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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왕기하 강해 01] 회개: 즉시, 진정으로, 행동으로
운영자 2019-01-24 추천 0 댓글 0 조회 819
[성경본문] 열왕기하1:1-8 개역개정

1. 아합이 죽은 후에 모압이 이스라엘을 배반하였더라

2. 아하시야가 사마리아에 있는 그의 다락 난간에서 떨어져 병들매 사자를 보내며 그들에게 이르되 가서 에그론의 신 바알세붑에게 이 병이 낫겠나 물어 보라 하니라

3. 여호와의 사자가 디셉 사람 엘리야에게 이르되 너는 일어나 올라가서 사마리아 왕의 사자를 만나 그에게 이르기를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없어서 너희가 에그론의 신 바알세붑에게 물으러 가느냐

4. 그러므로 여호와의 말씀이 네가 올라간 침상에서 내려오지 못할지라 네가 반드시 죽으리라 하셨다 하라 엘리야가 이에 가니라

5. 사자들이 왕에게 돌아오니 왕이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어찌하여 돌아왔느냐 하니

6. 그들이 말하되 한 사람이 올라와서 우리를 만나 이르되 너희는 너희를 보낸 왕에게로 돌아가서 그에게 고하기를 여호와의 말씀이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없어서 네가 에그론의 신 바알세붑에게 물으려고 보내느냐 그러므로 네가 올라간 침상에서 내려오지 못할지라 네가 반드시 죽으리라 하셨다 하라 하더이다

7. 왕이 그들에게 이르되 올라와서 너희를 만나 이 말을 너희에게 한 그 사람은 어떤 사람이더냐

8. 그들이 그에게 대답하되 그는 털이 많은 사람인데 허리에 가죽 띠를 띠었더이다 하니 왕이 이르되 그는 디셉 사람 엘리야로다

제공: 대한성서공회

회개: 즉시, 진정으로, 행동으로

 

한자성어에 반면교사(反面敎師)라는 말이 있습니다. 반대 반 자에 면 면 자에 가르칠 교 자에 스승 사 자를 씁니다. 스승은 스승인데 반대의 가르침을 주는 스승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 잘못된 가르침을 주는 스승을 가리키는 말로, 다른 사람의 잘못된 일과 실패를 거울삼아 나의 가르침으로 삼는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열왕기상에서 여러 왕들의 모습이 반면교사로 우리에게 교훈을 줍니다. 잘된 모습보다는 잘못된 모습에서 우리가 우리는 저러지 말아야지하는 교훈이지요. 북왕국 이스라엘의 아합왕이 그 대표적인 모습이었습니다. 하나님을 떠나 우상을 따르고,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는 엘리야 선지자의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권세를 이용해서 사적인 욕심을 채웠습니다. 갈멜산에서 불이 떨어지는 기적도 그를 돌이키지는 못했습니다. 혹독한 삼년 가뭄이 그치게 된 것이 엘리야의 기도의 응답인 것을 아합왕은 보았습니다. 그 순간뿐이었지 마음을 돌이키지 않았습니다.

 

북왕국 이스라엘에서는 엘리야와 엘리사가 살아계신 하나님의 기적적인 역사들을 행했습니다. 그러므로 시시때때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들이 남은 자의 모습으로 명맥을 이었습니다. 반면에 남왕국 유다에서는 이사야와 미가같은 주의 종들이 히스기야와 요시아왕과 같은 선왕들과 더불어 신앙의 부흥을 이루었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북왕국에는 기적과 같은 사건으로 살아계신 하나님을 나타내셔서 백성들의 신앙의 명맥이 유지되는 반면에, 남왕국 유다에서는 선지자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것으로 영적부흥이 일어났다는 것입니다. 말씀을 통해 회개함으로 은혜 받는 심령의 부흥이 일어났던 것입니다.

 

무엇을 말해 줍니까? 우리가 보기에는 잔잔한 말씀보다는 어떤 기적같은 일들이 더욱 더 뜨거운 믿음을 일으키게 할 것 같지만 이는 마치 충격요법과 같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믿음이 연약한 자에게 이런 기적의 일들로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줍니다. 그런데 정작 기적을 통한 믿음은 의외로 오래 가지 못합니다. 그 다음에 믿음이 떨어지면 더 강도 높은 기적을 요구하기 때문입니다. 아합왕과 이세벨이 그 케이스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말씀을 통해 바른 믿음으로 설 때에는 더 기초가 튼튼하고 깊고 안정적인 심령이 됩니다. 요시아 왕이 성전에서 발견된 성경책을 읽고, 회개하고 돌이켜 믿음으로 굳게 서서, 백성들이 믿음으로 돌아서게 하고, 성전 안에 우상들을 다 없애고 선정을 베푼 모습이 그 예가 됩니다.

