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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선지서 강해-아모스05] 경고하실 때에 돌이켜라
운영자 2020-03-20 추천 0 댓글 0 조회 1104
[성경본문] 아모스4:1-13 개역개정

1. 사마리아의 산에 있는 바산의 암소들아 이 말을 들으라 너희는 힘 없는 자를 학대하며 가난한 자를 압제하며 가장에게 이르기를 술을 가져다가 우리로 마시게 하라 하는도다

2. 주 여호와께서 자기의 거룩함을 두고 맹세하시되 때가 너희에게 이를지라 사람이 갈고리로 너희를 끌어 가며 낚시로 너희의 남은 자들도 그리하리라

3. 너희가 성 무너진 데를 통하여 각기 앞으로 바로 나가서 하르몬에 던져지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4. 너희는 벧엘에 가서 범죄하며 길갈에 가서 죄를 더하며 아침마다 너희 희생을, 삼일마다 너희 십일조를 드리며

5. 누룩 넣은 것을 불살라 수은제로 드리며 낙헌제를 소리내어 선포하려무나 이스라엘 자손들아 이것이 너희가 기뻐하는 바니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6. 또 내가 너희 모든 성읍에서 너희 이를 깨끗하게 하며 너희의 각 처소에서 양식이 떨어지게 하였으나 너희가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였느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7. 또 추수하기 석 달 전에 내가 너희에게 비를 멈추게 하여 어떤 성읍에는 내리고 어떤 성읍에는 내리지 않게 하였더니 땅 한 부분은 비를 얻고 한 부분은 비를 얻지 못하여 말랐으매

8. 두 세 성읍 사람이 어떤 성읍으로 비틀거리며 물을 마시러 가서 만족하게 마시지 못하였으나 너희가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였느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9. 내가 곡식을 마르게 하는 재앙과 깜부기 재앙으로 너희를 쳤으며 팥중이로 너희의 많은 동산과 포도원과 무화과나무와 감람나무를 다 먹게 하였으나 너희가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였느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10. 내가 너희 중에 전염병 보내기를 애굽에서 한 것처럼 하였으며 칼로 너희 청년들을 죽였으며 너희 말들을 노략하게 하며 너희 진영의 악취로 코를 찌르게 하였으나 너희가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였느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11. 내가 너희 중의 성읍 무너뜨리기를 하나님인 내가 소돔과 고모라를 무너뜨림 같이 하였으므로 너희가 불붙는 가운데서 빼낸 나무 조각 같이 되었으나 너희가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였느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12. 그러므로 이스라엘아 내가 이와 같이 네게 행하리라 내가 이것을 네게 행하리니 이스라엘아 네 하나님 만나기를 준비하라

13. 보라 산들을 지으며 바람을 창조하며 자기 뜻을 사람에게 보이며 아침을 어둡게 하며 땅의 높은 데를 밟는 이는 그의 이름이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시니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경고하실 때에 돌이켜라

 

우리나라가 이제 많이 잘 살게 되었습니다. 외적으로 드러나는 물질의 풍요는 선진국들과 비교해 결코 떨어지지 않습니다. 불과 몇 년 사이에 거리에는 고급 레스토랑과 고가의 카페들이 우후죽순 늘어났습니다. 거리에는 벤츠나 BMW, 아우디와 같은 좋은 외국차들이 눈에 띄게 많이 늘었습니다. 미래의 경기를 전망할 때에 루이뷔통 회장 같은 분들이 과거에는 도쿄 시내의 백화점에서 물건이 팔리는 것을 보고 판단을 했는데, 이제는 한국 백화점에서 고가의 명품들이 팔리는 것을 보고서 판단을 한다고 합니다.

 

오랜만에 고국을 방문한 미국에 이민 갔던 부인들은 다시금 미국으로 돌아갈 때에는 다시 방문하고 싶은 마음을 접는다고 합니다. 한국이 너무 잘 사는 모습을 보면서 또한 부인들이 자기 또래의 여자들의 자신에 비해 너무 젊게 보이는 것을 보고는 충격을 받기 때문입니다. 미국에서는 부부가 맞벌이 하며 열심히 살아야 합니다. 또한 겉으로 보이는 것으로 사람을 판단하지 않습니다. 그러니 고가의 옷차림으로 살지 않습니다. 또한 시간을 많이 들여 화장을 할 시간도 없지만 그럴 필요가 없는 사회의 모습입니다. 그저 평범하게 살아요. 그러니 한국의 중년 여인들의 모습에 비해 상대적으로 더 나이 들어 보이겠지요.

