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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선지서 강해-아모스06] 형식적인 종교의 말로
운영자 2020-03-24 추천 1 댓글 0 조회 793
[성경본문] 아모스5:1-15 개역개정

1. 이스라엘 족속아 내가 너희에게 대하여 애가로 지은 이 말을 들으라

2. 처녀 이스라엘이 엎드러졌음이여 다시 일어나지 못하리로다 자기 땅에 던지움이여 일으킬 자 없으리로다

3. 주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이스라엘 중에서 천 명이 행군해 나가던 성읍에는 백 명만 남고 백 명이 행군해 나가던 성읍에는 열 명만 남으리라 하셨느니라

4.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족속에게 이와 같이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나를 찾으라 그리하면 살리라

5. 벧엘을 찾지 말며 길갈로 들어가지 말며 브엘세바로도 나아가지 말라 길갈은 반드시 사로잡히겠고 벧엘은 비참하게 될 것임이라 하셨나니

6. 너희는 여호와를 찾으라 그리하면 살리라 그렇지 않으면 그가 불 같이 요셉의 집에 임하여 멸하시리니 벧엘에서 그 불들을 끌 자가 없으리라

7. 정의를 쓴 쑥으로 바꾸며 공의를 땅에 던지는 자들아

8. 묘성과 삼성을 만드시며 사망의 그늘을 아침으로 바꾸시고 낮을 어두운 밤으로 바꾸시며 바닷물을 불러 지면에 쏟으시는 이를 찾으라 그의 이름은 여호와시니라

9. 그가 강한 자에게 갑자기 패망이 이르게 하신즉 그 패망이 산성에 미치느니라

10. 무리가 성문에서 책망하는 자를 미워하며 정직히 말하는 자를 싫어하는도다

11. 너희가 힘없는 자를 밟고 그에게서 밀의 부당한 세를 거두었은즉 너희가 비록 다듬은 돌로 집을 건축하였으나 거기 거주하지 못할 것이요 아름다운 포도원을 가꾸었으나 그 포도주를 마시지 못하리라

12. 너희의 허물이 많고 죄악이 무거움을 내가 아노라 너희는 의인을 학대하며 뇌물을 받고 성문에서 가난한 자를 억울하게 하는 자로다

13. 그러므로 이런 때에 지혜자가 잠잠하나니 이는 악한 때임이니라

14. 너희는 살려면 선을 구하고 악을 구하지 말지어다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의 말과 같이 너희와 함께 하시리라

15. 너희는 악을 미워하고 선을 사랑하며 성문에서 정의를 세울지어다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혹시 요셉의 남은 자를 불쌍히 여기시리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형식적인 종교의 말로

 

아모스 선지자는 슬픔의 노래를 지어 부릅니다. 노래를 부르니 사람들이 관심을 갖고 들을 수 밖에 없겠지요. 고대 이스라엘에서는 장례식 때에 슬픈 분위기를 고조시키기 위하여 직업적으로 노래를 불러주는 여인들을 동원했었습니다. 아모스는 마음이 아픕니다. 내가 그렇게 외쳐도 너희들이 회개하지 아니하고 하나님 앞에 돌아오지 아니하는구나~!” 어떻게 노래를 부릅니까? 그 노래가 2절부터 시작됩니다.

처녀 이스라엘이 엎드러졌음 이여 다시 일어나지 못하리로다 자기 땅에 던지움이여 일으킬 자가 없으리로다

 

처녀 이스라엘이라고 표현을 합니다. 왜냐하면 주전 8세기 이전에는 이스라엘이 다른 나라의 지배를 받은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나라를 빼앗기는 고난과 고통을 아직 모르는 그 모습이기에 처녀라고 표현을 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 처녀가 이제 머지않아 자기 땅에 던지움을 받게 될 것입니다.

 

누가 그렇게 한다는 것입니까?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신다는 것을 3절에 명시하고 있어요. 주 여호와께서 이와같이 말씀하시되...” 3절은 전쟁을 통해 심판이 임할 것이라는 것을 구체적으로 보여줍니다. 이웃족속이 쳐 들어오게 되니 대항하기 위하여 천명의 군사가 나갔는데 그 중에 살아온 자가 백 명밖에 되지 않는다고 예언합니다. 백명의 군인이 전쟁에 나가서 열명 밖에 살아남지를 못합니다. 1/10만 남았습니다. 이 표현은 전멸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군인들을 다 죽이면 패전을 알려 줄 사람이 없기에 일부러 1/10은 남겨서 돌려보냈던 것입니다. 그러니 전멸 당한다는 비참한 패전의 결과를 이렇게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어떻게 해야 한다는 것입니까? 4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족속에게 이와 같이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나를 찾으라 그리하면 살리라

 

나를 찾으라 그리하면 살리라 로마서 1013절에서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로다(10:13) 우리가 인생을 살 때에 환란의 날이 닥쳐올 수 있습니다. 그 상황 이겨내기 위하여 백방으로 살길을 찾습니다. 그러나 그 때에 정말 중요한 것은 주의 은총을 간구해야 합니다. 여호와를 찾으며 예수의 이름을 불러야 합니다. 그래야 그 상황에서 구원을 받습니다.