 

기적으로 인한 신앙은 마치 바위 돌을 깨는 폭포수와 같은 신앙의 모습이라면, 말씀으로 인한 신앙은 마치 깊고도 잔잔한 바다와도 같이 흔들림이 없는, 모든 것을 안고 품을 수 있는 모습의 신앙을 갖게 합니다. 그러므로 가장 좋은 신앙의 성장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다져지는 신앙입니다. 그러나 때때로, 특별히, 믿음이 연약할 때에는 깜짝 놀랄만한 주님의 손길이 필요합니다. 기도할 때에 병마가 물러가고, 귀신이 떠나가고, 도무지 불가능해 보이는 일이 극적으로 타결되는 하나님이 특별한 은혜가 필요합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이 두 양면으로 주의 백성들의 믿음을 키워 가십니다.

 

그러므로 이 종이 간절히 바라옵기는 우리의 믿음을 성장시키시는 하나님께서, 비상시에는 깜짝 놀랄만한 기적적인 일로, 그리고 평소에는 진리의 말씀, 생명의 말씀으로, 우리 성도님들의 신앙을 북돋아 주옵소서~!” 하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축복의 역사가 여러분의 삶속에 이루어지기를 저는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열왕기하 1장에 등장하는 왕은 아하시아 왕입니다. 아하시아는 북이스라엘의 제8대 왕이며 아합과 이세벨의 아들입니다. 그러니 무엇을 배우고 자랐겠습니까? 부전자전(父傳子傳) 이란 성어도 있습니다만 그에게 여호와 신앙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기회가 없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사랑많으신 하나님께서 그에게 회개하고 돌이킬 기회를 주십니다. 그러나 듣지 않습니다. 깨달음이 없어요.

 

그가 다락 난간에서 떨어져 다치고 병들게 되었습니다. 살고자 합니다. 그가 먼저 취한 방법은 에그론 지방에 바알세블이라는 우상에게 가서 자신의 운명을 묻는 것입니다. 하나님께로 돌아서야 하는데 그가 그러지 않았습니다.

 

이때에 인간의 생사화복의 주관자가 되신 하나님께서는 이 아하시야 왕에게 회개할 기회를 주십니다. 엘리야 선지자를 보내어 그에게 경고의 말씀을 주시는 것입니다. 그것이 3절과 4절 말씀에 있습니다. 같이 읽겠습니다.

“3.여호와의 사자가 디셉 사람 엘리야에게 이르되 너는 일어나 올라가서 사마리아 왕의 사자를 만나 그에게 이르기를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없어서 너희가 에그론의 신 바알세붑에게 물으러 가느냐 4.그러므로 여호와의 말씀이 네가 올라간 침상에서 내려오지 못할지라 네가 반드시 죽으리라 하셨다 하라 엘리야가 이에 가니라

 

살아계신 하나님,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찾아야 했습니다. 그런데 파리의 주관자라고 일컫는 바알세블 신을 찾아가는 그 어리석은 아하이야 왕에게 네가 그러하니 네가 올라간 침상에서 내려오지 못하고 정녕 죽으리라

 

이 말씀이 결국 아하시야 왕에게 전해지게 되었습니다. 그가 보낸 사자들이 길에서 엘리야를 만나 그 예언의 말씀을 듣고 왕궁으로 돌아왔기 때문이었습니다. 자신이 반드시 죽는다 하니 왕이 가슴 떨립니다. 그 선지자가 누구냐 하고 그 모습을 묻습니다. “그는 털이 많은 사람이고 허리에 가죽 띠를 띠었나이다들어보니 그가 디셉사람 엘리야 선지자임을 알게 됩니다. 가슴에 두려움이 임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의 종을 통해 이렇게 경고의 말씀으로 전할 때에 얼른 돌이켜야 합니다. 회개하고 주님 앞으로 돌아와야 합니다. 잘못을 인정하고 하나님의 은총을 구해야 합니다. 그런데 그러지 않습니다. 본래 택하지 않은 백성이라서 그럴까요? 아니면 개인의 쓸데없는 자존심이 그를 붙잡고 놓지 않아서 그럴까요?

제가 하나님이 아닌 이상 저가 택한 백성인지 아닌지는 판단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주변에서 봅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아요. 자신의 논리적인 생각에 맞지가 않다고 하나님의 존재를 부인하고 믿지 않는 모습이 있습니다. 보통 이런 경우 택함을 받는 자들은 논리를 뛰어넘는 아낌없는 그리스도인들의 사랑 앞에 거꾸러집니다.

 

왜 저들은 저렇게 이웃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고 돕는가? 왜 의사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오지에서 의료선교사로 평생을 드리며 사는가? 그러면서도 기쁨과 평강이 가득한 삶을 사는가? 도대체 무엇이 저들을 저렇게 만들고 있는가? 어찌 나하고는 저렇게 다를 수가 있단 말인가?

 

이게 사람의 논리로 풀어지고 해석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전폭적인 그리스도의 사랑이 그 심령가운데 역사하니 그런 주님 닮은 헌신적인 사랑으로 사는 것이에요. 논리가 깨어집니다. 초월합니다. 그 사랑에 녹아집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의 경우는 어려움이 닥치고 질병으로 인해 사고로 인해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 서 있으면서도 돌이키지 않는 강한 심장의 모습을 보입니다. 지금까지 내 주먹을 믿는다하나님이 어디 있느냐고 큰 소리 쳤는데 꺾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정말 죽음이 그늘이 임하고, 자신의 자존심도, 항변도 소용이 없고, 연약한 한 인간이요, 죄인임을 깨닫게 되는 순간, 두 손을 들고 완전히 항복합니다. 이렇게까지 가고 나서야 돌아오면 무엇이 유익합니까? 얼른 회개하고 돌이켜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개중에 그런 사람도 있어요. 살려놓고 나면 또 다시 세상으로 돌아갑니다. 너무나 안타깝습니다. 몇 번까지 하나님께서 같은 일을 반복하셔야 할까요?