 

그러니 자존심 상해 할 수 있습니다. 다시는 고국 방문하고 싶지 않다 라는 생각까지 갖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미국유학생활을 통해 미국사람들이 삶의 자세를 보면서 우리나라가 아직 갖지 못하고 있는 성숙한 모습들로 인해 많은 깨달음이 있었습니다. 여전히 고개를 끄덕이게 만드는 삶의 자세가 있어요. 그리고 그 모습은 하나님의 말씀, 성경의 가르침에 근거한 삶이라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제가 살았던 곳은 미시간의 그랜드래피즈라고 하는 도시로 주로 100여년 전에 네덜란드에서 이민 온 사람들이 많이 살고 있는 곳이었습니다. 겨울이 되어 다니고 있는 교회 구역원들이 구역장님 가정에서 구역예배를 드리게 되었는데, 집은 아주 훌륭합니다. 정원도 얼마나 넓은지 몰라요. 그런데 집안에 온도가 좀 춥게 느껴집니다. 보니 모두들 두꺼운 스웨터에 따뜻한 옷차림입니다. 우리나라 같으면 보일러를 더 틀고 온도를 더 높일 것입니다. 그런데 저들은 겨울이니 좀 춥게 사는 것입니다. 그렇게 연료비를 아껴서 헌금을 하고 가난한 나라, 또는 재해를 입은 나라에 기부금으로 을 DONATION을 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절약해서 남은 돈으로 어려운 자들을 돕는 모습이 그저 자연스럽고 당연한 삶의 모습입니다.

 

그런가하면 집안의 조명이 어둡습니다. 밤이 되면 더욱 더 그렇지요. 왜 이렇게 어둡게 하고 사나 느낌이 있을 정도였습니다. 우리나라는 얼마나 조명이 밝습니까? 전기사정이 열악해서가 아닙니다. 나름 이유가 있었습니다. 밤이 되면 잠 잘 준비를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몸에서는 멜라토닌이라고 하는 수면욕구를 자극하는 호르몬 분비가 되어야 하는데 조명이 낮아야 몸이 반응을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조명이 너무 밝으면 몸이 잠 잘 생각을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습관이 몸에 배어 있습니다. 성경적입니다.

 

한 가지만 더 얘기합니다. 가정에도 대학교 기숙사에도 합성세제를 사용하지 않습니다. 샴푸도 마찬가지에요. 그런데 제 얘기는 벌써 17년 전이에요. 합성세제는 물을 오염시켜서 생태계를 파괴시킨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그 물이 흘러들어가는 강에서 살아야 할 물고기나 생명체에 해를 미치게 되니 자제하는 것입니다. 물에 완전히 녹고 화학적으로 해가 없는 천연재료로 만들어진 세재나 샴푸를 쓰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만드신 자연을 잘 보호하며 사용하고 후손들에게 물려주어야 한다는 생각에서 그렇게 사는 것입니다.

 

그 차이점을 저는 그렇게 보았습니다. 미국 시민의 삶의 자세와 태도, 그리고 문화는 하나님의 말씀이 기초가 되었습니다. 사회의 근간을 이룹니다. 물론 헐리우드 영화에서나 볼법한 어두운 면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흘러가는 평범한 시민들의 모습은 지극히 윤리적이고, 도덕적입니다. 그 모습이 질서적이고 안정적이었습니다. 반면에 우리 사회의 모습은 생기발랄하고 화려하고 빠르고 진취적인데 왠지 불안합니다. 차분하지 않습니다. 이러다가 와르르 무너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무엇이 문제일까요? 그 기저에는, 잘 살게 되었으나, 물질은 풍요로우나, 정신적으로는, 삶에 가장 기본이 되어야 할 하나님 사랑, 이웃사랑이라는 성경의 가르침이 아직 인생관으로, 가치관으로, 세계관으로 배어있지 않아서 그렇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먼저 오늘의 말씀을 묵상하고, 다음에 우리의 삶에 적용해야 할 부분을 나누어야 하는데 거꾸로 적용부분을 먼저 말씀드린 것 같습니다.

