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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계시록 강해 30] 불이 섞인 유리바다를 건넌 자들의 노래
운영자 2019-06-27 추천 0 댓글 0 조회 769
[성경본문] 요한계시록15:1-8 개역개정

1. 또 하늘에 크고 이상한 다른 이적을 보매 일곱 천사가 일곱 재앙을 가졌으니 곧 마지막 재앙이라 하나님의 진노가 이것으로 마치리로다

2. 또 내가 보니 불이 섞인 유리 바다 같은 것이 있고 짐승과 그의 우상과 그의 이름의 수를 이기고 벗어난 자들이 유리 바다 가에 서서 하나님의 거문고를 가지고

3. 하나님의 종 모세의 노래, 어린 양의 노래를 불러 이르되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시여 하시는 일이 크고 놀라우시도다 만국의 왕이시여 주의 길이 의롭고 참되시도다

4. 주여 누가 주의 이름을 두려워하지 아니하며 영화롭게 하지 아니하오리이까 오직 주만 거룩하시니이다 주의 의로우신 일이 나타났으매 만국이 와서 주께 경배하리이다 하더라

5. 또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하늘에 증거 장막의 성전이 열리며

6. 일곱 재앙을 가진 일곱 천사가 성전으로부터 나와 맑고 빛난 세마포 옷을 입고 가슴에 금 띠를 띠고

7. 네 생물 중의 하나가 영원토록 살아 계신 하나님의 진노를 가득히 담은 금 대접 일곱을 그 일곱 천사들에게 주니

8. 하나님의 영광과 능력으로 말미암아 성전에 연기가 가득 차매 일곱 천사의 일곱 재앙이 마치기까지는 성전에 능히 들어갈 자가 없더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불이 섞인 유리바다를 건넌 자들의 노래

 

NASA라고 불리는 미 항공우주국의 케빈 잔례는 지구는 상상 이상으로 위험한 곳이다라고 말했습니다. “만일 혜성의 잔해 하나만 대서양 중심에 떨어진다 해도 그 폭발로 말미암아 엄청난 재앙이 땅과 바다를 덮을 것이고 그러면 거대한 해일이 바닷가의 도시들을 덮칠 것이다. 높이 1km 이상의 파도를 동반하는 태풍이 쿠바, 미국과 멕시코의 대서양 연안, 그리고 카리브해의 섬들을 쓸어가 버릴 것이다. 날이 저물기 전에 리오데자네이로, 살바도르, 브에노스 아이레스, 리스본, 홍콩, 싱가폴 등이 물에 잠길 것이다.” 그러면서 또 말했습니다.

 

진짜 위험은 물보다는 불일 것이다. 혜성이 지구에 부딪히는 순간 오늘날 지구가 보관하고 있는 모든 원자폭탄을 한꺼번에 폭발시키는 것 같은 대 폭발이 있을 것이다. 마침내 폭발과 큰 지진으로 땅은 무너지고 분화구는 터져 나오며 대기는 짙은 유황과 독가스로 덮이게 되어 사람들은 모두 질식사하고 말 것이다.”

 

정말 무시무시하죠. 자연의 창조주가 되신 하나님께서 그야말로 손가락 하나만 까딱하여도 세상은 멸망당하게 될 것입니다. 마지막 날의 심판은 사람의 상상을 초월하고 또한 불가항력적일 것입니다. 그 대 환란의 날이 오기 전에 세상이 아직 평안하며 신앙 생활할 수 있을 때에 참 믿음으로 서 있어야 하겠습니다. 그 날이 도적같이 임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계시록 15장은 그야말로 폭풍전야의 모습입니다. 이미 경고는 주어졌습니다. 더 이상의 참고 기다리심은 없습니다. 또한 이 재앙은 마지막 재앙이 될 것입니다. 7절 말씀에 보니 일곱 천사들은 진노를 가득히 담은 금 대접 일곱을 받아 들고 섰습니다. 그 대접을 차례대로 세상에 붓기 시작하면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지구는 초토화 될 것입니다. 그 가운데 살아날 자가 없을 것입니다.

