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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드로전서 강해 06] 선으로 악을 이기라
운영자 2020-12-31 추천 0 댓글 0 조회 860
[성경본문] 베드로전서2:18-25 개역개정

18. 사환들아 범사에 두려워함으로 주인들에게 순종하되 선하고 관용하는 자들에게만 아니라 또한 까다로운 자들에게도 그리하라

19. 부당하게 고난을 받아도 하나님을 생각함으로 슬픔을 참으면 이는 아름다우나

20. 죄가 있어 매를 맞고 참으면 무슨 칭찬이 있으리요 그러나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고 참으면 이는 하나님 앞에 아름다우니라

21.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받았으니 그리스도도 너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사 너희에게 본을 끼쳐 그 자취를 따라오게 하려 하셨느니라

22. 그는 죄를 범하지 아니하시고 그 입에 거짓도 없으시며

23. 욕을 당하시되 맞대어 욕하지 아니하시고 고난을 당하시되 위협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공의로 심판하시는 이에게 부탁하시며

24.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

25. 너희가 전에는 양과 같이 길을 잃었더니 이제는 너희 영혼의 목자와 감독 되신 이에게 돌아왔느니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선으로 악을 이기라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성경본문에는 참는다 인내라고 하는 단어가 세 번 나오고 있습니다. 그리고 선을 행하다가 고난을 당해도 참으면 그 모습이 하나님 앞에 아름다우니라.” 그렇게 20절에 말씀합니다. 어디에서 많이 듣던 말씀 아니겠습니까?

 

산상수훈에서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이같이 박해하였느니라 (5:11,12)

 

예수님의 수제자였던 베드로는 예수님의 그 가르침을 기억하면서 믿음의 성도 중에 당시 종의 신분으로 살아가는 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19절에 말씀합니다. 부당하게 고난을 받아도 하나님을 생각함으로 슬픔을 참으면 이는 아름다우나 이 모습에 대한 모범적인 예를 베드로는 예수님을 들고 있습니다. 그 내용이 21절 이하 마지막 절까지 이어집니다.

 

21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받았으니 그리스도도 너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사 너희에게 본을 끼쳐 그 자취를 따라오게 하셨느니라 이어 설명하는 예수님의 모습은 23절입니다. 욕을 당하시되 맞대어 욕하지 아니하시고 고난을 당하시되 위협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공의로 심판하시는 이에게 부탁하시며

 

예수님의 수제자로 예수님을 따르던 베드로에게 가장 충격적인 일은 스승되신 예수께서 잡혀가시는 것을 보는 것이고, 이어 십자가에 달리신 일이었을 것입니다. 자신의 영달을 위해 추구했던 정치와 권세의 야망은 깨어져 산산조각이 나고 꿈은 아스라이 사라졌습니다.

 

베드로의 성격이 다혈질이었어요. 예수께서 잡히시던 날 밤, 그대로 볼 수가 없어, 칼집에서 칼을 뽑아 휘둘러 한 군인의 귀를 자릅니다. 내가 스승님을 보호해야 해! 그게 내가 살 길이야!” 자신이 잘 하는 것이라 여겼겠지요. 그런데 예수님의 반응은 그것이 아니었습니다. 베드로를 저지하시며 말씀하시기를 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칼을 도로 칼집에 꽂으라 칼을 가지는 자는 다 칼로 망하느니라(26:52)

 

그리고 그 이후로 십자가에 달리시는 예수님을 보아야 했습니다. 그의 사고와 상식과 생각하고는 너무나 거리가 먼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을 보아야 했습니다. 세상적 권세를 추구하는 그에게 그 모습은 이해가 안 되었어요. 상심과 두려움에 떨며, 나는 그를 알지 못하오 세 번씩이나 예수님을 부인했던 그의 태도가 그것을 보여줍니다.

 

베드로는 예수를 믿고 따름으로 인해서 그런 고난과 환란과 핍박이 올 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십자가의 사건 이후로 아예 상심하여 낙향하여 다시금 물고기를 낚는 옛 직업을 위해 그물을 잡았습니다.

 

이와 같은 모습은 오늘날에도 있습니다. 예수를 믿기로 작정하고 신앙생활을 하다가 부딪쳐 오는 장애물에 이게 뭐지? 예수 믿으면 복 받아야 하는 것 아냐? 그런데 그게 아니네?” 혼돈스러워하다가 신앙생활을 포기하고 세상으로 돌아간 모습이 바로 그 모습입니다.

 

그러던 베드로가 바뀝니다. 다시 태어나게 되었어요. 가지고 있었던 그의 기본 상식이 극적으로 바뀝니다. 그야말로 이제 비로소 예수님의 제자로 태어나게 된 것입니다.

 

첫 번째 사건은, 그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것입니다.

그 혼란스러운 가운데, 좌절감으로, 상심한 채로, 옛날로 돌아가 갈릴리 바다에서 조업을 하던 그 아침에, 자신에게 찾아오신 예수 그리스도! 예수님을 만나고 나서 그가 바뀝니다. 그가 사명자로 다시금 태어납니다.

 

두 번째 사건은 오순절 성령강림 때에 성령으로 충만케 되었을 때였습니다.

예수님을 만나서 사명을 받고, 둘째, 능력으로 부어주시는 성령의 강력한 임재하심으로 그는 완전히 바뀔 수 있었습니다. 그가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설교할 때에 삼천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고 돌아오게 되었어요. 그가 설교한 내용의 주 내용은 너희가 죽인 예수께서 부활하셨다. 왜냐하면 그는 하나님의 아들이시오, 구원자로 이 땅에 오셨기 때문이다.” 라는 것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제 구시 기도시간에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올라갈 때에 나면서 못 걷게 된 자가 적선을 구할 때에, 베드로가 돈으로 적선한 것이 아니니,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이것을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3:1~10) 선포할 때에 그가 일어났습니다.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며 하나님을 찬송하였습니다.