 

하나님의 율례와 법도를 행하지 않고 자기밖에 모르는 이기주의와 향락주의에 눈이 어두워져버린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한 아모스 선지자의 경고의 나팔소리는 멈추지 않습니다. 그 모습이 변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준엄한 심판이 임할 것이다 아모스는 안타까운 마음으로, 저들이 마음에 찔림이 있도록, 저들의 죄악상을 낱낱이 지적하고 있습니다. 그 모습은 크게 세가지로 요약됩니다.

 

첫째, 사회적 부패입니다. 1절로 3절의 내용이 그것입니다. 1절입니다. 사마리아 산에 있는 바산의 암소들아 이 말을 들으라 너희는 힘 없는 자를 학대하며 가난한 자를 압제하며 가장에게 이르기를 술을 가져다가 우리로 마시게 하라 하는도다.”

 

향락에 빠진 부인들의 모습입니다. 아모스는 그들을 가리켜 바산의 암소로 표현합니다. 물질적인 풍요로움, 그리고 생활의 안일함으로 인해 피부 빛깔도 좋고, 몸매는 풍만합니다. 거기까지는 좋아요. 문제는 자신들의 그 풍요를 가지고 어려운 자들과 나누기는커녕 남편의 사회적 권세를 가지고 가난한 자들을 압제하고 착취하는 것입니다. 자신들의 힘있고 권세있는 남편들을 통해서 하겠지요.

 

그저 남편이 벌어다 준 돈, 어떻게 벌어왔는지 신경쓰지 않습니다. 당시 부자들은 주로 고리대금업을 통해서 어려운 자들에게 돈을 빌려 주고 고가의 이자를 부과하여, 자신들이 배를 채운 것입니다. 거기에는 자비도 긍휼도 없었던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부자와 나사로의 얘기를 잘 아십니다. 부자가 무슨 잘못을 했기에 지옥으로 갔고, 나사로는 또 무엇을 잘했기에 아브라함의 품에 안긴 것입니까? 그 비유은 아주 단순합니다. 부자집 대문 앞에 있는 가난한 자에 대한 무관심은 잘 못된 것이라는 것입니다. 나사로는 먹을 것이 없고 입는 것도 시원챦아 개가 와서 헌데를 핥았다 그랬습니다. 그 동안 부자는 무엇을 했는가? 왜 돕지를 못했는가? 그것을 꾸짖는 내용이 교훈입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남들보다 부유하게 물질의 축복을 주셨다면 기쁨으로 어려운 이웃들과 나눌 수 있어야 한다는 교훈입니다. 그런데 거꾸로 이스라엘의 부유한 자들은 어려운 자들을 착취하고 압제했으니 그 결과가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2절입니다. 사람이 갈고리로 너희를 끌어가며 낚시로 너희의 남은 자도 그리하리라 실제로 이와 같은 일이 앗시리아의 침공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전쟁에 패하게 되자 무지막지한 모습으로 포로로 잡혀 끌려가게 되었고 비참한 노예의 신세가 되고만 것입니다.

 

둘째로, 형식적인 예배 때문이었습니다.(4~5)

4절과 5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너희는 벧엘에 가서 범죄하며 길갈에 가서 죄를 더하며 아침마다 너희 희생을, 삼일마다 너희 십일조를 드리며 5.누룩 넣은 것을 불살라 수은제로 드리며 낙헌제를 소리내어 선포하려무나 이스라엘 자손들아 이것이 너희가 기뻐하는 바니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우리 하나님은 예배받기를 즐겨하십니다. 우주 만물을 창조하신 이유 중 하나가, 예배 받으시기 위함이십니다.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를 찬송하게 하려 함이니라(43:21)

 

이스라엘 백성들이 예배를 잘 드립니다. 그런데 마음 중심은 없고, 형식만 남았습니다. 아침마다 짐승을 잡아서 제물로 드립니다. 십일조를 꼬박 꼬박 잘 드립니다. 수은제로 드리며, 수은제는 하나님의 기도응답에 대한 감사제물을 의미합니다. 낙헌제로 드렸다고 했습니다. 낙헌제는 내 자신을 하나님께 드립니다. 주의 뜻을 이루는 일에 나를 사용하소서~!” 그런 헌신의 뜻으로 제물을 드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제일 중요한 것이 빠져있습니다. 진정으로 하나님을 경외하고 사랑하는 마음이 없어요.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삶이 영 아닌 것입니다. 4절 초반부에 말씀합니다. 벧엘에 가서 범죄하고, 또한 길갈에 가서 죄를 더한다 그랬습니다. 평소의 삶은 성결하지 못하고, 여기 저기에서 이런 저런 모습으로 죄를 지으면서, 제사만은 형식을 갖추어 드리니 하나님께서 그 예배를 아예 받으시기 아니하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세상 속담에는 이런 말이 있습니다. 개 같이 벌어서 정승같이 쓴다.” 그러나 성경은 그와 같은 자세를 배격합니다. 하나님은 결코 결과만 보시는 것이 아니에요. 동기를 보십니다. 그리고 과정까지도 보십니다. 얼마만큼 돈을 벌었고 그래서 얼마를 십일조로 드렸는가? 그 이전에 어떠한 마음으로, 그리고 어떠한 방법으로 돈을 벌었는가? 그 동기와 과정까지도 보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양심에 거리낌이 있는데도 무시하고 돈을 벌어서 하나님께 드린다고 하면 하나님은 그 예물을 받으시기 않습니다.

