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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라 강해 05] 새 일을 시작할 때에 주의 종의 도움을 받으라
운영자 2020-10-29 추천 0 댓글 0 조회 744
[성경본문] 에스라5:1-5 개역개정

1. 선지자들 곧 선지자 학개와 잇도의 손자 스가랴가 이스라엘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유다와 예루살렘에 거주하는 유다 사람들에게 예

2. 이에 스알디엘의 아들 스룹바벨과 요사닥의 아들 예수아가 일어나 예루살렘에 있던 하나님의 성전을 다시 건축하기 시작하매 하나님의 선지자들이 함께 있어 그들을 돕더니

3. 그 때에 유브라데 강 건너편 총독 닷드내와 스달보스내와 그들의 동관들이 다 나아와 그들에게 이르되 누가 너희에게 명령하여 이 성전을 건축하고 이 성곽을 마치게 하였느냐 하기로

4. 우리가 이 건축하는 자의 이름을 아뢰었으나

5. 하나님이 유다 장로들을 돌보셨으므로 그들이 능히 공사를 막지 못하고 이 일을 다리오에게 아뢰고 그 답장이 오기를 기다렸더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새 일을 시작할 때에 주의 종의 도움을 받으라

 

성전재건을 이루려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은 예기치 않은 변수를 만나 사마리아 사람들에 의해 건축이 중단되었다는 내용을 어제 함께 나누었습니다. 참여하지 못하게 한 이유는 사마리아 인들은 오직 하나님만이 아닌 수많은 신들을 함께 믿는 혼합주의자들이었기 때문이었어요.

사마리아 인들은 자신들이 성전건축에 참여하지 못하게 되자 조직적으로 방해 작전을 실행하고 나섰으니 그 근본적 이유는 다시금 성전이 재건되면 유대인들이 다윗의 왕조와 같이 부흥 성장하여, 자신들은 그 수하에 들어갈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사마리아인들이 시행 한 한 일은 당시 페르시아 왕인 아닥사스다에게 조서를 보내고 뇌물을 보내어, 고자질을 했습니다. 그 내용이 이스라엘이 성전재건에 성공하게 되면 분명 페르시아를 반역하게 될 것이다 그러면 반역을 하고 받쳐야 할 조공을 바치지 않게 될 것이다라는 내용이었습니다.

 

이 조서와 뇌물에 대한 아닥사스다 왕의 결론적인 답이 421절에 소개되고 있습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이제 너희는 명령을 전하여 그 사람들에게 공사를 그치게 하여 그 성을 건축하지 못하게 하고 내가 다시 조서 내리기를 기다리라

 

그러므로 사마리아 사람들은 신이 났습니다. 그 권력을 힘입어 성전재건을 중단하게 합니다. 423절과 24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아닥사스다 왕의 조서 초본이 르훔과 서기관 심새와 그의 동료 앞에서 낭독되매 그들이 예루살렘으로 급히 가서 유다 사람들을 보고 권력으로 억제하여 그 공사를 그치게 하니 24.이에 예루살렘에서 하나님의 성전 공사가 바사 왕 다리오 제이년까지 중단되니라

 

세상의 모습을 보는 것 같지 않습니까? 고레스 왕이 선처하고 허락한 성전재건이 중단되었어요. 지도자가 바뀌게 되니 정책도 바뀝니다. 그렇게 성전재건이 중단되고 18년이란 세월이 흘렀습니다.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그냥 그대로 수용하고 살아가야 하겠습니까? 아니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을 행하는 것이니 성전재건은 못하더라도.....

 

말씀드렸습니다. 에스라 33절로 6절에 걸쳐 말씀하고 있으니, 그 중에 5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그 후에는 항상 드리는 번제와 초하루와 여호와의 모든 거룩한 절기의 번제와 사람이 여호와께 기쁘게 드리는 예물을 드리되 성전건축은 권력으로 못하게 압력을 가 할지 몰라도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고 예배를 드리는 것은 자유입니다.

 

일제강점기 시대에 문화말살정책으로 창씨개명이라 이름을 일본식으로 바꿔 부르게 하고, 공공장소에서는 일본어를 쓰게 하였습니다. 관공서에서도 학교에서도 일본어를 사용하게 했어요. 그런데 유일하게 한국어를 사용하는 곳이 있었으니 예배당이었습니다. 모국어로 기도하고 찬송하고 하나님 말씀을 전하고, 나라 잃은 울분과 한탄이 모국어로 터져 나왔어요. 얼마나 눈물을 하나님께 드렸을까요? 예배를 그치지 않은 것입니다.

