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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선지서 강해-하박국01] 부조리한 세상, 하나님께 호소하라
운영자 2020-06-12 추천 0 댓글 0 조회 768
[성경본문] 하박국1:1-17 개역개정

1. 선지자 하박국이 묵시로 받은 경고라

2. 여호와여 내가 부르짖어도 주께서 듣지 아니하시니 어느 때까지리이까 내가 강포로 말미암아 외쳐도 주께서 구원하지 아니하시나

3. 어찌하여 내게 죄악을 보게 하시며 패역을 눈으로 보게 하시나이까 겁탈과 강포가 내 앞에 있고 변론과 분쟁이 일어났나이다

4. 이러므로 율법이 해이하고 정의가 전혀 시행되지 못하오니 이는 악인이 의인을 에워쌌으므로 정의가 굽게 행하여짐이니이다

5.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여러 나라를 보고 또 보고 놀라고 또 놀랄지어다 너희의 생전에 내가 한 가지 일을 행할 것이라 누가

6. 보라 내가 사납고 성급한 백성 곧 땅이 넓은 곳으로 다니며 자기의 소유가 아닌 거처들을 점령하는 갈대아 사람을 일으켰나니

7. 그들은 두렵고 무서우며 당당함과 위엄이 자기들에게서 나오며

8. 그들의 군마는 표범보다 빠르고 저녁 이리보다 사나우며 그들의 마병은 먼 곳에서부터 빨리 달려오는 마병이라 마치 먹이를 움키려 하는 독수리의 날음과 같으니라

9. 그들은 다 강포를 행하러 오는데 앞을 향하여 나아가며 사람을 사로잡아 모으기를 모래 같이 많이 할 것이요

10. 왕들을 멸시하며 방백을 조소하며 모든 견고한 성들을 비웃고 흉벽을 쌓아 그것을 점령할 것이라

11. 그들은 자기들의 힘을 자기들의 신으로 삼는 자들이라 이에 바람 같이 급히 몰아 지나치게 행하여 범죄하리라

12. 선지자가 이르되 여호와 나의 하나님, 나의 거룩한 이시여 주께서는 만세 전부터 계시지 아니하시니이까 우리가 사망에 이르지 아

13. 주께서는 눈이 정결하시므로 악을 차마 보지 못하시며 패역을 차마 보지 못하시거늘 어찌하여 거짓된 자들을 방관하시며 악인이 자기보다 의로운 사람을 삼키는데도 잠잠하시나이까

14. 주께서 어찌하여 사람을 바다의 고기 같게 하시며 다스리는 자 없는 벌레 같게 하시나이까

15. 그가 낚시로 모두 낚으며 그물로 잡으며 투망으로 모으고 그리고는 기뻐하고 즐거워하여

16. 그물에 제사하며 투망 앞에 분향하오니 이는 그것을 힘입어 소득이 풍부하고 먹을 것이 풍성하게 됨이니이다

17. 그가 그물을 떨고는 계속하여 여러 나라를 무자비하게 멸망시키는 것이 옳으니이까

제공: 대한성서공회

부조리한 세상, 하나님께 호소하라

 

오늘부터 소선지서 전체 열두권 중에 여덟 번째 책인 하바국 선지서를 묵상해 나가겠습니다. 나훔 선지서처럼 세장으로 이루어진 짧은 책입니다. 성경 이름이 하박국이에요. 발음할 때마다 뭐가 생각납니까?

 

제가 어릴 적에 성경 66권 목록가 찬송을 부를 때에,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 여호수아, 사사기 룻기 사무엘상하, 열왕기상하, 역대상하....,” 그러다가 하박국이 언제 나오는가 하면, 3절에 나오는데, 다니엘 호세아 요---, 아모스 오바댜 요---, 미가 나훔 하박국 스--, 학개 스가랴 말라기.” 그런데 찬송하다 하박국 이름만 웃었어요. 왜냐하면, 자꾸 호박국 생각이 났어요.^^!

