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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선지서 강해-요나01] 나도 도망칠 것인가?
운영자 2020-03-04 추천 0 댓글 0 조회 967
[성경본문] 요나1:1-3 개역개정

1. 여호와의 말씀이 아밋대의 아들 요나에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2. 너는 일어나 저 큰 성읍 니느웨로 가서 그것을 향하여 외치라 그 악독이 내 앞에 상달되었음이니라 하시니라

3. 그러나 요나가 여호와의 얼굴을 피하려고 일어나 다시스로 도망하려 하여 욥바로 내려갔더니 마침 다시스로 가는 배를 만난지라 여호와의 얼굴을 피하여 그들과 함께 다시스로 가려고 배삯을 주고 배에 올랐더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나도 도망칠 것인가?

 

오늘부터 또 새로운 책인 요나를 시작합니다. 소선지서 열두 권 중에 세 번째 책입니다. 구약성경에 등장하는 선지자들 중에 제일 인기가 없는 선지자가 누구인가? 아마도 요나 일 것입니다. 왜 그런지는 여러분이 잘 아시지요. 여호와의 얼굴을 피하려고 사명 감당하기 싫어 도망했던 선지자 요나 이렇게 생각하기 때문이죠. 그러다가 하나님께 혼나서 물고기 배에 갇힌 요나!” 그런 안 좋은 모습이 떠오르기 때문이죠. 그러면서도 그게 누구인가? 그게 바로 나 아니겠어~? 요 나! 요 나!”

 

그러기에 더 연민의 정을 느끼게 하는 요나, 마치 그 모습이 축복과 성공에 집착하여, 어찌하든지 장자권을 갖겠다고, 형에게 팥죽을 팔아 장자권을 사고, 아버지를 속여 축복기도를 받고, 그랬다가 노발대발 형 에서가 죽이겠다고 하니 두려워서 도망치고자 먼 길을 떠났던 야곱과 왠지 모르게 비슷한 이미지를 떠 올리게 하는 자, 요나 아니겠습니까?

 

괜챦습니다. 요나! 그래 그게 바로 나야!” 슬픈 자화상을 가지고, 그런 마음으로 요나서를 읽고 묵상해 나가시면 우리 모두가 은혜를 입게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요나를 포기하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어제도 나누었습니다만 하나님께서는 그가 택한 백성, 그가 택한 자녀를 포기하지 아니하십니다. 축복받을 만한 그릇으로, 수치당하지 않을 존재로 만드십니다. 나같이 별 볼일 없는 존재를 명작으로 만드십니다.

 

그릇이라면 주물러서 빚으시고, 돌덩이라면 깨뜨려서 다듬으시고, 그리고 때로는 사포로 문질러서 반질, 반질 윤이 나는 작품으로 만드십니다. 바로 요나가 그 모습에 전형적인 모습입니다. 우리 인생이 다를 바가 없습니다.

 

요나는 그 이름의 뜻이 비둘기입니다. 평화의 상징이죠? 왠지 요나와 안 어울려요. 그래도 억지로라도 붙잡아서 하나님께서 쓰시니, 소돔과 고모라 성같이 멸망시킬 니느웨 성읍이 그러지 않도록 회개를 선포하는 일로 쓰임을 받아요. 그래서 니느웨 성읍이 멸망당하지 아니하고 모든 사람들과 심지어는 가축들까지도 구원을 받습니다. 그 이름의 뜻이 비둘기입니다.

 

요나는 북왕국 이스라엘에서 활동을 했어요. 아밋대의 아들이라고 했어요. 요나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는 책이 열왕기하 1425절입니다. 스블론 지파 땅 가드헤벨 출신의 선지자와 동일시되는 인물이에요. 북왕국 이스라엘의 왕인 여로보암 2(주전786~746)40년간 통치를 할 때에, 선지자의 사역을 잘 감당했어요. 그래서 여로보암2세가 과거 다윗시대의 영토를 회복하는 일에 성공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쓰셨던 선지자였습니다. 그냥 못난이 선지자가 아니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요나는 북왕국 이스라엘 왕들 중에 가장 강력했던 왕, 여로보암240년간의 통치시대에 활동했으니 그저 편하게 유유적적하면서 태평성대를 누리면 되었어요. 그런데 그러던 어느 날 하나님께서 부르신 거에요. 요나야 너 니느웨에 좀 가야 하겠다.” “니느웨? 아니, 거기는 우리나라도 아닌데, 앗시라의 수도인데, 왜 내가 거기를? 언제나 우리나라에 위협적인 존재요, 포악하기로 유명한 겁나는 나라인데...., 왜 내가 거기를 가?”

 

여러분, 하나님이 부르신 선지자 중에 이스라엘 땅을 벗어나 이방나라에 사명을 띠고 보냄을 받은 경우는 요나와 엘리야 선지자 두 사람 외에는 없었습니다. 그러니 이 모습은 오늘날 선교사의 모습이라고 비교해 볼 수 있습니다. 내 나라 놔두고 다른 민족을 위한 일을 해야 해요. 이게 즐거운 일입니까? 쉽지 않지요?