 

일본제국은 그것을 간과한 것이에요. 얼마나 신앙의 힘이 강력한 것인지 알지 못했습니다. 삼일만세운동의 주체가 교회가 되었어요. 선교사들에 의해 세워진 기독교학교를 통해 예수를 믿고 배출된 인재들이 독립운동가들이 되었으니, 서재필, 윤치호, 유관순, 안창호, 주기철, 이상재, 이승만, 김구, 김규식, 조만식 장로님 그리고 민족시인으로 영향을 미친 윤동주 청년과 같은 이들이었습니다.

 

성도 여러분, 여하한 경우라도 우리가 예배를 쉬면 안됩니다. 교회는 예배하는 곳이에요. 교회가 예배드리지 못하면 건물의 기능은 사라지고 맙니다. 지난 몇 달 동안 코로나 바이러스로 확산을 막기 위해 정부에서 지침을 내리니 예배당에 모이지 않고 비대면 온라인 예배를 드리게 되니 익숙해 졌습니다. 이 일에 비판 없이, 진보주의 신학자들도, 친정부 교회목회자들도, 기독교언론도 새로운 신학을 만들었으니, 예배는 장소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어느 곳에서든지 예배드리면 되니, 가정에서 비대면 온라인으로 예배드리면 된다. 하나님께서 받으신다.” 그러면 저는 질문합니다. 성도의 모임은 어떻게 할 수 있나요? 성도의 교제는 예배의 요소가 아닌가요? 예방은 지금과 같이 철저히 하면서 예배는 드려야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이제 다음단계로 나오는 이슈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예배당이 필요없는 시대가 되었다. 건물은 필요없다.” 가정에서 있는 처소에서 온라인으로 드리면 된다.” 이제는 예배당 예배가 필요 없는 시대가 되었다고 새 시대의 대처방법을 그렇게 주장하고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예배는 어디에서든지 드릴 수 있어요. 맞습니다. 야곱은 형의 복수를 피해 하란으로 도망 가던 중 광야에서 밤을 맞이하고 혼자서도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러면 구약시대를 지나서, 신약시대에 들어와 탄생한 교회의 가장 아름다운 모범이 되는 교회의 모습은 어떠합니까? 오순절 성령강림으로 시작된 교회의 모습은 함께입니다. 매일같이 함께 성전에 모였습니다. 또한 더불어 전혀 기도에 힘썼습니다. 그 전통을 지키기 위해 그냥 집에서 혼자 예배하지 않고, 그 심한 박해 속에서, 카타콤베 무덤에서 모여서 예배를 드렸고, 오늘날도 공산치하에서 지하교회는 그 살벌한 위협 속에서도 숨어서 모여서 망을 보며 예배드리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뭐 하러 꼭 모여서 예배드리게 하십니까?

내 백성이 라고 하나님은 말씀하세요. 백성은 단수가 아니라 복수입니다. 여러분, 공예배란 두 가지 요소가 필요하니, 그 모습은 함께 모여서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것입니다. 아니라면 굳이 성전을 세울 필요가 없었을 것입니다. 그렇지 않겠습니까?

 

그 권력으로 압박하는 어려운 상황에서 뭣 하러 위험을 무릅쓰고 성전을 세웁니까? 이 어려운 상황에서 시대가 변하고 있는데, 두고 봐라. 예배당 시대는 끝났다. 예배당이 뭐가 필요하냐?” 그래서 그러한 생각과 주장은 교회에 나가지 않고 집에서 예배드리는 가나안 교인들을 부추깁니다. 잘 하고 있다.” 그 논리가 맞다면, , 하나님께서는 성전재건을 포기하라 하지 아니하시고, 재건하라고 명하시겠습니까?

 

성전재건이 중단된 지 18년이란 세월이 지났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냥 그대로 내버려 두셨을까요? 아니오. 그렇지 않습니다. 그 때를 기다리셨습니다. 하나님의 때입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우리가 선을 행할 때에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6:9) 때가 이르매, 때가 되면,” 하나님의 때라고 어제 말씀을 통해 나누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생에 큰일을 시작하실 때에 예배를 그치지 않게 하시고 그 때를 함께 바라보신다고 했습니다. 그 날을 함께 기다리신다고 했어요. 큰 역사를 이룰만한 그릇이 되었는가?

