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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강해 65] 내 마음이 약해질 때
운영자 2021-04-23 추천 0 댓글 0 조회 582
[성경본문] 시편61:1-8 개역개정

1. 하나님이여 나의 부르짖음을 들으시며 내 기도에 유의하소서

2. 내 마음이 약해 질 때에 땅 끝에서부터 주께 부르짖으오리니 나보다 높은 바위에 나를 인도하소서

3. 주는 나의 피난처시요 원수를 피하는 견고한 망대이심이니이다

4. 내가 영원히 주의 장막에 머물며 내가 주의 날개 아래로 피하리이다 (셀라)

5. 주 하나님이여 주께서 나의 서원을 들으시고 주의 이름을 경외하는 자가 얻을 기업을 내게 주셨나이다

6. 주께서 왕에게 장수하게 하사 그의 나이가 여러 대에 미치게 하시리이다

7. 그가 영원히 하나님 앞에서 거주하리니 인자와 진리를 예비하사 그를 보호하소서

8. 그리하시면 내가 주의 이름을 영원히 찬양하며 매일 나의 서원을 이행하리이다

제공: 대한성서공회

내 마음이 약해질 때

 

여러분 학창시절에 국어시간을 통해서 민태원 씨가 쓴 청춘예찬이란 제목의 수필을 보고 배운 적이 있었을 것입니다. 이렇게 시작합니다. 청춘! 이는 듣기만 하여도 가슴이 설레는 말이다. 청춘! 너의 두 손을 가슴에 대고, 물방아 같은 심장의 고동을 들어 보라. 청춘의 피는 끓는다. 끓는 피에 뛰노는 심장은 거선(巨船)의 기관(汽罐)같이 힘있다.”

 

청춘! 참 좋지요? 그런데 청춘이 그렇게 좋은 것인 줄, 이 수필을 배우던 청소년의 때에 무슨 감이나 있었겠습니까? 그런데 이렇게 저도 50대 후반이 되고 보니 그래 청춘은 참 좋은 것이야~! ~! 좋고 말고~!” 비로소, 그리고 격하게! 고개를 끄떡입니다.

 

나이를 먹고 언제부터인가 느낍니다. 내 몸이 내 몸이 아니구나~!” 걸음걸이는 느려지고, 눈은 총기를 잃었으며, 운동이라도 좀 하면, 온 몸이 쑤시는데 안 아픈 곳이 없어요. 성경 요절이라고해서 그렇게 달달 외웠는데, 뒤돌아서면 생각이 안 나요. 약속이라고 마음에 되뇌었는데 적어 놓지 않으면 까마득히 잊고 맙니다.

 

이 수필의 뒷부분이 이러합니다. 보라, 청춘을! 그들의 몸이 얼마나 튼튼하며, 그들의 피부가 얼마나 생생하며, 그들의 눈에 무엇이 타오르고 있는가? 우리 눈이 그것을 보는 때에, 우리의 귀는 생()의 찬미(讚美)를 듣는다. 뼈 끝에 스며들어 가는 열락의 소리다. 이것은 피어나기 전인 유소년(幼少年)에게서 구하지 못할 바이며, 시들어 가는 노년(老年)에게서 구하지 못할 바이며, 오직 우리 청춘에서만 구할 수 있는 것이다.”

 

청춘은 시들어가는 노년과는 너무나 구별이 된다는 표현에 기가 죽습니다. 그런데 마지막 구절은 좀 안 맞는거 같아요. 청춘은 인생의 황금 시대(黃金時代). 우리는 이 황금 시대의 가치를 충분히 발휘하기 위하여, 이 황금 시대를 영원히 붙잡아 두기 위하여, 힘차게 노래하며 힘차게 약동하자!”

 

이 황금시대인 청춘을 영원히 붙잡아 두기 위하여 힘차게 노래하며 힘차게 약동하자!” 라고 노래하고 있지만 청춘을 무슨 수로 영원히 붙잡아 둘 수 있단 말입니까? 그래서 제가 작가가 이 수필을 쓴 나이를 살펴보니 역시 젊은 날, 35살에 썼습니다. 그리고 불행하게도 그의 인생이 41, 청춘의 때에 청춘을 간직한 채, 폐결핵으로 세상을 떠납니다.

 

성도 여러분, 이 자리에 아직도 청춘인 분, 계십니까? 없어요? 그래서 여러분, 서럽습니까? “에고~! 시들어가고 있구나! 내 몸도 이제 내 몸이 아니구나~!”

 

오늘 성경본문의 다윗은 노년이 되었습니다. 그 푸르던 청춘은 사라졌습니다. 그 용기와 기개와 아름다운 미모와 튼튼한 건강은 더 이상 없습니다. 그런데 예기치 않은 일이 벌어집니다. 그의 가장 총애하는 아들인 압살롬이 아버지를 대항하여 정권을 찬탈하고자 반란을 일으킨 것입니다. 아버지가 왕이요, 아직도 퍼렇게 살아있는데, 어떻게 아들이 이런 일이 있을 수가 있겠습니까?

