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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모데전서 강해 05] 남자와 여자의 역할과 본분
운영자 2020-08-18 추천 0 댓글 0 조회 733
[성경본문] 디모데전서2:8-15 개역개정

8. 그러므로 각처에서 남자들이 분노와 다툼이 없이 거룩한 손을 들어 기도하기를 원하노라

9. 또 이와 같이 여자들도 단정하게 옷을 입으며 소박함과 정절로써 자기를 단장하고 땋은 머리와 금이나 진주나 값진 옷으로 하지 말고

10. 오직 선행으로 하기를 원하노라 이것이 하나님을 경외한다 하는 자들에게 마땅한 것이니라

11. 여자는 일체 순종함으로 조용히 배우라

12. 여자가 가르치는 것과 남자를 주관하는 것을 허락하지 아니하노니 오직 조용할지니라

13. 이는 아담이 먼저 지음을 받고 하와가 그 후며

14. 아담이 속은 것이 아니고 여자가 속아 죄에 빠졌음이라

15. 그러나 여자들이 만일 정숙함으로써 믿음과 사랑과 거룩함에 거하면 그의 해산함으로 구원을 얻으리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남자와 여자의 역할과 본분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본문은 남녀 믿음의 사람들의 성품과 행동에 대해서 구별지어 권면하고 있습니다. 8절에 보면 남자들에게 강조하는 말씀으로는, 분노와 다툼이 없이 거룩한 손을 들어 기도하기를 원하노라 라고 말씀합니다.

 

분노와 다툼은 보통 여성보다는 남성들에게서 흔히 볼 수 있는 좋지 않은 성품이니, 에덴동산에서 하나님을 거역하고 타락한 이후에 나타난 죄악의 결과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를 믿고 새사람이 되면, 이러한 상황, 분노와 다툼이 일어날 상황이 되면, 절제할 수 있어야 하는데, 여전히 믿음이 연약하면 절제함 없이 터져 나옵니다. 심지어 분노조절장애를 겪는 사람은 극심한 분노와 이로 인한 돌발적인 행동으로, 다른 사람에게도, 자신에게도, 참으로 후회스러운 결과를 만들어냅니다. “내가 왜 그랬나~!” 하고 후회 막급한 상황에 처하게 됩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은 분노하지 말고 다투지 말라는 것이에요. 대신 손을 들고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인간의 부서지기 깨지기 쉬운 연약한 기질대로 행하지 말고, 기도하므로,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의 역사로, 하나님 바라시는 선한 뜻이 이루어지도록 행하라는 것입니다.

 

그 다음으로 여자의 바람직한 성품과 행함에 대하여 제시합니다. 9절과 10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또 이와 같이 여자들도 단정하게 옷을 입으며 소박함과 정절로써 자기를 단장하고 땋은 머리와 금이나 진주나 값진 옷으로 하지 말고 10.오직 선행으로 하기를 원하노라 이것이 하나님을 경외한다 하는 자들에게 마땅한 것이니라

 

 

여자들은 남자와 다른 점이 있습니다. 아가 때부터 외적인 아름다움에 관심을 갖기 시작해서 70이 넘고 80이 넘어도 이 외적인 아름다움에 관심을 놓지 않습니다. 만나면 인사가, “전보다 예뻐졌다.” “얼굴피부가 좋아졌다.” “날씬해졌다.” “엘레강스(우아)하다.” 그런 소리 들으면 할머니라도 기분이 좋아요! 하나님께서 여자는 그렇게 만드신 거겠지요.

 

그러므로 남자와 달리 오늘 말씀은 여자에 대해 말씀하면서 먼저 외적인 옷차림에 대해서 언급합니다. 단정한 옷차림입니다. 그럴리도 없습니다만, 무대에서나 연극속에서 입는 화려한 옷차림, 또는 노출이 과다한 옷차림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 모습은 나라와 민족, 그리고 날씨와 기온에 따라 만들어진 문화마다 다를 수는 있어요. 그러나 분명한 것은 소박함이라고 했으니 사치하지는 말라는 것이요, 정절로써 단장하라 했으니, 어떤 성적인 면을 도 이상으로 어필하는 모습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어 땋은 머리와 금이나 진주나 값진 옷으로 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앞서 말씀 드렸습니다. 복장은 나라와 민족, 날씨와 기온, 시대와 세대에 따라 각각 고유하게 형성된 문화에 따라서 다를 수 있다.” 금이나 진주 값진 옷을 언급함은 사치하지 말라는 뜻으로 이해하고, 땋은 머리 하지 말라고 하는데, 오늘날 이 시대에 땋은 머리는, 오히려 단정한 모습 아니겠습니까? 네팔 인도에서 여학생들의 머리단장 방법은 머리를 따야만 합니다. 과거 우리나라는 여인들이 쪽을 지어야만 단정한 모습이었습니다.