 

여러분 아시는 대로 박항서 감독이 베트남에서 아주 인기가 있어요. 국민들로부터 '베트남의 히딩크'라는 별명을 얻게 되었습니다. 약체의 베트남 축구팀을 아시아의 강호로 만들었어요. 2019년 동남아시아 경기 대회에서 베트남에 1959년 대회 이후 60년 만에 통산 2번째 금메달을 선사했습니다. 할 만하지요? 우리나라 프로축구단에서는 감독으로 더 이상 불러주는 데가 없으니, 창원시청 축구단에서 감독으로 있었어요. 그때에 부인이 아주 믿음이 좋아요. 최영아 권사님, 남편과 함께 기도를 하는데 베트남으로 가라 기도응답을 받았다고 했습니다. 2017년도, 그때에 나이가 58세였어요. 하나님께서 보내시니 베트남으로 간 거에요. 그의 인생에 놀라운 때를 보내고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쓰시고자 하시면 사람의 상상과 생각을 초월하는 깜짝 놀랄만한 일이 나타납니다.

 

그런데 상상을 해 보는 거에요. 하나님께서 명하시기를 베트남이 아니라 일본에 감독으로 가라그렇게 말씀하신다면 쉽겠어요? 결코 쉽지 않을 거에요. 그것도 2020년 지금이 아니라 과거로 돌아가 일제강점기를 막 마치고, 해방이 되고 나서, 여전히 일본제국에 대한 노여움과 분노가 부글부글 끓고 있을 때에, 하나님께서 , 박항서~! 일본에 가서 그 나라 축구팀을 위해 수고해라~!” 그러면 여러분이 박항서 같으면 가겠냐고요? 주변에서, 가족들이, 친구들이, 정부가 알면, 야 이 놈아, 네가 제 정신이냐? 왜 하필 거기냐?”

 

이 마음을 가지고 이제 성경본문으로 들어갑니다. 성경본문 12절과 3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너는 일어나 저 큰 성읍 니느웨로 가서 그것을 향하여 외치라 그 악독이 내 앞에 상달되었음이니라 하시니라 3.그러나 요나가 여호와의 얼굴을 피하려고 일어나 다시스로 도망하려 하여 욥바로 내려갔더니 마침 다시스로 가는 배를 만난지라 여호와의 얼굴을 피하여 그들과 함께 다시스로 가려고 배삯을 주고 배에 올랐더라

 

이해가 되십니까? 왜 도망치는지? 왜 요나가 여호와의 얼굴을 피하려고 일어나 다시스로 도망하려 욥바 항구로 내려갔는지? 여러분 같으면 니느웨로 가겠습니까? 갈 거 같기도 하고, 안 갈 것 같기도 하고....” 그래요? 이 모습이 선교사의 모습 아니겠습니까? 바울도 그랬지요. 네 민족이 아니라 이방인들에게로 가라 심지어는 이스라엘을 속국으로 만든 로마인들에게까지 가서 복음을 전해라

 

제가 한국교회가 가장 성장의 정점을 찍을 때에 선교사로 필리핀 산지족에게로 갔습니다. 한국교회가 그 정점을 유지했어요. 모처럼 고국방문을 하면 교회는 뜨거웠습니다. 금요일이면 철야기도, 40일연속새벽기도회, 그야말로 세계를, 열방을 가슴에 품고, 제사장 국가로서의 역할을 감당할 만한 한국교회, 자랑스러웠지요. 그런데 1999년 네팔로 들어가서 사역을 감당하면서 저는 10년이 못되어 가라앉는 한국교회를 볼 수 있었습니다. 철야기도회는 두 시간 짜리 금요기도회로 바뀌고, 40일 연속새벽기도회는 일주일로 축소되고, 수요저녁예배는 그 숫자가 현격히 줄어들고......, 그러면서 들리는 소식은 이단교회는 더욱 기승을 부리고, 대형 교회들은 세습으로 인해 사회에 물의를 일으키고, 수준이하의 목회자들은 성추문부터 시작해서 그야말로 세상 사람들이 범하는 죄가 주의 종들 중에 나타나고...., 그러니 교회가 가라 앉을 수 밖에요.

 

그 모습을 멀리서 저 외국에서 바라볼 때에 새벽마다 고국교회를 위해 기도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한국교회가 가라앉으면 세계선교는 어떻게 되는 것인가? 하나님께서 촛대를 다른 민족으로 옮기시면 대한민국은 어떻게 되는 것인가? 신학생들과 새벽에 새벽기도를 시작하면 선교지가 아니라, 제일먼저 조국교회를 위해 안타까운 마음으로 기도했습니다.

