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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1서 강해 10] 주를 사랑하는 자에게 주시는 능력
운영자 2020-12-08 추천 0 댓글 0 조회 726

주를 사랑하는 자에게 주시는 능력

 

어떤 소년에게 귀여운 카나리아가 있었습니다. 소년은 이 카나리아 새를 무척이나 좋아하였어요. 그런데 소년의 엄마가 병들어 눕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보니, 카나리아가 너무 그리고 자주 시끄럽게 조잘대어, 병든 어머니에게 방해가 되는 것이었어요. 그 모습에 이 어린 소년은 한 참이나 생각을 하더니 카나리아를 자신의 친구에게 주고 말았습니다. 그리고는 어머니에게 말했어요. 엄마, 저는 카나리아를 사랑해요. 하지만 엄마를 더 많이 사랑해요.” 라고 말했습니다.

 

성도 여러분, 이와 같이 우리도 우리의 신앙이 깊어지고, 성숙해지면, 세상에 있는 어떤 것보다도 주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더욱 사랑하게 됩니다. 이 모습은 억지가 아니라 자연스럽게 되는 신앙의 단계입니다.

 

저는 어린 아이들을 볼 때에, 특히 한 가정의 남매들을 볼 때에, 장녀나 장남을 보면 마음이 짠해 집니다. 엄마에게 아빠에게 혼자 받던 사랑을, 동생이 생기면서 50%를 나눠줘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또 동생이 생기게 되면 이제는 그 사랑을 또 나눠줘야 해요. 자신에게 올 엄마, 아빠의 사랑이 점 점 줄어요.

 

그것뿐 아니죠. 그처럼 자신만 사랑하던 엄마, 아빠가 그처럼 자신의 동생들을 사랑하는 것도 서러운데, 하는 말이, 얘야 너는 누나야, 너는 형이야, 그러니 네 동생들을 많이 사랑해 줘야 해!” 하기 싫은데 ,가만 보니 자신이 동생들을 사랑하고 잘 돌보아 주면, 엄마 아빠가 그것 때문에 자신을 칭찬해요. 관심을 표현해요. 역시 우리 별이는 정말 누나답네. 우리 훈이는 정말 형다워~!” 그래서 엄마가 주는 그 관심과 사랑 때문에 더 동생들을 챙깁니다.

 

그런데 시간이 가고 어른이 되면, 그 부모님의 마음을 제일 많이 아는 자녀가 남매들 중에 장남이고, 장녀에요. 그래서 이제는 부모가 없을 때에 부모역할을 합니다. 시키지 않아도 해요. 그리고 동생들이 잘 되는 것을 보면 좋아요. 그리고 하늘에 계신 부모님께 그러죠. 어머니, 아버지, 동생 OO가 참 잘 됐어요. 그런데 동생 OO는 많이 아파요. 하늘나라에서 하나님께 기도해 주세요. 빨리 낫도록!”

 

오늘 성경에서 사도요한은 이 관계를 말씀하고 있어요. 51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자마다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니 또한 낳으신 이를 사랑하는 자마다 그에게서 난 자를 사랑하느니라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자마다......., 그에게서 난 자를 사랑하느니라

예수를 믿게 되니 어떤 마음을 갖습니까? 예수님이 나의 구원자요, 내 죄를 사하시기 위해 십자가에 못 박히셨으니, 부활하시고 승천하셨으나, 이후에도 영으로 임마누엘로 함께 하시며 평생에 날 사랑하시는 주가 되시니, 여러분, 신앙에도 철이 들어요. 그 사랑과 은혜를 깨달아 알면 알수록, 철들면 부모에게 효도하듯이, 주를 기쁘시게 해 드리고 싶어요. 자연스러운 마음이에요.

 

그래서 행하는 것이 있으니 그가 원하시는 바를 하게 되니 주께서 지키기 바라시는 계명을 잘 지키는 거에요. 그 중에 제일 먼저 행해야 할 것이 무엇이냐? 사랑이 많은 사랑의 사도요한은 그것이 곳 형제사랑이라는 것입니다.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13:35) 예수께서 하신 말씀을 기억하고 그렇게 하는 거에요. 왜 주께서 기뻐하시니까. 그리고 내가 먼저 예수 믿고 새생명으로 태어났으니 형이고 언니인 거에요. 그러니 나중에 예수 믿게 된 자를 동생처럼 여기고 사랑으로 섬기고 인도합니다.

 

그런데 이처럼 주님의 마음을 알아 그가 원하시는 계명을 지키는 것이 어려우냐? 쉬우냐? 어려운 것도 있고 쉬운 것도 있어요. 그런데 세상에서는 이런 경우가 있어요. 해야 할 일 같아요. 그래서 힘껏 억지로라도...., 해놓고 보자. 그런데 일이 잘 되면 다행인데 잘 안되면 속상하고, 본전 생각도 나고, 어떤 때는 울화통 터질 때도 있어요. ~! 괜히 도와줬네!”

 

그런데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일을 하는 것은 결코 후회함이 없습니다. 처음에는 안돼보이는 것 같아도 하나님께서 그 마음 아시고 다 갚아주세요. 그럼요. 하나님께서 다 정리해주시고 돕는 자의 편에 서 주십니다. 이것을 한번 두 번 경험하고 나서는 그저 자발적으로 자원하는 마음으로 아니 기쁜 마음으로 행합니다.