 

베드로는 생각합니다. 예수님의 그 모습을 두고, 두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십자가에 앞에서 도살장에 끌려가는 순한 양처럼, 자신의 상식으로는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 예수님의 그 모습과 그리고 이어지는 사건, 사망의 쏘는 것을 이기시고 부활하신 예수님, 엄청난 충격이었겠죠. 그리고 하늘로 승천하시는 예수님과 이어 성령의 강림하심! 완전히 변화된 자신의 모습과 인생, 그리고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능력을 소유하게 된 자신의 모습!

 

이 일련의 사건을 통해 무엇을 깨달았을까요?

사람의 눈에 강한 것이 다 강한 것이 아니구나!” “무력이 다가 아니구나!” 세상권세가 다가 아니구나! 진정한 파워는 바로 십자가! 고난! 인내! 희생을 불사한 사랑이, 용서가 능력이구나!” 베드로는 전혀 새로운 차원의 능력을 보게 되었고, 그 사랑과 용서와 희생과 인내가 가져오는 승리를 경험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는 오늘의 이 말씀을 힘있게 증거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날 21세기에 상전와 종의 제도는 없어졌습니다. 애매히 고난을 당하는 일은 참을 필요가 없지요. 고발하고 고소하고 개인의 존엄성에 근거하여 만들어진 법치로 세상이 돌아갑니다. 그러나 여전히 심성이 고약하고 악한 자들이 못되게 굽니다. 무한경쟁의 사회에서 누군가를 밟고 올라가야만 내가 높은 곳에 서며, 더 큰 이익을 얻을 수 있다.” 라고 하는 세상성공 전략에 의해 움직이는 사회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오늘의 말씀은 그 반대로 참으라 라고 말씀하니 이게 참 적용이 어렵습니다. 때로는 견딜 수가 없어요. 참은 것도 유분수가 있지! 더 이상은 못 참아~!” 그래서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23절이 우리에게 해답을 주고 있습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욕을 당하시되 맞대어 욕하지 아니하시고 고난을 당하시되 위협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공의로 심판하시는 이에게 부탁하시며 공의로 심판하시는 이에게 부탁하시며 예수님께서 심판의 권한을 하나님께 맡기셨다는 것입니다.

 

로마서 1219절의 말씀과 동일합니다.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

 

성도 여러분, 우리는 예수님을 구원자로 믿고 그리고 삶의 주인으로 모셨습니다. 여기에 한 가지 더 추가할 것이 있으니 그를 닮아 가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악을 악으로 이기려 하지 아니하시고 선으로써 악을 이기셨습니다. 예수님은 사랑만이 이 세상을 지배하는 악의 세력을 물리칠 수 있는 원동력임을 삶을 통해 몸소 보여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악으로써 악을 대항하는 길은 파멸을 자초하는 길이라고 일러주셨습니다(26:52). 그리고 원수를 사랑하며 핍박하는 자를 선대하는 것만이 최후 승리를 보장받는 길임을 가르쳐 주셨습니다(6:27).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하나님께서 살아계시기 때문입니다. 불꽃같은 눈으로 바라보고 계십니다. 그 하나님의 눈길은 악인에게는 심판의 눈길이요, 우리 믿음의 사람들에게는 지키시고 보호하시는 눈길입니다.

 

억울히 당하는 일이 있습니까? 왜 없겠습니까? 저의 인생에도 몇 번 있었어요.

선교지에서 교통사고가 있었는데 상대방 차주의 숨겨놓은 정부가 경찰이었습니다. 완전히 저에게 덤태기를 씌어서 목돈을 벌려고 했었어요. 그러니 조서를 아예 현장사실과 다르게 바꿔써서 저를 불리한 입장에 묶어두려고 했습니다.

 

아침마다 경찰차를 제 집 앞에 세워놓고 겁을 주었어요. 그리고 원하는 대로 돈을 다 안주니까 바로 법원에 고소를 하였습니다. 이방인의 땅에서 살아가는 것 자체가 나그네의 삶이죠. 믿는 사람에게는 서로 통하는 것이 있어도 상대가 불신자일 경우에는 그저 밥인 것이죠. 제가 할 수 있는 일이란 그저 하나님께 금식으로 기도하는 것 밖에 다른 일이 없었어요.

 

법원에 출두하는 날, 상대방 차주가 고소를 취하했어요. 저의 뒷조사를 한 거였어요. 나쁜 것이 있을 리 없지요. 선교사 아닙니까? 어려운 자들을 돕고, 화산 피난민들 돕고, 병자들은 병원으로 날라 소생케 하고....., 그리고 기도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니...., 속여 먹기에는 너무나 하나님이 두려웠던 것입니다.

 

나중에 저의 사무실에 찾아와서 제 사무실에 전도용으로 쌓아 두었던 성경책을 선물로 한 권 받아 갔습니다. 가면서 저의 사무원에게 이렇게 말을 남겼다고 했어요. 잃었던 신앙을 다시금 회복해야 하겠다.” 라고 말을 남기고 갔습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상 주실 자에게 상을 주시고, 벌을 주실 자에게 벌을 주십니다. 우리 믿음의 사람은 심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저 正道(정도)를 걸으면서 참고, 인내하며, 가능하다면 사랑으로, 관용으로 대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것이 나에게 복이 되며, 그 결과로 상대방이 믿음으로 돌아올 수 있는 계기가 되기 때문입니다.

 

오늘의 말씀을 가슴에 담기 위하여 그리고 실천할 수 있는 능력을 달라고 하나님께 간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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