 

, 호박국이 아니고, 하박국입니다. 선지가 이름입니다. 그 뜻이 포옹하다 란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따뜻함이 배어있는 좋은 이름이에요. 하박국 선지자는 이름처럼 끌어안기를 원하는 백성들이 있었으니 이스라엘 백성 전체가 아니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 중에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 포악하고 악랄한 권세자들에게서 압제당하는 자, 착하고 성결한 백성들이 심판의 날에 악한 자들과 한꺼번에 멸망당하지 않기를 바라며 눈물로 간구했던 선지자였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하박국 선지자를 많이 좋아합니다. 정의를 향한 그의 아픔어린 고뇌가 숭고합니다. 세파에 휩쓸려 떠내려가지 않습니다. 고고합니다. 또한 하박국 선지서의 멧세지도 좋아합니다. 우리가 함께 묵상해 나가겠습니다만, 그 큰 주제는 믿음과 소망입니다. 극한상황, 절망할 수밖에 없는 처지에서도 소망을 높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상태가 호전되고 바뀌어서가 아니라, 여호와의 약속의 말씀을 듣고, 깨닫게 되니, 이제 머지않아, 그 좋은 날이 올 것이다 반드시 올 것이다.” 라는 확신과 믿음이 생겼기에, 아픔 중에도, 환란 중에도 내일을 향한 소망을 가질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연관하여 가장 중요한 말씀이 24절 말씀입니다. 의인은 그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그 믿음은 무엇에 대한 믿음인가?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에 대한 믿음입니다. 그 믿음이 있으니, 설사 환란 중에 있더라도, 소망을 잃지 않고 살 수 있는 것입니다. 반드시 하나님의 정의가 이루어지는 좋은 날이 올 거야~! 그리고 의인들은 구원을 받을거야! 그러니 믿음을 지키고 신실한 모습으로 견뎌야 해~!” 이것이 하박국 선지서의 주제입니다.

 

, 본문 말씀으로 들어가겠습니다. 12절부터 4절까지 하나로 연결된 내용입니다. 다시 읽도록 하겠습니다. 여호와여 내가 부르짖어도 주께서 듣지 아니하시니 어느 때까지리이까 내가 강포로 말미암아 외쳐도 주께서 구원하지 아니하시나이다 3.어찌하여 내게 죄악을 보게 하시며 패역을 눈으로 보게 하시나이까 겁탈과 강포가 내 앞에 있고 변론과 분쟁이 일어났나이다 4.이러므로 율법이 해이하고 정의가 전혀 시행되지 못하오니 이는 악인이 의인을 에워쌌으므로 정의가 굽게 행하여짐이니이다

 

어떤 뉘앙스가 있습니까? 불만입니다. 하나님 앞에, 불만이 가득 찬 선지자의 모습 아니겠습니까? 내가 이렇게 간절히 부르짖는데 왜 주께서는 듣지 아니하십니까?”

불만의 요소는 무엇입니까? 왜 악인이 이겨야 합니까? 악인이 의인을 에워싸고 겁탈과 강포가 사회를 뒤엎고 있는데, 왜 하나님은 그저 보고만 계십니까? 정의가 전혀 시행되지 못하는데, 언제까지 내버려 두십니까?

 

성도 여러분은, 오늘날 이런 모습 경험하지 않습니까?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 일, 부조리한 세상, 착한 사람들이 악한 자들, 약삭빠른 자들, 권모술수에 능한 자들에게 당하는 일, 세상말로 울화통 터지는 일...., 없으시면 감사한 일이에요.

 

요즈음 저는 정부관계자들이 과거 역사를, 도매금으로 완전히 다 뒤집어 해석하는 모습에 자꾸 흥분을 합니다만...., 잘 한 것은 잘 한 것이다. 그리고 잘못한 것은 잘못한 것이다.” 그렇게 냉정하게 객관적으로 역사를 볼 수 있어야 하는데, 사건중심이 아니라, 사람중심으로 역사를 보려고 하니, 그 결과는, 그 사람이 한 것은, 무조건 다 잘못한 것이다.”

