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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왕기하 강해 21] 북 왕국 이스라엘의 멸망
운영자 2019-03-08 추천 0 댓글 0 조회 1122
[성경본문] 열왕기하17:1-6 개역개정

1. 유다의 왕 아하스 제십이년에 엘라의 아들 호세아가 사마리아에서 이스라엘 왕이 되어 구 년간 다스리며

2.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으나 다만 그 전 이스라엘 여러 왕들과 같이 하지는 아니하였더라

3. 앗수르의 왕 살만에셀이 올라오니 호세아가 그에게 종이 되어 조공을 드리더니

4. 그가 애굽의 왕 소에게 사자들을 보내고 해마다 하던 대로 앗수르 왕에게 조공을 드리지 아니하매 앗수르 왕이 호세아가 배반함을 보고 그를 옥에 감금하여 두고

5. 앗수르 왕이 올라와 그 온 땅에 두루다니고 사마리아로 올라와 그 곳을 삼 년간 에워쌌더라

6. 호세아 제구년에 앗수르 왕이 사마리아를 점령하고 이스라엘 사람을 사로잡아 앗수르로 끌어다가 고산 강 가에 있는 할라와 하볼과 메대 사람의 여러 고을에 두었더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북 왕국 이스라엘의 멸망

 

마침내 북 왕국 이스라엘이 멸망합니다. 호세아 왕 때였습니다. 당시 동쪽의 강력한 왕국 앗시리아에 의해서 무너집니다. 때는 기원전 722년경이었어요. 209년간의 나라의 수명이었습니다.

 

기원전 931년에 유다와 베냐민 지파를 제외한 10개의 지파가 연합하여, 여로보암을 왕으로 세우고 시작되었던 나라였습니다. 209년간 19명의 임금이 나라를 다스렸어요. 왕조의 교체가 빈번하였고 그러기에 늘 정정(政情)이 불안했습니다.

 

남쪽에 위치한 유다왕국은 유다와 베냐민 두 지파요, 북왕국 이스라엘은 10지파가 함께 했으니 국력은 다섯 배 이상 컸습니다. 그런데도 유다에 비하여 100년 이상 빨리 멸망했습니다. 객관적으로 보면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땅 또한 유다보다 훨씬 더 비옥하였습니다. 그러니 주업이 농사였어요. 풍요로운 땅이니, 그곳에 먼저 살고 있으면서 농업을 주업으로 삼았던 가나안 족속, 저들이 전통적으로 지켜왔던 신앙, 즉 바알과 아세라 신을 섬기는 토착종교에 이스라엘 백성이 영향을 많이 받았습니다.

 

그래서 그랬을까요? 하나님께서 택한 백성인데도, 그러니 오직 여호와를 의지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어요. 하나님께서 그처럼 강조한 십계명의 첫 번째, 나 이외에 다른 신을 두지 말라 고 하는 그 첫째 계명을 지키지 못했습니다. 멸망 요인의 첫 번째 이유였습니다.

 

하나님을 완전히 떠난 것은 아니었습니다. 문제는 둘 다 섬긴 것이었어요. 하나님도 섬기고, 바알신도 섬기고, 또한 황금송아지 앞에 제사를 드리고 분향을 하고 이를 혼합주의라고 합니다. 좋아 보이니, 생각 없이 취하는 거에요.

 

저는 이 모습을 보면서 오늘날 이 시대 믿음 없는 자들이 모습을 연상합니다. 한발은 세상에 두고, 한발은 교회에 둡니다. 두 마음을 품어 정함 없는 자의 모습이지요. 안 믿는 것보다 낫지만 그러나 복은 떠났습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지 않기 때문이에요.

 

가나안 땅, 가나안 족속의 종교처럼, 이스라엘 백성들이 혹 해서 따라간 바알신앙, 그렇다면 오늘날 이 시대에 믿음의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또 다른 우상은 어떤 것이 있을까요?

 

첫째, 뭐니 뭐니 해도 머니(Money), 물질만능주의입니다. 돈이 바알신의 위치에 있습니다. 돈을 사랑함이 일만악의 뿌리가 된다(딤후6:10)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돈을 내가 부려야 하는데, 돈에 마음을 빼앗기고 나니, 돈에 의해 조종당하는 삶으로 삽니다. 그래서 우상인 것이에요.

