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돌새벽강단

  • 예배와 말씀 >
  • 산돌새벽강단
[에스라 강해 07] 개혁의 기준: 하나님의 말씀
운영자 2020-11-03 추천 0 댓글 0 조회 672
[성경본문] 에스라7:11-20 개역개정

11. 여호와의 계명의 말씀과 이스라엘에게 주신 율례 학자요 학자 겸 제사장인 에스라에게 아닥사스다 왕이 내린 조서의 초본은 아래

12. 모든 왕의 왕 아닥사스다는 하늘의 하나님의 율법에 완전한 학자 겸 제사장 에스라에게

13. 조서를 내리노니 우리 나라에 있는 이스라엘 백성과 그들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 중에 예루살렘으로 올라갈 뜻이 있는 자는 누구든지 너와 함께 갈지어다

14. 너는 네 손에 있는 네 하나님의 율법을 따라 유다와 예루살렘의 형편을 살피기 위하여 왕과 일곱 자문관의 보냄을 받았으니

15. 왕과 자문관들이 예루살렘에 거하시는 이스라엘 하나님께 성심으로 드리는 은금을 가져가고

16. 또 네가 바벨론 온 도에서 얻을 모든 은금과 및 백성과 제사장들이 예루살렘에 있는 그들의 하나님의 성전을 위하여 기쁘게 드릴 예물을 가져다가

17. 그들의 돈으로 수송아지와 숫양과 어린 양과 그 소제와 그 전제의 물품을 신속히 사서 예루살렘 네 하나님의 성전 제단 위에 드리고

18. 그 나머지 은금은 너와 너의 형제가 좋게 여기는 일에 너희 하나님의 뜻을 따라 쓸지며

19. 네 하나님의 성전에서 섬기는 일을 위하여 네게 준 그릇은 예루살렘 하나님 앞에 드리고

20. 그 외에도 네 하나님의 성전에 쓰일 것이 있어서 네가 드리고자 하거든 무엇이든지 궁중창고에서 내다가 드릴지니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개혁의 기준: 하나님의 말씀

 

포로에서 돌아온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처럼 꿈에 그리던 성전건축을 마치고 봉헌하였습니다. 지난 시간 6장의 내용이었습니다. 이 성전을 가리켜 보통 스룹바벨 성전이라고 부릅니다. 총독의 이름을 따서 그렇게 불렀습니다. 이 성전을 건축한 사람들은 제1차 포로귀환 때에 고국으로 돌아온 자들이었습니다.

 

이후 78년이란 세월이 흘렀습니다. 2차 포로귀환이 있었으니, 주전 458년에, 오늘 성경본문에 등장하는 학사 에스라를 지도자로 세우고, 천칠백오십사명이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71절 말씀에 이 일 후에 라고 말씀하고 있는데, 6장과 7장 사이에 그 기간이 78년이 흐른 것입니다.

 

그러면 제2차 포로귀환의 지도자인 에스라는 누구인지 먼저 알기를 원합니다. 그가 누구인지 오늘 7장은 1절로 5절까지 그의 족보를 들추어 말씀하고 있으니 그는 이스라엘 민족 열두지파 중 성전에서 수종드는 자들인 레위지파의 후손입니다. 제사장 반열에서 태어났으니 우리가 그 이름을 들어 알고 있는 모세의 형, 아론 대제사장의 16대 손입니다.

 

에스라는 제사장이었으나 학자적인 소양이 충만하므로 모세의 율법에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를 부르기를 학사 에스라 라고 했으니, 오늘날로 말하면 성경에 박사학위를 갖고 있는 학자라고 이해할 수 있겠습니다. 이에 대한 내용이 76절에 소개되고 있으니 함께 읽겠습니다. 이 에스라가 바벨론에서 올라왔으니 그는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주신 모세의 율법에 익숙한 학자로서 그의 하나님 여호와의 도우심을 입음으로 왕에게 구하는 것은 다 받는 자이더니

 

얼마나 성경에 대한 지식이 뛰어난지 학자로써 유명하여 당시 페르시아의 왕인 아닥사스다 왕의 총애와 존경을 받으며, 왕은 구하는 것을 다 제공해 주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우리가 알아야 할 중요한 것은 그가 그처럼 훌륭한 학자가 되도록 도우신 분이 계시니 누구시겠습니까? , 6절 후반부의 말씀대로 하나님의 여호와의 도우심을 입음으로 그와 같은 인물이 되었던 것입니다.

