믿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를 믿으려면 이제 그 제사를 멈추어야 한다고 합니다. 당시에 이게 쉽지가 않았어요. 모두가 다 그렇게 믿고 있었는데, 내 이웃도, 고위 관리들도 백성이 민족이 믿고 지켰으니까요? 모두가 그렇게 믿고, 성전제사를 드리고 있는데, 나는 이제 안한다? 이 일이 보통일이 아니지 않습니까?

 

우리가 상상을 해볼 수 있습니다. 아직 기독교가 소개되기 전에, 유교의 제사방식에 따라 조상에게 제사상을 올리던 가정에, 선교사가 찾아와서 기독교 신앙을 전한다고 상상을 해 봅니다. 선교사님은 그러겠지요. 예수를 믿으려면 더 이상 조상 앞에 드리는 제사를 드리지 말아야 합니다.” 또한 장례를 치룰 때에도, 죽은 자의 영혼은 이 땅에 머물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 영혼이 예수 믿어 이미 하늘나라로 가셨으니, 시신 앞에서 절을 올릴 필요가 없습니다. 오직 생명의 창조주가 되시고 주관자가 되시며 구원자이신 하나님께만 절을 올리며 경배 드려야 합니다.” 이렇게 기독교 신앙을 소개할 때에, 조상대대로 내려오던 제사를 금방 딱 끊어버릴 수 있을까요? 더욱이 주변 이웃들이, 그리고 양반들과 관리들과 나라의 임금님까지 조상제사를 드리고 있는 상황인데 말입니다.

 

그래서 어떤 일이 발생했습니까? 박해사건이 있었습니다. 조선시대에 천주교가 전해지면서 믿는 사람들이 생기게 되니, 여러 박해 사건이 있었습니다. 1801년에 신유박해(300여명 희생), 1839년 기해박해, 1846년 병오박해, 병인박해 1866(8천여명 희생) 4대 박해사건이 있었습니다.

 

초대교회는 확실하게 전해야 했습니다. 그처럼 이스라엘인들이 전통적으로 지켜오던 유대교의 성전제사를 통한 구원의 방법을 왜 멈춰야 하는지, 왜 제사가 필요 없게 되었는지, 진리의 말씀에 근거하여 이해 시켜야만 했습니다.

 

우리가 묵상하고 있는 히브리서가 그러기에 기록되었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히브리서 9장에서 그 내용을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는 것입니다. 전통적으로 실행해온 구원의 방편, 성전에서 행해지던 제사모습에 대하여 설명을 합니다.

 

구약 시대에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들이 제사를 드리고 속죄를 받을 수 있도록 성소를 설치하게 하셨습니다. 이 성소는 임재하시는 하나님께 예배드릴 수 있는 유일한 장소였습니다.

 

성소는 성소와 지성소 둘로 나뉘어져 있었습니다. 성소에는 등대와 상과 진설병을 포함하여 여러 가지 성물들이 있었고, 지성소에는 만나를 담은 금 항아리와 아론의 싹난 지팡이와 언약궤가 놓여져 있었습니다. 제사를 드리기 위해 백성들을 대신하여 제사장들은 성소에 들어갈 수 있었고, 대제사장만이 가장 거룩한 장소라 하는 지성소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이 지성소에는 대제사장이라고 해서, 아무 때나 들어갈 수 있는 곳이 아니었습니다. 함부로 들어가면 그 자리에서 죽게 되었어요. 오직 대제사장만, 일 년에 한 번, 대속죄일인 710일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이 때 대제사장은 자신의 죄와 백성들의 죄를 대속하는 피의 제사를 제단에 드렸습니다.

 

속죄일이 되면 대제사장을 비롯해서 모든 제사장들과 백성들까지 자신을 정결하게 해야 했습니다. 자칫 부주의함으로 대제사장이 죽을 수 있었기 때문에, 대제사장의 옷 끝에는 방울을 달았습니다. 그래서 대제사장이 움직일 때마다 소리가 나게 했습니다. 밖에서 그 소리를 들을 때 대제사장에게 아무 일이 없음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만약 한동안 소리가 나지 않으면 대제사장은 필히 죽은 것이고, 이 때를 위해 대제사장의 허리에 매어 단 끈을 잡아당겨서 밖으로 끌어내도록 되어 있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왜 이렇게 지성소를 두려움의 장소로 만드셨을까요?

하나님은 그만큼 거룩하시고 또 거룩하시기에, 죄가 함부로 가까이 갈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철저한 죄사함 없이는 하나님께 나가갈 수가 없다는 뜻을 보여주는 지성소입니다. 그러므로 쉽게 허락되지 않는 장소가 지성소였습니다. 7절과 8절을 읽겠습니다.