 

그러면서 이어지는 결론의 말씀은 10절에 있는 말씀이에요. 오직 선행으로 하기를 원하노라

여성의 우선순위, 외적으로 치장하는 아름다움보다는 내적인 아름다움입니다. 선한행위, 선한마음이 없으면 하겠어요? 그러니 내적으로 아름다워야 하겠지요. 주님의 마음을 닮아서 어렵고 힘든 자들,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한 자를 도우라.” “외적인 치장에 머물지 말고, 그와 같은 선한 일에 더 마음을 쏟으라 그런 말씀입니다.

 

그런데 이처럼 여자들의 외적인 모습에 대하여, 복장에 대하여 강조하고 있는 이유가 있어요. 그리고 이어 나오는 교회 안에서의 여성의 위치, 여자는 순종함으로 조용히 배우라.” 이어 여자는 가르치는 일과 남자를 주관하면 안된다.” 이러한 권면이 나오는 당시 역사적 문화적 배경에 대해서 우리가 알 필요가 있습니다.

 

당시 에베소지방은 이스라엘이 아니었죠. 헬라, 즉 그리스제국의 땅이요, 나중에는 그 헬레니즘 문화를 유지하면서 로마제국의 영토에 속하고 로마제국의 통치를 받습니다. 문제는 이 편지를 받는 에베소뿐만 아니라 고린도지방도 마찬가지였어요. 그 곳에서 성행하고 있는 종교적 전통과 문화인데요, 신전에서 주 역할을 담당하는 자들이 여자였던 것입니다.

 

특별히 이 에베소지방의 주신은 아데미스 신이였는데 여신이었습니다. 아데미스 여신은 로마시대에 다이아나 신으로 불렸는데 순결과 출산을 상징하는 신이었어요. 이런 아데미스가 에베소지역에서 풍성한 축복과 다산을 가져다주는 신으로 섬김을 받았습니다. 이 성경이 쓰여진 시대에, 에베소 지방, 이 아데미 여신의 신전의 제사장이 여자였습니다. 또한 제례제식에서 일하는 자들의 다 여자였어요. 그러므로 신전에서는 여자들의 권세가 강했습니다. 또한 이 여자들의 복장은 화려했고 음란했습니다.

 

문제는 이러한 이방신전의 모습이 교회 안에 자연스럽게 흘러 들어온 것입니다. 신전의 모습처럼, 교회 안에서도, 여자들이 큰 소리로 교인들을 가르치려고 하는 모습이 시작된 것입니다. 복장 또한 그대로 흉내내게 되니 화려하며 음란했던 것입니다.

 

바울이 언급한, 땋은 머리와 금이나 진주나 값진 옷이나, 같은 입장에서 베드로도 이렇게 권면합니다. 너희 단장은 머리를 꾸미고 금을 차고 아름다운 옷을 입는 외모로 하지 말고(벧전 3:3) 왜 그런지는 말씀 드렸습니다. 신전의 여사제들과 신전창기들처럼 사람들의 시선을 끌기 위하여, 언제나 화려한 모습을 하고 사람들을 유혹하는 모습은, 교회 안에서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기독교의 역사는 자신의 외적 아름다움보다는 내적 아름다움을 가꾸려 했던 수많은 그리스도인 여인들에 대해 기록하고 있습니다.(16:14,15;16:3,4). 오늘날도 마찬가지지요. 내적 가치를 추구하며 숨어 봉사하는 여성도들에 의하여 교회는 부흥하며 성장해 가고 있습니다. 바울은 그러한 이유 때문에 여자들이 만일 정숙함으로써 믿음과 사랑과 거룩함에 거하면 그의 해산함으로 구원을 얻으리라 라고 15절에 말씀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의 주제는 교회 안에서 여성의 역할입니다. 11절에 보니, 교회 안에 믿음의 여인들은 일체 순종함으로 조용히 배워야 한다고 했습니다(11). 그러면서 바울은 여자가 가르치는 것과 남자를 주관하는 것을 허락지 아니하노라고 했습니다(12). 물론 이 말씀이 여자는 교회에서 전혀 말을 해서는 안 된다거나 활동을 해서는 안 된다는 말씀은 아닙니다.

