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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룻기 강해 07] 사람이 사람에게 베푸는 헷세드(인애)
운영자 2018-10-23 추천 0 댓글 0 조회 1917
[성경본문] 룻기3:1-5 개역개정

1. 룻의 시어머니 나오미가 그에게 이르되 내 딸아 내가 너를 위하여 안식할 곳을 구하여 너를 복되게 하여야 하지 않겠느냐

2. 네가 함께 하던 하녀들을 둔 보아스는 우리의 친족이 아니냐 보라 그가 오늘 밤에 타작 마당에서 보리를 까불리라

3. 그런즉 너는 목욕하고 기름을 바르고 의복을 입고 타작 마당에 내려가서 그 사람이 먹고 마시기를 다 하기까지는 그에게 보이지 말고

4. 그가 누울 때에 너는 그가 눕는 곳을 알았다가 들어가서 그의 발치 이불을 들고 거기 누우라 그가 네 할 일을 네게 알게 하리라 하니

5. 룻이 시어머니에게 이르되 어머니의 말씀대로 내가 다 행하리이다 하니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사람이 사람에게 베푸는 헷세드(인애)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실 때에 가장 큰 축복은 창조주이신 하나님의 형상’(Image of God)을 따라 사람을 지으셨다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말하는 '하나님의 형상'이란 외모를 말하는 것이 아니에요. 눈이 두 개고, 귀가 두 개고, 코가 하나고, 입이 하나인 그런 외적인 면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은 곧 '하나님의 성품'(Character of God) 또는 하나님의 속성’(Attribution of God)을 우리 인간의 심성에 심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슬프게도 아담과 하와의 타락으로 말미암아 사람에게 부여된 이 선한 하나님의 성품은 대미지(damage)를 입었습니다. 그처럼 선한 성품이 사라지고, 그 자리에는 악한 성품이 자리하게 되었어요. 罪性(죄성)은 아담의 후손으로 태어난 모든 사람들이 갖고 있습니다. 이 죄성의 본질은 죄를 범하는 악함이요, 이 죄성의 가장 큰 결과는 영원히 살지 못하고 죽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피조물인 이 인간을 끝까지 포기하시지 않으신 하나님께서, 여전히 사람의 마음에 남겨 놓으신 것이 있으니, 그것은 첫째, 누구의 마음에나 남아있는 양심이요, 둘째는 본능적으로 자신의 영혼과 육신을 창조한, 그 창조주를 찾고자 하는 종교심입니다.

 

하나님을 떠난 인간의 마음에도, 믿지 아니하는 사람들 마음에도, 불완전하기는 하지만 이 양심이 희미하게 남아있으므로, 선한 것이 좋으며, 선을 행할 때에 기쁨이 있어요. 죄를 범하게 되면 마음이 두근, 두근하고, 불안해 합니다. 이게 양심이 그나마 살아 있다는 증거입니다.

 

그런가하면 또한 사람은 악한 자나 선한 자나 할 것 없이 사고든, 질병이든, 노화든, 결국 죽게 된다는 깨달음이 오기 시작하면, 허무감과 불안감이 엄습하고, 마침내 영원한 생명의 주가 되시는 창조주를 찾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에게 심어놓으신 이 하나님의 성품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들에게서 나타납니다. 더 깊이 들어가 보면 선을 행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보이지 않는 손길이 있는 것이에요. 이처럼 선한일로 쓰임을 받는 자들은 행복한 사람입니다. 완전한 선은 아니지만 그래도 하나님의 성품이 나타나는 것이에요. 그러니 참 감사하지요. 사람이 하나님이 성품을 실천한다는 것, 이것이야 말로 복있는 자의 모습입니다. 이와 같은 사람을 우리는 이해하기 쉬운 말로 축복의 통로가 된다 고 표현합니다.

 

여러분은 축복의 통로가 되기를 원하십니까? 그래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을 나눠주심으로 주는 자의 기쁨과 행복을 갖기를 원하십니까? 정말 그러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룻기를 다 배우신 거에요. 마스터 하신 것입니다. 그것이 룻기의 영적 핵심 주제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3장에는 세명의 인물이 등장하고 그 인물들은 하나같이 바로 이 선한 하나님의 성품 히브리어로 헷세드를 실천합니다. 헷세드 라는 말은 우리말로 仁愛’(인애) 라고 번역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정확한 그 뜻은 다른 사람의 유익을 위하여 무언가를 베푸는 것이라고 정의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니 그 단어를 恩惠’(은혜)라고도 말할 수 있겠습니다.