 

사도 바울이 그러했습니다. 예수님을 구세주로 영접하지 않는 자신의 민족을 바라보면 가슴이 메어지고 찢어지는 것 같았습니다. 저가 로마서 9장에서 이런 고백을 합니다. 나에게 큰 근심이 있는 것과 마음에 그치지 않는 고통이 있는 것을 내 양심이 성령안에서 나와 더불어 증언하노니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로라(9:2,3) 내 민족이 참 구세주이신 예수를 영접하고 돌아서면 나는 저주를 받고 죽어도 좋다 그런 말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자신의 모국, 이스라엘이 아니라, 자신의 민족은 그처럼 방황하고 유리하는데, 정작 자신은 이방인들의 영혼을 살리기 위해서 평생 사역을 해야 하는 거에요. 그러니 마음에 슬픔이 일어요.

 

요나가 저 앗시리아의 수도 니느웨로 가기가 싫습니다. 죽어도 싫습니다.

 

그런 것을 보면 달라요. 사도바울은 주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사랑하는 자신의 민족을 떠나 이방인의 선교사로 나갔습니다. 요나는 아닙니다. 물론 배경이 달라요. 바울은 빚진 자였습니다. 교회를 핍박하고 예수 믿는 자들을 잡아다가 가두었습니다. 그러다가 예수님을 만나요. 그러니 평생 그런 죄인중의 괴수를 구원해 주신 은혜를 잊지 못해요. 그러나 요나는 얼마든지 태평성세를 누리며 여로보암2세 왕과 더불어 마치 교황과 같은 위치에 서서 자신의 민족을 위한 선지자 역할을 하면 될 것이었어요.

 

선지자 중에 마지막 인물인 세례요한은 어느 편에 서 있을까요? 그는 제사장의 반열에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가 사가랴가 제사장이었어요. 세례요한이 30세가 되었고 이제는 제사장의 역할을 시작할 때가 되었습니다. 당시 제사장이면 성전에서 평생 어려움 없이 존경받고 살 수 있었어요. 그런데 어느 날 빈들에서 하나님의 음성이 그를 부릅니다.

요한아 내가 너를 쓰고자 한다. 성전에 거하지 말고 광야에서 외치는 자가 되거라. 회개를 외치라 사람들이 마음을 돌이켜서 준비하게 하라. 외치는 자의 소리가 되어 메시아의 올 길을 예비하라

 

그때에 세례요한은 순종합니다. 광야에서 가장 단순한 모습으로 살아갑니다. 메뚜기와 석청을 먹고, 밤이면 급격히 떨어지는 기온에 추우니 낙타털옷을 입고 삽니다. 그런데 그의 멧세지는 얼마나 강력한지, 사람들이 마음에 찔림을 받고, 회개하면서 그의 세례를 받습니다. 그는 메시야가 오는 길에 외치는 자의 소리로 그 본분을 사명을 감당하며 자신에게 주어진 길을 걸었습니다.

성도 여러분, 오늘 말씀의 정황을 보면서 여러분은 어떤 생각을 가지십니까? 요나가 잘한 것입니까? 나 같아도 도망을 칠거야 생각하십니까? 아니면 하나님의 명령인데 순종해야지~!”

 

교회에서 직분을 받으셨습니까? 항존직이라고 합니다. 목사 장로 안수집사 권사 이 직분은 하나님께서 주의 몸인 교회를 통해 받기로 허락한 자에게 주신 것입니다. 목사는 목사의 본분이 있습니다. 장로는 장로의 본분이 있고 집사는 집사의 본분과 권사는 권사의 본분이 있습니다. 마차가지로 그 사명 제대로 감당할 때에 목사는 목사의 분복이 있고 장로는 장로에게 주시는 복이 있습니다. 이는 집사에게는 집사로 권사에게는 권사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은혜와 복이 있습니다.

 

그런데 도망쳐 버리는 모습이 있습니다. 이 시대의 요나입니다.

기도해야 할 자리에 없어요. 예배드릴 자리에 없어요. 봉사할 자리에 없습니다. 제 마음이 너무 아픕니다. 전에는 그러지 않았어요. 선교사로 나가기 전에는 그런 모습이 없었습니다. 열심과 충성이 대단했어요. 그마만큼 하나님께서 복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선교지에서 가라앉는 고국교회의 소식을 수도 없이 접하고, 이제 다시금 부름을 받아, 고국에 돌아와 보니, 보이는 거에요. 왜 한국교회가 가라앉고 있는지, 요나와 같이 도망치는 직분자들을 통해 제일 먼저 보입니다.

 

일제시대에 굴하지 아니하고 나라 사랑, 민족사랑을, 하늘을 닮은 글로 표현했던, 한 기독청년, 윤동주 시인은 이렇게 표현합니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나에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 했다 내가 택한 길이 아니요. 하나님께서 주신 길입니다. 이것을 소명이라고 합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나를 불러 주신 사명이 있습니다. 우리 모두 그 길을 걸어가야 하겠습니다. 순종하므로, 신실하게, 그럴 때에 주께서 나를 택하고 여러분을 택하여 부르신 그 기쁨을 가지시고, 그 걷는 길을, 복 있는 자의 길로 만드실 것입니다. 그러시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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