사람의 뒤안길에, 그 시대의 상황과 정황 속에, 역사를 주관하시고 이끌어 가시는 하나님의 손길, 강물처럼 흘러가는 역사의 흐름, 시대적 흐름은, 아예 보려 하지를 않습니다. 이 시대의 잣대로, 그 시대를 재려고 합니다. 그러면 잘 한 것이 있나요? 하나도 없어요. 헬조선(지옥한국)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앞서 나라를 이만큼 살려온 조상들에게 감사도 없고, 청년이 가져야 할 호연지기의 기상도, 나라사랑, 민족사랑도, 희미해질 수 밖에 없습니다.

 

하박국 선지자가 이처럼 절망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있습니다. 그처럼 선왕으로 인정을 받았던 요시아 왕, 성전 안에 놓였던 우상들을 없애고, 영적으로 나라를 다시 새롭게 세우고 국가를 부강하고 평화롭게 만들었던 요시아 왕이 죽습니다. 요시아왕은 당시 친 바벨론 정책을 썼는데 당시 강국인 애굽은 바벨론의 반대편에 서 있는 앗시리아 편이었습니다. 바벨론이 앗시리를 침공하니 앗시리아를 도우러 간다고 길을 내 달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때에 요시아 왕이 길을 내주지 않아요. 쳐들어오는 애굽 군대와의 전쟁에서 요시아 왕은 전사합니다.

 

요시아 왕이 죽은 뒤에 유다의 장로들은 요시아의 둘째 아들 여호아하스를 왕으로 추대합니다. 그런데 요시아왕을 죽였던 애굽의 바로가 이 여호아하스를 애굽으로 데려다가 죽입니다. 그리고 장남인 엘리아김을 세웁니다. 유다의 장로들이 이 장남을 세우지 않은 이유가 있었어요. 그는 아주 포악한 인물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애굽왕은 오히려 그 불편한 관계를 이용해서 그 장남을 왕으로 세우고 그 이름을 여호야김이란 새 이름을 주고 섭정을 하게 된 것입니다.

 

그가 왕에 오르자 애굽의 힘을 믿고 자기 백성들을 억압했습니다. 유다왕국은 점점 더 어려워졌습니다. 그러는 사이 바벨론은 승하여 앗시리아를 물리치고 패권을 잡게 되었으니, 이제는 유다왕국을 치려고 합니다. 왜냐하면 유다가 이제는 애굽의 편에 서서 애굽의 힘을 믿고 있었기 때문이었어요.

 

이스라엘 백성들은 혼란 속에 빠졌습니다. 이 모습은 선지자 하박국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마음들은 하나같이 왜 요시아왕같은 훌륭한 왕을 하나님께서 데려가셨는가? 하는 의문이 떠나지 않았던 것입니다.

 

이 때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이유를 엉뚱한 곳에서 찾습니다. 성전 안에 있는 이방신들을 다 없앴기 때문이다. 그래서 복이 떠났다.”

 

같은 시대에 살려 그 시대적 상황을 묘사했던 에레미야는 그 백성들의 잘못된 모습을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하던 것..... 우리 선조들이 하던 대로 하늘여신에게 분향하고 그 앞에 전제를 드리리라 대저 그때에는 우리가 식물이 풍부하며 복을 받았고 재앙을 만나지 아니하였더니..... 그것을 폐한 후부터는 모든 것이 핍절하고 칼과 기근에 멸망을 당하였느니라(44:17,18)

 

이러한 생각들이 만연한 사회에서 하박국 선지자가 활동을 하게 된 것입니다. 신앙적으로 타락한 유다왕국, 곧 머지않아 멸망당할 그때에 활동을 했던 선지자가 하박국 선지자였습니다.