 

구약성경에는 이 헷세드라는 말이 246번이나 나오고 있습니다. 룻기에도 여러 번 등장합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베푸신 은혜로써의 헷세드, 보아스가 룻에게 베푼 선대로써의 헷세드, 룻이 그의 시어머니를 끝까지 봉양하면서 베푼 인애로서의 헷세드, 그리고 시어머니 나오미가 그의 며느리의 앞날을 위해 자신으로부터 떠나보내고자 하는 희생 으로서의 헷세드가 등장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룻기의 가장 중심단어는 바로 헷세드이고, 또한 가장 중심 주제가 바로 헷세드입니다. 헷세드는 누구의 성품이라고 했습니까? , 바로 창조주이신 하나님의 성품입니다. 이 성품이 실천되는 가정에 행복이 있고 사회에는 소망이 있습니다.

오늘 3장의 이 세 인물은 아시는 대로, 나오미, , 그리고 보아스입니다. 이 세 인물이 베푸는 헷세드는 무엇일까요? 그 모습을 살펴보며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첫째, 나오미의 희생으로써의 헷세드입니다.

나오미는 이제 연로하였고, 스스로 일을 해서 무엇을 얻을 수 있는 나이도 아니었습니다. 남편도 여의고 아들들도 잃었습니다. 그러니 의지할 곳이라고는 한치 건너 며느리 룻이었습니다. 룻이 일을 하고 가져온 것으로 생계를 유지해야 하는 처지에 있어요. 그런데 이 나오미의 마음에 이런 생각이 듭니다.

나는 살 만큼 살았어. 그런데 룻은 아니야. 젊은 날에 자신의 고향에서 다른 좋은 남자 만나서 살 수도 있었는데 나 때문에 이 타향에 와서 나를 먹여 살리느라 고생이 많아. 더 이상 세월이 가지전에 믿음직한 사람을 만나 살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해.”

 

그러면 자신은 어떻게 삽니까? 의지하던 며느리를 떠나보내면 자신은 누구를 의지하고 무엇을 먹고 사는가 말입니다. 여기에서 나오미의 자기희생적인 헷세드가 나옵니다. 31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룻의 시어머니 나오미가 그에게 이르되 내 딸아 내가 너를 위하여 안식할 곳을 구하여 너를 복되게 하여야 하지 않겠느냐

 

나오미의 마음에 예기치 않게 룻이 일하는 곳에서 만나게 된 보아스가 떠오릅니다. 바로 룻을 맡길만한 자로 여겼습니다. 그러므로 적극적입니다. 룻에게 말합니다. 3절에 보니 그런즉 너는 목욕하고 기름을 바르고 의복을 입고, 그의 집에 가서, 그의 침상, 그의 발치에 누우라

 

이와 같은 표현은 결혼을 염두에 두고 행하는 행위입니다. 에스겔 168절에서 12절에 보면, 너를 씻겨서....기름을 바르고.....옷을 입히고....” 라는 표현이 나오는데 이는 예배 신부의 모습을 묘사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시어머니의 말에 룻이 순종합니다. 왜 순종하겠습니까?

 

, 이제 팔자 피겠다. 이제 고생도 끝이야, 이 부유한 사람과 살게 되면 내 인생에도 꽃이 피는 거야~!” 그런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룻의 헷세드, 즉 시어머니를 더 깊이 생각하는, 인애의 헷세드를 살펴보겠습니다. 38절과 9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8.밤중에 그가 놀라 몸을 돌이켜 본즉 한 여인이 자기 발치에 누워 있는지라 9.이르되 네가 누구냐 하니 대답하되 나는 당신의 여종 룻이오니 당신의 옷자락을 펴 당신의 여종을 덮으소서 이는 당신이 기업을 무를 자가 됨이니이다 하니

 

왜 자신이 이런 일을 하는지, 그 목적이 우선은 결혼입니다. 말씀 중에 당신의 옷자락을 펴 당신의 여종을 덮으소서 하는 말은 에스겔서 167절에도 같은 표현이 나옵니다. 옷자락으로 덮으라 라는 표현은 여호와와 이스라엘을 신랑과 신부로 묘사하는 대목에서 나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룻이 이 남자의 아내가 되고자 하는 목적과 이유가 그 다음 그녀의 말에 나타납니다. 이는 당신이 기업을 무를자가 됨이니이다.”