 

바리새인들은 억지로라도 자기의 의를 위하여, 소위 명분을 위해서 행했어요. 그러나 그 방법은 주께서 기뻐하시는 방법이 아니었어요. 예수께서 보실 때에 하나님께서 주신 계명은 억지로 행할 그런 어려운 것이 아니었어요. 자원하는 마음으로 하게 되니 기쁨으로 보람으로 감사하는 마음으로 행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그렇게 하셨습니다. 3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라 그의 계명들은 무거운 것이 아니로다 사랑하기 때문에 무거운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대할 때에 어떤 구절이 떠오릅니까? 마태복음 1128절 이하에 예수님은 자신의 멍에와 우리가 메어야 할 멍에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그러면서 하시는 말씀이 29절과 30절에 하시는 말씀이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니라 하시니라

 

~! 예수님도 멍에를 지셨구나!” 어떤 멍에겠습니까? 하나님의 일이었어요. 이를 ministry, , 사역이라고 말하지요. 하나님께서 예수께서 행하시기를 바라시는 일, 계명을 지키는 일도 포함되겠죠. 그러나 주로 가르치시는 일, 천국 복음으로 전하시는 일, 그리고 병자를 고치시는 일로 늘 분주하셨습니다.

 

그런데 우리에게도 멍에를 메라는 것입니다. 그래야 진정한 안식과 쉼이 있다는 것이에요. 참 역설적 아닙니까? 멍에를 메고 일을 해야 참 평안과 안식과 쉼이 있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이 일이 가능할까요?

 

예수님께서 하시는 대로, 주와 동행하면서, 시키시는 대로 보고, 듣고, 행하면, 그가 하시는 대로, 카피하는 것이에요. 그러면 쉽다는 것입니다. 왜 쉽습니까? 내게 주신 멍에를 메고, 그를 따르면, 주님께서 친히 도와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일도 잘 되고, 그리고 마음에는 진정한 평안과 쉼이 있다는 것이에요. 놀라운 진리입니다.

 

이 쉼과 연관하여 제가 쓴 시가 있습니다. 안식이라는 제목의 시입니다. 전체적으로 흘러가는 분위기는 일이 있기에 하루가 감사하다는 내용입니다.

 

안식(安息) / 김연정

 

한 날이 종점(終點)에서 서성이며

이별을 고하는 저녁

노을 물든 서편하늘

그리움이 젖는다

 

산 그림자는 마을에 길게 누웠고

어둠이 이웃처럼 창가에 찾아왔다

 

그러면 너와 나, 하던 일 멈추고

땀에 젖은 수건을 가만히 내려놓자

등불 켜고 식탁에서 두 손을 모으자

 

하루의 일은 한 날에 족하리니

미련도 아쉬움도 그날에 족하리니

感謝(감사)로 한 날에 이별을 고하자

 

이 한날도 은하수에 발을 담그고

깊은 안식으로 잠들어가는 밤

너와 나, 이제는 자고 쉬어라

곤한 몸, 마음, 영혼까지도

 

솔숲은 바람으로 자장가를 부르고

달빛어린 창문은 구름이 드리웠으니

하늘의 安息(안식)으로 자고 쉬어라

빛 속에 내일이 또 찾아 올 테니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편하게 하는 일 없이, 무위도식하며 사는 것이 복된 사람이 아니라 예수님께서도 일하시고, 하나님께서도 일하신 것처럼, 주님께서 나에게 주신 사명을 감당하며 살 때에 감사도 있고, 보람도 있고, 진정한 쉼과 안식도 있는 것입니다.

 

가장으로써의 가족에 대한 책임과 사명, 구원으로뿐만 아니라 일로도 부르셨으니 일터에서 일꾼으로써의 사명, 그리고 주의 몸된 교회의 지체로써 직분자로 세우셨으니 써 주심에 감사하며 힘써 사명감당 할 때에 하늘로부터 주시는 분복이 있습니다. 장로는 장로수준의 복이 있고, 안수집사는 안수집사로써의 복이 있으며, 권사는 권사로써, 집사는 집사로써의 복이 있어요. 교역자와 선교사도 당연히 그러하지요.

 

그러나 오늘의 사도요한의 주제는 이것입니다. 억지가 아니다. 사랑하면, 우리가 십자가의 도를 깨닫고, 주를 나의 생명의 주로 믿고, 구원자로 믿고, 임마누엘의 주로 믿고, 그러기에 주를 사랑하면, 주께서도 너희를 사랑하시니, 그 사랑의 능력을 우리 심령에 부어 주신다는 것입니다. 내가 행하는 모든 사랑으로 섬기고 또 지키는 계명들이, 다 주께서 주시는 능력으로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믿으시면 아멘하시기 바랍니다.

 

이 능력이 세상을 이긴다고 했어요. 4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무릇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기는 승리는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어두운 세상에서 빛으로 이기고, 죄악을 거룩의 능력으로 이기며, 주신 계명을 거스려 행하는 모든 세상적 유혹과 시험을 이겨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 새벽에도 기도하실 때에, 위로부터 내려주시는 성령으로 충만하셔서, 세상을 이길 능력, 사랑으로 행하는 능력, 넉넉히 계명을 지킬 수 있는 능력을 받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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