 

요즈음에 우리가 우리의 자녀들 중에 특별히 수험생들을 위하여 기도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갈고 닦고 배운 실력을 십분발휘하여 좋은 결과를 얻어야 하는데 이 일도 하나님께서 도우셔야 합니다. 제일 중요한 것은 시험을 준비하는 우리의 자녀들이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공부하고자 하는가? 그 마음의 자세는 너무 중요한 것입니다.

 

어제 한 성도님이 전화를 했어요. 우리 손녀가 특수교육을 전공해서 교사가 되기를 원하는데 오는 1121일에 교사시험을 치룹니다. 기도해 주세요.” 그래서 전화로라도 기도하자고 기도하는데 제가 그랬어요. 시험 준비하면서 주님께 기도하는 손녀가 되게 해 주세요.” 그러는데 갑자기 권사님이 기도를 받으시다가 불쑥 저에게 말씀하는 거에요. 목사님, 그 애가 아직 교회를 안 다녀요. 신앙이 없어요.” 참 솔직하시죠? 그러니 제가 순간 당황스러워, “아 예, 그렇군요.” 그러면서 기도하기를 주여, 먼저 하나님을 경외하는 딸이 되게 해주세요.” 기도하는데 제 기도가 흩트러지더라구요. 계속 권사님께 기도할 것을 약속했지만...... 여러분, 분명합니다. 부모도, 할머니도, 간절히 기도하겠지만, 정작 당사자들, 수험생 된 우리의 자녀들이 먼저, 하나님께 기도해야 해요. 주를 사랑하는 마음, 주께서 기뻐하시는 인생을 살기로 다짐하고 그래서 공부도 하고, 좋은 대학에도 가고, 이런 자세는 너무 필요해요. 오늘도 말씀하지 않습니까? 여호와의 도우심을 입으므로 에스라가 그처럼 훌륭한 학자가 되고 이스라엘의 지도자가 되고 아닥사스다 왕의 사랑과 존경을 받았던 것입니다.

 

그러면 에스라는 그 자리에서 학자로 인정받으며 왕에게 mentor로써 조언을 하며 평안히 잘 살면 될 터인데 무엇 때문에 예루살렘으로 돌아오고자 했을까요? 그가 선친들의 땅 예루살렘으로 돌아오고자 하는 목적이 있었으니, 그것은 10절에 말씀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에스라가 여호와의 율법을 연구하여 준행하며 율례와 규례를 이스라엘에게 가르치기로 결심하였었더라

 

에스라 그는 머리로만 모세의 율법을 안 것이 아니었어요. 율법을 연구하며 준행하는 가운데 살아계신 하나님을 체험하게 되니, 그러기에 왕의 총애를 받을 수 있었겠지요. 그러니 자신의 동족들에게 이 진리, 생명의 말씀으로 가르쳐야 하겠다. 그러므로 복 있는 인생들로 살도록 도와야 하겠다. 하나님께 사랑받는 하나님의 백성들로 세워야 하겠다.” 하는 거룩한 소원이 그의 마음에 꺼지지 않는 불꽃으로 타오르고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나라사랑, 민족사랑, 에스라는 자민족을 향한 사랑하는 마음이 불탔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면 안된다. 말씀으로 가르쳐야 한다. 굉장히 중요합니다.