 

“당신이 기업을 무를자가 됨이니다” “기업을 무를자” 라는 말은 우리 한국 사람에게는 문화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고대 이스라엘의 문화입니다. 쉽게 표현하면 “누군가에게 판 땅을 무르고 다시금 찾아오는 자” 라고 이해하면 됩니다. “무르는 자” “물러서 다시금 원상복귀하게 하는 자” 가 바로 “기업을 무를자” 인것입니다. 


무슨 말입니까? 내가 당신과 결혼을 하고자 하는 이유는 이제 삶이 힘들고 어려운 시어머니 나오미, 그의 남편이 과거에 경제적으로 너무 힘들어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땅을 누군가에게 넘겨서 쓸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 그 땅을 다시금 찾아주소서~!” 그 말입니다. 

그 시대에 풍습이고 지켜야 할 규범입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땅, 조상에게 주었고 이제 그 조상이 물려 준 땅을 다른 혈통에게 팔 수 없게 되어 있어요. 만일 생계가 어려워서 어쩔 수 없어서 돈을 받고 사용권한을 넘겨준다면 가장 가까운 집안의 누군가, 재력이 있는 사람이 다시금 돈을 주고 무르는 것입니다. 다시 가져오는 것이에요. 그러면 산 사람은 돌려주어야 해요. 그렇게 하므로 하나님이 주신 땅을 지키며, 그 집안의 체면도 지키며, 경제 형편이 좋은 자가 어려운 형제 동기를 돕는 제도였던 것입니다.

무슨 말입니까? 어머니가 그 여생을 경제적 어려움 없이 살도록 잃었던 땅을 다시금 찾게 해주세요. 그것이 룻이 바라는 바요, 기꺼이 어머니의 말에 순종하는 룻의 모습이었던 것입니다. 자신의 안위를 위한 것이 아니라 어머니를 위하는 이 모습, 참 효녀아니겠습니까? 이 모습이 룻이 행한 인애를 위한 헷세드였습니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보아스는 얼마든지 당황해하고 또한 왜 하필 나냐? 하고 발뺌할 수 있습니다. 거절해도 그뿐이에요. 왜 하필 본인이 돈을 써서 그 가난한 나오미를 도와야 합니까? 못한다고 하면 그뿐이에요. 그런데 보아스는 이제 선대의 헷세드를 행합니다. 내가 좀 손해를 보더라도 남을 위한 유익을 베푸는 것입니다. 10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10.그가 이르되 내 딸아 여호와께서 네게 복 주시기를 원하노라 네가 가난하건 부하건 젊은 자를 따르지 아니하였으니 네가 베푼 인애가 처음보다 나중이 더하도다 11.그리고 이제 내 딸아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네 말대로 네게 다 행하리라 네가 현숙한 여자인 줄을 나의 성읍 백성이 다 아느니라

네가 베푼 인애(헷세드)가 처음보다 나중이 더하도다.” 무슨 말이에요. 주변에 젊은 사내들이 많은데...., 나에게 와 준 것이 고맙다는 것이요,” 그리고 룻이 현숙한 여인이라는 것입니다. 그것을 알 수 있는 것은, 도덕적으로도 그렇지만, 시어머니를 모시기 위해 이방 땅까지 와서 수고하는 그 모습을 이미 성읍백성이 다 안다 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일 중요한 보아스의 말은 이것 아니겠습니까? "내가 네 말대로 네게 다 행하리라"

뭘 하겠다는 것입니까? 나오미를 대신하여 기업 무를자가 되겠다 는 것입니다. 그러니 룻의 첫 번째 소원이었던 나오미의 노년의 삶에 소망을 주게 된 것입니다.

 

또한 기업무를자로 설 뿐만 아니라 이제는 나오미의 소원이 이루어지는 것이에요. 나를 떠나도 괜챦다. 좋은 남편을 만나 잘 살아가야 해 하는 나오미의 헌신적인 헷세드가 좋은 결과를 가져오게 된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것이, 이 헷세드를 베푸는 것은 세상적인 눈으로 바라볼 때에는 내가 손해를 보는 것 같지만......, 그렇게 행하는 것이 하나님의 선한 성품을 실천하는 것이니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하나님의 도우심의 역사가 나타는 것입니다.

 

남을 살리려 하니 나도 살게 된다는 것이요, 이와 같은 모습은 곧 내가 하나님의 축복의 통로로 쓰임 받는 모습이 되는 것입니다.

 

이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쓰임 받아, 가정과 사회에서 빛으로 소금으로, 따뜻한 하나님의 사랑을 이루어나가시는 사람, 하나님의 사람으로 쓰임 받으시는, 저와 여러분 모두가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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