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돌새벽강단

  • 예배와 말씀 >
  • 산돌새벽강단
[열왕기상 강해 26] 함께 수고할 동역자를 붙이시는 하나님
운영자 2019-01-18 추천 0 댓글 0 조회 978
[성경본문] 열왕기상19:18-21 개역개정

18. 그러나 내가 이스라엘 가운데에 칠천 명을 남기리니 다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아니하고 다 바알에게 입맞추지 아니한 자니라

19. 엘리야가 거기서 떠나 사밧의 아들 엘리사를 만나니 그가 열두 겨릿소를 앞세우고 밭을 가는데 자기는 열두째 겨릿소와 함께 있더

20. 그가 소를 버리고 엘리야에게로 달려가서 이르되 청하건대 나를 내 부모와 입맞추게 하소서 그리한 후에 내가 당신을 따르리이다 엘리야가 그에게 이르되 돌아가라 내가 네게 어떻게 행하였느냐 하니라

21. 엘리사가 그를 떠나 돌아가서 한 겨릿소를 가져다가 잡고 소의 기구를 불살라 그 고기를 삶아 백성에게 주어 먹게 하고 일어나 엘리야를 따르며 수종 들었더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함께 수고할 동역자를 붙이시는 하나님

 

우리가 믿고 있는 기독교 신앙은 개인적이면서 동시에 공동체적입니다. 구원을 받는다 함은 개인적으로 하나님과 나와의 만남에서 이루어집니다. 내 어머니가 또는 아버지가 훌륭해서 내가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니란 말씀입니다. 구원은 철저하게 개인적입니다.

 

그런데 동시에 공동체적이란 말은 구원받는 자는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된다는 것입니다. 비록 이 땅에 두발을 딛고 살아가지만 그 정체성에 있어서는 천국시민이 된다는 것입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한다면, 주의 몸 된 교회의 한 지체로써, 믿는 사람들 서로 간에 한 몸을 이루는, 그러므로 서로 뗄레야 뗄 수가 없는 불가분리의 일원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제가 늘 말씀드립니다. 세상 사람들은 지연을 중요시 여깁니다. 우리가 남이가~!” 그러면 금방 서로가 다 통합니다. 우리가 남이 아니랑께~!” 그러면 금방 하나가 됩니다. 우리가 남이 아니쟎여유~!” 하면 바로 마음을 합치쟎여유? ~, 태어난 고향이 같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우리 믿음의 사람의 지연은 경상도도 아니요, 전라도도 아니요, 충청도도 아니요, 저 우리 영혼의 본향인 천국이 우리의 지연입니다. 그러니 서로 똘똘 뭉칠 수 밖에 없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학연을 중요시 여깁니다. 같은 학교 출신들끼리 서로 밀고 땡겨줍니다. 그런데 우리 믿음의 사람들은 영적인 학연을 가지고 있습니다. 어느 학교일까요? , 바로 교회입니다. 우주적인 교회는 하나인데, 지역교회는 많아요. 그러니 저와 여러분은 산돌중앙교회의 학연을 가지고 있습니다. 함께 영생의 도를 배웁니다. 함께 구원의 진리를 배우고 또한 나가서 전합니다. 이처럼 교회의 학연은 평생 이어집니다. 그리고 천국까지 이어집니다. 여러분은 산돌중앙교회가 내 모교라는 것에 자부심을 갖고 있습니까? 그러시기를 바랍니다.