 

작금에 불어 닥친 코로나 바이러스, 쉽게 종식 될 재앙이 아닙니다. 예방은 철저히, 그러면서도 평소 해야 할일은 해야 합니다. 100은 아니더라도 50은 유지되어야 하고, 사람들은 또한 그러려니 하며, 소득은 줄겠으나, 버티며 인내하며 이 때를 이겨나가야 합니다. 그렇게 될 수 있도록 정부든 지도자든 격려해줘야 합니다. 사회적 거리를 두라고 하면서, 마땅히 해야 할 일마저 못하게 한다면, 그래서 사회 저변 층에 마땅히 해야 할 일들이 멈춰진다면, 이것이야말로 사회전체가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무너지고 말 것입니다. 2~3주간만 잘 지키면 된다고 그래요. 계속해서 같은 말을 반복합니다. 그러기를 2달이 지났습니다.

 

성도 여러분, 지금은 기도할 때입니다. 오늘의 말씀대로 여호와를 찾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긍휼과 은총을 간구해야 합니다. 예방은 철저히, 기도는 더 뜨겁게! 이 모습을 통해서 교회는 세상을 위한 교회의 영적 책임을 감당하는 것입니다.

 

바벨탑을 쌓는 세상은 이 시대의 영적상황에 대해서 감도 잡지 못합니다. 자신의 방법대로 최선을 다할 뿐이에요. 사람의 노력으로 다 끝낼 수 있을 것처럼 애를 씁니다. 하나님의 긍휼을 간구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영적인 분별력을 가진 자는, 보이는 것이에요. 우리가 우리 자신을 돌아보아 잘못된 모습을 회개하고 돌이키며, 민족의 죄악을 가슴에 끌어안고, 하나님의 은총과 긍휼하심을 간구해야 할 때임을 알아야 합니다. 기도해야 합니다. 그러니 이 새벽이 정말 귀하고 중요합니다. 여러분의 기도가 나라와 민족을 살립니다. 이때에 한국교회가 깨어 기도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러지 않습니다. 무엇을 구합니까? 5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벧엘을 찾지 말며 길갈로 들어가지 말며 브엘세바로도 나아가지 말라 길갈은 반드시 사로잡히겠고 벧엘은 비참하게 될 것임이라 하셨나니

 

엉뚱한 곳으로 가지 말고 너희는 여호와를 찾으라고 아모스 선지자는 외칩니다. 여기에서 사람들이 벧엘을 찾는 것은 그곳을 전통적인 성소로 여겼기 때문이었습니다. 야곱이 에서를 피하여 하란으로 가는 길에 하나님의 역사를 꿈에 본 후 그 장소를 벧엘"하나님의 집" 이라고 이름 지었습니다.(28:19). 야곱이 그곳에서 하나님께 충성을 맹세하고 돌제단을 쌓았습니다.(28:11-22). 그런데 거기를 찾지 말라고 합니다. 그곳은 비참하게 될 것이라고 예언합니다.

 

또한 브엘세바를 언급합니다. 아브라함이 살던 곳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삭과 야곱에게 나타나신 곳으로 전통적으로 성소로 여겨 많은 순례자들이 이곳을 찾았습니다. 길갈도 하나님의 역사가 나타난 성소로 여겼습니다.

 

그런데 가지 말라는 것입니다. 왜 그곳을 찾지 말라고 했을까요? 타성에 젖어 습관적이고 형식적인 예배가 그곳에서 진행되었기 때문이었습니다. 44절과 5절에 이미 그 잘못된 모습을 언급하였습니다.

너희는 벧엘에 가서 범죄하며 길갈에 가서 죄를 더하며 아침마다 너희 희생을, 삼일마다 너희 십일조를 드리며 5.누룩 넣은 것을 불살라 수은제로 드리며 낙헌제를 소리내어 선포하려무나 이스라엘 자손들아 이것이 너희가 기뻐하는 바니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열심히 찾고 또 그곳에서 제사를 드립니다. 그러나 벧엘에서 범죄하고 길갈에서는 죄를 더하고 소리내어 나를 받으소서 낙헌제를 드립니다. 그러나 정작 중요한 것은 하나님은 그곳에 계시지 않다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없어요. 심령을 새롭게 하고 결단을 하고 그의 뜻에 순종케 하는 말씀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러니 삶 따로 제사 따로, 그저 종교적인 행위로 그치고 만 것입니다.

 

네팔 안나푸르나 산맥 쪽에 힌두교 성지 중에 하나인 묵띠넛 이라고 하는 곳이 있습니다. 고산지대에 있으니 가기도 어렵고 산소도 희박합니다. 그곳에 위치한 사원을 제가 가 볼 수 있었습니다. 네팔에서뿐만 아니라 인도에서도 많은 순례객이 찾아 옵니다. 죽기 전에 그곳을 순례해야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가르침이 있어요. 그러니 그곳에 걸어서 갈 수 없는 나이가 지긋하신 어르신들을 헬리콥터가 나릅니다. 그곳에 도착한 어르신들은 감동에 젖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산소가 희박한 거에요. 다들 휴대용 산소통을 손에 쥐고 있습니다. 그 날, 산소가 없어 견디지 못하고 쓰러지는 모습도 보았습니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생각했습니다.