 

이 대 환란의 날이 오기 전에 환란 중에도, 유혹 중에도, 끝까지 신실하게 믿음을 지킨 자들을 주께서 모으신다고 지난시간에 14장을 통해 말씀드렸습니다. 주께서는 낫으로 추수를 하셔서 알곡들을 거두어들이신다고 했습니다. 추수가 되어 주님의 손안에 들린 자들은 참으로 복된 자들입니다. 우리가 그 주님의 손 안에 들린 알곡이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이 복 된 자들의 모습은 이 대 환란의 날에 어디에서 무엇을 할까요? 2절부터 4절까지 이 복된 자들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2절에 보니 불이 섞인 유리 바닷가에 섰다고 했습니다. 거문고를 가지고 모세의 노래와 어린양의 노래를 부른다고 했습니다.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시여 하시는 일이 크고 놀라우시도다 만국의 왕이시여 주의 길이 의롭고 참되시도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마음에 어떤 그림이 그려지십니까? 홍해 바다 아니겠습니까? 그처럼 애굽에서 종살이를 하며 그 노역으로 인해 지치고 상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을 합니다. 뒤에는 저들을 잡아 죽이려는 애굽의 군대가 쫓아옵니다. 앞에는 파도가 넘실거리는 홍해바다가 가로막고 섰습니다. 그야 말로 진퇴양안입니다. 그때에 모세가 저들을 향해 외칩니다.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14:13) 모세가 바다 위로 손을 내밀매 여호와께서 큰 동풍으로 밤새도록 불어오게 하셔서 바닷물을 물러가게 하시고 바다가 갈라지고 마른 땅이 되었다고 했습니다.(14:21) 그래서 그 바다를 건넌 이스라엘 백성들이 구원의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죽을 줄 알았는데 살려내신 것입니다. 출애굽기 15장에 기쁨과 감사로 가득 찬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들 그리고 미리암의 찬양이 나옵니다.

 

오늘 본문에 불이 섞인 유리바닷가에서 엄청난 숫자의 사람들, 짐승과 우상과 그의 이름의 수를 이기고 벗어난 자들이 모세의 노래를 부릅니다. 불이 섞인 유리바다를 통과한 자들입니다. 새 하늘 새 땅에 들어갈 구원받는 자들의 모습이에요. 십자가의 고난을 이겨내신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의 노래를 부릅니다. 왜 불이 섞인 유리 바다로 표현했겠습니까?

 

이미 요한계시록 46절에 언급했습니다. 하늘 보좌 앞에는 수정과 같은 유리바다가 있다.” 이 표현은 역시 그 시대의 문화코드로 읽어야 합니다. 사도요한의 살고 있었던 2천 년 전에는 유리가 아주 귀했어요. 그래서 사람들은 맑고 투명하고 넓은 장소를 묘사할 때에 유리바다라는 말로 표현했습니다. 그런데 불이 섞여있다.” 무슨 말씀이겠습니까?

 

아무나 건너올 수 없는 바다라는 것입니다. 출애굽의 홍해사건으로 보면 애굽병사들이겠죠. 못 건너옵니다. 그러면 누가 건너오는가? 죄 없는 자가 건너올 수 있습니다. 맑고 투명한 유리바다에 죄가 다 비칩니다. 죄가 드러나니 통과하다가 다 죽어요. 그래서 불이 섞인, 심판이 서려있는 유리바다입니다. 심령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가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5:8)

 

과거나 현재나 내일이나 하나님 앞에서 가장 큰 문제는 심령이 청결하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시대 바리새인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러니 회칠한 무덤이라는 표현으로 꾸중하셨습니다. 겉과 속이 다르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저와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맑고 투명한 유리바다를 건널 수 있습니까? 그럴 정도로 청결한 심령을 가지고 있나요? 깨끗하고 맑은 삶으로 살아가고 계십니까?

 

때로 넘어지고 때로 원치 않는 죄를 범합니다. 그래서 그 유리바다를 넘어갈 자격이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대속의 공로로 말미암아,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흘린 보혈로 용서함을 받아, 우리가 그 불이 섞인 유리바다, 심판이 서려 있는 유리바다를 건너가는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게 Good news! 복음이에요. 은혜로 주시는 구원!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을 믿을 때에 우리가 건너갑니다.