 

세상 사람들은 또한 혈연을 중요시 여깁니다. 이것이 얼마나 쎄고 강한지, 자신이 가진 것 다 물려주려고 합니다. 개인의 투자로 이루어진 개인사업체야 그렇다손 치지만 심지어는 교회성도들과 함께 이루어낸 교회까지 마치 자신의 소유인 것처럼 자신의 아들에게 또는 사위에게 물려주려고 하는 목사들도 있습니다. 잘못된 것이지요. 전도의 문이 막힙니다. 우리 믿음의 사람들에게 진정한 혈연이 있으니 그것은 예수의 피로 거듭난 생명, Born again, 새 생명으로 태어났으니 예수 그리스도의 자녀로써, 한 피 받아 한 몸 이룬 형제요, 자매인 줄로 믿습니다. 세상 사람은 혈연지간에 있으면서도 재산분쟁으로 의가 상하고, 누가 부모님을 모시느니 안 모시는지 서로 미루다가 형제, 자매의 혈연을 끊기도 하지만, 우리 믿음의 사람들은 이 땅에서 뿐만 아니라 저 천국까지 끊을래야 끊을 수 없는 예수의 피의 혈연관계임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 공동체 얘기를 하다가 길어졌습니다. 엘리야, 그가 한때 깊은 우울증에 빠졌습니다. 그것도 하나님의 일을 하다가 지쳤습니다. 혼자 뛴다고 생각했어요. 나 혼자 이렇게 열심히 수고하고 애쓰고 있구나~! 내 곁에 아무도 없구나~!” 그러다가 생명의 위협을 받게 되니, 완전히 Burnout, 영적으로 육적으로 탈진의 상태에 이르렀습니다.

 

혹 우리가 신앙생활 할 때에 그런 생각 가지신적 없으십니까? 나는 이렇게 일인 삼역으로 눈썹이 날리도록 뛰고 있는데.....왜 남들은 열중 쉬어 하고 있단 말인가?” 이렇게 되면 먼저는 마음의 상처가 되요. 지칠 수도 있어요. 그러나 또 한편 자기 ()가 되기도 합니다. 참 주의해야 할 부분이지요.

 

선교지에 그런 분 있어요. 자기 혼자 열심이에요. 선교지에는 새벽기도회도 없는데, 새벽기도회 만들어서 자기 혼자 기도합니다. 처음에는 이해가 되요. 개척지이니까? 그런데 일년이 지나도 혼자다? 잘 하는 것이 아니지요. 함께 기도할 사람들을 찾든지, 없다면 전도해서 만들어 내든지 해야지요.

 

아예, 선교사회에 들어오지도 않는 숨어 있는 선교사들도 있어요. 그의 마음에는 없지 않아 이런 마음이 있어요. 너희들 속에 함께 있다가는 내가 죽는다 또 이런 생각도 있습니다. 어차피 주의 종의 길은 외로운 길이다. 지도자는 외로운 법, 나는 한 그루의 고목으로 간다.” 멋있는 말 같지요. 선교사회에서는 이와 같은 사람을 돈키호테 라고 부릅니다. 긍정적인 말이 아니지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성경을 통해 봅니다. 예수님은 때로 홀로셨고, 그러나 대부분의 시간을 제자들과 함께 계셨고, 제자들과 더불어 힘을 모아 사역을 이루어 나갔습니다. 우리가 그래야 합니다. 믿음이 공동체를 이루고, 이 모습이 교회 아니겠습니까? 함께 멍에를 메고, 함께 사역을 해 나가야 하겠습니다.

 

광야의 외치는 자의 소리라 일컫는 세례요한과 예수님 사역의 차이점을 봅니다. 요한복음 322절과 23절에 보니 세례요한만 세례를 베푸는 것이 아니에요. 예수님도 세례를 베푸십니다. 그런데 세례요한은 혼자 세례를 베풀고 있는데 반하여 예수님은 제자들과 함께 세례를 베푸십니다. 뿐만 인가요? 70명의 전도단을 만들어 예수님의 전도하시는 일을 함께 하게 하십니다.

 

엘리야는 고독한 선지자의 모습으로 출현합니다. 세례요한이 다를 바가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말씀하십니다. 네가 혼자가 아니다.” 성경본문 1918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그러나 내가 이스라엘 가운데에 칠천 명을 남기리니 다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아니하고 다 바알에게 입맞추지 아니한 자니라

 

하나님께서 왜 이 말씀을 엘리야에게 하셨습니까? 나 혼자만 남았다고 하소연하는 엘리야를 격려하시기 위해서 주시는 말씀이지요. 엘리야야, 네가 혼자가 아니다. 남은 자가 있다. 바알에 무릎을 꿇지 아니하고 바알에게 입 맞추지 아니한 자들이 여전히 남아 있다. 그러니 힘내라. 힘을 합쳐라. 협력하라.” 그 말씀 아니겠습니까?

