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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계시록 강해 35] 백마를 탄 예수님
운영자 2019-07-05 추천 0 댓글 0 조회 773
[성경본문] 요한계시록19:11-21 개역개정

11. 또 내가 하늘이 열린 것을 보니 보라 백마와 그것을 탄 자가 있으니 그 이름은 충신과 진실이라 그가 공의로 심판하며 싸우더라

12. 그 눈은 불꽃 같고 그 머리에는 많은 관들이 있고 또 이름 쓴 것 하나가 있으니 자기밖에 아는 자가 없고

13. 또 그가 피 뿌린 옷을 입었는데 그 이름은 하나님의 말씀이라 칭하더라

14. 하늘에 있는 군대들이 희고 깨끗한 세마포 옷을 입고 백마를 타고 그를 따르더라

15. 그의 입에서 예리한 검이 나오니 그것으로 만국을 치겠고 친히 그들을 철장으로 다스리며 또 친히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의 맹렬한 진노의 포도주 틀을 밟겠고

16. 그 옷과 그 다리에 이름을 쓴 것이 있으니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라 하였더라

17. 또 내가 보니 한 천사가 태양 안에 서서 공중에 나는 모든 새를 향하여 큰 음성으로 외쳐 이르되 와서 하나님의 큰 잔치에 모여

18. 왕들의 살과 장군들의 살과 장사들의 살과 말들과 그것을 탄 자들의 살과 자유인들이나 종들이나 작은 자나 큰 자나 모든 자의 살을 먹으라 하더라

19. 또 내가 보매 그 짐승과 땅의 임금들과 그들의 군대들이 모여 그 말 탄 자와 그의 군대와 더불어 전쟁을 일으키다가

20. 짐승이 잡히고 그 앞에서 표적을 행하던 거짓 선지자도 함께 잡혔으니 이는 짐승의 표를 받고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던 자들을 표적으로 미혹하던 자라 이 둘이 산 채로 유황불 붙는 못에 던져지고

21. 그 나머지는 말 탄 자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검에 죽으매 모든 새가 그들의 살로 배불리더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백마를 탄 예수님

 

기독교인이라면 누구나, 개신교인이든 천주교인이든, 믿는 신조가 있으니 그것은 바로 사도신경입니다. 사도신경은 예수님이 제자들이며 초대교회 설립에 중추적인 역할을 한 사도들의 믿음을 축약해 놓은 것입니다. 그 믿음은 성경말씀에 그 기초를 두고 있습니다.

 

사도신경 중에 우리가 이 부분을 주목하기를 원합니다. 저리로써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시리라 여기에서 저리로써 라는 말은 고어로써, 오늘날 우리시대의 표현으로는 그곳으로부터 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여러분 이런 말 들어보셨을 것입니다. 저리로 가라 여기에서 저리, 어떠한 장소, 말하는 사람도 그리고 듣는 사람도 알고 있는 한 특정한 자리입니다.

 

그곳으로부터 란 그러면 도대체 어디를 말씀하는 것일까요? , 사도신경에 이미 언급하고 있는 그 곳으로부터가 되겠습니다. 이는 곧 하나님 우편을 말씀합니다. 하나님 우편에 앉아계시다가 저리로써 그곳으로부터” “산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시리라 누가 그렇게 하시겠다는 것입니까? 어느 성도님은 하나님께서 그래요. 그러나 하나님 우편에 앉아계신 분이시니, 하나님은 아니시고, , 바로 예수 그리스도신 것입니다.

 

오늘날 예수를 믿는 그리고 믿지 아니하는 사람들에 비추어진 예수님의 이미지는 사랑에 국한되어 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예수님, 끝까지 참으시고 용서하시는 주님, 자신을 십자가에 단 로마인들과 예수님을 고소한 유대종교지도자들에 대해서도 주여, 저들의 죄를 용서 하소서, 자신들이 하는 일을 알지 못합니다.” 그와 같은 이미지는 끝까지 참으시고 인내하시고 용서하시는 사랑이 한이 없으신 예수님의 이미지를 갖기에 충분합니다.

 

평강의 왕의 모습이죠. 그래서 예루살렘 성전에 입성하실 때에도 평화의 상징인 나귀를 타십니다. 나귀의 뜰이 낮아요. 그러니 천천히 걸으면서 길 곁에 또는 예수를 따르는 자들과 대화를 나눌 정도입니다.