 

오늘 성경본문의 아하히야 왕은 어리석습니다. 하나님께 돌아오기는커녕 권세가 있으니 권력이 있으니 자존심이 상해요. 거꾸로 주의 종인 엘리야에게 분노를 품습니다. “감히 나를 저주해? 내가 반드시 죽는다고? 당장 그 자를 잡아들여라오십명의 군사를 풀어 그를 잡아 오게 합니다.

 

엘리야가 산꼭대기에 있습니다. 그 길이 절벽과 같아서 접근하기가 어렵습니다. 저들이 아래에서 외칩니다. 9절 말씀을 읽겠습니다. 이에 오십부장과 그의 군사 오십 명을 엘리야에게로 보내매 그가 엘리야에게로 올라가 본즉 산 꼭대기에 앉아 있는지라 그가 엘리야에게 이르되 하나님의 사람이여 왕의 말씀이 내려오라 하셨나이다

 

말씀을 액면그대로 보면 우리가 읽는 개역개정 성경의 기록된 말씀의 뉘앙스가 공손해 보입니다. 그러나 성경 원어는 그렇지 않습니다. 여기에서 오십부장이 말하는 내려오라 라는 말은 명령입니다. 이해하기 쉬운 말로 표현하면 당장 내려오지 못할 꼬~!” 그 정도입니다.

 

엘리야가 노여워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알고도 회개하기는커녕 보복을 하려고 잡아오라는 아하시야왕의 군사들에게 하늘에서 불이 떨어집니다. 마른하늘에 뇌성벽력이라고 상상해 볼 수 있습니다. 저들이 죽었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아하시야 왕이 돌이키지 않습니다. 끝까지 가보자는 것이지요. 또 다시 50명을 보냅니다. 결과는 마찬가지입니다. 11절입니다. 속히 내려오라 왕의 명령이다.” 결국 저들도 죽고 맙니다.

 

저는 생각해 봅니다. 이 시대에 권력을 갖고 있는 자들, 그들이 정치인이든, 군인이든, 고위관리이든 직장의 높은 직책에 있는 자들이든...... 그 권세를 휘두를 수 있는 높은 자리에 있으므로 취해버리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곳에 오래 있다 보면 착각을 합니다. 성경은 분명히 말씀합니다. 권세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바라.”(13:1) 저들이 사람을 다스린다고 하지만, 먼저 그 권세를 주신 하나님, 그의 백성들을 향하신 선하신 뜻을 헤아리지 아니하고, 자기 마음대로, 권력을 휘두르려고 하면, 하나님이 그 권세를 거두십니다. 독재자의 말로가 비참합니다. 두고, 두고 역사에 악명으로 기록됩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말씀합니다.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하고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라(3:23) 하나님이 주신 권세를 가지고 사람을 다스릴 때에 주께 하듯 하라는 것입니다. 약자이든 강자이든 사람을 대할 때에 자신의 권력을 가지고 쉽게 함부로 사람을 대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세 번째 오십부장이 또 오십명의 군사와 함께 엘리야를 찾아갑니다. 저는 태도가 달라요. 이미 죽어나간 백명의 군사들의 소식을 들었겠지요. 태도가 겸손합니다. 엘리야 앞에 넙죽이 엎드립니다. 그리고 사정을 합니다. 13절에 보니 그의 무릎을 꿇어 엎드려 간구하여 이르되.....” 자세가 다릅니다. 생명을 살려 달라고 애원합니다. 사실 군사들이 무슨 잘못이 있습니까? 왕의 명령을 실천할 뿐입니다.

 

엘리야가 아하시야 왕에게 나아갑니다. 주의 종은 진리로 살아갑니다. 진리를 사수함에 있어서는 죽음이 두렵지 않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쓰시는 것이지요. 여기에서 순교자의 신앙이 나옵니다.

 

왕은 이미 늦었습니다. 몇 번의 기회를 주었으나 돌이킬 수 없는 길을 갔고, 끝까지 회개하고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저는 죽고 자식이 없으므로 여호람이 그를 대신하여 왕이 되었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가 연약하여 죄를 범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혈이 우리를 살립니다. 회개하는 자에게 주께서 다시금 은혜를 베푸십니다.

순종의 원리가 즉시, 기쁘게, 온전하게 라고 한다면 회개의 원칙이 있습니다. 한 음성으로 따라서 하시겠습니다. 즉시, 진정으로, 행함으로 , 그렇습니다. 이러한 자세로 회개하고 돌이키면 주께서 다시금 사랑으로 안아 주십니다.

 

주의 그 사랑이 우리의 영혼을 살리시고 우리를 행복한 삶으로 인도하십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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