 

네팔에서 선교사역을 감당 할 때에 발견한 것은 많은 사람들이 기독교로 개종하는데 그러므로 교회가 성장해가고 따라서 그들의 자녀들이 기독교학교인 리빙스톤 학교에 오게 되는데 기독교로 개종이 많아지면서 자연히 학교에 지원해오는 학생들도 많아졌어요.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복음을 듣고 개종하는 사람들 중에 대부분이 힌두교 신도들이었어요. 그러나 불교신도들은 여간해서 개종을 하지 않습니다. 둘 사이에는 차이점이 있었어요. 힌두교는 말씀으로 가르치지 않습니다. 경전히 있어요. 그러나 산스크리트어로 되어 있으니 읽을 수가 너무 어렵습니다. 거룩한 책이라고 현대 네팔어로 번역을 하려고 하지도 않아요. 그러니 어떻게 신앙교육을 시키는가? 어머니 따라서 아버지 따라서 아이들이 신전에 가는 거에요. 가서 제사를 드리고 복을 빌어요. 왜 하는지 내용도 모르는 채, 그냥 부모를 따라서 하는 것입니다. 그냥 막연히 신에게 복을 빈다는 정도는 알아요. 예물로 염소를 잡아서 드리고, 닭을 잡아서 드리고, 꽃으로 곡물로 드리고, 그리고 액땜을 위해서도 빌고, 건강을 위해서도 빌고, 복 받고자 빌고....., 예식은 잘 갖추어 해요. 그런데 왜 그렇게 해야 하는지 몰라요.

 

그런데 이 티벳불교는 청소년의 시기에 불교 사원에서 들어가서 2년간 교육과 훈련을 받습니다. 거의 의무사항이에요. 경전을 읽고 불교의 도를 배웁니다. 왜 그런 예식을 드려야 하는지, 왜 새벽에 일어나서 예불을 드려야 하는지, 왜 팔정도를 지켜야 하는지....철저하게 배웁니다. 그러므로 불교신도들은 자신들이 무엇을 믿는지, 왜 예식을 따르는지, 나름 확실히 알고 있어요. 그러므로 복음을 들을 때에도 분석적입니다. 그냥 듣지를 않아요. 그러므로 타나나는 결과는, 힌두교신도들에 비하여 기독교로 개종하는 비율이 확실히 적습니다.

 

무엇을 보여주는 것입니까? 우리가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서 기독교를 하나의 종교로 생각하고 복을 빌면 응답받는다. 외적인 행위인, 겉으로 드러나는 예식적인 부분에만 치중하여, 교회에 나오고, 간절한 마음으로 빌고, 그런데 정작 생명의 도를 깨닫지 못한 채,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지 아니하고, 심비에 새기지 아니하고, 깨달음도 없이, 막연하게 믿다가는 어떻게 된다? 이단에게 넘어간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한국교회 안에 있는 병리현상 중에 너무나도 심각한 부분이에요.

 

제가 한국으로 돌아오면서 다짐했던 것 중에 하나가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70년대 80년대 90년대 한국교회 최고의 성장기를 거쳐 온 한국교회가 왜 이단들에게 성도들을 빼앗기는가? 왜 과거 기독교 인구가 1.5% 밖에 되지 않았던 그 시절에는 오히려 그 빛이 강력하여 어둠을 물리치고 민족을 깨우는 일에 쓰임 받았던 기독교가 20프로에 가까운 오늘날에는 그 영향력이 과거와 같지 못할까? 하나님의 말씀은 있으나 말씀을 향한 간절한 사랑이 없어요.

 

초대 대통령인 이승만 박사님은 아펜셀러 선교사가 세운 배재학당 출신이요, 미국에서 조지워싱턴대학에서 학사를 하바드에서 석사를 마치고 나서 감리교신자였으나 유니온 신학교에서 그리고 프린스톤대학교에서도 캘빈클럽에서도 신학강좌를 들었습니다. 그리고 나서 프린스톤 대학교에서 국제법으로 박사과정을 공부하게 되었으니 기독교 신앙위에서 철저한 반공사상으로 나라의 초석을 놓을 수 있었습니다.