 

저에게는 선교지에서든 고국에서든 든든한 기도의 동역자가 있음에 많이 감사합니다. 외롭게 사역하지 않습니다. 보십시오. 오늘도 이 새벽에 함께 기도하는 동역자들이 있습니다. 우선은 장로님들이시지요. 교회의 기둥같은 일꾼으로 세우셨습니다. 평신도의 대표요, 누구보다 오랜 세월동안 교회를 우선적으로 사랑하고 섬기는 자들입니다. 교회의 각 위원회의 위원장들로써 예배와 교육과 선교와 전도와 구제와 교제와 재정과 관리 영역에서 누구보다 수고하십니다. 함께 당회로 모여 회의를 하면 얼마나 힘이 되고 든든한지 모릅니다.

 

그런가 하면 사역자 그룹이 있습니다. 교역자님들 있잖아요. 오늘 이 새벽에도 함께 기도합니다. 제가 작년 말, 금년을 위한 교역자를 선발하기 위한 인터뷰를 하면서 한 가지 사항 꼭 강조했습니다. 함께 새벽에 기도해야 합니다. 일주일에 최소한 네 번을 지키기를 바랍니다. 안 지키면 어떻게 되요. 교역자들 간에 영적으로 일치감, 동질감을 가지지 못합니다. 그런데 감사하게 잘 해 주고 있어요. 이렇게 새벽을 깨워 기도하면 교역자 자신도 살고, 성도도 살고 교회도 삽니다. 그리고 교회가 살면 나라가 삽니다.

 

구역장님들도 다는 아니지만 함께 합니다. 여선교회, 남선교회, 안수집사회, 권사회 전도단원들, 적어도 임원되신 분들, 함께 기도해야 합니다. 함께 하시는 분들이 있어서 감사합니다. 주일학교 교사들과 성가대원들이 아쉽습니다. 너무 바쁜거죠. 저는 기도합니다. 기드온에게 삼백명의 용사를 붙여주신 하나님, 우리교회에 삼백명의 기도의 용사를 세워 주옵소서~!”

 

우리교회에 삼백 명의 기도용사가 서는 날이 오면, 우리 교회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어떠한 일도 감당해 낼 수 있을 것입니다. 기도하는 본인도 살고, 이것이 신앙의 개인적인 측면이죠. 그리고 물론 교회도 삽니다. 이것은 신앙의 공동체적 측면입니다. 바로 균형을 이루어야 합니다. 삼백명의 기도의 용사~! 저는 그 날이 오기를 늘 염원하며 기도하고 있습니다. 함께 기도해주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그 남은 칠천명 중에 엘리사라고 하는 자를 엘리야에게 붙여주십니다. 엘리사, 그 이름의 뜻이 하나님은 구원이시다입니다. 참 좋은 이름입니다. 그는 처음부터 선지자가 아니었습니다. 엘리야와 마찬가지로 한 농부였습니다. 말씀에 보니 한 번에 열두 개의 멍에를 멘 소를 몰고 밭을 갈고 있습니다. 대단한 규모죠. 아주 농업전문가의 모습입니다.

 

하나님께서 쓰시고자 하시면 신학공부를 마친 전문사역자만 쓰시는 것이 아닙니다. 의사도, 교수도, 음악인도, 미술인, 사업가도, 은행인도, 건축가도, 전기, 기계, 엔지니어도, 자동차 매카닠도, 학교 선생님도.....다 쓰세요. 하나님 나라 위해, 선교와 전도를 위해 쓰십니다.