 

마음 중심은 없고, 삶은 세상적으로 살고, 예배만 형식을 지켜 드리는 모습에 대하여 아모스는 날카롭게 지적하고 있습니다.

 

마지막 세 번째로, 돌이키지 않는 죄를 지적합니다.

이 내용이 6절부터 11절까지 주욱 이어집니다. 하나님께서 싸인을 주십니다. 경고하십니다. 다양한 방법으로 싸인을 주세요.

 

6절에는 흉년입니다. 거둘 곡식이 없으니 씹어야 할 이가 한가하였다 고 말씀합니다. 재정적인 압박입니다. 그럴때에 얼른 상황파악을 하고 하나님께 나아와 회개했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감이 없어요. 영적으로 분별력이 없는 모습입니다.

 

7절에는 비가 오지 않습니다. 특별히 늦은 비를 언급하고 있어요. 결실이 맺을 무렵에 늦은비를 주십니다. 그래야 열매가 튼실히 맺게 되는데 그런데 비를 주시지 않아요. 아무리 열심히 수고를 해도 자연환경이 따라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런 자연적 환경으로 인해 어려움이 임할 때에 주님 앞에 나아와 엎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깨닫지를 못해요.

 

8절에는 비가 내리지 않으니 가물어 먹을 물도 없게 된 상황입니다.

 

9절에는 농사에 재앙이 임합니다. 곡식을 마르게 하는 재앙, 한글개역에는 풍재로 표현되었습니다. 뜨겁고 건조한 바람이 불어와서 채소들이 다 말라 죽습니다. 깜부기, 즉 알곡이 아니라 먹지 못하는 쭉정이입니다. 그런가 하면 메뚜기 떼의 습격을 받습니다. 다 먹어버립니다. 거둘곡식이 없어요.

 

10절에는 전염병입니다. 사람들이 많이 죽어갔습니다. 그런가 하면 전쟁입니다. 이웃 족속이 쳐들어와 청년들의 많이 죽었습니다. 자식을 먼저 보내야 하는 저들의 부모들 심정이 어떠했겠습니까? 그런데 돌이키지 않습니다. 그저 자연적 재앙이겠거니.... 오늘날에는 에방과 방역으로 과학적인 방법을 모색하지만 감기는 수 천년 역사 속에 아직도 치료제를 개발 못하고 있어요. 어느 세월에 하겠습니까? 하나님께서 멈추셔야 멈추는 것입니다. 그러니 교만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 연약함을 인정하고 주인 되심을 인정하고 돌이켜야 하는 것입니다.

 

11절에는 몇 몇 성읍의 멸망이 발생합니다. 소돔과 고모라 성읍을 무너뜨림같이 라고 표현하는 것을 보면 이 모습은 화산폭발과 같은 모습으로 재앙이 임한 것입니다.

 

왜 그렇게 하시는가? 돌아오지 않기 때문에 그것이 11절 후반부의 말씀이에요. 이러한 징조를 주실 때에 돌이키라는 것입니다. 12절 말씀이 그것을 확실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아 내가 이와 같이 네게 행하리라 내가 이것을 네게 행하리니 이스라엘아 네 하나님 만나기를 준비하라

 

우리가 주님 앞에 돌아와야 합니다. 대한민국이 그렇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웃나라도 마찬가지에요. 시간이 가면서 확진자는 더 늘어나고 사망자도 늘어납니다. 예방과 치료는 철저히 해야하겠지요. 그러나 영적인 면을 간과하지 말아야 합니다.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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