 

연세대학교 초대학장을 지내신 백낙준 박사님의 박사논문은 한국초기기독교역사였습니다. 이화학당의 초대학장이었던 김활란박사님은 기독교 대학교인 보스톤대학교에서 기독교사상에 근거한 교육학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훨씬 그 이전에 민족지도자이며 애국가의 가사를 쓴 윤치호 선생님은 미국의 에모리대학교에서 영문학과 더불어 신학을 전공했습니다. 미국에서 살아도 되요. 편하게 살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돌아옵니다. 에스라처럼 동족을 위하여 예수살렘으로 돌아왔습니다.

 

도산 안창호선생님은 언더우드 선교사님이 세운 구세학당을 다니면서 유교에서 기독교 장로교신자가 되었습니다. 고당 조만식 선생님은 평양장대현교회에서 은혜를 체험하여 예수를 믿고 기독교 학교인 숭실중학교에 들어가서 금연과 금주를 결심하였으나, 술과 담배 습관을 완전히 끊기 어려워 그는 급우들과 망을 보면서 몰래 담배를 피우다가 들켜서 여러 번 벌을 받기도 했었습니다. 그러나 신앙으로 그해에 조만식은 금연·금주에 성공했고 그 후 40년을 일체 금주, 금연하면서 지조를 지켰다고 했습니다. 모든 이 믿음의 훌륭한 선배들은 하나님의 말씀이 그 바탕이 되고 기초가 되었습니다.

 

무엇을 보여주는 것입니까? 우리가 습관적으로 또는 하라고 하니까 생각 없이 신앙 생활하는 모습으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고국으로 들어오면서 저는 다짐했던 것입니다. 은혜와 진리가 충만한 성도, 은혜와 진리가 충만한 교회가 되어야 한다.

 

사랑의 최고봉인 은혜, 그러나 그것 만으로가 아니라, 사랑의 핵심인 진리의 말씀이 겸비되지 못하면, 늘 받으려고만 하는 것이에요. 은혜는 위로부터 거저 받는 것이요, 진리는 내가 전하고 가르쳐서 선한영향력을 끼치고 주이 제자 삼는 것인데....., 이제 우리교회가 그렇게 견고히 서 나가야 하겠다.

 

오죽하면 모든 예배의 말씀이 한 성경책, 한 성경책, 장별 강해에요. 새벽기도회, 금요기도회, 주일낮예배, 주일오후예배, 말씀이 기초가 되자!” 아니겠습니까? 수많은 예화로 재미있게 漫談家(만담가)가 되어 전할 수도 있겠지요. 그러나 사람 사는 얘기들이 사람의 귀를 즐겁게 할지 몰라도, 사람의 마음을 변화시키는 것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인 줄로 믿습니다.

 

영혼을 살리는 복음! 천국가는 생명의 말씀! 악한 영의 공격을 훼파하는 것은 좌우에 날선 성령의 검인 하나님의 말씀이 이기는 줄로 믿습니다.

 

오늘의 말씀을 정리합니다.

스룹바벨의 지도 하에 성전은 재건되었습니다. 예배도 부활되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이스라엘 백성 개개인의 마음에 생명력이 되어야 할, 하나님의 말씀의 부재를 본 에스라는 일찍이 호세아 선지자가 안타까워했던 거처럼, 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 도다(4:6) 하나님의 율법에 대해 무지하고 소홀히 하였던 그 모습이 반복이 되지 않을까 염려하여, 그 인정받고 편안한 삶을 떠나서, 예루살렘에 자원하여 오게 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무장하시고, 영적으로 늘 깨어 있어, 선한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예수님의 제자를 만드시는 성도가 되시기를 저는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자유게시판 목록
구분 제목 작성자 등록일 추천 조회
이전글 [에스라 강해 08] 주께서 주신 받은 복을 지키려면 운영자 2020.11.04 0 677
다음글 [에스라 강해 06] 성전봉헌을 하다 운영자 2020.10.30 0 700

08610 서울 금천구 시흥대로75길 20 (시흥동, 산돌중앙교회) 산돌중앙교회 TEL : 02-803-1135 지도보기

Copyright © 산돌중앙교회. All Rights reserved. MADE BY ONMAM.COM

  • Today97
  • Total202,617
  • rss
  • facebook
  • facebook
  • 모바일웹지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