 

권력이 그런 것입니다. 권력이 갖는 마력이 있습니다. 빠져들면 눈에 뵈는 것이 없습니다. 친구지간에 인륜도, 형제와 부자지간에 천륜도 끊어집니다.

 

이런 상황에서 다윗이 좀 더 젊었으면 어땠을 까요?

그의 용맹과 권세가 여전히 푸르청청하기에 아예 이런 반란은 꿈도 꾸지 못했을 것입니다. 다윗이 좀 더 젊었더라면 당장 아들인 압살롬을 잡아다가 본때를 보여주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이제 다윗은 그 젊은 날의 기백과 체력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그가 고백합니다.

내 마음이 약해 질 때에 내 마음이 약해 질 때에 이 한마디에 노익장 다윗의 모습이 그대로 비춰집니다. 과거에는 그렇지 아니했습니다. 그래서 서러운 것이지요.

 

이제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국가 최고의 장군인 요압장군에게 그 전쟁을 맡기고, 본인은 요단강 동편으로 피난을 가는 것입니다. 이 상황에서 이제는 모든 것을, 100프로를, 하나님께 맡기고, 주를 의존하며 기도하는 것입니다.

 

이 자리에는 그런 성도님들 계실 것입니다. 자녀도 내 마음대로 못해요. 시대에 대처할 새로운 기술과 기발한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아요. 나를 존경하며 따르던 자들도 나를 향한 관심은 사라지고, 자신의 일들로 바빠요. 설상가상 내 몸도 날 따라주지를 않아요. 이러한 상황에서 감당키 어려운 일이 터진 것입니다.

 

이 상황이 오늘 시편 61편의 내용입니다. 다윗이 그러한 상황에 처했습니다. 그러한 때에 다윗은 그 상황을 어떻게 타개해 나갈까요? 함께 1절과 2절을 읽겠습니다.

“1.하나님이여 나의 부르짖음을 들으시며 내 기도에 유의하소서 2.내 마음이 약해 질 때에 땅 끝에서부터 주께 부르짖으오리니 나보다 높은 바위에 나를 인도하소서

 

내 마음이 약해 질 때에 그 다음에 뭐라고 했습니까? 땅 끝에서 주께 부르짖으오리니 땅 끝 땅 끝이 어디겠습니까? 피신해 가는 땅, 요단강 동편 광야, 하늘과 땅이 맡 닿은 곳, 그래서 땅 끝입니다. 그 땅 끝에서 주께 부르짖겠다는 것입니다. 죽느냐 사느냐 생명이 달려 있는 곳입니다.

 

성도 여러분, 이 땅 끝에서의 기도는 우리에게 깊은 영적 묵상의 실마리를 제공합니다. 여기에서 땅 끝은 생사가 달려 있는 기도의 장소입니다. 그 기도의 장소가 심신이 평안한 왕궁 안이 아닙니다. 평안할 때가 아니에요. 감당하기 어려운 고난의 극점에 처했을 때, 그야말로 무거운 짐을 나 홀로 지고 견디다 못해 쓰러질 그 자리를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땅 끝에서 주께 부르짖으오리니....” 다윗이 상상이나 했겠습니까? 노년이 그렇게 될 줄 꿈에나 알았겠습니까? 더군다나 가장 총애하는 아들이 그럴 줄 알았겠습니까?

 

성도 여러분, 우리의 인생여정에도 그런 날이 있습니다. 땅 끝으로 몰릴 때가 있어요. 재정의 땅 끝으로 몰리고, 건강의 땅 끝으로 몰리고, 자녀의 일로 땅 끝으로 몰리고, 명예와 권세에서도 추락하여 땅 끝으로 몰릴 때가 있습니다. 내 능력으로 일어설 수 있었으면 벌써 일어났을 거에요. 그러나 그 능력이 이제는 없습니다.

 

그 때에 다윗의 이어지는 간청이 있습니다. 2절 후반부입니다. 나보다 높은 바위에 나를 인도하소서!” 광야에 무슨 높은 산이 있으며 높은 바위가 있겠습니까? 나보다 높은 바위 무엇을 상징하는 것일까요? 그 답이 다음 절, 3절과 4절에 있습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3.주는 나의 피난처시요 원수를 피하는 견고한 망대이심이니이다 4.내가 영원히 주의 장막에 머물며 내가 주의 날개 아래로 피하리이다

 

나보다 높은 바위, 그 곳은 바로 하나님의 계신 곳입니다. 그곳이 바로 피난처요, 원수를 피하는 견고한 망대입니다. 날 보호하시는 주의 날개 아래요, 또한 편히 쉴 주의 장막인 것입니다.

 

나보다 높은 바위라고 했습니다. 다윗만큼 높은 바위가 있을까요? 한 나라의 왕 아니겠습니까? 모두의 존경을 받는 성군이요, 백전백승! 전투에서 진적이 없는, 모두가 두려워하며, 존경하며, 따르는 이스라엘의 왕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알아야 합니다. 그렇게 높은 바위와 같이 이스라엘의 최고의 왕이 되어 모두에게 존경을 받는 것 같으나 어디에나 100프로는 없어요.