 

예수를 제대로 확실히 믿는 사람들은 어떠한 핍박과 환란 중에도 믿음을 지켜냅니다. 오늘 말씀에 보니 첫째는 짐승을 이긴자 라고 했습니다. 전에 나누었습니다. 짐승은 무엇의 상징입니까? 정부권력이라고 했습니다. 그 시대에는 권력의 상징, 로마의 황제들, 그 중에 네로였습니다. 권력, 믿음을 버리게 하는 권력, 오늘날에는 교묘하게 국가가 권력을 사용하여 기독교를 멸살하려고 합니다. 어떻게 가능합니까? 반기독교적인 문화를 법으로 보장하며 세워나가는 것입니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동성애자들을 위한 성소수자법 아니겠습니까? 다른 죄를 범한 형제 자매를 대하는 모습으로 그 모습을 보고 아파하며 끌어안고 기도해 주어야지 그러지 않고, 그것이 당연한 것이다. 잘못된 것이 없다. 치료도 없어요. 그냥 정상이다. 그러니 법적으로 보호해 주어야 한다. 그런가하면 주일에, 교회에 못 나가도록 왜 국가 자격증 시험을 주일에 치루게 하는가 말입니다.

 

두 번째, 짐승의 우상을 이긴 자라고 했습니다. 짐승의 우상, 당시에는 네로황제가 섬기던 신들이지요.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올림포스 열두 신입니다. 제우스, 헤라, 포세이돈, 데메테르, 아레스, 헤르메스, 헤파이스토스, 아프로디테, 아테나, 아폴론, 아르테미스, 헤스티아가 그 모습들입니다.

 

오늘날에는 무엇일까요? 힌두교의 신들, 브라마, 비쉬누, 쉬바, 본인은 아니라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신적 존재로 만들어 놓은 석가모니, 같은 맥락에서 사람을 신으로 세운 달라이 라마들, 도교를 통해 신적존재가 된 조상신들 유비와 관우와 장비, 무속신앙을 통해 우상이 된 사명대사, 삼신당 할머니, 성황당에 천하대장군, 지하 대장군, 기암괴석에 이르기까지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습니다.

 

그 다음에는 짐승의 이름의 수를 이기고 벗어난 자들이라고 했습니다. 666 숫자의 인침을 받지 않고....., 당시 네로의 로마정부가 제공하는 혜택을 받지 않고 그런 뜻입니다. 오늘날은 어떤 것입니까? 정부가 제공하는 비신앙적인 것들의 수혜를 받지 않고, 비성경적인 제도를 통한 유익에 넘어가지 않고, 그러한 혜택을 거부하고...., 그런 뜻이죠. 어떠한 모습이 있습니까? 지금은 사라졌지만 흑인노예제도가 한 예가 되겠습니다. 국가가 조장했습니다. 백인우월주의를 만들어, “많은 농사를 지어야 하니 인력이 필요하니 흑인을 노예로 삼아서 농사를 지어라정부정책이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비성경적인 것을 안 정치인 중에 한 사람인 에이브러햄 링컨은 남북전쟁을 불사하고서라도 노예해방을 이루어냅니다.

 

오늘날은 없나요? 왜 없겠습니까? 국가가 주도하는 전면적 무상복지 정책, 전면적 무상급식제도는 비성경적입니다. 사람은요, 힘든 일 하기 싫어합니다. 놓아두면 나태하고 게으릅니다. 본성적으로 그래요. 에덴 동산의 타락 이후로 나타난 현상입니다. 에덴동산에서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에게 에덴 동산을 지키고 피조물들의 이름을 짓게 하고 또 돌보게 하는 일들을 맡기셨습니다. 기쁨으로 일을 하는 것이 성경적입니다.

