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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라 강해 04] 세상과 구별된 존재로 성전을 건축하라
운영자 2020-10-28 추천 0 댓글 0 조회 676
[성경본문] 에스라4:1-6 개역개정

1. 사로잡혔던 자들의 자손이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성전을 건축한다 함을 유다와 베냐민의 대적이 듣고

2. 스룹바벨과 족장들에게 나아와 이르되 우리도 너희와 함께 건축하게 하라 우리도 너희 같이 너희 하나님을 찾노라 앗수르 왕 에살핫돈이 우리를 이리로 오게 한 날부터 우리가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노라 하니

3. 스룹바벨과 예수아와 기타 이스라엘 족장들이 이르되 우리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하는 데 너희는 우리와 상관이 없느니라 바사 왕 고레스가 우리에게 명령하신 대로 우리가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위하여 홀로 건축하리라 하였더니

4. 이로부터 그 땅 백성이 유다 백성의 손을 약하게 하여 그 건축을 방해하되

5. 바사 왕 고레스의 시대부터 바사 왕 다리오가 즉위할 때까지 관리들에게 뇌물을 주어 그 계획을 막았으며

6. 또 아하수에로가 즉위할 때에 그들이 글을 올려 유다와 예루살렘 주민을 고발하니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세상과 구별된 존재로 성전을 건축하라

 

이스라엘 백성들이 힘을 합하여 성전 재건을 시작하고자 할때에 예기치 않은 일이 벌어졌습니다. 이스라엘 북쪽 지방에 살고 있었던 사마리아인이 제안을 해 왔습니다. 성전을 지으려거든 우리도 참여하겠다.” 하는 것이었습니다. 함께 2절 말씀을 읽겠습니다.

스룹바벨과 족장들에게 나아와 이르되 우리도 너희와 함께 건축하게 하라 우리도 너희 같이 너희 하나님을 찾노라 앗수르 왕 에살핫돈이 우리를 이리로 오게 한 날부터 우리가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노라 하니

 

표면적으로는 그럴 듯 합니다. 우리로 너희와 함께 건축하게 하라. 우리도 너희 같이 너희 하나님을 찾노라 이들이 누구인가하면 과거 북왕국 이스라엘이 앗수르 왕국에 의해 멸망할 때에 앗수르의 에살핫돈 왕은 이스라엘인들이 대적하고 반란을 일으키는 것을 막기 위하여 북왕국 이스라엘의 장정들을 포로로 잡아 멀리 다른 나라로 이주시켰습니다. 그리고 북왕국 이스라엘의 땅에는 다른 나라 장정 포로들을 잡아다가 억지로 그곳에 살게 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사마리아 땅에는 선택받은 민족이 아닌 이방인들이 그 곳에 남아 있었던 이스라엘 여자들과 살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들을 사마리아인들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들이 자신들도 함께 성전을 짓자고 합니다. 자신들도 하나님을 찾고자 한다고 했습니다. 여러분은 이럴 때에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그래 좋은 것이 좋은 것이다. 함께 짓자 아니면 아니다. 그들은 우리와 다르다. 함께 할 수 없다.”

 

문제는 그들이 섬기는 하나님입니다. 열왕기하 17장에 보면 그들의 영적 정체성이 나오니 그들은 하나님을 여러 신들 중에 한 신으로 섬겼습니다. 자신들 본래의 신이 있어요. 그리고 이스라엘 땅에 와 보니 여호와 하나님을 믿어요. 그러니 자신들이 믿고 있는 신들 중에 또 하나의 신으로 추가하였습니다. 이 모습을 혼합주의(Syncretism) 라고 합니다. 만신이라는 말을 들어 보셨을 것입니다. 많은 신을 믿는다. 라는 뜻이지요. 그러니 저들이 생각하고 있는 성전은 만신전이 될 것이었습니다.

 

그들의 속셈을 알고 있는 총독인 스룹바벨과 영적지도자 예수아는 一言之下(일언지하)에 거절합니다. 3절 말씀이 그 내용입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스룹바벨과 예수아와 기타 이스라엘 족장들이 이르되 우리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하는 데 너희는 우리와 상관이 없느니라 바사 왕 고레스가 우리에게 명령하신 대로 우리가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위하여 홀로 건축하리라 하였더니

 

왜 이렇게 하겠습니까? 이 포로귀환 공동체는 영적인 정체성을 지키고자 했던 것입니다. 조상 적부터 내려온 영적인 전통,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 오직 이스라엘의 하나님만을 섬긴다고 하는 발로에서 나온 생각입니다.

 

그렇게 되자 사마리아인들이 가만히 있지 않습니다. 방해가 시작됩니다. 이들이 뭉치고 성전이 건축이 되면 결국 과거 다윗과 같이 솔로몬과 같이 이스라엘인들은 그 세력이 왕성하여지고 자신들은 지배당하게 될 것이다라고 하는 우려가 가득했습니다. 그러므로 조직적인 방해가 시작됩니다. 함께 4절과 56절까지 함께 읽겠습니다. 이로부터 그 땅 백성이 유다 백성의 손을 약하게 하여 그 건축을 방해하되 5.바사 왕 고레스의 시대부터 바사 왕 다리오가 즉위할 때까지 관리들에게 뇌물을 주어 그 계획을 막았으며 6.또 아하수에로가 즉위할 때에 그들이 글을 올려 유다와 예루살렘 주민을 고발하니라

 

이렇게 페르시아 왕국 왕에게 글을 올리고 또한 뇌물을 주어 철저하게 방해를 합니다. 이 그러므로 성전이 재건되지 못한 채로 18년이란 세월이 흐릅니다. 정말 예기치 않았던 일이 벌어진 것입니다.