 

둘째, 인본주의입니다. 사람을 가장 높은 자리에 올려놓습니다. 바벨탑의 문화입니다. 하나님이 계셔야 할 자리에 인간이 자리합니다. 내 주먹을 믿지....~!” 하는 세속문화입니다. 인간은 신의 도움이 없이 과학을 통해 이 땅에 파라다이스를 이룰 것이다. 그러니 신으로부터 독립을 하고 자유를 입어야 한다.” 멋있어 보입니다.

 

그러나 간과한 것이 있습니다. 태어날 때부터 인간은 죄성을 갖고 태어난 다는 사실을 모릅니다. 일찍이 다윗이 고백했습니다.

내가 죄악 중에 출생하였음이여 모친이 죄 중에 나를 잉태하였나이다 (51:5)

 

그러니 가진 자는 가난한 자의 것까지 빼앗아, 더 가지려 하고, 강한 나라는 약한 나라 이용해 더 강해지려 하고, 모두에게 공평히 분배하면 이 땅에 유토피아가 임할 것이다.” 이 유토피아를 이루는 자가 누구인가? 사람이라고 합니다. 이 모습의 하나가 저 북한의 김일성 주체사상종교입니다. 사람을 신격화하니 종교지요. 이 허울 좋은 공산주의 사상은 태어날 때부터 사람의 핏속에 흐르고 있는 죄성을 보지 못한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오직 예수의 보혈로 죄 씻음을 받습니다. 복음만이 사람을 변화시킵니다. 사람이 세운 그 강력한 로마의 정치로도, 화려한 문명으로도, 빛나는 철학과 논리로도, 사람의 마음 하나 변화시키지 못했습니다. 그런데도 여전히 바벨탑을 쌓아갑니다. 하나님의 자리에 인간이 앉으려고 합니다. 겸손히 하나님 앞에 나아와야 합니다.

 

세 번째, 다원주의입니다. 저들은 주장합니다. 구원에 이르는 길은 하나만 있는 게 아니다.” “산 위, 정상에 오르는 길은 여러 갈래 길이 있다.” 그럴 듯합니다. 그래서 바알도 섬기고, 앗세라, 아스다롯도 섬기고, 다몬, 그모스, 마르둑, 몰렉신을 섬겼습니다.

 

오늘날에는 불교, 유교, 이슬람, 힌두교, 도교, 뉴에이지, 무속신앙이 그런 모습입니다. 다 같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합니다. 그러나 저들은 성부 하나님만 알아요, 이 땅에 강림하셔서 우리의 죄를 씻으시기 위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성자 하나님이신 예수님을 부인합니다. 그 예수님께서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무도 아버지께로 갈 자가 없느니라(14:6)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니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10:9,10)

 

같은 하나님을 섬긴다고 주장하지만, 성자 예수님이 아니고서는 아닌 것입니다. 성령 하나님이 아니고서는 그 예수를 마음에 구주로 영접할 수가 없는 것이에요. 그래서 삼위일체 하나님을 믿는 것은 우리 기독교가 다른 종교와 구별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왜 이스라엘 백성이 선민으로 하나님만 따르다가 가나안 족속의 종교에 빠져 결국 멸망하게 되었을까요? 좋아 보이는 거에요. 여호와 신앙은 율법이 강조됩니다. 이렇게 하라 저렇게 하라 큰 틀에서 보면 율법은 하나님 사랑, 이웃사랑입니다. 그 정신을 가지고 살아라. 그래야 복이 임하고 이 땅에서 잘 될 것이고, 하나님의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이 땅에서도 이루어질 것이다. 그 모습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영광을 받으실 것입니다.

 

그런데 바알신앙은 아스다롯 신앙은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것입니다. 제재가 없어요. 구속도 없어요. 자유로운 것이에요. 소위 일종의 쾌락주의의 종교입니다. 그것이 자유로와 보이니 멋있어 보입니다. 오늘날 편리주의가 그 모습이죠. 내 맘대로 하고 싶은 것입니다. 조금도 불편한 것을 감내하지 못합니다.