 

사울왕의 편에 있던 자들이 있습니다. 권세를 잃어버린 자들이 되고 보니 싫은 것입니다. 다윗이 미운 것입니다. 그런가하면 아내 밧세바를 빼앗기고 억울하게 죽은 충신 우리아가 있습니다. 그 우리아를 사랑하는 자 중에 아히도벨이라는 자가 있습니다. 다윗이 미운 것입니다. 아히도벨이 누구입니까? 바로 다윗의 아들 압살롬을 편을 들고 다윗을 대적하게 된 것입니다. 아히도벨은 성경에 보니 밧세바의 친조부였습니다. 이 아히도벨이 우리아를 죽인 다윗을 죽여 집안의 원수를 갚고자 했던 것이었습니다(삼하23:34, 11:3 참조).

 

다윗은 영웅입니다. 존경받은 성군이요,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라고 했습니다. 왜 합한 자 이겠습니까? 철저히 자신의 잘못을 회개하고 새로워졌기 때문입니다. 나단 선지자가 충신 우리아를 죽이고 그의 아내인 밧세바를 취한 다윗을 엄중하게 꾸짖을 때에 웬만한 왕 같으면 나단을 죽이려고 하겠지요. 그러나 다윗은 깨닫습니다. 철저하게 회개 합니다. 하나님은 공의의 하나님이시니, 그와 밧세바 사이에 난 아들의 생명을 거두십니다. 그러나 다윗의 기도를 들으시고 긍휼을 베푸시니 그 이후에 난 아들인 솔로몬을 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우십니다.

 

다윗이 이제 노년이 되어 자신을 돌아보니 자신은 하나님 앞에 자랑할 것이 없어요. 압살롬과 함께 반란을 꾀한 아히도벨의 입장을 생각하니 피할 수 밖에 없어요. 그래서 성군 다윗인 것입니다. 다윗이 하나님 앞에서 다시금 무릎을 꿇는 것입니다. 나보다 높은 바위에 나를 인도하소서!” 하나님 앞에서 나는 죄인이라는 것입니다.

 

나 보다 높은 바위, 그의 권좌가 하나님 앞에서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의 권좌가 자신의 목숨하나 유지 할 수 있는 곳이 아니요, 그의 권좌가 아들에게서 배반을 받는 자리요, 그의 권좌가 아히도벨의 미움을 받는 자리인 것을 알게 된 것입니다. 오직 그의 생명을 보호해 줄 곳은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하나님만이 높은 바위가 되시니 그가 의지할 분,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다윗을 받으실까요? 그를 구원해 주실까요? 그렇습니다. 받아 주십니다. 겸손하여 회개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라고 말씀드렸습니다.

 

반면에 아히도벨은 압살롬을 앞세워 다윗을 죽여 복수를 하고 나라의 정권을 탈취하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압살롬이 아히도벨의 계략을 따르지 않습니다. 결국 아히도벨은 고향으로 내려가 자결을 합니다. 압살롬은 말을 타고 가다가 그의 긴 머리가 나뭇가지에 걸려 용신하지 못하게 될 때에 요압장군의 부하들에 의해서 죽습니다. 그래서 전쟁이 끝이 납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가 여기에서 무엇을 배웁니까?

예기치 않은 일이 터지고, 내 힘으로 감당할 수 없어, 내 마음이 약해 질 때에, 그러므로 땅 끝으로 몰릴 때에, 재정의 땅 끝, 건강의 땅 끝, 자녀의 땅 끝, 관계의 땅 끝, 명망과 존경의 땅 끝...., 그 환란의 극점에서 주님의 이름을 불러야 합니다. 다시금 회개하고 겸손하여 주님의 은총을 간청해야 합니다.

 

4절에 다윗의 고백처럼, 내가 주의 장막에 머물며 내가 주의 날개 아래 피하리이다 가장 안전한 주님께로 피하였으면, 그 장막에 거해야 합니다. 마음만 주님 안에가 아니라 주님과의 깊은 교제가 시작되어야 합니다. 주의 장막이라고 했습니다.

 

왜 주의 보다 더 멋지고 쾌적하고 위엄이 있는 주의 성전 에가 아니고 주의 장막인 줄 아십니까? 장막은 텐트로 이루어져 있으니 방이 하나입니다. 잘 들으십시오. 주님과 한 방에 있는 것입니다. 내 방이 따로 없어요. 어떤 프라이버시가 없습니다. 감출 것도 없습니다. 언제 그렇다는 것입니까? 내가 수세에 몰려 죽을 지경이 되어, 어딘가 피난하여, 다시금 생명을 유지하고 살아나야 할 때에 주의 장막 안에, 주님과 함께 있어야 합니다. 감춤이 없어요.

 

어머니 앞에 있는 어린 아기와 같이 거리낌도 없이, 가식도 없이, 병아리가 어미 닭의 날개 안에 있는 것과 같이 주님 품안에 거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다시금 사랑하는 주의 자녀를 회복시키시고 일어서게 하시는 주의 은혜가 여러분에게 함께 하시기를 간절히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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