 

질문1. 그들의 요청을 받아주면 안될까? 그냥 사이좋게 함께 성전건축하고 제대로 신앙생활 잘 하게 인도하면 되는 것 아닐까?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오늘날 이 모습은 종교 간의 대화의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기독교와 천주교와 불교가 손을 잡는 모습입니다. 성탄절이 되면 불교가 예수님의 탄생을 축하하고, 석가탄신일에는 기독교와 천주교가 축하합니다. 이 일에 연합을 추구하고자 하는 국제적 단체가 있으니 WCC(세계교회협의회)입니다. 추구하는 대전제는 이러합니다. 종교가 갖고 있는 공통점이 있으니 그 공통점은 사랑, 평화, 정의다. 이 주제는 누구라도 동의할 수 있는 하나님의 뜻이니 함께 연합하여 그 목표를 추구할 수 있다.”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예수로 말미암는 영혼구원이 목표가 아니라 지구촌의 평화스러운 삶입니다. 그러니 그 모습이 U.N.(유엔)이 추구하고 있는 모습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언뜻 보면 그럴 듯 합니다.

 

그러나 달라도 많이 다릅니다. 구원관이 달라요. WCC는 종교다원주의적 성향이 있습니다. 모든 종교에는 나름대로 구원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피차간에 전도할 수 없습니다. 천주교와 불교가 믿는 공덕과 선행과 적선으로 구원을 이룬다하면, 성경에서 말씀하고 있는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대속의 공로로,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로 이루어진다는 진리는 희미해지는 것입니다.

 

또한 WCC는 평화라는 주제아래 동성애를 인정합니다. 최근에 교황청에서 발표했습니다. 동성간의 결혼은 결혼(marriage)이 아니고 사회적 연합(civil union)이니 허락된다. 성경이 말하는 결혼은 아니라는 것이에요. 거기까지는 맞아요. 그런데 함께 부부로써 결혼식을 올리는 그들을 향해, 너희는 사회적연합을 하고 있는 것이니, 결혼처럼 신성한 것이 아니요, 그저 언제든지 헤어져도 되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그들은 그렇게 생각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발언은 오히려 동성 간의 결합을 조장하는 모습인 것입니다.

 

우리교회가 속한 예수교장로회(대신) 교단은 WCC와 함께 하지 않습니다. 그들이 보면 편협하다 할지 몰라도 우리는 성경의 진리를 진리로 수호하고 지켜갑니다. 성경의 교훈대로 너희는 믿지 아니하는 자와 멍에를 함께 메지 말라(고후6:14) 라는 말씀을 지켜갑니다.

 

질문2. 왜 하나님께서는 성전 건축하는 그 선한 일을 방해하고 하지 못하게 하는 것을 바라만 보고 계십니까? 바로 없애주시면 더 좋을 텐데요.

말씀을 통해 배우는 답은, 하나님의 백성은 세상과 달리 구별되어 있다는 기독교인의 정체성을 더욱 확실히 알게 하기 위함입니다.

 

세상은 말합니다. 우리와 다르게 살려고 하지 말고 우리와 같은 모습이 되라고 초청합니다. 같은 모습으로 살자고 합니다. 그러면 서로 좋을 것이 아니냐? 부딪힐 일도 없을 것 아니냐?” 마치 넓은 마음을 가진 것처럼 다가옵니다.

 

그래서 세상이 추구하는 가치관, 세계관에 발을 맞추다보면 점점 성경의 진리의 말씀으로부터 멀어져갑니다. 그게 뭐가 나쁘냐고 질문할 수 있어요. 이에 대하여 성경은 아주 분명히 말씀합니다. 요한일서 21617절 말씀입니다.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 좇아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 좇아 온 것이라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이는 영원히 거하느니라

 

넓은 문을 찾으며, 넓은 길을 걸으며, 노래를 부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 끝이 멸망이라는 것입니다. 좁은 길을 걷고, 좁은 문을 찾을 때에, 세상과 다르다는 이유로 믿지 아니하는 자들로부터 핍박과 눈총을 받습니다. 그럴 때에 깨닫게 됩니다. ! 나는 다르구나! 내가 걷는 길은 좁은 길이구나! 내가 찾는 문은 좁은 문이구나!” 그러나 그 길은 멸망이 아니요, 영생으로 이어지는 길입니다.

 

이 좁은 길은 창조주 되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길이에요. 내 영혼을 창조하시고 이 땅에 육신을 입어 생명으로 태어나게 하신 이가 바라시는 복 있는 자의 길입니다. 그 길을 걷는 자에게 세상이 줄 수도, 가질 수도 없는 하늘의 평강으로 심령을 채우시고, 유한한 이 세상을 떠나는 날, 다시금 주님 품으로 부르실 것입니다.

 

때로 내가 예수 믿기 때문에 차별대우를 당하고, 불이익이 올 때에 먼저는 ! 나는 구별된 존재구나! 세상에 속하지 않았지! 그래! 나는 하나님의 자녀야!” 깨닫기 바랍니다.

 

둘째, 기뻐하시기 바랍니다. 예수님께서 산상수훈을 통해 말씀하셨습니다.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이같이 박해하였느니라(5:11,12)

 

세상에 속한 사람이 아니라 하늘의 사람으로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그 고난과 박해가 길지 않습니다. 그 어려운 때가 지나고 어떤 일이 벌어지겠습니까? 에스라 5장으로부터 시작됩니다. 5장의 제목이 성전 건축을 다시 시작하다입니다. 그리고 6장은 성전봉헌입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그 날을 준비하고 계셨습니다. 그래, 너희들은 성별된 존재다. 잘 견디었다. 이제 그 모습으로 성전건축을 시작해라. 내 맘에 합한 나의 종, 다윗도 그러했느니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 날이 오고 있습니다. 성별되시고, 견디시고 이겨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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