 

그런데 이처럼 사랑으로 죽기까지 인류를 섬긴 예수님은 당신의 그 사명 다 마치시고, 남은 과업인 전도와 선교를 통한 세계복음화를 제자들에게 맡기시고 하늘로 승천하십니다. 믿는 자들을 위해서는 하늘에 거할 처소를 예비하러 가셨지만 그러나 그 사랑과 은혜를 베풀었음에도 불구하고 믿고 따르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엄격한 심판주로 다시 오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고백합니다. 저리로써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시리라

 

사랑이 많으신 예수님, 그러나 또한 정의로우신 예수님 이렇게 두 가지 성품이, 예수님의 성품이요, 또한 하나님 아버지의 성품이신 것입니다. 성자 예수님께서 온갖 멸시천대 다 받으시고 십자가에 제물로 달리실 때에, 그 아들을 바라보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이 어떠하셨을까요? 여러분 같으면 아들이, 외아들이 그렇게 죄 없이 십자가에 달린다하면 가만히 있겠습니까? 난리 나겠죠. “멈춰라. 이놈들아~!” 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은 침묵하셨습니다. 로마병정들에게, 유대인 종교지도자들에게, 그대로 하라고 내 버려 두셨습니다. 그게 사랑입니까? 의문을 가질 수 있습니다. 공의로우시기 때문에 그러셨습니다. 인류의 죄 값을 치루어야 하기 때문에, 죄 없는 자가 제물이 되어 죄 값을 속량해야 하기 때문에 냉정하신 것입니다. 그러니 아들이 죄 값으로 죽고, 무덤에 들어가실 때까지, 관여하지 아니하신 것입니다.

 

사람들은 말합니다. 은혜가 좋은 것이야~! 은혜로 해야지 물론 선한 일을 도모 할 때에 그렇게 하면 좋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은혜를 말하면서 공의가 아닌, 개인의 또는 단체의 이익을 위해 뜻을 이루고자 할 때에는 냉정한 잣대가 필요합니다. 당연히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하여 세워가야 합니다. 그래서 사랑과 정의는 동전의 양면과 같은 것입니다. 한쪽에 치우쳐서는 아니됩니다.

오늘 19장은 세상 마지막 날에 되어 질 일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처럼 사랑의 이미지로만 기억되던 예수님께서 정의의 심판 주로써 등장하십니다. 더 이상 나귀를 타신 것이 아닙니다. 이미 대속의 사명은 마치셨으니, 그리고 하나님을 떠난 백성들이 믿고 돌아오기를, 그처럼 참고 또 참으시고 기다리셨으니, 이제는 그 무조건적인 용서의 때는 다 지나갔습니다. 그렇게 하실 이유가 이제는 없으십니다.

 

말씀 11절에 보니 위풍당당한 백마를 타셨다고 했습니다. 이는 전투하시는 투사의 모습입니다. 별명이 있습니다. 충신과 진실이라고 했습니다. 성경원어로 피스토스 카이 알레디노스,” 영어로는 Faithful and True” 좀 더 현대적인 표현으로 해석하면, 신실과 진리입니다.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최선으로 십자가의 사명을 온전히 이루셨으니 그 별명이 예수님께 딱 맞습니다.

 

저가 심판 주로써 투사의 모습이시니 공의로 심판하며 싸우시는 모습입니다. 그 눈이 불꽃같다고 했습니다. 머리에는 많은 면류관을 썼습니다. 그 면류관에는 상대를 완전히 제압하는 한 이름이 쓰여져 있는데 그 이름은 그분 밖에 모른다고 했습니다. 심판 주로써 그를 상징하는 이름이겠죠. 그런데 그 답이 13절에 나옵니다. 그의 이름은 하나님의 말씀 이라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태초에 온 우주만물이 창조되어질 때에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졌습니다. 그리고 이제 세상 끝날 심판의 날에 또한 하나님의 말씀으로 심판하십니다. 말씀이 기준인 것입니다. 15절 초반부에도 말씀합니다. 그의 입에서 예리한 검이 나오니 그것으로 만국을 치겠고 입에서 나오는 예리한 검이 무엇이겠습니까? 말씀드렸습니다. 바로 좌우에 날선 검보다 더 예리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쪼개기까지 하는 하나님의 말씀인 것입니다.(4:12)

 

성도 여러분, 우리가 이 새벽에도 진리의 말씀을 사모합니다. 논어, 이인 제8장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子曰, 朝聞道 夕死可矣, 자왈, 조문도면 석사라도 가의니라 공자 선생의 말씀이죠. 아침에 도를 듣고 깨우쳤다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 란 뜻입니다. 眞理(진리), ()는 곧 천지를 창조하시고, 다스리시고, 생명을 살리시고,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인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아멘입니다. 공자가 이것을 깨닫지 못하고 죽었어요.

