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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룻기 강해 02] 이방 여인을 택하시고 부르시는 하나님의 은혜
운영자 2018-10-04 추천 0 댓글 0 조회 912
[성경본문] 룻기1:6-18 개역개정

6. 그 여인이 모압 지방에서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을 돌보시사 그들에게 양식을 주셨다 함을 듣고 이에 두 며느리와 함께 일어나 모

7. 있던 곳에서 나오고 두 며느리도 그와 함께 하여 유다 땅으로 돌아오려고 길을 가다가

8. 나오미가 두 며느리에게 이르되 너희는 각기 너희 어머니의 집으로 돌아가라 너희가 죽은 자들과 나를 선대한 것 같이 여호와께서 너희를 선대하시기를 원하며

9.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허락하사 각기 남편의 집에서 위로를 받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하고 그들에게 입 맞추매 그들이 소리를 높여 울며

10. 나오미에게 이르되 아니니이다 우리는 어머니와 함께 어머니의 백성에게로 돌아가겠나이다 하는지라

11. 나오미가 이르되 내 딸들아 돌아가라 너희가 어찌 나와 함께 가려느냐 내 태중에 너희의 남편 될 아들들이 아직 있느냐

12. 내 딸들아 되돌아 가라 나는 늙었으니 남편을 두지 못할지라 가령 내가 소망이 있다고 말한다든지 오늘 밤에 남편을 두어 아들들을 낳는다 하더라도

13. 너희가 어찌 그들이 자라기를 기다리겠으며 어찌 남편 없이 지내겠다고 결심하겠느냐 내 딸들아 그렇지 아니하니라 여호와의 손이 나를 치셨으므로 나는 너희로 말미암아 더욱 마음이 아프도다 하매

14. 그들이 소리를 높여 다시 울더니 오르바는 그의 시어머니에게 입 맞추되 룻은 그를 붙좇았더라

15. 나오미가 또 이르되 보라 네 동서는 그의 백성과 그의 신들에게로 돌아가나니 너도 너의 동서를 따라 돌아가라 하니

16. 룻이 이르되 내게 어머니를 떠나며 어머니를 따르지 말고 돌아가라 강권하지 마옵소서 어머니께서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 어머니께서 머무시는 곳에서 나도 머물겠나이다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

17. 어머니께서 죽으시는 곳에서 나도 죽어 거기 묻힐 것이라 만일 내가 죽는 일 외에 어머니를 떠나면 여호와께서 내게 벌을 내리시고 더 내리시기를 원하나이다 하는지라

18. 나오미가 룻이 자기와 함께 가기로 굳게 결심함을 보고 그에게 말하기를 그치니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이방 여인을 택하시고 부르시는 하나님의 은혜

 

베들레헴 땅의 기근을 피해 모압땅으로 간 엘리멜렉의 가족은 안타깝게도 행복한 결론에 이르지 못하였습니다. 비극이었습니다. 가장인 엘리멜렉과 두 아들 말론과 기룐이 거기에서 죽었습니다.

 

지난 시간에 나누었습니다. 베들레헴에서 떠나지 말았어야 했습니다. 그곳이 하나님께서 주신 약속의 땅이었습니다. 고난의 날에 하나님께 참회하고 돌아오면, 영적으로 다시 서면 하나님께서 그곳에서 다시금 은혜를 베풀어주실 것이었습니다.

 

그 모습이 사사기를 통해서 배웠던 영적교훈이었습니다. 하나님을 떠났을 때에 죄악이 임했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우상숭배에 빠졌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방족속을 통해 침략하게 하였고 그 고난과 고통 속에서 이스라엘 백성이 비로소 깨닫고 회개하며 여호와께 돌아올 때에 사랑 많으신 하나님께서는 다시금 긍휼을 베푸셨습니다.

 

자연적인 재해가 괜히 오겠습니까? 자연도 하나님께서 주장하시고 다스리시는 영역입니다. 가뭄이 오고 흉년이 되었을 때에 영적으로 똑바로 서야 했었던 것입니다. 그러니 고난이 찾아 올 때에 떠나는 것이, 피하는 것이 대수가 아니라 고난이 왜 찾아왔는지 하나님께 물으며 그것이 불신앙 때문이었다면 다시금 하나님께로 돌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여전히 모압 땅에 살고 있는 나오미 그리고 두 며느리는 어느 날 소식을 들었습니다. 베들레헴이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여 흉년이 아닌 풍년을 이루게 되었다는 소식입니다. 이 소식에 나오미의 마음에는 이제는 고향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마음이 생깁니다.

 

우리는 상상해 볼 수 있습니다. 가장이 없는 가정, 나오미와 두 명의 남편 없는 며느리 오르바와 룻, 세 명의 여자의 삶이 얼마나 힘들었겠습니까? 그와 같은 삶에서도 꿋꿋이 생계를 유지하였습니다.