 

여호야김 왕은 완전히 신앙을 버렸습니다. 통치자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율법책은 불태워졌고, 여호와 신앙이 떠나니 불법천지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들이 오히려 핍박을 받는 때가 되었어요.

 

여러분이 이러한 상황가운데 있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신앙을 버리고 세상의 대세를 따르겠습니까? 아니면 그래도 끝까지 여호와 하나님을 신뢰하며, 믿음을 지키며, 고난을 감내해 나가겠습니까?

 

이 상황에서 하박국 선지자는 하나님만 바라봅니다. 선한 자들을 대신하여 하나님께 속 마음을 털어 놓습니다. 113절을 찾아가 읽겠습니다. 주께서는 눈이 정결하시므로 악을 차마 보지 못하시며 패역을 차마 보지 못하시거늘 어찌하여 거짓된 자들을 방관하시며 악인이 자기보다 의로운 사람을 삼키는데도 잠잠하시나이까

 

여러분은 이러한 기도를 드려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나는 잘못이 없는데...., 왜 저 못된 놈은 나를 이토록 못살게 구는 것일까?” 가장 불행한 사람은 그 못된 놈이 내 남편이고, 내 아내면, 물론 이 자리에는 그런 분 없겠습니다만, 그리고 시댁식구이고, 처가댁 식구이면 정말 더 마음이 힘들지 않겠습니까? 어떻게 할 수가 없쟎아요.

 

저는 생각해 봅니다. 과거 역사 속에 일제강점기 때에 문화말살정책을 펼치기 위해 평양신학교를 억지로 폐교시키고 신사참배를 강요할 때에 우리 믿음의 선조들은 얼마나 힘들었을까? 오늘 하박국 선지자의 울부짖음과 같은 마음 아니었겠습니까? 14절의 내용이 그러합니다. 주께서 어찌하여 사람을 바다의 고기 같게 하시며 다스리는 자 없는 벌레 같게 하시나이까

 

어쩌자고 이러십니까?” “하나님 어쩌자고 이러십니까?” 아니겠습니까? 이러한 상황에 처할 때가 있습니다. 살다보면 이런 상황에 처할 때가 있어요. 우리가 이러한 상황가운데 있을 때에 하박국 선지자로부터 배우는 영적 교훈이 있다면, 세상은 모르지, 물어도 몰라! 오직 하나님만 아시지! 그러니 하나님께 나아가 물어야 해!” 이러한 자세가 우리가 취할 모습입니다.

 

우리가 취해야 할 태도입니다. 다윗도 그랬습니다.

“1.여호와여 어느 때까지니이까 나를 영원히 잊으시나이까 주의 얼굴을 나에게서 어느 때까지 숨기시겠나이까

2.나의 영혼이 번민하고 종일토록 마음에 근심하기를 어느 때까지 하오며 내 원수가 나를 치며 자랑하기를 어느 때까지 하리이까

(시편13:1,2)

 

다윗이 극한 상황에 처해서 응답은 없고 그 마음이 답답하여 죽게 되었을 때에 오늘의 하박국 선지자처럼 다 하나님께 그 마음을 토해냈습니다. 다윗, 그가 우리에게 조언합니다.

백성들아 시시로 그를 의지하고 그의 앞에 마음을 토하라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로다(62:8)

 

내 능력으로 감당할 수 없고, 사회적 대세가 그렇게 압박을 하고, 내 손 밖에 있어 어찌할 수 없을 때에, 내 자녀가 그럴 수 있어요. 내 직장 상사가 그럴 수 있어요. 사회적 악의 구조가 그럴 수 있습니다. 이해가 되지 않아요.

 

그 상황에서 어찌하든지 믿음을 지키고자 할 때에 우리는 주님 앞에 나아가 쏟아낼 수 있습니다. 주께서 들으시기 때문입니다. 들으시면 반드시 응답을 준비하십니다.

 

어떻게 응답하시는지 내일 이어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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