 

정부의 정책이 가난한 자에게 빵을 준다좋습니다. “일할 수 없는 신체적 어려움이 있다, 교회라도 나서서 도와야지요. 그러나 가난하지도 않는데, 일할 수도 있는데 국민세금을 걷어 저들에게까지 빵을 준다면 다시 생각해 볼 일입니다. 바울 사도는 데살로니가 교인들에게 일하여 자기 양식을 먹으라"(살후 3:12)고 권면합니다. 만일에 정부가 일할 체력이 있고 중소기업들은 일꾼이 모자라 외국인 노동자를 고용하고 있는데 청년들에게 실업수당을 주기로 한다면 그 이전에 성경이 말씀하는 노동의 숭고한 정신부터 가르쳐야 할 것입니다. 정말 청년들이 일을 하지 않고 그 최소한의 돈을 가지고 살려고 한다면, 그래서 장성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부모곁을 떠나지 않는다면 이는 성경이 말씀하고 있는바와 상치됩니다. 민주주의는 하나님께서 개개인에게 부여하신 은사와 능력을 존중하고 발휘할 기회를 십분 발휘하고자 하는데, 공평과 균등을 강조하는 사회주의는 정부가 주도권을 잡고자합니다. 개인의 능력이 어디까지인지를 도전을 통해 알고 싶어 하는 총명한 두뇌들을 하위평준화로 묶어 둔다면 이는 비성경적입니다. 참으로 조심해야 할 부분입니다.

왜 아메리카 인디언들이 유럽에서 건너온 백인들에게 땅을 주고도, 깨우치지 못하고, 가장 낮은 학력으로 살아갑니까? 정부가 다 주는 거에요. 거져 주는 것입니다. 그러니 열심히 살지 않아도 최소한의 것으로 먹어요. 문제는 일하지 않아도 돼요. 시간이 남아 돌아요. 그러니 술과 마약이 저들의 생존 야성을 죽인 것입니다. 땅을 다 빼앗기고도 그냥 그렇게 살아갑니다.

 

이러한 짐승과 그의 우상과 짐승의 수를 통한 모든 세상적인 그러나 비성경적인 유혹과 혜택을 이기고 벗어난 자들이 유리바닷가에 서서 구원받은 자의 찬송을 부르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럴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5절입니다. “하늘에 증거 장막의 성전이 열리며라고 말씀합니다. 증거 장막이란 광야에 세운 성막을 연상하게 합니다. 그 안에 지성소에 언약궤가 있었어요. 그래서 증거 장막입니다. 그런데 하늘에도 성전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 성전이 열린다고 했습니다.

 

여러분 이 광야에서 성막에 언약궤가 있는 지성소는 일 년에 딱 한번 열렸습니다. 대 속죄일에만 열립니다. 그러므로 이 구절에서 증거장막이 열렸다고 하는 것은 하늘 성소에서 대속죄일의 심판이 진행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 모습이 광야의 성막에서 제사장들이 하는 모습 그대로의 모습입니다. 성전으로부터 일곱 천사들이 나오는데 빛난 세마포 옷을 입고 가슴에는 금띠를 띠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금 대접들을 들었는데 하나님의 진노를 가득히 담은 금 대접입니다. 장차 일어날 마지막 불심판, 아무도 막을 수가 없어요. 8절에 보니 하나님의 영광과 능력으로 말미암아 성전에 연기가 가득찼다고 했습니다. 마치 그 모습은 시내산에 구름으로 임재하는 하나님의 권능, ‘쉐키나를 상상하게 합니다. 그 하시는 일을, 심판을 막을 자가 없다는 것입니다.

 

오늘의 말씀을 정리합니다.

여러분은 어느 자리에 서게 될 것입니까? 당연히 심판받을 그 자리가 아니라 구원받은 백성들의 그룹에 속하여 감사함으로 기쁨으로 하나님을 찬송하는 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나아가서 현재 우리가 어떤 어려움을 당하고 있습니까? 믿음을 지키시기가 힘듭니까?

분명한 것은 우리가 당하는 어려움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버리셨다는 뜻이 아니죠. 그 가운데에서 믿음을 지키는 자로 세워 나가시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오늘도 기도하고 말씀으로 무장하고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전진해 나아갑니다. 그러니 정말 큰 환란이 임할 때에 그리스도의 정병으로 넉넉히 승리할 것입니다.

 

오늘도 기도 중에, 삶 가운데 함께하시는 임마누엘의 하나님의 손을 꼭 붙잡고 승리하시는 복된 날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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