 

하나님은 장소를 중요시 여기시는 것이 아니라 그 장소에 서는 자들의 삶을 보시기를 원하시고, 예배의 형식을 보시기를 원하시는 것이 아니라, 정말 마음에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는 자를 찾으시고, 선포되는 하나님의 말씀에 아멘으로 받아들이고, 변화된 인생으로 살아가기를 바라십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은 그러지 아니했던 것입니다. 그저 습관적으로 형식적으로 성소를 찾았던 것입니다. 우리는 그러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그러니 삶에 변화가 없어요. 7절부터 13절까지 이스라엘 백성들의 사회생활에서 죄악들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정의를 쓴 쑥으로 바꾸며 공의를 땅에 던지는 자들이라고 책망합니다. 여기에서 정의진실 되게 말하다 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도덕적이고 인격적인 인간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이 진실입니다. 말바꾸는 모습, 또는 거짓말하는 모습, 신뢰가 형성될 수 없습니다.

 

오늘날에도 얼마나 많습니까? 정치인들 중에 제일 많지요. 잘못을 범하여 자숙하는 마음으로 총선에 안 나온다 말하고서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비례정당에 나왔습니다. 그런 모습을 보면 정치인들은 얼굴에 철판을 몇 개를 썼는지 모릅니다.

 

오늘 말씀에 정의 또는 공법은 재판관들이 재판과도 연관이 깊습니다. 진실을 감춥니다. 지난 시간에 말씀드렸어요. 돈 있는 자의 편에 서서 이권을 챙기기 위해 죄 없는 자에게 죄를 씌웁니다. 그리고 돈 있는 자와 이득을 함께 나눕니다. 그런 모습을 바라보시는 하나님께서는 돌이키라고 하시지만 돌이키지 않아요. 그러니 깨닫도록 이웃나라의 침략을 허락하시는 것입니다.

 

8절에는 전쟁으로만 아니라 자연재앙을 통해서 심판하신다고 말씀합니다. 묘성과 삼성을 이용하신다고 했습니다. 좀 어려운 말이지요? 밤 하늘에 보이는 천체 별자리를 언급하고 있습니다. 묘성은 플레이아데스 라는 별자리요, 삼성은 오리온 별자리입니다. 천체를 언급하는 것은 낮과 밤이 하나님의 손에 있고, 이어 해일이 언급됩니다. 바닷물을 불러 지면에 쏟으신다고 했습니다. 해와 달과 별자리의 운행에 따라 지구는 영향을 많이 받습니다. 밀물과 썰물이 형성됩니다.

 

우리가 이러한 자연재해를 경험할 때에 경성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살아계시는 구나! 계절이 바뀔 때마다 하나님의 손길을 경험합니다. 추운 겨울이 지나고 따뜻한 봄이 오니 아름다운 봄꽃이 피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우리가 계절의 변화를 보면서도 살아계신 하나님의 손길을 경험하듯이, 자연재해, 지진, 해일, 또한 예기치 않은 이와같은 전염병과 같은 일이 닥쳐올 때에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지금도 인류역사를 주관하고 계심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왜 재앙을 허락하시는가? 영적인 멧세지를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을 떠나 그 율례대로 행하지 아니하고 자신들이 잣대를 만들고 자신들의 뜻대로 행한 것이었습니다. 11절과 12절에 그 모습을 지적합니다.

너희가 힘없는 자를 밟고 그에게서 밀의 부당한 세를 거두었은즉 너희가 비록 다듬은 돌로 집을 건축하였으나 거기 거주하지 못할 것이요 아름다운 포도원을 가꾸었으나 그 포도주를 마시지 못하리라 12.너희의 허물이 많고 죄악이 무거움을 내가 아노라 너희는 의인을 학대하며 뇌물을 받고 성문에서 가난한 자를 억울하게 하는 자로다

 

오늘날에도 이러한 사회적인 죄악이 만연해 있습니다. 의로운 자가 억울하게 감옥에 갖힙니다. 有錢無罪, 無錢有罪 라는 말도 있습니다. 내로남불이라는 말도 유행합니다.

다 하나님께서 미워하는 죄악입니다. 24절에 말씀하십니다. 오직 정의를 물 같이, 공의를 마르지 않는 강 같이 흐르게 할지어다

 

이와 같은 일에 우리 믿음의 사람들이 책임감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들이, 사회의 모든 영역에 선교사로 파송받았음을 깨달아 알아야 하겠습니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교육, 국방, 스포츠, 예술, 종교 모든 분야에 파송 받았습니다. 여호와의 심판이 임하기 전에 돌이켜야 합니다. 똑바로 서야 합니다.

 

이 모습으로 귀하게 쓰임받으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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