오직 둘째 장막은 대제사장이 홀로 일 년에 한 번 들어가되 자기와 백성의 허물을 위하여 드리는 피 없이는 아니하나니 8.성령이 이로써 보이신 것은 첫 장막이 서 있을 동안에는 성소에 들어가는 길이 아직 나타나지 아니한 것이라

 

성소에 들어가는 길이 아직 나타나지 아니한 것이라고 했어요. 거룩한 자리에 들어가야 죄사함을 받는데 그 길이 아직 나타나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이렇게 대제사장도 들어가서 죽을지 모르는 지성소라면, 하물며 우리 평범한 인간이 감히 그 지성소에 들어갈 수 있을까요? 두려움에 떨며 들어가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기에 누가 이 지성소로 들어가는 길을 여셨는가? 죄 없으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 길을 여셨다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2750절과 51절에 이러한 말씀이 있습니다. 예수께서 다시 크게 소리 지르시고 영혼이 떠나시니라. 이에 성소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고

 

성소와 지성소 사이를 막고 있었던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찟어졌다는 죄의 문제의 해결을 위해 들어가야만 했던 지성소가 열렸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그 길을 여셨다는 것입니다. 보혈을 흘리신 그분의 희생이 죄를 위한 충분한 속죄임을 극적으로 상징해 보여주는 것이에요. 이제 지성소로 들어가는 길이 유대인과 이방인 모두에게 항상 열려 있게 된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제사장과 대제사상이 들어가서 죄사함을 위한 짐승의 피를 뿌리는 방법은 이제 더 이상 필요 없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오늘날 신약시대에는 짐승을 잡아 그 피로 들이는 제사는 없어요. 죄 없으신 가장 완전한 제물이신 예수 그리스도, 예수 그리스도가 친히 제물 되셔서 십자가에서 흘리신 그 보혈로 단번에 제사 드려졌기 때문입니다. 더 이상 다른 피가 필요없게 된 것입니다.

 

그러기에 더 이상 성소도 지성소도 그 역할과 기능이 사라졌습니다. 요한복음 219절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19.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 더 이상 사람이 세운 성전도 필요 없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예언대로 실제적으로 눈에 보이는 예루살렘 성전은 주후 70, 로마제국의 타이투스 장군이 이끌고 온 로마군에 의해 완전히 부서졌습니다. 돌 위에 돌 하나도 남지 않고 사라졌습니다. 서쪽 벽만이 남아있어요. 그것이 성전 본체가 아니라 성전 아래 기초부분입니다. 통곡의 벽이라고 부릅니다. 지금도 그 벽 앞에서 많은 유대인들이 메시아의 강림을 위하여 기도하고 있습니다. 과연 그 성전이 재건 될 까요?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사흘 동안에 다시 세우신 다는 것은 무엇이겠습니까? 요한복음 221절에 예수님의 말씀이 이러합니다. “21.그러나 예수는 성전된 자기 육체를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예수님은 사흘 동안에 세우겠다는 말은 사흘 만에 부활할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예언하신대로 사망의 쏘는 것을 이기시고 부활하셨습니다.

 

이 말씀 속에는 오늘 우리가 히브리서를 대하면서 배우는 성전, 성소, 지성소를 통한 속죄를 이해하는 중요한 진리가 있으니 예수님이 성전이 되셨습니다.”

 

구약시대 구원을 위해 짐승 피제사를 드리며, 대제사장을 통해 하나님께 용서를 빌고 용서함을 받고, 또한 하나님의 은혜와 은총을 구하며 그러기에 받을 수 있었던 축복이 이제 예수 안에서 이루어지게 된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가 참 성전 되신 예수 안에서, 죄의 용서함을 받습니다. 참 성전이신 예수 안에서 구원을 얻습니다. 참 성전이신 예수로 말미암아 복을 받습니다. 참 성전이신 예수로 말미암아 우리가 담대히 하나님께 나아갑니다. 믿으시기 바랍니다.

 

오늘도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우리의 아픔과 고통과 염원과 소망을 아룁니다. 우리가 무슨 자격으로 하나님께 나아가 아뢰겠습니까? 누구 때문이겠습니까? 그렇습니다. 우리를 사랑하시기에 저 천상을 떠나, 낮고 낮은 이 땅에, 우리와 같은 몸을 입고 강림하셔서, 인간의 수 많은 아픔으로 체휼하시고, 아파하시고, 자신의 몸을 드려 우리를 구원하신 예수님의 보혈의 공로로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와 기도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도 참 성전이시오, 대제사장되신 예수님과 더불어 승리하시는 복된 하루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자유게시판 목록
구분 제목 작성자 등록일 추천 조회
이전글 [히브리서 강해 13] 믿는 도리의 소망을 굳게 잡고 운영자 2021.06.09 0 718
다음글 [히브리서 강해 11] 새 언약의 대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 운영자 2021.06.05 0 677

08610 서울 금천구 시흥대로75길 20 (시흥동, 산돌중앙교회) 산돌중앙교회 TEL : 02-803-1135 지도보기

Copyright © 산돌중앙교회. All Rights reserved. MADE BY ONMAM.COM

  • Today61
  • Total201,832
  • rss
  • facebook
  • facebook
  • 모바일웹지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