 

이 모습은 성경에서 육신을 따라 사는 삶으로 표현합니다. 이생의 자랑,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이 그것입니다. 이 모습은 세상으로부터 쫓아온 것이니 그 모습으로는 결코 심령의 평강을 얻지 못합니다. 영혼이 구원을 받지 못합니다. 말씀드렸어요. 인생은 죄성을 갖고 태어난다. 그냥 놔두면 무법천지가 됩니다. 그래서 법도 있고, 경찰도 있습니다. 그런데 악인은 법망을 피해 가려고 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된 존재는 다릅니다. 십자가로 죽고 예수로 새롭게 된 사람들은 세상의 법을 초월하고 천국시민, 천국백성으로 살아갑니다. 세상이 주지도 알지도 못하는 하늘이 평강이 그 심령 속에 거합니다. 인생의 목적이 세인들과 다르기 때문입니다.

 

오늘 성경 본문의 이스라엘의 멸망을 보면서 우리는 이렇게 의문을 가질 수 있습니다.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어떻게 이스라엘을 멸망당하게 내 버려두시는가?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 긍휼의 하나님 아니신가?

 

어떻게 그렇게 비참하게 내 버려두시는가? 오늘 말씀에 보면 저들이 포로가 되어 잡혀갑니다. 함께 모이면 반란을 일으키지나 않을까 하여 앗수르 이곳, 저곳에 분산시켜 거하게 합니다. 6절 말씀을 다시 보겠습니다.

호세아 제구년에 앗수르 왕이 사마리아를 점령하고 이스라엘 사람을 사로잡아 앗수르로 끌어다가 고산 강 가에 있는 할라와 하볼과 메대 사람의 여러 고을에 두었더라

 

서로 모이지도 못하게 했습니다. 뿐만 아니었습니다. 이 앗수르의 정책이 무섭습니다. 빈 사마리아 땅에는 이방민족으로 채웁니다. 그러니 혼혈이 시작됩니다. 24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앗수르 왕이 바벨론과 구다와 아와와 하맛과 스발와임에서 사람을 옮겨다가 이스라엘 자손을 대신하여 사마리아 여러 성읍에 두매 그들이 사마리아를 차지하고 그 여러 성읍에 거주하니라

그 땅은 이제 더 이상 이스라엘 인들의 땅이 아닌 것입니다. 너무 무섭고 비참해졌습니다.

 

어떻게 이스라엘을 이렇게 멸망당하게 내 버려두시는가?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 긍휼의 하나님 아니신가? 어떻게 그렇게 비참하게 내 버려두시는가?

 

우리 믿음의 사람이 꼭 간과하지 말아야 할 하나님의 속성이 있습니다. 그것은 정의의 하나님을 볼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정의를 지키는 것은 거룩을 유지하기 위함입니다. 거룩은 하나님의 속성입니다. 그 하나님께서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19:2) 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과의 관계는 부모와 자녀, 또는 남편과 아내의 관계로 표현합니다. 이 사이에는 사랑과 존중의 관계이지만 반드시 지켜야 할 서로의 의무가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 아버지의 아버지 되심을 인정하는 것이요, 하나님 아버지의 남편되심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내 아버지를 놔두고 다른 아버지에게 가서 내 아버지라고 하는 것을 하나님은 용납하시지 아니하십니다.

 

내 남편을 놔두고 다른 남자의 품에 안겨서 그를 내 남편이라고 하는 것은 용납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십니까? 하나님께서 호세아 선지자의 입을 통해서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이제) 내 백성이 아니요.”(1;9) 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니 그냥 내버려 두시는 것입니다. 아무리 붙잡고 돌아오게 해도 도로 가면 그렇게 멸망의 길로 가게 하십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래야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 그래서 정의가 유지되고, 믿음의 백성들이 주님 안에 살아가며, 사단이 완전히 지배하지 않는 세상으로 보존하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이 이스라엘이 다시금 회복되는 것은 아주 오랜 세월이 지나고 나라 잃은 설움으로 철저하게 느끼게 하시고 하나님 앞에 회개하고 통회하고 자복했을 때에......, 1948514일 다시금 그 땅으로 돌아오게 하셨습니다. 흩어진 이스라엘 백성들을 그 땅으로 돌아오게 하시고 이스라엘의 독립을 선언케 하셨던 것입니다. 우리는 역사를 보면서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고 진리의 자녀들, 하나님의 자녀들로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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