 

성경의 기록을 보면 오히려 필요에 따라서는 여자들이 남자나 어린아이를 가르치기도 했어요.(18:26;2:4) 오늘날이나 옛날이나 여성도들의 봉사는 절실히 요구되고 있습니다.

 

예수의 모친 마리아나 막달라 마리아 같은 경우에는 교회안에서 오랫동안 제자로써의 리더쉽을 인정받았고, 여성 사역자인 브리스길라는 학문을 많이 습득하고 박식했던 아볼로를 가르쳤습니다. 바울의 절대적인 신뢰를 얻었던 루디아는 빌립보 교회를 세우는데 있어서 자신의 집을 제공했던 지대한 공을 세운 여성지도자였습니다. 유오디아와 순두게도 교회 안에서 여자 리더였습니다.

 

겐그레아 교회의 뵈뵈 같은 경우에는 사도바울의 보호자와 같은 역할과 로마서 서신을 로마교회에 전달해 주는 일에 귀한 동역자였습니다. 로마서 162절에 보면 사도바울이 뵈뵈를 로마에 보내면서 로마교회 교우들에게 부탁합니다. "너희는 주 안에서 성도들의 합당한 예절로 그를 영접하고 무엇이든지 그에게 소용되는 바를 도와 줄지니 이는 그가 여러 사람과 나의 보호자가 되었음이라"

 

영접하라( προσδέχομαι, 프로스덱소마이)”신뢰와 인내함으로 기다리고 받으라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뵈뵈가 여자라고 하대하거나 엎신여기지 말고 믿고 맡기며 섬기라는 것입니다. 뵈뵈가 여자라고 생각하지 말고 교회의 지도자로 섬기라는 뜻입니다.

 

이어 13절에 나오는 아담이 먼저 창조되었다. 여자는 돕는 배필로 창조되었다. 또한 여자가 사탄에게 속았다. 그러므로 죄에 빠졌다. 아담이 아니었다. 이와 같은 언급은 앞서 설명드린대로 에베소 지방의 특수한 종교적 환경으로 인해, 교회 안에까지 침투해 온, 강한 여자의 모습, 그러기에, 남성을 압도하고, 가르치려고 하는 풍습에 질서를 세우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러므로 가르침의 은사가 있는 여성 지도자는 그 일을 하게하고, 그러나 거짓 가르침에 빠져 신앙공동체의 예배 질서를 무너뜨리려는 사람은 여자든, 남자든 간에 용납하지 말라는 것을 단호한 어조로 강조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남존여비사상과 같은 모습은 성경적이 아니라는 것을 창세기에서부터 알수 있으니 창세기 316절에는 너는 남편을 원하고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이니라 라는, 남편이 아내를 다스릴 것이다.” 라는 하나님의 말씀은, 에덴동산에서 범죄한 이후, 즉 타락한 이후에, 나타난 결과이니, 예수 안에서 다시금 회복되는 부부상은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이 회복되어진 부부상의 모습은 에베소서에서 우리가 볼 수 있으니, 에베소서 521절에 말씀합니다.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 부부간에 피차 복종하라는 것입니다. 그 구체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으니 에베소서 522절로 25절에 명시하고 있습니다.

“22.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 23.이는 남편이 아내의 머리 됨이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 됨과 같음이니 그가 바로 몸의 구주시니라 아내는 남편을 섬기기를 교회가 예수님을 섬기듯 하라고 말씀합니다.

그리고 남편은 아내를 어떻게 섬깁니까? 다음 절 25절에 말씀합니다.

“25.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그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주심 같이 하라

사랑으로 섬기라 는 것입니다. 어느 정도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히심 같이, 남편은 아내를 생명을 다해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결론은 피차 복종하라는 것입니다.” 아내는 주께 대하듯 순종하고 남편은 목숨을 다해 아내를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이 모습이 창조주 하나님의 뜻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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