 

이와 같은 모습은 우선은 시어머니 나오미의 여호와 신앙입니다. 남편 엘리멜렉의 결정에 의해 비록 고향 베들레헴을 떠나게 되었고 이방인의 땅에 살았으나 자신에게 닥쳐온 운명에 대해 비관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운명이라 생각하여 꿋꿋이 견뎠습니다. 또한 이 두 며느리도 시어머니 못지않게 그 상황을 견디며 시어머니를 잘 섬겼습니다. 그 역경 속에서도 이 여인들의 삶에 대한 꿋꿋한 모습이 8절에 나와 있습니다.

나오미가 두 며느리에게 이르되 너희는 각기 너희 어머니의 집으로 돌아가라 너희가 죽은 자들과 나를 선대한 것 같이 여호와께서 너희를 선대하시기를 원하며

 

너희 친정으로 돌아가라 그 말이죠. 그러면서 나오미의 말이 너희가 죽은 시아버지와 너희의 남편에게 잘 하였고, 그리고 시어머니인 나에게도 잘 하였으니.....” “너희들이 한 그 모습처럼 하나님께서 너희에게도 잘 해 주실 것이다.”

 

나오미는 여전히 인간의 생사화복의 주권이 하나님의 손에 있음을 믿고 있습니다. 그분이 심판을 하시고 징계를 주시기도 하지만은 그래도 선하게 사는 자들에게는 반드시 복을 주시는 분이라는 믿음을 갖고 있습니다. 그러니 가장 없이도 남편 없이도 그렇게 꿋꿋하게 버티며 살아온 것입니다.

 

구약시대에는 남존여비의 문화였습니다. 물론 이 모습은 태초에 창조시의 에덴동산에 있었던 선한 모습은 아니었습니다. 죄로 타락한 이후에 나타난 현상이었습니다. 여성의 인격이나 지위나 기회가 억압되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구원역사에서 아주 중요한 때마다 여성을 등장시키셨습니다. 하나님의 손길입니다. 소외된 여인들을 통해 위대한 구원역사를 이루셨습니다.

 

구약성경에 여자의 이름으로 쓰인 성경들이 있습니다. 룻기가 그렇습니다. 또한 에스더서가 그렇습니다. 룻기는 주인공처럼 등장하는 남자인 보아스서라고 하든지 에스더서는 민족구원의 중요한 인물인 모르드개가 그 성경이름으로 등장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왜 이방여인 룻이 중요합니까? 신실한 룻과 보아스에게서 오벳이 태어납니다. 오벳은 이새를 낳고 이새는 다윗을 낳습니다. 그리고 다윗의 가문에 예수 그리스도가 탄생하게 됩니다.

 

왜 룻기가 사사기와 사무엘상하서 중간에서 그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 그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이 룻의 역할은 하나님의 구원역사에 아주 중요한 인물이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성경에 보니 하나님께서 쓰시는 여인들의 모습은 이미 성품적으로 훌륭합니다. 믿음이 있습니다. 삶의 역경에서 피하거나 가라앉거나 낙심하여 주저앉지 않습니다. 보십시오. 이 세 여인의 비극적인 상황은 마치 욥이 자식과 재산을 잃어버리고 건강마저 잃어버린 상황과 흡사합니다.

 

욥은 비극적인 상황에서 괴로워하면서 그의 친구들과 함께 많은 논쟁을 했습니다. 하나님께 괴로움을 쏟아냈습니다. 그런 남편의 상황을 보면서 욥의 아내는 욥에게 하나님을 저주하고 죽으라는 극언까지 서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고난 중에 있는 나오미와 룻의 경우에는 그러한 모습을 찾을 수가 없습니다. 그것이 받아들여야 할 하나님의 손길이이라는 것을 고백합니다. 20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나오미가 그들에게 이르되 나를 나오미라 부르지 말고 나를 마라라 부르라 이는 전능자가 나를 심히 괴롭게 하셨음이니라

 

전능자가 나를 심히 괴롭게 하셨음이니라 생사화복이 주님의 손길에 달려 있다는 믿음입니다. 이와 같은 믿음은 삶의 세계관이 여호와 하나님 중심임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 신앙에서 떠나지 않는 모습입니다. 욥의 고백입니다. 이르되 내가 모태에서 알몸으로 나왔사온즉 또한 알몸이 그리로 돌아가올지라 주신 이도 여호와시요 거두신 이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 하고....” (1:21) 그러므로 욥이 범죄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원망하지 아니하였다고 했습니다.

 

성도여러분, 삶이 힘들 때에 고난이 닥쳐올 때에 주저앉고 하나님을 원망하고 그야말로, “될대로 되라가정과 인생을 포기하는 모습이 있습니다. 그러나 믿음의 사람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견딥니다. 하나님의 섭리의 손길을 기다립니다. 꿋꿋이 본연의 자세를 견지할 때에 거두신 이가 여호와시니 그 믿음보시고 다시금 주시는 역사도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와 같이 살아가는 나오미에게 한 소식이 들려옵니다. 하나님의 은혜의 회복으로 베들레헴에 풍년이 임했다는 소식이었습니다. 그러니 나오미가 고향으로 돌아가고자 합니다. 하나님의 때가 임한 것입니다. 베들레헴, 위대한 역사의 땅이 될 곳이었습니다. 다윗이 태어나고 장차 메시야가 태어날 땅입니다. 역사를 이루어가시는 하나님의 손길은 틀림이 없습니다.