 

거짓말을 하면서까지 자신의 성공과 출세를 위해 약아빠진 야곱을 성숙시키시기 위해 하나님은 그를, 그 자신보다 훨씬 더 약아빠진 삼촌 라반의 집에서 20년이란 세월을 고생 고생하며 지내게 하셨어요. 요셉은 애굽의 총리가 되게 하시기 위해 13년의 세월을 인고의 세월로 채우셨습니다. 자신의 민족을 구하려고 했으나, 아직 그릇이 안되요. 궁궐에서 왕자로 곱게만 자란 모세를 출애굽의 지도자로 세우시기 위해, 미디안 광야에서 40년 무명의 목자의 세월을 보내게 하셨고, 다윗은 이스라엘의 성군으로 세우시기 위해서 10년이란 세월을 이 나라, 저 나라 이리저리 도망자로 전전긍긍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때를 함께 기다리십니다.

 

, 그 인고의 세월, 18년이 흐르고, 오늘 본문에 성전재건의 때가 되었음을 보여줍니다. 그 역사가 어떻게 시작되는가? 51절과 2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선지자들 곧 선지자 학개와 잇도의 손자 스가랴가 이스라엘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유다와 예루살렘에 거주하는 유다 사람들에게 예언하였더니 2.이에 스알디엘의 아들 스룹바벨과 요사닥의 아들 예수아가 일어나 예루살렘에 있던 하나님의 성전을 다시 건축하기 시작하매 하나님의 선지자들이 함께 있어 그들을 돕더니

 

이 두 절에서 여러분의 눈에 제일 먼저 띄는 인물들은 어떤 자들입니까? 선지자들 아닌가요? 선지가 학개, 그리고 잇도의 손자 스가랴, 그도 선지자입니다. 새로운 역사를 시작함에 하나님은 주의 종들을 사용하심을 우리가 알아야 하겠습니다. 왜 그렇게 하십니까? 영적지도자를 통해 하나님의 뜻을 전하시고자 하시기 때문이에요. 영적지도자의 기도를 하나님께서 들으시기 때문입니다.

 

성도여러분,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기를 원하여, 사업을 시작하거나, 개업을 하거나, 이사를 하거나, 이직을 하거나, 결혼을 하거나, 출산을 하거나, 뭔가 새로운 일을 시작할 때에, 또한 일이 막혀서 진행이 부진하고, 얽히고 섥혀서 풀어지지 아니할 때에,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주의 종의 도움을 받으십시오. 영적 지도자와 함께 일을 이루어가십시오.

 

2절 후반부의 내용이 그것 아니겠습니까? 하나님의 성전을 다시 건축하기 시작하매 하나님의 선지자들이 함께 있어 그들을 돕더니 선지자들이 함께 있어 그들을 돕더니라고 말씀합니다.

 

주의 종이 삶이 그러합니다. 저의 삶이 그래요. 성도들이 잘 되면 행복합니다. 하나님께 감사기도를 드립니다. 성도들이 힘들면 저도 힘듭니다. 성도들이 아프면 저도 아픕니다. 때로 깊은 체휼로 함께 울며 하나님께 부르집습니다. 하나님이여! 건져주소서! 살려 주소서!”

 

그러니 주의 종은 돕는 자입니다. 영적지도자면서 동시에 성도를 위한, 또한 나라와 민족을 위한 Helper(도움이)입니다. 그러나 여러분도 주의할 것이 있습니다. 영적 분별력이 필요한 참으로 안타까운 세대이니, 아무 선지자가 아니에요. 성경이 말씀합니다. 뭐라고 했습니까? 2절 후반부에, 하나님의 선지자들이라고 말씀하고 있으니, 가짜에게 속지 마시기 바랍니다. 세상이 얼마나 악한지 모릅니다. 어느 시대고 삯군이 있어요. 절대 속지 말아야 합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성전개건의 역사가 다시금 시작되었습니다. 18년 인고의 세월이 지난 다음이었습니다. 이 때가 하나님의 때였어요. 그리고 이 일을 시작할 때에, 하나님께서는 주의 종들, 선지자들을 붙여 주셨습니다. 그들이 전적으로 도우므로 재건이 시작되었어요.

 

성도 여러분! 제가 많이 부족하지만, 저를 주의 종으로 생각하신다면, 잘 활용하시기 바랍니다. 뿐만 아니라 주의 종이 말씀으로 전할 때에는 잘 순종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크신 복이 여러분의 삶과 사역에 충만하시기를 주의 종으로써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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