 

이 전투하시는 예수님의 복장이 묘사됩니다. 13절에 보니 피 뿌린 옷을 입었다고 했습니다. 무슨 뜻이겠습니까? 이 모습은 이미 요한계시록 14장에서 언급하고 있습니다. 악한 자들을 추수하여 진노의 포도주 틀 에 던지셨다 고했습니다. 그리고 즙을 내기 위해 발로 밟으니 포도알이 터집니다. 붉은 포도물이 튑니다. 정강이까지 튀게 되니 입은 옷이 핏빛깔이 됩니다. 같은 모습이 15절 후반부에 같은 모습으로 묘사됩니다. 맹렬한 진노의 포도주 틀을 밟겠고

그 예수님 뒤로 흰 세마포 옷을 입은 군대가 따른다고 했습니다. 하늘에 있는 군대라고 했어요. 이들은 주를 돕는 허다란 천사들이요, 또한 먼저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승리를 한 후에 한 천사가 공중의 나는 모든 새들을 향하여 큰 음성으로 외칩니다. 와서 저들을 위해 하나님께서 베푸신 잔치에 참여하라 새들을 위한 잔치입니다. 그 전쟁에서 심판을 받아 죽은 자들의 사체를 먹으라는 것입니다. 끔찍하지요. 악한 자들의 최후인 것입니다.

 

어린양의 혼인잔치와 이 새들의 잔치는 너무 다릅니다. 악의 세력들은 모두 멸망합니다. 시체가 산을 이룹니다. 거기에는 이 지상에서 모든 권세를 누리던 사람들이 새들의 먹이로 누워 있어요. 악인들의 비참한 말로를 예고하고 있습니다.

 

19절입니다. 짐승과 땅의 임금들 그리고 저들의 군대가 언급됩니다. 저들이 선한군대와 대적하다가 20절에 보니 저들이 잡혀서 결국 유황불 붙는 못에 던져졌다고 했습니다.

짐승은 13장부터 지금까지 계속 등장하고 있습니다. 독재자들입니다. 세상 권력이죠. 세상 정부를 주도합니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진리를 왜곡시키고, 선한 기독교 성도들을 핍박하는 자들입니다. 우리가 북한을 위해서 기도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이 기만적인 세력들은 세상 마지막 날,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을 피하지 못합니다. 20절에 보니 그들은 산 채로 불타는 유황 불에 던져져서 다른 사람들보다도 더 극심한 심판을 받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하나님을 대적하고 성도들을 핍박하던 모든 세력들이 멸망합니다.

 

짐승과 땅의 임금들, 양심을 속이고 권세를 사용해 자신들의 유익에 눈이 어두운 자들을 조종하는 자들이 있다고 했습니다. 계시록에는 음녀로 표현됩니다. 사탄입니다. 음녀가 짐승을 탔다고 173절에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실제로 그 짐승을, 세상의 악한 세력을 조종하는 것은 바로 사탄인 것입니다.

 

때로 성도들로부터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을 듣습니다. 귀신에 씌워가지고, 사탄의 사주를 받아서....”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그렇게 과격하게 말씀하시나 생각하지 않습니까?

그러나 계시록을 통해 우리는 그것이 사실임을 봅니다. 사단의 조종을 받아요.

 

오늘도 악한 영의 세력이 우는 사자와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아다닙니다. 마음에 침투합니다. 그러니 성경은 말씀합니다. 무릇 지킬만한 것 중에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라(4:23)

 

그러나 우리 믿음의 사람들에게는 어림도 없습니다.

믿음으로 물리칩니다. 예수의 이름으로 물리칩니다.

승리를 선포하고 오히려 사탄 마귀 귀신을 꾸짖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승리를 선포하셨습니다.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또한 말씀하셨습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우리에게 권세가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오늘도 말씀으로 무장하고 기도로 능력 얻어, 온갖 다양한 방법으로 마음을 유혹하고 죄 짓게 하며, 환경에, 가정에, 일터에, 사회에, 죄악으로 침투하는 사단의 세력을, 예수의 이름으로 물리치시고, 승리하시는, 주의 정병들이 다 되시기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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