 

나오미가 고향으로 가고자 할 때에 두 며느리가 함께 따라 나섭니다. 효부지요. 함께 고생을 했는데 끝까지 시어머니와 함께 생사고락을 나누겠다는 자세입니다. 그때에 나오미의 생각은 다릅니다. 그러지 말고 너희도 친정으로 돌아가라고 하는 것입니다. 겉으로는 그럴듯하게 들리는 말입니다. 인간적인 생각이 앞선 말입니다. “남편없이 살기 힘들다. 그러니 고향에 가서 좋은 남편을 만나라는 조언이에요.

 

그러나 나오미의 이 모습은 하나님의 뜻과 섭리를 보지 못한 모습입니다. 저들이 자신의 가정에 며느리로 들어왔으니 자신이 섬기는 여호와 신앙을 보고 알게 되었으니 여호와 신앙으로 이끌어 주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저들이 돌아간다는 것은 곧 여호와 신앙을 버리고 원래 저들이 섬겼던 이방신에게로 돌아간다는 것도 알아요. 그런데 보내고자 합니다. 15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나오미가 또 이르되 보라 네 동서는 그의 백성과 그의 신들에게로 돌아가나니 너도 너의 동서를 따라 돌아가라 하니

 

첫째 며느리인 오르바가 돌아가게 되니 룻에게도 그 길을 가라고 합니다. 왜 이런 말을 합니까? 나오미의 마음에는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복을 주실 것을 알지 못해요. 내일을 볼 수 있는 영안이 없습니다. 확신이 없어요. 그러니 자신 없는 말을 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도 그런때가 있지 않습니까? 내일을 알 수 없어요. 상황이 점점 더 악화되어져 가는 상황에서는 더욱 그렇지요.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의 보이지 않는 손길을 볼 수 있는 영안이 있다면 아니 볼 수 없어도 믿을 수 있다면 우리는 그렇게 자신 없어 하지 않을 것입니다.

 

믿음의 사람은 좌절하지 않습니다. 사람에게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에게 당한 것이 없나니....” 라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지 않습니까? 감당할 만 하니까 주시고 감당 못할꺼면 피할 길을 주사 넉넉히 감당하게 하신다 (고전10:13)고 분명히 약속하셨습니다.

 

이 나오미와 대족적인 인물이 있습니다. 모세입니다. 저가 미디안 광야에서 40년의 삶을 살 때에 저가 함께 하던 장인어른과 그의 식솔들이 있었습니다.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과 출애굽을 하여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갈 때에 저들을 격려하며 같이 가자고 합니다.

모세가 모세의 장인 미디안 사람 르우엘의 아들 호밥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주마 하신 곳으로 우리가 행진하나니 우리와 동행하자 그리하면 선대하리라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복을 내리리라 하셨느니라 (10:29)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믿음으로 어려운 때를 이기며 나아가는 자들에게 복을 주시고자 준비하십니다. 이방사람들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지금 어려움에 있다하여 복음을 전하지 못할 이유가 없습니다. 그와 같은 패배주의에 갇혀있으면 안됩니다.

 

여러분의 가족 중에 사위나 며느리가 믿지 아니하는 집안에서 올 수 있습니다. 그것을 원치는 않지만 그럴 수도 있습니다. 그러할 때에 우리의 자세는 분명해야 합니다. 그것은 믿음의 시험이기도 합니다. 여호와 신앙으로 인도해야 합니다. 여러분 중에도 믿지 않지만 믿는 시댁에 와서 예수 믿게 된 경우가 있지 않겠습니까?

 

우리 교회에 새 가족이 된 한분 권사님의 간증을 저는 잊지 못합니다. 이 권사님이 어떻게 예수를 믿게 되었는지 여쭈었을 때에 대답했습니다. 시어머니가 교회를 다니셨는데 저를 교회로 잘 인도해주셨습니다. 얼마나 신실하고 좋으신지 시어머니를 따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제는 친정어머니도 시어머니도 떠나셨지만 제 마음에는 시어머니가 계속 마음에 남아 있습니디. 제가 예수 믿게 해 주셨기 때문이지요. 시어머니의 모습을 생각하면 제가 교회 섬기는 모습이 너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 권사님의 두 딸과 그리고 사위들이 신앙생활 잘하며 우리교회에 나오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 앞에 똑 바로 서 있으면 반드시 복이 임합니다. 하나님의 우리와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작은 일로 패배주의에서 벗어나 믿음을 선포하고 믿음으로 행진해 나아가시는 여러분 모두가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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