 

말씀에 보니 엘리야가 저를 찾아가서 자신의 겉옷을 그에게 벗어 던집니다. 이 모습은 문화적으로 사역의 동역자로 세우는 것입니다. 쉽게 생각해서 목사 안수를 받을 때에 노회 목사님들이 안수를 받는 신임목사님에게 목사가운을 입혀 줍니다.

 

그러니 엘리야가 엘리사에게 외투를 던진 행위의 의미는, 하던 농사의 일을 멈추고 풀타임 사역자로, 함께 주님의 나라 위해 전적으로 일을 하라 하는 뜻을 보인 것입니다.

 

엘리야가 순종합니다. 즉시로 순종합니다. 집에 가서 부모에게 인사를 하고 오겠다고 합니다. 엘리야가 그에게 말합니다. 내가 너에게 한 일, , 외투를 던지며 사역자로 초청한 것을 부모에게 알리라고 말씀합니다. 그래야 부모님이 알고 기도하고 응원할 것입니다. 뿐만 아니에요. 엘리야가 소 한 마리를 잡아 자신이 동리 사람들에게 먹입니다.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내가 이제 주의 종의 길을 갑니다. 앞으로도 관심가져 주시고 기도해 주세요. 응원해 주세요.”

 

그런데 보니 고기를 굽는데 필요한 나무연료를 무엇으로 사용하는가 보니 저가 농사지으며 사용했던 소의 기구를 땔감으로 사용했습니다. 이 모습은 과거와의 단절입니다.

이제 생계를 하나님께 맡기겠습니다. 살든 지 죽든 지, 주님만 의지하겠습니다.”

 

이러한 과감한 결단이 훌륭한 주의 종을 만듭니다. 주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치 아니하니라(10:62). 또한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화평이 아니요 검을 주러 왔노라(10:34)

 

무슨 말씀입니까? 주님의 제자의 길을 가면서 잘라 버려야 할 것들이 있습니다. 내가 의지하던 것들, 그것이 물질이든, 관계이든, 또한 구습이든, 세상적으로 재미있는 행위들, 그러나 주의 사역에 방해가 되는 요소들을 검으로 잘라 버리라는 것입니다. 세상과 타협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구습을 잘라내야 새 일이 시작됩니다. 생명을 살리는 역사가 시작됩니다.

 

이제 말씀을 마칩니다.

하나님께서는 주의 사역을 감당하다가 지치고 상한 엘리야에게 새로운 주의 종 엘리사를 붙여주셨습니다. 큰 힘이 되었습니다. 이제 더 큰 사역으로 함께 사역을 해 나가는 모습이 시작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에게는 제가 있고, 저에게는 여러분이 있습니다. 이 새벽에도 함께 기도하며 힘을 얻습니다. 저는 여러분 가정과 일과 자녀들을 위해서, 지혜와 건강과 능력을 위해서 기도합니다. 그리고 교회를 위하여 맡은바 직분을 위해서 늘 기도합니다.

 

우리는 혼자가 아닙니다.

천국의 지연으로, 교회의 학연으로,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이룬 혈연의 형제, 자매로 이 전쟁터와 같은 세상세서 함께 승리하며, 함께 승전가를 부르며, 그러기에 함께 행복하며, 함께 주의 나라를 이루어가는 저와 여러분, 우리가 될 수 있기를 저는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자유게시판 목록
구분 제목 작성자 등록일 추천 조회
이전글 [열왕기상 강해 27] 포기하지 않고 돌아오기를 기다리시는 하나님 운영자 2019.01.19 0 891
다음글 [열왕기상 강해 25] 영적 탈진 중 있을 때에 운영자 2019.01.16 0 987

08610 서울 금천구 시흥대로75길 20 (시흥동, 산돌중앙교회) 산돌중앙교회 TEL : 02-803-1135 지도보기

Copyright © 산돌중앙교회. All Rights reserved. MADE BY ONMAM.COM

  • Today49
  • Total202,473
  • rss
  • facebook
  • facebook
  • 모바일웹지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